시각문화 이야기

효제문자도

효제문자도

조선시대 숙종, 영조 시기, 주자의 ‘효제충신예의염치’를 8폭의 병풍으로 만들어 일반 백성에게 유교의 원리를 가르친 효제문자도가 나오기 시작한다. 단순히 한자어를 그리는 수준이 아니라 여러 고사에서 따온 동물과 사물을 글자에 입히고 배경으로 사용했다. 지역적 특성이 반영되기도 하는데 물고기, 새, 꽃, 용, 죽순 등이 등장하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

빗물과 촘항

빗물과 촘항

수돗물이 일상이 되기 전 우물이 없는 곳에서는 빗물을 받아 사용했다. 비는 많이 오지만 물이 귀한 제주의 중산간에서는 나무에 ‘촘’이라 불리는 짚으로 만든 띠를 달고 그 아래 항아리를 놓아 빗물을 받곤 했다. 어떤 나무의 물인가에 따라 물맛이 달랐고, 옹기 속에서 석달을 숙상하면 더 깔끔한 물맛을 즐길 수 있었다고 한다. 옹기의 크기와 수에 따라 그 집의 생활수준을 가늠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경의선 공유지 시장

경의선 공유지 시장

경의선 철로가 지하화된 후 남은 경의선 공유지에 시민운동가들이 모인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은 도시난민을 위한 ‘26번째 자치구’를 만들었다. 평당 땅값이 수천만 원에서 수억을 넘어가는 시대에 공유지는 첨예한 갈등의 공간이다. 철도시설공단의 퇴거요청에도 불구하고 강제철거된 노점상, 돈이 없어 내몰린 청년들까지 쫓겨난 상인들까지 모여 말 그대로 모두의 땅인 이곳에서 시장을 열고 있다.

쓰레기 NO

쓰레기 NO

쓰레기가 작은 동네부터 국가 간까지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하루에 버리는 쓰레기는 평균 930그램. 1키로에 가깝다. 그중 음식물 쓰레기가 40%인 370그램. 아직도 더 줄일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더 기쁜 소식은 한국이 분리수거율이 높아 자원재활용율이 독일, 오스트리아에 이어 세계 3위라는 것이다.

변하는 생태계

변하는 생태계

지구 평균기온 상승, 1870년 대비 해수면 20cm 상승, 식물 유전자의 변화, 멸종 동식물 증가, 모기의 확산 등 기후변화는 단순히 수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를 바꾸고 있다. 과거 제주도에서 볼 수 있던 나비들도 사라지고 기후변화에 따라 새로운 종이 들어왔다. 인간의 몸은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미래책방

미래책방

독립서점이 퍼져가고 있다. 개인의 창의성을 담은 독립출판물이 늘자 그 출판물을 유통하는 작은 서점도 늘어나는 것이다. 홍대 입구처럼 번화한 지역 구석부터 시골마을까지 장소도 다양하다. 이런 곳에 오는 고객은 주로 20,30대인데 비인기분야의 책들을 큐레이션한 작은 서점들의 미래가 그들에게 달려있다. 사진은 제주시 삼도2동의 ‘미래책방’

예술공간 봄

예술공간 봄

수원시 오래된 동네에 방앗간이 있었다. 이 건물을 개조하여 문을 연 예술공간 봄은 수원시 도시재생의 자랑이다. 대관을 하는 전시장과 음료를 파는 카페에는 늘 사람들이 북적이는데 장사하는 곳이라기보다는 동네 사랑방에 온 느낌을 준다. 획일적인 시멘트 구조물에 싫증이 난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곳이다.

문화공간 반석탕

문화공간 반석탕

제주시 삼도2동에 1974년 목욕탕 반석탕이 들어서 주민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세월을 비켜가진 못했다. 2010년 문을 닫은 후 황폐한 공간을 젊은 문화기획자들이 모여 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몸을 담그고 때를 밀던 공간에서 영상과 설치 작업을 보면 흔하고 평범한 것을 넘어 새로운 각성을 하게 된다.

도자기 침대

도자기 침대

사물에 대한 생각을 조금만 바꿔보면 재미있어진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 키보드가 아니라 종이 키보드, 밀가루 빵이 아니라 돌덩어리 빵, 도자 변기가 아니라 폴리우레탄 변기 등등. 예술가의 상상력은 그렇게 작용한다. 한 유명 작가가 침대를 도자기로 만들었다. 물론 잘 수 없는 침대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대하는 푹신함을 져버린 딱딱한 침대는 왕실에서나 봄직한 파란 색과 둥근 모양으로 새로운 종류의 편안함을 준다.

빛의 벙커

빛의 벙커

제주도 한적한 야산지대에 군사통신시설 보호 벙커가 있다. 시대의 변화로 이 벙커는 용도를 다했고 지금은 커피 전문회사가 소유하고 있다. 그 벙커에 프랑스의 아미엑스(AMIEX)사의 몰입형 미디어 아트 전시가 1년 동안 열리고 있는데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백년 전 비엔나에서 활동했던 클림트의 미술을 음악과 함께 편집해 기술과 예술의 차이를 좁히고 문화산업으로 만들어 냈고 국내 한 회사가 수입해 판매하고 있다.

면세점 앞

면세점 앞

기다린다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을 때만 할 수 있다. 맛집이나 병원 등등. 9시 문을 열기 전부터 면세점 앞에서 줄을 서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면세점을 꼭 사야할 물건이 있고 그 물건을 건네줄 곳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추운 날 제주의 한 면세점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이다. 아침이면 백여 미터 줄을 서 기다리는 관광객이 장관을 이룬다.

트리하우스 역삼동

트리하우스 역삼동

'공유'가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있다. 최근 서울 강남에 월 119만원으로 살 수 있는 공유주택 ‘커먼라이프 역삼 트리하우스’가 등장했다. 8층 건물에 방은 각자 쓰고 주방, 세탁실, 서재, 사무공간, 반려동물 샤워실 등은 같이 사용한다. 모든 방은 풀옵션에 토요일 무료 조식, 커피 무료 이용 등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요가 수업 등 여러 이벤트도 이용할 수 있다. 사진은 건물 가운데 실내 정원. 사진출처. 트리하우스 커먼라이프 페이스북

홍선웅의 산다화

홍선웅의 산다화

작가 홍선웅은 민중미술을 하다 판화 작업으로 돌아선 작가이다. 판화연구와 함께 <한국근대판화사>라는 책을 출판했다. 그는 젊은 날 치열한 민주화 항쟁의 시대를 지나서 지금은 소소한 일상에 주목한다. 남도의 고찰에서 스님들과 차를 마시며 동백꽃을 즐기는 기쁨을 담은 <산다화>시리즈로 자신의 삶을 표현하고 있다. 판화 속에는 ‘시 한수 지으려고 여기저기 살폈더니 눈 속에 산다화가 붉게 피어있었네’라고 적혀있다.

양기훈의 민충정공혈죽도

양기훈의 민충정공혈죽도

1905년 을사늑약으로 조선이 외교권을 상실하자 고종의 시종무관이었던 민영환은 비굴한 현실을 슬퍼하며 45세의 나이로 자결했다. 그가 죽은 지 반년 후인 1906년 그가 자결할 때 입었던 군복과 단도를 보관하던 방에 푸른 대나무 네 줄기가 솟아났고 사람들이 모여와 ‘혈죽(血竹)’이라고 부르며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렸다. 사진은 동양화가 양기훈이 그린 그 혈죽도로 혈죽 이야기가 유명해지면서 판화로 제작되어 판매되었다.

치마의 변신

치마의 변신

전통 한복에서 치마는 부의 수준을 보여주곤 했다. 조선시대 이전에 부유한 집의 여성들을 치마 7,8필을 겹쳐 입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긴치마는 양반계급에서 입었고 짧은 치마는 천민들이 입었다. 근대 개화기 이후 신여성들이 짧은 치마를 입으면서 한복도 크게 변화했는데 오늘날 긴 한복치마는 구속과 서러움을 피할 수 없던 과거 여성의 삶을 대변하는 듯하다. 한 예술가의 설치 작업에 쓰인 한복 치마들.

늙은 호박

늙은 호박

넝쿨이 퍼지면서 어디에서나 무던히 잘 자라는 호박은 고구마, 감자와 더불어 시골에서 널리 재배된 작물이다. 작은 것은 몇 백 그램부터 큰 것은 8키로 이상까지 크는데 익을수록 단단한 황색 껍질에 비해 안은 단맛이 커진다. 요즘은 드물지만 가을에 수확한 호박을 쌓아놓고 추운 겨울 호박죽이나 범벅을 해먹곤 했던 시절이 있었다. 한 시골집에서 겨울을 나고 있는 호박들.

신개념미용실 '이유'

신개념미용실 '이유'

청담동의 '이유'는 머리, 메이컵, 네일 등 간단한 치장부터 결혼식 화장까지 모두 소화하는 곳이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치장을 하는 곳인 만큼 단장을 마치면 사진을 찍고 싶은 손님의 마음을 헤아려 매장 곳곳에 포토존을 운영한다. 앙증맞은 낙서부터 네온작업까지 신세대의 감각을 반영하고 있는데 건물외관도 예외는 아니다.

제국시대 체험

제국시대 체험

커피를 좋아했던 대한제국 황제 고종은 사진으로 많이 남아있다. 서양식 옷을 입고 전문사진사 앞에서 한껏 멋을 부린 모습니다. 편하게 핸드폰으로 셀카를 찍는 요즈음, 사진관에서 옛 방식으로 사진을 찍을 일이 거의 없다. 아름다운 산야가 그려진 벽 앞에 고풍스러운 가구를 놓고 사진을 찍다보면 왠지 과거의 화려한 시대로 돌아가는 듯하다. ‘문화역서울 284’에 열린 <커피사회>라는 전시에 제공된 임시 사진관을 즐기는 관객들.

거리의 악사

거리의 악사

이곳저곳을 떠다니는 거리의 악사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집시부터 남사당까지 소리와 몸짓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떠나곤 했다. 떠다니는 사람들은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이자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삶의 무게를 떨칠 수 있는 영감을 준다. 그러나 그들의 몸짓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느려지고 어디선가 멈추는 시간이 온다.

아이 러브 김치

아이 러브 김치

한류의 확산으로 외국의 도시에서 우리나라 음악과 음식을 듣고 맛보는 것이 흔하게 되었다. 특히 김치는 오래전에 맵고 짠 이색적인 음식으로 각인되다가 지금은 건강에 좋은 음식으로 인정받는다. ‘김치를 사랑해’. 뉴질랜드 퀸즈타운의 한 한식당이 바뀐 김치의 인식을 의식한 듯 내건 상호.

갤러리 카페 지오

갤러리 카페 지오

커피를 마시며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 카페가 유행이 된지 꽤 되었다. 그러나 갤러리 카페도 저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어떤 곳은 예술가가 운영하는 곳이 있고, 어떤 곳은 프랜차이즈 커피점도 있고, 어떤 곳은 허름한 건물을 리모델링해 주인의 철학을 보여주는 곳도 있다. 제주의 지오 갤러리 카페는 예술가가 운영하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꾸준히 지역 미술인들이 넘나들며 공간을 빛내고 있다.

제주도 수선화

제주도 수선화

제주의 겨울은 바람이 혹독한데 비바람을 뚫고 피어나는 청초한 꽃이 바로 수선화이다. 곧은 녹색 줄기에 하얗고 노란 꽃망울이 피면 봄이 멀지않다는 소식이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에 유배를 온 후 좋아했다는 이 꽃은 그의 그림에도 나온다. 지금 제주 곳곳에는 수선화가 바람을 타고 향긋한 냄새를 풍기며 2월을 알리고 있다.

대안공간 눈

대안공간 눈

수원 행궁동은 오래된 동네이다. 신시가지와 아파트촌의 증가로 자연스럽게 인구가 빠져 나갔다. 이 동네에 사는 미술인 이윤숙 부부는 자신들이 살던 집을 개조해 문화공간으로 문을 열었다. 1997년에 시작하여 벌써 20년이 넘었다. 그러나 이웃과의 분쟁, 운영비 확보 등 힘든 일이 계속되자 문을 닫았다. 마지막을 기념하며 파티를 연 지난 1월, 당연한 공간이 사라진다는 소식에 슬퍼하는 동네주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커피사회 2019

커피사회 2019

이번 겨울 ‘문화역서울 284’에 커피향이 넘치고 있다. '커피사회'라는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 입구부터 출구까지 커피 이야기와 커피 서비스로 손님을 받는다. 근대 문예다방부터 커피에 관련된 예술가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무료입장권으로 받은 컵을 제시하면 커피도 마실 수 있어서 매일 인산인해를 이룬다. 2층에서 커피를 음미하는 사람들.

겨울 철새

겨울 철새

습성이란 참 놀라운 것이다. 개울물이 흐르는 곳에 겨울이면 철새들이 돌아온다. 다른 곳도 많으련만 잊지않고 와서 겨울을 보낸다. 긴 여행이 피곤한지 낮에도 웅크리고 잠을 잔다.

야간의 관덕정

야간의 관덕정

관덕정은 조선시대 제주의 관아였던 자리에 있는 문화유산이며 군사훈련부터 참수형까지 권력의 희노애락을 목도한 건물이다. 오늘날은 현대식 조명장치를 달고 아픈 기억을 고고한 풍경으로 중화시킨다.

강남따숨소

강남따숨소

이번 겨울 들어 강남 여러 곳에 ‘따숨소’가 세워졌다. 강남구청이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들을 위해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임시 공간으로 만들었는데 벌써 91곳에 들어섰다. 3월 이후에는 접어서 보관했다가 오는 겨울에 재설치가 가능한 구조이다. 구청은 따숨소마다 색색이 다른 디자인을 입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조형물처럼 활용하고 있다.

겨울 마케팅

겨울 마케팅

쇼핑객들에게 날씨는 기분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마케터들은 소비자의 심리에 맞게 홍보수단을 달리한다. 겨울이 오면 겨울에 뭔가를 기대하는 소비자의 마음을 읽게 된다. 산타와 루돌프 이야기처럼 크리스마스와 겨울을 풍요롭게 만드는 동화를 활용하기도 하고 LED 조명의 신기술을 활용해 백색 겨울의 맛을 한껏 살리기도 한다. 사진은 LED로 한껏 멋을 낸 마차 조형물.

뒤샹의 나부

뒤샹의 나부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의 움직임을 포착한 이 그림은 프랑스 작가 뒤샹의 작품이다. 1913년 뉴욕의 한 전시에 선보인 후 낯설다는 이유로 인기를 얻는다. 그는 더 나아가 1차 세계대전을 피해 간 뉴욕에서 변기를 전시한 <샘>을 선보이며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렇게 ‘이상한’ 작품 몇 개로 20세기 위대한 작가 3인에 꼽히는 뒤샹이 탄생하게 되었다.

돌, 가짜

돌, 가짜

한 작가가 돌을 만들어 전시장에 걸었다. 인조대리석처럼 공장에서 돌을 섞은 가공물이 아니다. 스티로폼으로 돌의 형태를 만들고 표현에 돌과 같은 느낌이 나게 칠을 했다. 가벼운 재료로 무거운 돌의 느낌이 나게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정작 가뿐하게 벽에 걸면 예상했던 묵직한 무게를 느낄 수 있다. 자연과 인공의 한끝 거리가 주는 쾌감이다.

마포 문화비축기지

마포 문화비축기지

서울시가 2015-17년 사이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인근의 오래된 6개의 석유 비축 탱크를 리모델링하여 친환경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1970년대 석유파동 당시 안정된 석유 공급을 위해 지은 탱크는 1999년 폐쇄되었고 폐산업시설을 도시재생에 활용하는 최근의 유행을 반영하여 <문화비축기지>로 문을 열었다. 공연장, 커뮤니티 센터, 전시장 등 시민을 위한 시설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매년 일정량의 예술품을 구매하거나 기증받는다. 그러다보면 수장고가 넘쳐나는데 국립현대미술관이 부족한 공간을 확보하고자 청주의 낡은 연초공장건물을 리모델링했다. 500억이 넘는 예산을 들여 2년에 걸쳐 수리한 건물은 2018년 12월 개관하여 수장고, 보존과학실 등 모든 시설을 개방형으로 만들어 관객이 직접 소장품과 보존처리과정을 보여준다.

해녀 동상

해녀 동상

섬에서 바다는 밭보다 더 풍요로운 먹거리 채취장이다. 제주에서 바다를 누비며 해산물을 채취하는 여성을 ‘잠녀’라고 부르는데 일제 시대를 거치며 해녀라는 명칭으로 바뀌었다. 제주 경제를 이끌고,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을 펼칠 정도로 용감한 해녀였지만 보통 어촌에서는 정겨운 어머니를 연상시킨다. 관광객이 찾는 한 어촌마을에 세워진 해녀상.

동물의 힘

동물의 힘

오래전 인간이 동물과 경쟁하며 살던 시절에는 신이 동물로 위장했다고 믿기도 했고, 호랑이, 뱀과 같은 특정 동물의 특성을 신성시하기도 했다. 중국에서 비롯된 12지신은 년도와 월, 일, 시간뿐만 아니라 운명의 척도가 되었다. 한 예술가가 사슴의 뿌리에서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만들어 동물에서 영감을 찾던 고대의 상상력을 되짚어 보았다.

이우환의 사각형

이우환의 사각형

사면이 직선이면서 직각인 형태를 사각형이라고 한다. 기하학, 물리학 등의 기본이자 미술에서도 기본적인 형태로 사용된다. 원형과 삼각형과 함께 기본적인 형태인데, 특히 근대 이후 직선으로 이루어진 사각형이 효율성을 인정받아 많은 곳에 응용되었다. 건물, 길, 보도블럭 등 웬만한 것들은 기본적으로 사각형을 응용하고 있다. 작가 이우환은 사각형을 하늘, 땅, 인간의 관계항을 지칭할 때 사용한다.

주의 향연

주의 향연

곡물이나 과일의 성분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알콜만 증류한 보드카나 소주, 곡물이나 과일을 발효해서 얻는 와인이나 정종과 같은 술을 빼면 사교를 할 수 없을 정도의 시대가 되었다. 술이 힘이 커지면서 정부의 간섭도 많아졌고 대량생산으로 수익을 올리는 기업도 생겼다. 그리고 술을 마시려는 사람은 줄지 않는다. 한 작가가 친구들과 마신 술병을 모아 작품으로 만들었다.

미니멀리즘

미니멀리즘

‘단순하게 살아라’를 외치며 물질보다 건강과 소중한 관계를 높이 사야한다는 책 <미니멀리즘>이 미국에서 수백만권이 팔린 바 있다. 복잡한 것보다 최소의 것만을 남기는 태도는 예술에도 존재한다. 삼각형, 원 등 가장 단순한 형태만으로 만들어진 작업. 한해를 되돌아보게 되는 요즈음 필요한 태도이다.

도시재생 아트페어

도시재생 아트페어

아트페어는 미술품을 파는 장터를 말한다. 다양한 아트페어가 많이 늘었다. 그러나 미술을 사려는 사람이 빠르게 늘지는 않는다. 그래서 젊은 작가의 작품을 저렴하게 팔수 있는, 인적이 드문 지역의 건물이나 공간을 선호하는 아트페어도 늘고 있다. 사람이 모이면 도시재생은 덩달아 되기 때문이다. 사진은 오래된 도심의 여관에서 열리는 한 아트페어의 모습

안개낀 날

안개낀 날

공기 중에 수분이 많아지면서 생기는 놀라운 자연현상이 안개이다. 구름이 낮게 드리운 것과 같은 데, 몽환적인 분위기 때문에 현실과 착각을 오가는 매개체로 예술가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도로나 배, 비행기에서 큰 사고로 이어지며 생명을 앗아가기도 한다. 지역마다 안개 낀 날도 다른 데 캘리포니아, 칠레, 아르헨티나 등 일부지역에는 연간 200일이 넘는 곳이 있다고 한다.

인공생태

인공생태

살아있는 것들은 언젠가 시들어 사라진다. 꽃은 피고 지고, 나무는 커서 부러진다. 그러나 살아있을 때 한 순간 절정의 아름다움을 보일 때가 있다. 인간의 청춘이나 장미가 만개할 때 같은 순간이다. 그런 절정을 오랫동안 감상하려고 인공 꽃과 식물을 만들기도 한다. 쉬이 사그라들지 않는 장점 때문에 제작기술이 발전하며 눈을 속일 정도이다. 사진은 한 미술관에서 만난 인공식물들.

뜨개질의 매력

뜨개질의 매력

바늘 몇 개와 실을 이용해서 손으로 짜는 기술은 고대 중동에서 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양털실로 짜던 기술은 후대에 이르러 면실부터 실크까지 확산되었다. 산업혁명으로 손뜨개질이 사양길을 걷다가 요즘은 다시 취미로 인기를 얻고 있고, 예술가도 뜨개질로 된 작업에 눈을 뜨고 있다. 한 작가가 빨간 거미줄 같은 설치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로비

아모레퍼시픽 로비

미술관, 쇼핑몰, 회사가 한 곳에 그리고 서로 어우러져 감각을 깨우는 공간이 입소문을 타고 있다.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아모레퍼시픽의 신사옥은 외벽의 알루미늄 커튼월도 환상적이지만 건물을 들어가는 순간 탁 트인 시야와 환한 분위기가 압도적이다. 유명작가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고 미술관, 전시용 샵부터 맛 집까지 한 번에 이용할 수 있는 데다 지하철역과 연결되어 겨울회합장소로 인기다.

예술가의 텐트

예술가의 텐트

난민 문제는 일상이 되어간다. UNHCR의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매일 4만4천4백명의 사람이 갈등과 처형의 위협으로 집을 떠나고 있고 강제로 집을 떠나 헤매는 난민은 전 세계에 대략 6천 8백 5십만 명 정도라고 한다. 그러니 집과 안전한 공간에 대해 생각을 피할 수 없다. 한 예술가가 사람들이 입고 버린 옷으로 텐트를 만들어 집의 임시성을 말하고 있다.

자연의 영감

자연의 영감

가을이 주는 것들이 많다. 요즘 들녘에 피어나는 것들을 따다가 꽃병에 꽂을 수도 있고 화환을 만들 수도 있다. 한 작가가 억새를 가지고 전등갓을 만들었다. 보송한 털이 모여 소담스러운 빛을 만들어낸다. 플라스틱과 폐비닐로 몸살을 앓는 지구를 위해 자연에서 영감을 얻을 때이다.

그림의 향연

그림의 향연

시간이 많아지거나 취미활동이 필요할 때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 그림이다. 종이나 캔버스에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고 물감을 칠하면 되기 때문이다. 쉽게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인구는 줄지 않는다. 미술대학을 나온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한 전시에서 현재의 그림의 인기를 보여주듯 벽 가득 그림으로 채웠다.

겨울을 준비하는 동백

겨울을 준비하는 동백

세상 만물에도 저마다 다른 개성이 있다. 산천이 단풍으로 물들고 떨어지는 늦가을에 동백은 겨울을 준비한다. 봉오리가 생겨나면서 눈이 쌓인 겨울 뚫고 나올 채비를 하는 것이다. 벌이 없는 겨울에 피다 보니 새가 꽃향기를 맡고 날라 와 수정을 해준다. 꽃은 식용할 수 있고 열매에서 얻은 기름은 먹을 수도 있고 헤어 오일로 사용할 수도 있다.

비누 도자기

비누 도자기

상식을 파괴할 것. 현대미술이 장려하는 모토 중의 하나이다. 신미경 작가는 비누로 우리에게 익숙한 도자기를 만든다. 지난 20여 년간 ‘비누 조각가’로 런던부터 아시아까지 세계를 누비며 작업하는데, 그 인기의 비결은 마치 대리석이나 도자의 표면처럼 감쪽같이 만든다는 것이다. 도자기라 믿었던 것이 사실 도자기가 아니라고 밝혀질 때 오는 놀라움에 주목해 보자.

자연의 형식

자연의 형식

사람의 외양이 다양한 것도 놀랍지만, 자연이 만든 것들은 더 놀랍다. 각각의 형태가 다 다르고 색깔, 크기, 맛과 향기까지 달라서 사람을 즐겁게 한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세상의 있는 것들, 특히 자연이 만든 것들을 다 아는 데 얼마나 걸릴까? 생물학에서 식물학, 광물학까지 다 섭렵할 수는 있을까? 한 예술가가 겸손하게 일상에서 접하는 자연의 선물에 주목하고 관객을 초대하고 있다.

파르티아 제국의 동전

파르티아 제국의 동전

화폐는 무역에 꼭 필요한 수단이다. 과거 어느 제국이나 모종의 화폐가 통용되곤 했는데 무역의 양에 비례해서 화폐의 양도 늘었다. 사진은 중동과 서남아시아를 지배하던 고대 파르티아 제국의 동전이다. 실크로드의 중간을 차지한 채 로마제국과 대척하며 무역상들로부터 수입을 올리던 제국의 동전 앞면에는 왕의 모습이, 뒷면에는 사수의 모습이 담긴 경우가 많았다. 아쉽게도 문자가 발달하지 않아 스스로 쓴 역사는 없고 단지 로마인이 기록한 ‘편견’의 역사만 남아있다.

나무껍질 편지

나무껍질 편지

오래전 종이가 발달하기 전, 지역마다 글을 쓰는 재료가 다양했다. 위그루 족은 14세기까지도 자작나무 껍질에 글을 썼다. 사진에 보이는 글 중 하나에는 멀리 떨어진 어머니와 아들 간에 주고받은 서신이 들어있는데, 걱정하는 어머니와 가족 품으로 돌아가고픈 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암스테르담의 천국

암스테르담의 천국

개방적인 사람들을 만나려면 암스테르담 만한 곳이 없다. 오래전부터 장사와 무역으로 흥한 곳이어서인지 이방인에게 쉽게 말을 트고 새로운 문화에 적극적이다. 이 도시의 뒷골목에 가면 홍등가부터 마리화나까지 없는 게 없을 정도이다. 사진은 마리화나를 이용한 초콜릿부터 음료수까지 다양한 상품을 파는 가게.

문장

문장

오래전 유럽에서는 가문이나 단체의 권위를 상징하는 장식을 만들곤 했는데 바로 문장(coat of arms)이다. 종종 동물, 물건, 기호 등으로 만든 복잡한 구성이며, 중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지역마다 성행했다. 사진은 네델란드 할렘에서 활동하던 장인들의 모임인 길드의 문장이다. 주변의 작은 문장들은 각 가문의 것이고 여러 가문이 참여한 길드의 문장은 가운데에 크게 만들어졌다. 마을 교회 건립에 기여한 길드의 공과 업적을 기리는 용도이다.

할렘 그로테 케르크 교회 천정

할렘 그로테 케르크 교회 천정

16세기 말 기독교 개혁으로 신교의 교회로 사용되기 시작한 네델란드 할렘의 그로테 케르크(Grote Kerk)는 고전적인 고딕 성당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종교개혁 이전에 카톨릭 교회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높은 천정과 긴 창문이 특징인데, 특히 천정의 볼륨이 일품이다. 직선과 곡선이 교차되며 길게 늘어지는데, 기술에 따라 그 길이가 결정된다. 그래도 100미터를 넘지 못한다.

피아노 레슨

피아노 레슨

여성화가가 많지 않던 시대에 헨리에테 로너-닙(Henriette Ronner-Knip)은 네델란드의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나고 교육을 받았다. 그림을 잘 그렸지만 특히 섬세한 동물 그림에 빼어난 작가였으며, 고양이와 개 그림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 그림은 74세가 되던 1895에 그린 그림으로 피아노 위에서 놀고 있는 고양이들의 앙증맞은 모습을 보여준다.

이중섭의 화구

이중섭의 화구

한국인이 사랑하는 예술가 이중섭은 비극적 삶과 애처로울 정도로 몰입했던 예술작품으로 기억된다. 그가 그린 그림은 사랑하는 아들들과 부인을 담거나 힘들었던 한국인을 위로하듯 힘찬 소로 표현되곤 했다. 그가 사망하기 얼마 전 쓰던 화구를 부인에게 남겼는데, 부인은 그가 사망한 이후에 남편의 손길이 닿은 화구를 간직하다 최근 서귀포의 이중섭미술관에 기증했다.

정주석

정주석

도둑이 많지 않고 동네사람 모두 서로 도와가며 살던 시절에 제주에는 대문이 없고 정주석과 정낭이 대문 역할을 했다. 집 입구 양쪽에 정주석을 하나씩 설치하고 그 사이를 긴 나무로 연결하곤 했는데 돌이 많은 섬 제주에서 나온 독특한 문화이다. 도둑이 많아진 오늘날 정주석은 박물관에서나 보는 유물이 되었다. 당연히 대문은 높아지고 안은 들여다 볼 수 없을 정도로 폐쇄적으로 변했다.

돌하르방의 노트북

돌하르방의 노트북

전통과 현대를 접목할 때 혹여 소중한 과거의 문화를 손상시키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러울 때가 있다. 돌하르방은 제주의 수호신과 같은 존재인데 누군가 노트북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으로 만들었다. 카카오 브랜드를 홍보하는 동시에 돌하르방처럼 우직하게 일하는 직원들을 담아낸 위트가 미소를 짓게 만든다.

배달의 천국

배달의 천국

1인 가구가 늘고, 한번 편리함을 맛보면 되돌리지 못하는 심리 때문인지 요즘 먹거리 배달 서비스가 늘고 있다. ‘어디든지 배달합니다’라는 서비스 정신은 그만큼 어디에서라도 먹고 싶은 수요가 있어서일 것이다. 도시에서 먼 해변가, 강가에도 배달가능하다는 서비스 정신이 낳은 현수막이 돌 사이로 시선을 끈다.

아름다운 가게

아름다운 가게

왜 인간은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아름답지 않은 것보다 우리의 감성을 좋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갤러리와 미술관처럼 아름다운 것들을 보여주는 곳이 따로 있어도 우리는 일상 속으로 예쁘고 소담한 것들을 들여온다. 허름한 가게를 꽃장식으로 치장한 주인 역시 그런 마음에서 하지 않았을까?

장소와 형태

장소와 형태

모든 사물은 저마다의 형태가 있고, 그 사물이 놓여진 장소에서 의미를 갖는다. 장소가 바뀔 때마다 사물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변기가 화장실에 있을 때와 미술관에 전시될 때 의미가 달라지듯이. 한 예술가가 창문에 둥근 형태가 반복되는 작업을 설치했다. 투명한 유리가 건물 안팎을 이어주고 있고 검은 테이프 작업은 그 위에서 예사롭지 않는 존재감을 드러낸다. 눈에 띄지 않았을 유리와 검은 형태들이 만나 서로 ‘여기에 있음’을 드러낸다.

공간과 형태

공간과 형태

공간과 형태는 시각을 다루는 이들에게 오래된 주제이다. 어떤 형태가 아름다운가? 그 형태가 차지하는 공간과 주변의 공간은 어떤 관계인가? 색과 빛은 그 형태와 공간에 어떻게 작용하는가? 이런 질문이 끝없이 이어지다 보면 다양한 형태와 공간이 만드는 여러 가능성에 매료되게 되고 예술가와 건축가는 자신만의 형태를 찾는다. 한 예술가가 작은 공간에 물을 채우고 조명을 곁들인 후 사각형의 구조물을 띄웠다. 공간과 형태의 관계를 탐색하고 있다.

중선농원 갤러리2

중선농원 갤러리2

사람이 있는 곳이든 없는 곳이든 예술은 자리를 잡는다. 사막에서 대지미술이 펼쳐졌고 길거리에 공공미술이 들어선다. 자연이 아름다운 제주의 과수원에도 예술이 들어왔다. 한 과수원 감귤창고를 개조해서 만든 <갤러리 2>는 느린 삶을 기대하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인 곳이다. 과수원 내 전시장에 들렸다가 카페에서 차 한잔 마시는 여유가 있는 곳이다.

성수동 언더스탠드 애비뉴

성수동 언더스탠드 애비뉴

공사 중인 도시는 어딘지 부산하다. 혹시 사고라도 날까 지나는 것도 조심스럽다. 성수동 대규모 건축공사장 인근에 미관을 아름답게 하고 빈 터를 활용하고자 컨테이너 116개를 활용한 <언더스탠드 애비뉴>가 2016년 태어났다. 기업과 민간단체 그리고 구청이 협업으로 만든 곳인데 트랜디한 가게들이 들어서 공사장 옆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예술과 유희사이

예술과 유희사이

한 작가가 아이들과 어른이 쉴수있는 입체물을 만들었다. 밝은색으로 단장하고 남녀노소 다 좋아하는 추상구조물을 만들어 사람들을 기다린다.

가을의 그늘

가을의 그늘

오래된 한옥을 리모델링 하고 조명을 밝혀 고즈넉한 풍경을 만든다. 현대식 건물 뒤켠에 자리잡은 기와집은 조용히 사라진 옛것을 넘어 여유로운 시간의 증거처럼 다가온다.

18세기 유럽 지도 속의 한국과 동해

18세기 유럽 지도 속의 한국과 동해

배를 타고 먼 곳에 가서 무역할 물건을 찾아 헤매던 유럽인들이 지도를 발전시킨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1791년경 네덜란드에서 통용된 지구본에는 이미 상당히 정교한 지도 위에 한국과 일본이 등장할 뿐만 아니라 평양이라는 지명과 동해를 한국해(Mare Corea)로 표기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에 진출한 예수교 신부들과 상인들을 통해 얻은 지리정보를 토대로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둥근 지구본을 완성할 정도로 유럽은 유럽 밖 세상을 빠르게 배우고 있었다.

네델란드 꽃 정물화

네델란드 꽃 정물화

17세기와 18세기 네덜란드는 무역과 산업의 발달로 중산층이 늘고 도시화가 진행되며 진기한 것과 아름다운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집에 꽃 그림 하나 거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고 그림 속에서 토종 꽃뿐만 아니라 이국적인 풀과 동물을 넣어서 구매자를 유혹하곤 했다. 그런 전통 속에서 예술가집안은 대대로 예쁜 그림을 그리며 번성했는데, 이 그림도 그런 집안의 후손인 지오르지우스 야코부스 요하네스 반 오스(1782-1861)가 그린 것이다.

해변의 추억

해변의 추억

냉동장치가 발달되고, 바닷가에서 여가시간을 보내는 중산층이 많아지면서 발달한 것이 바로 아이스크림 트럭이다. 아이들이 많은 학교 앞이나 운동장에도 아이스크림 트럭이 오기는 하지만 더운 여름날 먹는 아이스크림 맛은 역시 해변이 최고다. 반가운 마음에 트럭을 향해 올 아이들이나 동심을 가진 어른을 위해 아기자기한 장식과 느리게 움직이는 템포에 동요나 오래된 음악을 트는 것은 기본이다. 사진은 네델란드 해변의 아이스크림 차.

풍차

풍차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바람을 사용한 풍차는 곡식을 갈고, 물을 길러 올리는 등 여러 일에 요긴한 시설이었다. 풍차 기술은 이집트에서부터 유럽까지 확산되었고 수직, 수평 등 여러 형태의 풍차를 만들어냈다. 유럽 전역에 풍차가 사용되었는데, 네델란드에서는 우리나라의 봉화대처럼 멀리 신호를 보내는 시설로 사용되기도 했다. 현대화된 풍력시설이 확산되면서 과거의 풍차는 과거의 추억이자 문화유산이 되었다. 사진은 네델란드 할렘의 풍차.

중국풍 장식 양탄자

중국풍 장식 양탄자

시노아세리(Chinoiserie). 프랑스어로 중국취향을 말한다.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럽의 왕실을 중심으로 동경의 대상이던 중국의 문화를 모방한 일련의 예술적 취향을 말한다. 중국을 경험한 사람들이 극소수였던 시절 막연한 호기심과 수입된 물건들을 보며 나온 취향으로 실내 장식부터 그림까지 두루 퍼졌으며, 일본, 한국, 동남아시아 등 주변국 문화까지 통틀어 일종의 아시아 취향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19세기 영국과 중국의 마약전쟁이 터지면서 급격하게 쇠퇴하였다.

볼테르

볼테르

외국어에 능하고 글 솜씨가 빼어난 한 프랑스 청년이 18세기 부조리에 맞서고자 이름을 볼테르(Voltaire)로 바꾸고 기독교와 왕정에 억눌린 인간의 자유를 주창하기 시작했다. 바스티유 감옥을 경험했고 영국, 프러시아 등 유럽 전역에서 책을 쓰며 계몽사상을 퍼트린 그가 1778년 사망하자 백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운구행렬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를 존경한 예술가들은 그의 이미지를 그림과 조각으로 남겼다. 사진은 우동(Houdon)이 제작한 1781년의 볼테르 상.

겨울궁전, 군사 갤러리

겨울궁전, 군사 갤러리

역사를 쓰는 펜은 여러 개다. 그중 하나는 전쟁 이야기. 나라를 지키다 숨지거나 공을 세운 이야기는 후대에 널리 알려야 하는 역사의 일부가 된다.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하자 전략적으로 싸운 1812년 전쟁은 결국 나폴레옹의 신화에 오명을 남겼다. 이 전쟁에서 싸운 러시아 장군들의 초상화를 그려 왕궁이었던 ‘겨울궁전’에 영구전시하게 된다. 지금은 에르미타지 박물관의 일부가 되어 제정 러시아의 역사를 말해준다.

에르미타지 박물관

에르미타지 박물관

1764년 설립된 이 박물관은 러시아 제국의 영광과 화려함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황제가 살던 ‘겨울 궁전’을 포함한 여러 개의 건물에 수백만점의 소장품을 가지고 있고 초상화를 비롯한 그림들은 단연 세계 최고이다. 상페테르부르그의 네바 강변에 펼쳐진 바로크 양식의 ‘겨울 궁전’은 러시아의 흥망을 목도한 장소이자 에르미타지의 건물 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브론즈 호스맨

브론즈 호스맨

근대 러시아를 만드는 데 기여했던 피터대제(Peter the Great)는 학교, 군대정비 등 여러 면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고 유럽과의 교역을 넓히기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처음 만들었다. 그의 업적은 지금도 이 도시의 곳곳에 남아있으며 당연히 그를 기리는 동상도 있다. 그러나 튼튼한 뇌석위에 근사한 말을 탄 청동상이라는 점이 부각되어 피터대제라는 명칭보다 ‘브론즈 호스맨(Bronze Horseman)’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상페테르부르그의 미래

상페테르부르그의 미래

유네스코가 도시전체를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이 영광의 타이틀은 혹독한 대가와 함께 온다. 함부로 도시와 건물을 허물고 개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19세기 초 그리스 고전양식으로 지은 왕실기마대의 훈련장이 지금은 대형 전시장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 안에서 1703년에 세운 도시의 300년 후인 2103년의 미래를 그리는 전시 'SPB 2103'로 잠시 위안을 얻는다.

프란스 할스 미술관

프란스 할스 미술관

오래된 미술관에는 오래된 그림뿐 아니라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냄새가 있다. 가구에는 앉았던 이들의 체취가 나고 그림에는 시간이 묻어있다. 17세기 무역으로 돈을 번 부유한 시민들이 늘어난 네델란드의 황금기에 활동했던 프란스 할스(Frans Hals)는 그들의 초상화를 그리며 명성을 얻었다. 1862년 설립된 그의 미술관에 가면 치열한 현재의 삶을 잠시 잊고 일본 등 먼 나라와 무역으로 돈을 벌던 과거의 황금기로 돌아갈 수 있다.

테일러 뮤지엄

테일러 뮤지엄

인간의 호기심은 과학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과학은 권력을 평준화시켰다. 18세기 돈을 번 상인들도 과학에 관심을 가지며 유럽의 계몽기를 이끌었다. 일부는 박물관을 지어 자신의 모은 물건을 교육의 자료로 제공하기도 했는데 1778년 문을 연 테일러 뮤지엄은 한 예이다. 피터 테일러 반 데어 훌스트(Pieter Teyler van der Hulst)가 옷을 팔아 번 돈으로 과학과 예술에 헌신했던 삶과 흔적을 보여준다.

옛제사의 제기

옛제사의 제기

오래전 놋쇠를 다루기 시작한 이래로 제사상에는 놋쇠로 된 제기가 올라가곤 했다. 고려시대 유기 제작술이 뛰어나 얇은 유기가 발달했고 조선시대에는 대량생산될 정도로 유기가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나 일제시대 유기공출을 겪으면서 일반가정의 유기는 대부분 사라졌다. 다행히도 집안의 재실에 감추어져 있던 제사용 유기그릇이 남아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여름의 색과 향기

여름의 색과 향기

유난히 뜨거운 여름, 지상의 생명은 저마다 푸르름을 자랑한다. 나무와 풀이 내뿜는 냄새는 바람이 가져온 타지의 냄새와 섞여 여름만의 냄새를 만든다.

바로크 시계

바로크 시계

기술의 발달은 시계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특히 17세기는 추를 비롯해 정교한 기계장치가 계발되면서 시계의 정확도를 높였다. 이런 시계를 집에 두려는 수요가 늘어나면서 단순한 기계장치인 시계가 아니라 아름답게 장식된 시계가 나오기 시작했다. 사진은 웅장함을 강조했던 바로크 시대의 시계로 지금도 작동될 정도로 빼어나다.

미술 수업

미술 수업

오래전부터 창작의 시작은 모방이라는 신념이 있었다. 훌륭한 작가의 작품을 보고 그대로 따라 그리면서 그 작가의 기술을 배우고 정신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이런 신념은 서구의 미술관 역사에도 그대로 배어있다. 미술관 소장품을 보고 그리며 아이들은 전통을 배우고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역사 속의 자신을 깨닫는다.

축하화환

축하화환

경조사에 화분이나 화환을 보낼 때, 보내는 사람의 마음이 클수록, 화환도 점점 화려해진다. 최근 김영란법으로 10만원 이하의 화환만 허용되면서 우리나라의 화환 수난사를 돌아보게 한다. 1969년 화환 일절폐지, 1970년대 처벌조항을 두고 화환 단속을 벌이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후 단속과 느슨한 처리를 반복하다 결국 2000년대 들어 처벌규정은 사라졌다. 아마도 축하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데 화환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리라.

산과 물

산과 물

오래전부터 선조들은 산과 물이 빼어난 곳을 높이 평가했고 사람이 사는 환경의 근본으로 삼았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는 ‘산자분수령’이라는 말을 쓴 바 있는데, 산이 물을 가르며 한반도가 형성되었다는 말일 것이다. 우리가 사는 땅의 근본이 산과 물이어서인지 바쁘게 살다가 마주하면 늘 평온함을 느낀다.

독버섯

독버섯

자연에서 나온 것들은 신비롭게도 저마다 자신을 보호하는 매카니즘을 가지고 있다. 사자는 용맹한 발톱을, 뱀은 날카로운 이빨과 독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높은 지능과 섬세한 손을 가지고 있는데, 버섯은 특별한 유독성 물질을 함유하여 함부로 동물들이 먹지 못하게 한다. 지능이 높은 인간이 땅위의 버섯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힘, 그건 자연의 힘이다.

K-Pop 댄스 경연대회

K-Pop 댄스 경연대회

커버댄스(cover dance)는 특정 가수의 퍼포먼스 댄스를 모방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최근 K-팝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면서 외국의 젊은이들의 커버댄스가 늘고 있다. 그런 팬들을 위해 ‘K-팝 커버댄스’축제를 열어 세계에서 모여든 팀들의 경연을 벌이고 그 경연은 유튜브, 페이스북, 카카오 TV 등을 통해 생중계 된다. 사진은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8 K-팝 커버댄스 페스티발.

해물탕

해물탕

이런저런 재료를 넣어 국물을 자작하게 내는 탕은 한국인이 선호하는 1품 요리이다. 여러 명이 나눠 먹으며 정을 쌓기도 하고 진귀한 재료를 넣어 귀한 음식이라는 티를 내기도 한다. 해물이 귀한 재료가 되면서 살아있는 해산물을 넣은 해물탕의 가격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도 그 인기는 떨어지지 않는 것은 맛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들과 같이 먹는 문화 때문 아닐까?

세빛섬

세빛섬

디자인 도시 서울을 표방하며 2011년 완공된 세빛둥둥섬은 한강위의 인공건물이다. 그러나 민자사업으로 출발하며 경제적 타당성 때문에 한동안 방치되었다가 2014년부터 세빛섬이라는 명칭으로 회의, 이벤트, 공연 등을 여는 문화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화려한 LED 빛과 한강의 풍광이 어울려 점점 핫한 장소가 되고 있다.

시 한구절

시 한구절

시를 읽는 이들이 늘지 않지만, 그렇다고 사라지지도 않을 시. 가끔 어딘가에서 시 한 구절을 접하거나 시를 읽는 장면을 접한다. 시를 읽다가 좋은 경구가 나오면 다른 이들과 나누는 이들도 종종 있다. 한 식당주인은 이정하 시인의 시에서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라는 구절을 특별하게 생각한 모양인지, 식당 입구에 붙이고 사랑의 노래를 전한다.

예술, 바구니 변시

예술, 바구니 변시

동네 시장에 가면 잡화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라스틱 바구니들. 싸지만 매력적으로 보이려고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손님을 기다린다. 한 예술가가 그 바구니들을 사다가 서로 마주 보게 쌓아서 거대한 탑들을 만들었다. 익숙한 것을 비틀어 새롭게 만들고 대중적인 것을 고급스럽게 만드는 예술의 힘을 보여준다.

사라져 가는 것들

사라져 가는 것들

과거의 좋은 시절을 상기시키는 이미지들을 볼 때 ‘향수’에 사로잡힌다. 그 좋은 시절이 살아가는 현재의 뿌리가 되고 그 뿌리의 이미지를 보게 될 때 좋은 감정이 나오는 것이다. 1960-70년대 골목길에서 아이들과 놀면서 군것질하던 10대를 보낸 사람들에게 낮은 집과 소박한 간판은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만 그렇다고 그런 집과 골목을 지키지는 않는다. 아마도 그 시간이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까?

포스트잇 문화

포스트잇 문화

자신의 의견을 포스트잇(Post-it) 메모지에 적어 표현하는 일이 많아졌다. 미투 운동부터 항의와 저항, 추모와 소망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형형색색의 종이에 손글씨로 적고 하나씩 붙이다 보면 거대한 포스트잇 벽이 만들어진다. 3M이 처음 만든 포스트잇은 노랑으로 시작해서 여러 색으로 진화했는데, 짧은 문장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SNS시대에 유용한 도구가 되었다.

오월 호텔 스페이스

오월 호텔 스페이스

호텔이 점점 진화하고 있다. 최근 강남에 문을 연 오월호텔은 1층에 로비를 두지 않고 전시공간을 마련해서 현대미술을 선보이고 있다. 대신에 로비는 지하주차장에 주차하자마자 만날 수 있다. 화랑건물과 호텔을 혼합한 구조와 독특한 외관은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세련된 고객들을 유혹한다. 사진을 1층 전시장.

헬로우 뮤지엄

헬로우 뮤지엄

2005년 어린이교육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문을 연 헬로우 뮤지엄. 순전히 민간에서 재원을 마련하며 10년 넘게 예술로 신나는 삶을 찾도록 아이들을 이끌고 있다. 자체 건물이 없어서 그동안 3번 이사했지만 최근 금호동에서 자리를 잡고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에 전념하며, 사립미술관의 모범이 되고 있다.

일자리 도서관

일자리 도서관

귀한 문서를 보관하고 미래에 지식을 전파하는 곳이 도서관이다. 그러나 청년실업이 시대 화두가 된 오늘날 책을 읽는 도서관이 더 이상 편안하게 마음의 양식을 얻는 지식의 보고가 될 수 없나 보다 한 대학 도서관에 ‘일자리 도서관’이 생겼다. 일자리에 유용한 책이나, 일자리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그야말로 ‘일자리를 위한, 일자리로 향한’ 목적이 분명한 도서관이다.

등대

등대

빛의 집. 등대의 영어 lighthouse를 번역하면 그렇다. 캄캄한 바다를 항해하는 배를 위해 언덕에 불을 피우던 것이 등대로 발전했다. 빛을 멀리 반사하기 위해 특별한 렌즈와 등을 사용할 정도로 진화했다. 시대는 바뀌어도 먼 길을 가는 배에게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위안을 주고, 길을 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등대의 의미는 여전한데, 누구나 삶의 등대 하나정도는 필요한 것 같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지난 4월 잠실한강공원에 서울시에서 준비한 복합문화공간이 들어섰다. 이름 하여 ‘사각사각 플레이스’인데 컨테이너를 모아서 구성한 작업실과 전시공간, 야외 무대 등이 인상적이다. 18개 컨테이너 중 14개는 공모로 선정한 청년예술가들이 입주한 스튜디오로 사용되고 있다. 앞으로 아트마켓, 페스티벌 등 시민을 위한 행사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카네이션

카네이션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처럼 어른에게 감사를 표할 때 흔히 쓰는 꽃이 카네이션이다. 100여년전 미국에서 희색 카네이션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모하던 한 여성에게서 시작되었다는데, 붉은 색 카네이션이 대세가 되었다가 요즘은 온갖 카네이션이 등장한다. 꽃의 색이나 외양이야 어떻든 어른을 공경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자세가 전해지면 그만이리라.

어린이 놀이방

어린이 놀이방

아이들은 어디서든 뛰어논다.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에게 굳이 화려한 놀이방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호기심을 일으키고, 자극을 주어 상상력과 환상의 세계를 그리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라고 한다. 알록달록한 꽃문양에 커다란 벽화에 둘러싸여 놀면서 인지능력이 높아지고 더 진화한 인류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래된 문

오래된 문

두 개의 공간을 잇는 문은 통로이자 사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든 장치이다. 그런 문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여러 양식으로 진화했고, 한 집에도 대문, 중문 등 여러 문이 있는가 하면, 재료와 구조에 따라 홍예문, 널판문 등 여러 이름이 나왔다. 계급에 따라 집이 크기가 달랐던 조선시대에 양반가의 집안에서 문은 충직하게 품격을 지키곤 했다.

제프 쿤스의 세계

제프 쿤스의 세계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 제프 쿤스. 농구공부터 토끼인형까지 동심을 불러일으키는 물건을 예술로 승화한 작가이자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작가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부자 컬렉터들이 하나쯤 갖고 싶은 그의 작업은 제 시간에 주문에 응하지 못할 정도로 인기가 있다. 그러나 너무 비싼 작품을 사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사진이나 프린트를 판매하기도 한다.

티 테이블

티 테이블

영국에서 차를 마시는 것이 일종의 제의처럼 된 것은 빅토리아 시대이다. 식민지 인도나 중국에서 온 차를 아름다운 도자기에 담아 마시면서 오후 시간을 사교에 보내는 것이 교양있는 여성의 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차를 위한 도자기가 발달되고 차와 함께 먹을 스콘이나 샌드위치가 나오면서 ‘티타임’은 세련된 영국문화의 대명사가 되었다.

여름귤

여름귤

가을과 겨울을 거치며 제주의 귤 대부분이 수확된다. 그런데 추운 겨울을 보내고 여름이 되서야 수확하는 귤이 있다. 껍질이 두꺼운 이 귤은 겨울에 수분이 줄었다가 여름이 오면서 물이 오른다.

보리밭

보리밭

보리밭 사이길로 걸어가면... 애창가곡 '보리밭' 은 1950년대 초 전쟁이 끝날 무렵 발표된 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고향의 봄은 청보리밭의 바람을 타고 흐르다 초여름으로 달려간다.

뮤지컬 신과 함께

뮤지컬 신과 함께

21세기 문화산업은 일종의 순환고리 속에서 움직이는 것 같다. 웹툰 '신과 함께'가 인기를 끌자 뮤지컬로 제작되고 드디어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영화가 성공하자 뮤지컬이 세 번째 공연을 올렸다. 익숙한 내용이지만 죄와 삶에 대한 성찰 덕분인지 아직도 많은 이의 심금을 울린다.

밭위의 퍼포먼스

밭위의 퍼포먼스

맥주에는 치킨, 그림은 종이 위에, 춤은 무대 위에서. 익숙한 것들은 반복된다. 그 익숙함을 깨는 용기와 익숙함을 깬 행위를 허용하는 것이 예술이다. 바이올린, 피리를 연주하는 예술가들이 밭 위에서 연주하고 무용수들이 한바탕 움직이며 저녁 공기를 헤집고 다니며 예술의 본질을 보여준다. 제주도 화북에서 열린 '섬:섬' 공연.

디자인의 힘

디자인의 힘

새로운 감각을 사물에 입혀서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힘이 디자인에 있다. 생계를 고민하던 시대에는 사치처럼 보이던 디자인이 요즘은 거의 모든 물건에 입혀진다. 합판으로 제작된 강연자를 위한 탁자와 달리 원목으로 만든 탁자가 나무의 나이테와 곡선을 이용해 수려함을 뽐낸다. 왠지 저 탁자 앞에 선 사람은 말도 유려해질 것 같다.

광화문 광장

광화문 광장

열린 광장은 시민사회와 함께 성장했다. 사람들이 모여 할 말을 할 수 있게 하는 광장은 많은 것을 포용한다. 2018년 4월 3일 4시 3분 403명이 모여 광화문 광장에서 4.3을 기리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1948년 전후 수년간 희생된 수만명의 영혼을 기린 행사로 마치 무덤에서 영혼들이 걸어나오는 듯 처연한 모습으로 국내외의 주목을 받았다.

커피먹고 사람되자

커피먹고 사람되자

아프리카에서 중동을 거쳐 유럽으로, 미주 대륙으로, 다시 아시아로 확산된 커피는 최근 한국문화에서 뺄 수 없는 문화이다. 프랜차이즈부터 개성있는 동네 커피가게까지 골목골목마다 커피향이 흐른다. 어느 커피 가게에 한 작가가 그림을 걸자 주인은 ‘커피먹고 사람되자’고 위트 넘치는 글을 걸어 손님을 즐겁게 한다.

동백꽃

동백꽃

소설 '동백꽃' 에는 시골 처녀 총각 이야기 배경으로 노란 동백꽃이 나오는 데 사실은 생강나무를 동백나무로 부르는 강원도 문화 때문이다. 실제 동백꽃은 붉은 색으로 늦겨울과 봄에 흐드러지게 핀다. 단단한 열매가 열어서 인지 동백나무 가지로 여성의 볼기를 치면 아들을 얻는다는 미신도 있었다. 어느 집 정원에 핀 동백꽃.

트렌디한 식당

트렌디한 식당

예전엔 인테리어, 가구만 보아도 그 식당이 일식집인지 한식집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테이블도, 의자도, 장식품도 모두 트랜디하면서도 서로 비슷해져서 음식 종류를 알 수가 없다. 멋있는 조명에 형형색색의 의자와 바, 와인부터 고량주까지 갖춘 이곳은 최근 삼성동에 문을 연 퓨전 중식 레스토랑 ‘더 라운드’이다.

이상 이자카야

이상 이자카야

간판에는 영어로, 배너에는 한글과 한자로 ‘이상(李上)’을 쓰는데, 시인 이상(李箱)이 연상된다. 일제 시대 교육을 받은 모더니스트였던 이상이 애주가였다는 점과 묘하게 교차되는 ‘이상’은 사실 요즘 핫한 이자카야 프랜차이즈이다. 건물 외관부터 실내까지 분위기있게 만들어져 있어서 술을 먹고 싶은 이들을 유혹한다.

쓰레기의 재탄생

쓰레기의 재탄생

인간이 손을 가지고 있는 한 이런 저런 사물을 만드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 같다. 한때 장인들이 공방에서 가구, 신발 등을 만들었다면, 요즘은 공방에서 주워온 쓰레기를 골라 새로운 생명을 입히는 이들이 늘고 있다. 소위 업사이클링이다. 덩달아 지구도 깨끗해졌으면 좋겠다.

바라던바다

바라던바다

호모 사피엔스. 생각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이 지역마다 다른 언어를 만들어 사는 지구. 지구의 어느 문화권이고 언어를 규칙대로 쓰기보다 살짝 위트를 가미한 언어유희가 있기 마련이다. ‘바라던바다’. 이 말은 ‘바라던 것이다’라는 뜻과 ‘고대하던 바다’라는 이중의 의미를 갖는 데, 한 예술가 그룹이 이 표현을 바다에서 주운 물건을 창의적으로 활용한 전시의 제목으로 삼아 눈길을 끈다.

파티 테이블

파티 테이블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지며 인간은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단순한 식탁과 달리 여러 명을 초대하는 파티는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테이블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18세기 이후 테이블 세팅은 점점 화려해졌는데, 빈곳을 남기는 것은 금기시 될 정도였다. 파티가 문화가 된 오늘날 테이블 세팅은 ‘테이블스케이프’ 즉 하나의 예술적 풍경으로 간주된다.

오래된 지도

오래된 지도

문명의 역사만큼 오래된 것이 지도이다. 기술의 발달로 점점 정교하게 제작되기 시작했는데 제국주의적 욕망이 큰 나라일수록 다른 지역을 지도로 남기는 시도가 많았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에 들어 한반도 지도가 점차 구체화되는데 19세기 말이 되면 그 모양이 현재와 많이 흡사해진다. 19세기 말 제주도의 지도.

연남동의 변화

연남동의 변화

경의선 폐선 부지를 공원으로 만든 후 연남동의 변화는 눈부시다. 소위 ‘연트럴 파크’라고도 불리는 공원 주위에는 맛집이 늘고 문화공간과 문화관련 사업체가 늘었다. 인근의 홍대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찾아온 젊은이들의 놀이터가 된 것이다. 그러나 유동 인구가 늘면서 최고의 수혜자는 따로 있다. 바로 땅과 집을 가진 사람들이다.

몽상 드 애월

몽상 드 애월

제주도 애월의 조용한 바닷가에 하루에도 수천 명씩 찾아오기 시작한 것은 2015년 유명 스타 지디가 카페를 열었다고 입소문이 나면서부터이다. 외관은 그저 평범한 건물이지만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고급스런 음료를 즐기려는 인파가 줄을 섰다. 이제 지디는 손을 뗐다고 하는데 ‘몽상 드 애월’의 명성이 얼마나 갈지 두고 볼 일이다.

보리굴비 밥상

보리굴비 밥상

건강식으로 인기있는 보리굴비 정식. 말린 조기를 보리를 담은 항아리에 보관하면서 생긴 보리굴비라는 맛있는 이름이 이제는 참조기의 부족으로 부세조기를 말린 굴비에도 적용된다. 그래도 숙성된 굴비를 쪄서 만드는 보리굴비 정식은 남도부터 서울까지 인기이다. 사진은 녹차물에 나물과 장아찌, 보쌈김치까지 곁들인 여수의 보리굴비 정식.

달려라 피아노

달려라 피아노

길을 가다가, 건물 로비에서, 공원에서 혹시 피아노가 보이면 다가가서 ‘달려라 피아노’ 프로젝트인지 확인해 보세요. 중고 피아노를 기증받아 예술가의 손으로 다시 태어난 악기로 누구든지 쳐볼 수 있다. 2008년 외국에서 한 예술가의 아이디어로 시작되어 국내에 들어왔고 서울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일에 지친 당신을 위한 악기이다.

개미의 세계

개미의 세계

개미가 점령하지 않은 땅은 남극과 몇몇 섬 정도일 정도로 지구는 개미의 세상이라고 한다. 국경을 넘어 어디든지 퍼져가는 22천종이 넘는 개미는 머리와 하반신이 크고 잘룩한 허리에 여러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다. 한 작가가 커다란 개미들이 모인 설치작업을 통해 개미처럼 살아가는 인간의 세계를 보여준다.

청년푸드트럭

청년푸드트럭

푸드트럭 문화가 점점 자리잡고 있다. 작은 트럭으로 움직이는 부엌처럼 행사나 연예인의 촬영장으로 서비스를 가기도 하고 야외 파티의 케이터링 서비스까지 민첩하게 움직인다. 운영자부터 메뉴까지 푸드트럭은 젊은 세대의 문화가 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유명한 책을 패로디하여 ‘배고프니까 청춘이다’고 홍보한다.

나만의 격언

나만의 격언

한 식당 주인이 식당 곳곳에 인생의 지혜를 붙여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포기하면 편하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온 손님들이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한다’와 같은 희망고문보다 보낼 것은 보내고 마음 편히 하루를 마감하라고 쓴 모양이다. 욕심을 버리면 고통도 없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새삼 되새기게 된다.

입춘

입춘

봄이 오기 시작한다는 입춘. 올해 매서운 추위와 눈이 입춘을 무색하게 만들었지만 입춘을 축하하는 마음은 그대로이다. 제주에는 입춘굿이 내려오는데 18000명의 신을 모셔온 섬답게 온갖 신을 맞을 준비를 한다. 음력 2월의 영등할망은 풍요를 가져온다고 하는데 상인과 소비자가 오가는 길 한가운데 귀여운 모습으로 자리를 틀었다.

예술가의 부엌

예술가의 부엌

예술가는 멀쩡한 부엌도 가만두지 않는다. 평범한 벽과 바닥, 그리고 천정에 사람의 숨결을, 자신의 존재감을 담아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보여준다. 예술은 그렇게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인간의 존재를 증명하는 수단이자 단 한시도 게으름을 용납하지 않는 현대적 삶에서 벗어나는 출구이다.

겨울을 이기는 꽃

겨울을 이기는 꽃

겨울 추위로 바깥 온도가 한없이 영하로 떨어지지만 유리창 안 실내는 더없이 따스하게 느껴지는 계절이다. 번잡한 일상 때문에 신경을 못 쓰더라도 꽃은 어김없이 피어난다. 추운 겨울을 뚫고 나온 꽃은 용기와 인내의 상징처럼 다가온다.

윤두서의 초상

윤두서의 초상

해남 윤씨 집안에는 그림을 잘 그리는 인물이 많았다. 고산 윤선도의 후손인 윤두서도 그중 한명이다. 17세기 후반에 그린 그의 자화상은 한국미술사에서도 유명한 작품으로 기존의 초상화와 달리 사실적이며 꾸밈이 없이 강인한 한국인을 보여준다. 그 유명한 자화상이 한 작가에 의해 나무판으로 옮겨져 수호신처럼 윤씨 집안 종가집을 지키고 있다.

황금색

황금색

어느 나라든지 황금색이 칠한 건물은 과거의 영광을 말해준다. 복잡한 장식에다 황금색이 더해진 건물은 왠지 고귀한 가치를 상징하고 풍요로운 문명을 말해주는 것 같다. 일본의 절, 동남아시아의 사원, 미국의 저택들, 비잔틴 교회 등이 그런 예들이다. 지금도 그 황금색 건물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것은 아직도 지키고 싶은 고귀한 가치가 있어서일까? 사진은 태국의 한 사원.

건승문

건승문

효는 우리 문화에서 중요한 덕목이다. 유교문화권을 벗어나면 효에 대한 생각이 그다지 강하지 않고 오히려 부모의 내리 사랑을 당연시하곤 한다. 한 가문에서 시조를 모시는 사당이 있는 ‘건승원’을 짓고 수천 년간 살아온 역사를 기리고 후대에 효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있다. 높은 문처럼 전통과 역사를 오래 유지하고픈 마음이 느껴진다.

풍선의 선물

풍선의 선물

1824년 처음 고무풍선이 발명되고 나서 저렴하게 분위기를 띄우는 데 이만한 것이 없는지 풍선은 장식, 파티, 홍보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오래 전 동물의 방광을 가공해서 만들기 시작한 풍선이 문명이 발달하며 그 쓰임새나 형태도 많아졌다. 물론 예술도 풍선을 활용해 축제분위기를 만든다.

정성으로 만든 자수

정성으로 만든 자수

일제시대 여성교육이 확산되기는 했지만 오랫동안 자수는 여성의 창의력을 드러내는 수단이었다. 1945년 독립을 기념하여 무궁화가 덮인 한국의 지도를 한 여성이 한땀 한땀 정성들여 만들었다. 꽃 하나, 나뭇잎 하나에도 정성이 넘쳐난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조국의 기쁨을 나누고자 한 여성이 만든 자수이다. 사소한 일도 나라를 위해 기꺼이 힘을 보탰던 시대의 유산이다.

오래된 잡지표지

오래된 잡지표지

서양식 문물을 받아들이고 머리를 자르고 전철을 타고 다니며 근대가 우리의 삶으로 들어왔다. 당시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흔적이 많겠지만 그중에서도 책이나 잡지의 표지는 당시의 취향을 볼 수 있는 창이다. 추월색, 꿈속의 꿈,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등 오래전 소설책의 표지를 보면 남과 여의 이야기를 통해 물질주의, 자본주의가 퍼져간 흔적을 볼 수 있다. 한 전시장에 걸린 근대 소설책들.

특별한 휴게실

특별한 휴게실

'실직폐업이혼부채자살 휴게실' 은 한 작가가가 서울의 한 남성의 이야기를 통해 직업을 잃고 가게를 닫고 이혼하며 빚에 시달리다 자살에 이르기도 하는 슬픈 현실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쓰리고 아픈 현실과 달리 미술관에 만든 이 휴게실은 잠시 그런 현실에 대해 반추해보는 사색이 공간이 되었다.

카카오뮤지엄

카카오뮤지엄

‘카카오프렌즈’라는 회사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들을 상품으로 만들어 판다. 워낙 유명한 캐릭터다 보니 매니아 층이 생기고 그들을 위해 이벤트를 열곤 하는데 2017-2018년에는 한 미술관과 협업으로 ‘뮤제드 카카오프렌즈’를 열어 예술가들이 해석한 캐릭터 이미지들을 선보이고 있다. 관객들이 마법같은 공간에 빠져든다.

아이웨이웨이

아이웨이웨이

중국의 작가 아이웨이웨이는 예술을 통해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실험을 해왔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패로디하여 자유를 향한 갈망을 몸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의 파격적인 실험은 오래전 시작되었다. 1990년대 그는 한나라 시대의 도자기를 들고 떨어뜨린다. 그에게 이 도자기는 비싼 골동품이 아니라 구태와 관습의 상징이었다. 그처럼 새해에는 묶은 관습을 버리고 새로운 실험을 찾으시길.

행복한 연말연시

행복한 연말연시

크리스마스트리가 불을 켜고 연말을 축하한다. 2017년을 보내고 2018년을 맞이하는 세밑을 밝히고자 서울 한가운데에 밝은 전등을 단 트리가 들어섰다. 긴 삼각형의 경직된 모양은 오래전 나무에 장신구를 달던 시대로부터 멀리와 있다. 교회대신에 서울광장에 선 트리는 질주를 기다리는 세속의 도시인에게 잠시 위안을 준다.

겨울의 예술

겨울의 예술

나뭇잎이 떨어지고 가지가 헐벗기 시작하면 자잘한 나뭇가지들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움이 마음을 울릴 때가 있다. 야생이 빚어낸 나뭇가지의 배열 속에서 삶의 희노애락을 느끼기도 한다. 한 예술가가 그런 야생의 겨울나무 사이에 짚으로 만든 누에고치들을 매달았다. 내년에 다시 피어날 생명을 암시하듯이. 자연미술의 섬세함이 드러난다.

버스를 기다리는 할머니

버스를 기다리는 할머니

자동차가 흔하게 된 오늘날 버스정류장은 실시간 버스의 위치를 보여주며 기다리는 이의 조급함을 달래준다. 그러나 시골 버스정류장에는 첨단기기가 없이 예전처럼 여전히 하염없이 기다리는 노인들이 있다. 장보러 나왔다가 집으로 가는 길, 그 기다림의 풍경이 일상인 시간을 예술로 승화했다. 마침 예술작품 앞으로 할머니 한 분이 걸어간다.

성주굿

성주굿

집이나 건물을 새로 지어 입주할 때 성주신을 맞으며 벌이는 굿을 성주굿이라고 한다. 그 집에 살 사람들에게 복을 빌어주는 굿이기도 하다. 집주인이 7자로 끝나는 나이에 여는 경우도 있었고 갓을 쓰고 굿을 할 때도 있었는데, 경기도부터 제주도까지 널리 열렸던 굿이다. 한 문화기관 건물이 문을 열자 문화행사로 성주굿을 하고 있다. 과학이 발달한 이 시대에도 복이 들어오기를 바라는 마음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백남준의 예술

백남준의 예술

일찍이 서양의 음악을 공부하고 독일로 떠났던 백남준. 그곳에서 음악을 버리고 실험적인 예술로 전향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비디오 아트를 창시해서 전 세계 예술인의 존경을 받았던 작가이자 한국출신 예술가 중에서 세계무대에 널리 이름을 알린 대가이기도 하다. 낡은 TV를 구해다 조립물을 만들고 비디오 편집기로 만든 현란한 영상을 틀어서 정보통신이 만든 고속의 세상을 예술로 앞서가던 작가이기도 하다.

초가집의 변신

초가집의 변신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불기 전까지 초가집은 제주집의 전형이었다. 이후 편리하다고 슬레이트로 바꾸었지만 돌로 된 벽체는 그대로 유지했다. 세월이 흘러 슬레이트에 석면이 섞였다고 함석으로 바꾸라고 한다. 그런 집을 수리해 만든 해안가의 카페. 돌로 된 투박한 벽에 바람과 비에 견딘 인고의 시간이 보인다.

납읍리 금산공원

납읍리 금산공원

예로부터 유학을 배운 이가 많은 제주의 납읍리는 마을을 지키는 철학이 남달랐다. 용암이 울퉁불퉁 굳은 동네 야산이 보기 흉해서 여기에 숲을 만들기로 하고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나무만큼은 베지 못하게 하고 계속 심었고 금산을 만들어 유교식 포제를 지내는가 하면 시회를 열어 문화를 잇는 장소로 사용했다. 지금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제주의 자연림을 보여준다.

빵의 향연

빵의 향연

쌀 소비가 줄어들고 있지만 빵 소비는 꺾일 줄 모른다. 팥빵, 소보루와 같은 오래된 종류부터 유럽식 딱딱한 빵까지 다양한 빵이 우리를 찾는다. 발효종을 넣은 빵이 점차 인기를 끌고, 깜파뉴, 치아바타, 포카치아 등 익숙하지 않은 명칭의 빵도 동네에 등장하고 있다. 문화는 이렇게 바뀌나 보다. 사진은 멋있게 빵을 만든 경연자들의 출품작들.

과자의 향연

과자의 향연

달콤한 것을 좋아하는 현대인이 늘어나자 덩달아 과자를 캔디 등을 개발하는 이도 많아졌다. 수요자가 늘자 직업전문학교에 전공이 생기고 자격증제도에다 경연대회까지, 재능있는 인재를 만드는 산업이 형성되었는데 모두 스트레스에 치인 현대인의 달라진 기호도 덕분이다. 사진은 경연대회에 출품한 알록달록한 과자들로 만든 이들의 솜씨가 남다르다.

해녀 캐릭터 샵

해녀 캐릭터 샵

캐릭터는 원래 소설 등장인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만화, 영상 등 매체가 발달하면서 캐릭터 묘사방식도 다각화되었고 인기리에 팔리기 시작하자 캐릭터 디자인도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이 되었다. 서귀포에 해녀 캐릭터가 나타났다. 제주 해녀의 고된 물질은 저승과 이승을 오고갈 정도라고 한다. 그런 해녀가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고된 삶을 뒤로 하고 캐릭터로 만들어져 소비문화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시비

시비

인간이 말을 하면서 예술도 조금씩 분화되었다. 시와 음악은 같이 발전하다 분리되었고 간결한 언어표현에 서정적, 서사적, 상징적 미를 담아내는 시는 동서양 문명의 중요한 예술이 되었다. 스마트폰에 모든 것이 담긴 오늘날 시도 디지털 세계에 포함되었지만 게임이나 영화에 비해 소외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눈을 들어 보면 어딘가에 시 한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태양광 채집기

태양광 채집기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태양광을 지하로 보내서 식물을 키우는 실험을 하고 있다. 조금 엉성하지만 굴뚝처럼 생긴 이 기계는 햇빛을 모아 지하로 보내는데, 정말 빛하나 없는 지하실에서 풀이 자라고 있다. 아직 농사를 지을 수준은 아니지만 혹여 지상에 거주할 수 없을 때 요긴하게 쓸 수 있는 기계인 것만은 틀림없다. 공기오염이 심해지는 요즈음 솔깃해지는 기계이다.

신몽유도원도

신몽유도원도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꿈을 그린 것이다. 왕자를 위해 재능을 발휘했지만 아마도 그림으로 그리며 수양대군에 밀린 비운의 왕자의 심정을 이해했을 것이다. 오늘날 몽유도원도는 꿈을 그린 그림을 일컫는다. 석철주 작가가 신몽유도원도로 다시 꿈의 세계를 담아냈다. 아련한 핑크빛 아지랑이가 피는 세계는 이상향을 잃은 비운의 현대인을 위한 위로일까?

당신의 00을 켜세요

당신의 00을 켜세요

현대사회에서 성공적인 시민으로 살려면 사회화가 되어야 한다. 노상방뇨 등 사회가 허용하지 않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안된다는 것이 많다. 그러다보니 주말에 TV를 보는 것이 취미라고 하는 이도 있다. 억눌리며 사라져간 감정, 자유, 나만의 세계를 다시 건드리라면 한 예술가가 Turn on Your...이라고 메시지를 던진다. 당신은 무엇을 켤 수 있나요?

예술가의 공방

예술가의 공방

근대 이전에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는 사람은 신발을 고치거나 옷을 만드는 기술자와 같이 취급되곤 했다. 길드라는 조합에 소속되어야 했고 자영업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도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이 있다. 지금은 조합이나 협회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고 캔버스나 나뭇가지나 어떤 재료를 써도 된다. 사진 속 예술가의 공방에 팔려고 만든 소품들이 가득하지만 가게와 달리 주인의 손맛이 예사롭지 않다.

가을 억새 바람

가을 억새 바람

올해도 가을은 어김없이 왔다. 제주의 새별오름에도 가을이 내려 억새를 부추겨 세운다. 정월대보름날 들불축제를 하는 이곳이 가을에는 바람에 이는 억새로 눈이 부시다. 어디선가 바람 한줄기가 달려오면 억새는 요란스럽게 인사한다.

구하우스 컬렉션

구하우스 컬렉션

2016년 양평에 문을 연 구하우스(Koo House) 미술관은 집처럼 편안한 공간에서 예술과 디자인을 감상할 수 있는 하우스 뮤지엄이다. 국내 유명 건축가 조민석이 설계한 건물에 주인이 오랫동안 모은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작은 조각부터 큰 그림까지 주인의 폭넓은 취향을 잘 보여준다. 큰 건물에 비슷한 미학을 담아내는 공공미술관과 달리 사립미술관은 소장자의 특별한 취향을 보여주기 때문에 호기심을 끈다.

서예의 향기

서예의 향기

서양에도 서예전통이 있기는 하지만 동아시아처럼 중량감이 없다. 고대 중국에서 비롯된 서예는 갑골문자로 시작해서 초서, 예서 등 여러 체로 발달하였고 선비가 서재에 모시는 문방사우로 붓, 먹, 종이, 벼루를 꼽을 정도로 서예문화가 중요시되었다. 글을 자신만의 양식으로 쓰는 것뿐만 아니라 글의 내용이 글자체에 배어나게 쓰는 것도 중시되었다. 한 전시장에 서예의 전통을 잇는 작업들이 걸려있다. 연필, 볼펜을 지나 컴퓨터 자판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시대에 서예의 품격이 진하게 느껴진다.

꿀벌 음수대

꿀벌 음수대

꿀벌이 점차 사라지면서 그 원인을 두고 여러 가지 설이 오갔다. 살충제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벌이 좋아하는 꽃들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일부에서는 벌이 마실만한 깨끗한 물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벌도 더운 몸을 식히고 모은 꿀을 희석하기 위해 물이 깨끗한 물이 필요하다. 한 도시양봉업자가 꿀벌을 위해 음수대를 준비했다. 돌조각을 깔고 물을 자작하게 부어 물을 마시는 벌의 날개가 젖지 않게 배려한 마음씨가 곱다.

구본주

구본주

한 예술가가 30대에 사고로 죽었다. 보험사에 보험을 청구했더니 무직으로 처리하고 60세까지 일한 일용직처럼 조금만 보상하려고 했다. 이에 분노한 동료 예술가들이 집단으로 항의하고 싸워서 이긴 사건이 있다. 구본주 작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서민의 애환을 포착한 그의 작업은 지금도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그 감동의 가치는 얼마일까?

알뜨르 비행장

알뜨르 비행장

일제시대 중국 난징에 폭격을 가하던 일본 비행기들이 주둔하던 곳이 알뜨르 비행장이다. 제주의 서남쪽에 있던 이 비행장에는 당시 비행기들을 보관하던 격납고 19개가 아직도 남아있다. 농민들은 빈땅이 아까워 이곳에 농사를 짓고 있는데, 예술가들은 전쟁의 기억을 평화로 승화하자며 작품을 설치하고 있다. 콩밭 뒤로 무지개빛 예술작품이 보인다.

프랑스의 그래피티

프랑스의 그래피티

거리의 낙서(그래피티)는 예술일까 아니면 범죄일까? 어떤 곳은 돈을 주며 벽화를 그리라하고 어떤 곳은 허가 없이 그렸다고 순식간에 지워버린다. 상황에 따라 대접이 다른 낙서그림의 현실은 씁쓸할 정도이다. 그래피티에서 벽화로 진화하면 확실히 대접이 좋아진다. 어두컴컴한 동네에 그려진 벽화는 생기를 주고 동네를 유명하게 만들기도 하며 예술을 존중하는 지역이라는 이미지 개선도 된다. 반 고흐가 말년을 보낸 프랑스의 한 동네에 그를 기리는 벽화가 들어서 찾아오는 관광객을 반긴다.

창고 문을 여는 소년

창고 문을 여는 소년

보아야 믿을 수 있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눈은 실제로 존재하는 지 확인하는 중요한 신체기관이다. 그러나 그 눈을 믿을 수 없을 때도 있다. 어두운 영화관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깜깜한데 1분만 지나면 어둠 속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눈은 조건과 환경에 따라 시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 눈을 속일 정도로 잘 그리는 예술가를 칭송하던 때가 있다. 사실 지금도 진짜처럼 보이는 사물을 그리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마치 한 소년이 창고 문을 여는 것처럼 보이는 그림이 있다. 눈을 속일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재치만을 높이 살만하다.

아트샵의 진화

아트샵의 진화

뮤지엄에 가면 전시나 교육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식당, 카페, 영화관 등에서 다채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아트 샵은 책과 아기자기한 디자인 소품을 사기에 적당한 곳이다. 기존의 상가와 차별화되어야 뮤지엄 샵의 희소가치도 오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인테리어나 MD, 상품 배열에 더 공을 들이기도 한다. 눈과 귀가 즐거워야 소비도 즐거워지기 때문이다. 로마 맥시 미술관의 아트샵.

점토판

점토판

고대 중동에서는 중요한 기록을 남길 때 젖은 점토판에 갈대로 글을 쓰고 말리거나 구워서 보관하곤 했다. 수메리아에서 만들어진 뾰족한 글자형태를 토대로 제작된 점토판은 토지 거래부터 신화와 에세이도 담았다. 사각형의 점토판 문서는 바빌로니아 등 지중해지역과 동양에서도 사용되었는데 결국 오늘날 책의 원형이었던 셈이다. 이런 사각형 점토판은 수십만 점 전해지며 오랜 인류의 문자 문화를 증명해준다. 로마의 한 박물관에 있는 엘바의 점토판들.

다미엔 허스트

다미엔 허스트

현재 살아있는 미술작가 중에서 가장 고가로 작품이 거래되는 스타작가는 영국의 다미엔 허스트이다. 절단된 동물, 해부된 신체, 다이아몬드를 박은 해골 등 섬뜩한 작업부터 물감을 뿌리고 나비가 달린 그림까지 높낮이를 달리하며 부자와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최근 베니스의 팔라조 그라시에서 1세기경 자유인이 된 한 노예가 부자가 되어 모은 예술품을 운송하다 난파되었는데 최근에 그 유물을 바다에서 건져 올렸다는 허구에서 출발한 예술작품을 선보였다. 사진은 발굴되었다고 주장하는 그릇을 든 악마의 동상.

로마 오페라 하우스

로마 오페라 하우스

17세기 이후 유럽에 오페라가 퍼지기 시작했다. 권력자들이 여흥을 위해 오페라를 선호하면서 극장도 늘어갔다. 특히 로마에서는 등장인물이 복잡하고 극적인 내용이 강조되며 반전이 가미된 오페라를 선호하는 경향이 생기며 관객이 늘었다. 로마 오페라하우스가 생긴 것은 1880년, 2천2백석 규모로 관객을 유치하며 승승장구했다. 웅장한 건물로 시작되었으나 왕조가 폐지되고 근대국가로 진화하면서 여러 번의 리모델링을 거치며 현대적인 모습으로 변했고 좌석도 1600석 규모로 축소되었다.

루이뷔통 반고흐

루이뷔통 반고흐

명품의 변신은 끝이 없다. 명품 브랜드 루이뷔통은 그동안 일본작가 야요이 쿠사마, 다카시 무라카미 등 유명작가와 협업으로 가방을 선보이곤 했다. 2017년 미국작가 중에서 제일 잘나가는 제프 쿤스와 합작으로 만든 <마스터> 시리즈는 루벤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반 고흐 등 유명작가의 유명 그림 이미지를 차용한 가방 시리즈이다. 이 시리즈의 가방들은 각각 약 1천-3천 달러에 판매되었다고 한다. 사진은 반 고흐의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그림을 담은 가방을 홍보하는 루이뷔통의 쇼윈도우.

미켈란젤로 피에타

미켈란젤로 피에타

죽은 예수를 보며 비탄에 빠진 성모마리아의 모습이 ‘피에타(pieta)’라는 주제로 도상화하기 시작한 것은 1300년경이다.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는 1499년경 추기경의 주문을 받고 대리석을 깎아 미모의 젊은 마리아가 예수를 안고 슬퍼하는 모습을 만들었다. 옷 주름과 얼굴표정, 자세 등이 빼어난 이 작품은 지금 로마의 바티칸에 소장되어 겸손하면서도 재능이 뛰어났던 한 조각가를 대표하는 불멸의 예술작품이자 슬픈 어머니의 ‘피에타’를 널리 알리는 작품이 되었다.

여름과일

여름과일

복숭아, 살구, 참외, 수박, 베리 종류 등등, 여름은 과일의 계절이다. 고대 중동이나 그리스 로마에서 시작된 과일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토착화되었다. 고대 이집트의 왕이 수박을 먹었다고 하고, 카톨릭 수사들이 복숭아를 퍼트렸다고 한다. 최근에는 품종개량이 되어 대규모로 시장에 나온다. 어느 도시에나 재래시장은 과일을 찾는 사람의 구미에 맞게 온갖 과일이 넘쳐나는데, 건강을 위해 통 과일을 적당량 먹는 것이 좋다고 한다.

향신료의 세계

향신료의 세계

향신료는 씨앗, 뿌리, 껍질 등에서 얻는데 약이나 향료로 쓰이고 항균작용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더운 지방에서 많이 사용한다. 고대부터 오랫동안 유럽에서는 향신료가 귀해서 신세계로 탐험을 갈 때마다 식물을 살피곤 했다. 귀한 향신료 때문에 무역이 활성화되고 아시아와 유럽에 무역 통로가 만들어졌다. 무역량이 넘치는 오늘날 향신료는 도처에 있다. 작게 포장되어 누구든지 용이하게 살 수 있는 상품이 되어 오래된 입맛을 자극한다.

미니어춰 초상화

미니어춰 초상화

사진이 생기기 전 그림은 누군가의 얼굴을 전하는 중요한 매체였다. 특히 미니어춰 초상화는 손 안에 들어갈 만한 작은 크기로 그려져 손쉽게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잇는데 쓰이곤 했다. 예를 들어 군인이 연인의 초상화를 가슴에 품고 전쟁터로 나간다거나 혼기가 찬 딸의 신랑감에게 청할 때 미니어춰 초상화가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오늘날 미술관에 전시된 작은 초상화들은 종종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는데 인연을 중시한 아련한 과거의 문화를 상기시켜 준다.

로마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의 돔

로마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의 돔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에 들어가면 종교의 힘을 믿게 된다. 거대한 건물과 천정의 돔, 그 사이를 장식한 수많은 성인들의 이미지는 인간이 만든 최고의 예술을 담고 있다. 신이 거주하는 집에 걸맞는 빼어난 솜씨가 압권이다. 천국을 보듯 천정을 올려다보면 둥근 돔 하반부에 "Tu es Petrus et super hanc petram aedificabo ecclesiam mean et tibi dabo claves regni caelorum"라고 씌여 있다. 성경에서 따온 글로 예수가 성 베드로에게 전했던 “너는 나의 반석이고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라는 말이다.

김경신의 손맛

김경신의 손맛

델코가 운영하는 스페이스 D의 8월 전시작가는 김경신이다. 손으로 그리는 솜씨가 좋아 섬세한 그림을 잘 그리는데, 최근 꽃과 나무가 자라는 풍경에 눈을 돌리고 있다. 화분에 심은 나무,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잘 자라는 다육이, 창에서 바라본 타인의 옥상정원 등 녹색이 있는 곳을 찾아내 그림 속에서 재현한다. 사람은 없고 녹음이 커져만 가는 도시의 여름 풍경이 인상적이다.

로마의 귀도 레니 지구

로마의 귀도 레니 지구

오래된 건물이나 창고를 활용한 도시 재생과 문화 사업은 고전적이기는 하나 여전히 쓸모있는 방식이다. 로마에 1900년대 형성된 귀도 레니 창고를 재생시킨 ‘귀도 레니 디스트릭트(Guido Reni District)'는 올해 문을 연 다목적 문화공간이다. 한 기업이 3000 스퀘어 피트에 달하는 낡은 창고를 리모델링 공사를 한 후 전시, 축제, 패션쇼, 비디오 게임 경기, 촬영 등의 공간으로 임대하며 도시 재생과 부동산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바로크 시대의 유명화가 귀도 레니의 이름을 딴 이 지구는 장기적으로 주거, 상업, 공공시설이 결합된 지구로 개발될 예정이다.

페라리 행진

페라리 행진

스포츠 카 페라리가 나오기 시작한 때가 1947년. 2017년 여름 페라리 로고를 단 차의 출범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파시오네 페라리>를 개최했다. 페라리를 소유한 이들과 구입하려는 이들이 참가한 이 행사는 자동차 행진부터 시승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그중에서 수십 대의 페라리가 줄지어 고풍스러운 밀라노 시가지를 돌아다닌 행진은 배기통이 큰 차의 웅장한 소리와 날렵한 몸매로 부와 인류의 진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네델란드 정물화

네델란드 정물화

자연과 사물을 관찰하며 문명을 만든 인간의 노정이 잘 드러나는 것 중 하나가 정물화이다. 그중에서도 꽃이 풍성하게 담긴 정물화는 정밀한 관찰과 정교한 묘사를 통해 신의 현존을 보여주고자 했던 17세기 네델란드 작가들의 노력의 결과이다. 얀 브뤼겔은 꽃 정물화의 선구자 중의 한명으로 마치 꽃꽂이를 한 듯 다채롭게 꾸민 꽃병을 즐겨 그렸는데, 검은 배경에 저마다 다른 계절에 피는 꽃으로 그림의 구성을 위해 상상으로 모았을 뿐 아니라 벌레와 같은 자연의 손님도 포함시켜 작가의 섬세한 시선을 뽐냈다. 1606년 작품.

바닷가 고둥

바닷가 고둥

바다가 3면인 한반도의 바닷가, 돌이 있는 곳이면 고둥이 산다. 제주도처럼 돌이 많은 해안가에 썰물 때가 오면 사람들이 삼삼오로 나가서 고둥을 잡는다. 게나 문어처럼 몸이 빠르지 않아서 물이 빠져나갔는데도 착하게 돌 틈에 옹기종기 붙어있다. 해안가 사람들은 고둥을 따서 삶아먹기도 하고 죽을 끓여 먹는다. 제주도 보말죽은 전복죽 못지않게 고소하다. 껍질과 속살을 분리하는 과정이 힘들기 때문에 일정 크기 이하는 잡지 않는 게 상책이다. 그나마 물이 깨끗한 바다에서나 찾을 수 있는 생물이다.

옥색바다

옥색바다

바다의 색은 태양광이 물과 만나면서 색의 흡수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유독 붉은색 계열은 많이 흡수되고 푸른 색 계열이 적게 흡수되어 반사되는 과정에 우리 눈에 푸르게 보인다고 한다. 물속에 있는 부유물이나 모래 등도 색의 흡수와 반사에 영향을 미치는데, 옥색바다, 푸른바다, 검푸른 바다 등등은 결국 자연의 여건과 조화에 따라 나온 것이다. 어쨌거나 바다의 색을 보자면 우리가 미처 알 수 없는 힘이 작용하고 있고 우리는 잠시 그 힘을 감상하는 행인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그 잠시의 찰나라도 즐길 수 있는 여름이 되시길.

그라피티로 덮혀가는 아테네

그라피티로 덮혀가는 아테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남유럽 국가들이 힘을 못 쓰고 있다. 그리스는 채권국의 요구에 따라 공항과 항구를 외국 기업에 넘기고 있다. 실업률이 23%에 달하며 그나마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일자리도 많지 않다. 청년들은 독일, 캐나다, 호주로 떠났고, 은퇴자들은 줄어든 연금을 보며 옛날의 영광을 그리며 위정자들의 무능력에 분통을 터뜨린다. 동력이 줄어든 도시는 화난 젊은이들의 낙서(그라피티)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그 양이 너무 많아 경찰도 손을 쓰지 못할 정도이다. 경제 앞에서 고대문명의 산실도 추풍낙엽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고대의 도시국가 아테네는 민주주의의 산실이자 연극과 문학, 미술이 융성했던 곳으로 제우스부터 아테네까지 다양한 신의 이야기, 즉 신화를 삶 속에서 실천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런 아테네가 로마시대, 중세,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유럽문명의 뿌리로 자리잡았던 반면에 정작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400년간 오토만 제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중동의 문화와 융합되는 운명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유럽인의 상상 속의 아테네는 아크로폴리스의 고대 문명이 꽃피던 시절이며 그래서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

태양의 신 아폴로

태양의 신 아폴로

제우스 신의 아들이자 태양, 음악과 시의 신이며, 치유와 예언의 신이기도 하다. 종종 젊고 아름다운 남성으로 등장하는 데 그리스의 신이기는 하나 로마시대에도 숭배되곤 했다. 15세기 로마인근에서 땅을 파다 우연히 발견된 이 조각상은 빼어난 고전적 묘사로 인해 그리스의 미적 수준을 보여주는 작업으로 인정받았고 민망한 부분이 노출되었음에도 바티칸 교황청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스에서 만든 청동조각상을 로마 시대에 대리석으로 모사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여성보다 남성미에 몰두했던 고대인들의 시간을 초월한 미가 돋보인다.

부라노섬

부라노섬

물의 도시 베니스에서 배로 40분정도 떨어진 부라노 섬은 세계에서 가장 다채로운 풍경으로 유명하다. 말 그대로 집들이 저마다 고유의 색을 입고 있는데, 어부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 찾기 쉽게 집집마다 다른 색을 칠하기 시작한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지금은 사진에 담으려는 관광객으로 넘쳐나면서 그런 풍경을 지키는 것이 문화자산이 되었다. 색을 칠하려면 지역정부에 신청을 하고 정부가 지정한 색으로만 칠해야 한다.

오래된 도서관의 비밀

오래된 도서관의 비밀

밀라노의 암브로시우스 도서관은 단순히 오래된 책만 있는 곳이 아니다. 책을 만들고 모은 인간의 역사도 담겨있다. 이 도서관의 장서를 늘리기 위해 중동과 동양으로 사람을 보내서 책을 수집하곤 했는데, 오래된 책, 희귀한 책이 많다. 그중에는 책의 표지를 사람의 피부로 만든 것도 있다. 간혹 일부 소장가가 죽은 사람의 피부를 구해 지식을 담은 책의 소중함을 가죽 커버에 담곤 했는데 이런 관습은 19세기까지도 종종 계속되었다고 한다. 물론 모든 가죽 책표지가 그런 것은 아니나 간혹 실험을 통해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

암브로시우스 도서관

암브로시우스 도서관

밀라노의 암브로시우스 도서관은 교회와 정치를 일치시켜 통치론을 피력했던 성인 암브로시우스를 기리며 1607년 만들어진 오래된 도서관으로 일찍이 일반에게 개방된 곳이다. 오랫동안 문화적으로 융성했던 밀라노답게 오래된 장서가 있는 도서관뿐만 아니라 레오나르도 다빈치, 알브레트 뒤러 등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작가의 작업을 보여주는 피나코테카 암브로시아나도 있는데 모두 수백년 동안 기증을 통해 확대한 것들이다. 문예와 학문, 과학을 통해 인간의 능력을 길러온 서양문명의 단면을 볼 수 있다.

베니스 산마르코 성당

베니스 산마르코 성당

교회건물에도 역사와 문화가 깃들어 있다. 베니스의 산마르코 성당은 베니스 상인들이 훔쳐온 성 마르코의 유해 일부를 토대로 동양과의 무역으로 수입한 진귀한 재료로 만들었다. 비잔틴 교회의 화려한 금색에 고딕 양식이 가미되었고, 모자이크로 도배된 실내역시 금색이 넘쳐난다. 건물 정면에 있는 4개의 말은 로마 황제가 끌던 마차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 추정되는 데 한때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약탈해 간적도 있다. 현재 보이는 것은 원품의 복제이고 원품은 박물관에 있다.

인천공항의 짐봇

인천공항의 짐봇

인력으로 하던 일을 기계의 힘에 기대며 산업이 발달해 왔다. 기계에 인공지능이 합쳐지면서 로봇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어느 사이엔가 우리의 일상에도 로봇의 존재가 크게 느껴진다. 청소도 해주고 노래도 불러주는 로봇이 있는가 하면, 길을 잃은 사람에게 길을 찾아주고, 무거운 짐도 들어준다. 인천국제공항이 드디어 로봇 시대를 열었다. 이번 여름부터 시험운행이기는 하지만 면세점에서 산 물건을 날라주고, 길을 안내하고 청소하는 로봇들을 도입하여 운행하고 있다. 사진은 짐을 날라주는 짐봇.

월정리의 여름

월정리의 여름

해변과 바다색이 예쁜 제주 월정리가 카페촌으로 바뀌기 시작한 지 10년도 안 되었다. 그 사이 민박과 호텔이 늘어나 휴양지로 크고 있는데, 올해도 많은 사람이 찾아와 물놀이와 셀카 찍기에 여념이 없다. 푸른 하늘과 바다를 가르며 여름이 주는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어서 좋은 계절이다.

시골집의 재탄생

시골집의 재탄생

제주의 시골 농가에 이주민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2009년 이후, 올레길 열풍이 불면서이다. 아름다운 길을 걷다가 허름한 옛 농가를 사서 들어온 이주민들은 카페, 게스트하우스로 바꾸고 느린 삶을 살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제주시 조천의 18번가 카페도 마찬가지다. 젊은 부부는 3개로 이루어진 농가를 갤러리, 게스트하우스, 카페로 각각 바꾸고 애완견과 함께 살며 제주의 변화무쌍한 날씨를 즐긴다.

한여름밤의 축제

한여름밤의 축제

여름철 도시는 이런 저런 축제가 넘쳐 난다. 영화를 상영하기도 하고, 음악밴드가 흥겨운 음악을 선사하기도 한다. 덥기도 하고, 밖으로 다니기 좋은 계절,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한 밴드가 신나는 레게 음악을 연주하자 관객이 춤을 추고 있다. 좁은 아파트에서 혼자 즐길 수 없는 소위 ‘떼춤’이 가능한 시간이다. 복잡한 세상사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여름 휴가

여름 휴가

여름이 되면 학생은 방학을, 직장인은 휴가를 가게 된다. 근대에 들어 학교가 운영되기 시작하면서 바쁜 여름철에 집안일을 도우라고 긴 방학이 만들어졌다면, 직장인이 일하다가 잠시 짬을 내어 바닷가로 하루 정도 놀러가는 혜택이 오늘날 휴가가 되었다. 특히 19세기에 산업혁명의 선두에 섰던 영국에 살던 사람들은 매일 반복적인 공장 일을 하다가 하루 짬을 내서 바닷가로 가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파도를 타면서 공장에서의 힘든 시간을 잊곤 했는데 오늘날 직장인 휴가의 시작이다. 지금은 저마다 취향별로 휴가를 간다. 바다로, 산으로, 절로, 아니면 집에서. 이번 여름 어떤 휴가를 꿈꾸고 계세요?

시간의 차이

시간의 차이

분명 시계의 바늘은 12시간, 24시간을 정확하게 나누어 움직인다. 그러나 시계가 보여주는 시간과 개인이 일상에서 느끼는 시간은 차이가 난다. 한적한 시골에서 하늘의 구름을 보며 느끼는 시간과 번잡한 종로에서 느끼는 시간이 차이처럼 말이다. 영화 <인셉션>에서는 꿈속에서 느끼는 시간이 현실의 시간보다 훨씬 빠르다고 한다. 현실은 우리를 연봉, 노동시간, 식사 비용 등 여러 기준으로 나누고 이런 현실은 시간에 대한 느낌도 다르게 만든다. 한 작가가 그러한 개인별 시간의 차이를 벽면을 가득 채운 시계로 표현했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의 이완 작가.

재미 혹은 유명세

재미 혹은 유명세

어떤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재미를 느껴서 더 열심히 하게 된다. 더 열심히 하다보면 주변에 능력있는 사람으로 알려지고, 조직의 높은 자리로 가게 된다. 나이가 들어서도 능력을 인정받다보면 모임의 수장이 되고 신문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재미에서 시작한 일이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일이 되는 것이다. 한 예술가가 ‘예술을 배우라’고 권하면서 ‘재미 혹은 유명세’를 위해 배우라고 하는데 이 두 가지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동전의 앞뒤와 같은 것 아닐까?

자전거의 발달

자전거의 발달

두발로 걷는 인간이 그동안 만든 교통수단을 보면 화려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자전거는 특별한 연료를 들이지 않고 페달을 밟아서 움직인다는 점에서 친환경적이자 건강에도 좋은 수단이다. 19세기 초 독일에서 상용화되기 시작한 자전거는 나무로 제작되어 나오다가 점차 금속으로 대체되었다. 바퀴 2개에서 3개, 4개로 추가되기 시작한 것도 19세기이다. 장을 보러가는 주부의 자전거에서 학생의 통학수단으로, 요즘에는 광고 홍보용으로도 사용된다. 제트기가 날아다니는 세상에서도 자전거는 여전히 유용한 수단이다.

알프스의 공기

알프스의 공기

미세먼지가 한반도에 머무르는 날이 많아지면서 깨끗한 공기에 대해 관심이 높다. 미세먼지는 사람의 수와 비례하는 것 같다. 인구가 적은 알프스의 한적한 지역은 여전히 맑고 깨끗한 공기를 자랑하며 폐부 깊숙이 행복감을 준다. 한때 공기처럼 당연시 하지 말라는 관용어가 있었는데, 이제는 공기처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말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맑은 산소는 해발 2400미터 이하의 지대에서만 가능하다. 그보다 높은 곳으로 가면 오히려 산소가 부족해 산소마스크가 필요하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변하지 않는 사랑

변하지 않는 사랑

사랑합니다. 당신이 태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요. 인간이 다른 인간으로부터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가 아닐까 싶다. 고대에도 현대에도 사랑은 넘쳐난다. 단지 사랑의 주체와 사랑의 대상이 계속 바뀔 뿐. 한 연예인의 생일이 다가 오자 사랑하는 팬들이 광고를 만들어 애정을 표시하고 있다. ‘봄에 내린 빛’과 같은 그의 젊음을 사랑하는 마음이 모여 광고업계에 도움이 되고 있다.

주술적인 예술

주술적인 예술

선사시대 동굴에 살던 인간은 벽에 사람과 동물을 그리곤 했다. 심심해서 그렸다기 보다는 그림을 그리며 사냥을 잘 하게 해달라는 소망을 빌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그림과 이미지가 좋은 기운을 담아 인간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믿음은 인류의 역사 내내 계속되었다.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의 이미지, 십자가, 후덕한 부처의 모습까지 지역마다, 문화마다 반복된다. 한 은행의 벽에 금은보화가 쏟아지는 그림이 걸려있다. 대박이 나길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리라.

플레이스 일로와

플레이스 일로와

청년의 일자리가 화두가 된지 꽤 되었다. 산업화 이후 빠르게 변하는 세계와 그 세계에서 편안한 삶을 살려는 인류의 욕망이 어긋나면서 생긴 문제이다. 요즈음 청년들이 모여 같은 고민을 나누고 창업을 하려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노트북 하나만 들고 카페나 도서관에서 자신의 미래를 위해 고군분투하기도 한다. 그런 젊은이들이 모여서 만든 공동창작공간 ‘플레이스 일로와’가 제주에 문을 열었다. 값싼 공간을 임대해 공동으로 내부 인테리어를 꾸몄다. 모이면 힘이 된다고 했던가. 도지사가 찾아올 정도로 핫한 공간이 되었다.

점심의 매력

점심의 매력

아침 이후에 두 번째로 먹는 식사를 점심(點心)이라고 한다. 오래전에는 하루에 아침과 저녁 두 끼만 먹었다. 그러다가 허기를 채우려고 아침과 저녁사이에 가볍게 먹기 시작한 식사가 점심이었다. 중국에서 가볍게 먹는 간식을 점심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오늘날 점심이 된 것이다. 요즘 점심은 때에 따라 회의를 겸한 긴 식사가 되기도 하고, 간단한 도시락을 먹는 ‘혼밥’이 되기도 한다. 어디서 어떻게 먹든 마음에 점을 찍는 것처럼 든든한 한끼가 되었으면 좋겠다.

역사를 기억하는 녹나무

역사를 기억하는 녹나무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살다보면 어느 사이에 사람보다도 더 오래 산다. 한국에서는 제주도, 그 외에 일본, 인도네시아 등에서 잘 자라는 녹나무는 예로부터 귀한 나무였다. 나무가 잘 썩지 않아 신라시대에 목관으로 쓰기도 했고 거북선과 같은 귀한 배의 핵심부품에 사용되기도 했다. 제주 삼도2동에 있는 녹나무는 100여년의 역사를 기억한다. 관아자리였다가 20세기 초 자혜원으로 사용되면서 환자를 받기 시작했고 이후 도립병원을 거쳐 제주대병원으로 변하면서 수많은 삶과 죽음이 오가는 현장을 지켰다. 지금은 보호수로 관리받고 있다.

로마의 근심

로마의 근심

로마에는 드물게 문화전담이 부시장직이 있다. 문화유산이 많은 오래된 도시의 적극적인 정책의 반영이다. 땅을 파면 문화재가 나오고, 오래된 건물과 분수대, 성당 등 로마의 주 수입이 문화관광이라면 당연한 정책일 것이다. 그런데 정작 임무를 맡은 부시장은 고민이 많다. 관리해야 할 유산이 너무 많아서 사람을 많이 쓰게 되고, 덩달아 예산도 많이 들어간다. 경제가 나빠지면서 감축된 운영예산의 90%를 인건비에 쓰느라 정작 유산관리는 못하고 있다.

장다원

장다원

장다원 작가는 발칙한 상상력의 힘을 십분 활용하여 개를 자신의 대리자로 만든다. 개는 바나나에서 미끄럼을 타기도 하고, 수박 위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장다원의 그림에서 세상은 화려한 놀이동산이며 재기발랄한 개는 유쾌하게 놀고 있다. 한바탕 놀고 난 후 모든 것이 거품처럼 사라지듯이 그림 한편에 적힌 ‘개거품’이라는 문구는 허무의 경계를 넘을 수 없는 현대인에게 위로를 보낸다. 오는 5월 16일부터 스페이스 D에서 전시를 볼 수 있다.

썬씨티

썬씨티

작가 썬씨티(서선영)는 주위에서 흔하게 보이는 재료(천, 솜, 벽지 등)를 활용하여 자신만의 인형을 만든다. 인형들은 현대사회의 부조리를 알고 있듯이 신체비례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다양한 얼굴과 모습을 취하고 심지어 그의 텃밭에서 자라는 식물도 인간의 양면성을 담은 듯 야릇하게 자란다. 스페이스 D에서 오는 5월 12일까지 전시한다.

시뮬라크라

시뮬라크라

문화를 설명하는 중요한 용어 중에 ‘시뮬라크라’가 있다. 원본과 복제가 있을 때 복제가 반복되면 점점 원본과의 차이를 잃고 원본처럼 기능하게 된다. 이 복제가 바로 시뮬라크라이다. 마치 한 번도 유명 연예인을 실제로 본 적이 없지만 이미 광고, 드라마, 영화 등의 매체를 통해 많이 접했기 때문에 그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한 예이다. 진짜가 아닌 이미지만을 보고 마치 그 실체를 접하는 것과 마찬 가지 효과를 내는 시뮬라크라의 사회에서 방송매체는 수퍼갑일 수밖에 없다. 아직 원본만큼 강력한 힘을 얻지 못한 복제된 벚꽃이 어설프게 봄을 전달하고 있다.

추모하는 인간

추모하는 인간

가까이는 세월호, 멀리는 3.1운동까지 여러 사건에서 쓰러진 인간에 대한 기억과 추모는 살아있는 사람의 몫이 되었다. 그 날이 돌아오면 묵념을 하고, 생각하고 묘비에 헌화하며, 후대에 이야기를 전한다. 그리고 어느 사이엔가 노란색은 추모의 색이 되었다. 커다란 휘장이 드리운 건물 안에서 세월호 사건을 기억하는 축제가 열리고 있다. 마치 백화점 정문이 연상되는 화려함, 다시 한번 추모하려는 의지는 살아있는 사람의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연극의 묘미

연극의 묘미

오늘날과 비교해 볼거리가 많지 않던 과거에는 연극이 중요한 행사였다. 사람을 웃게도 만들고 울게도 만드는 묘한 매력이 연극에 있었다. 특히 그리스인들은 이야기 전개가 복잡한 희극을 좋아했는데, 그중에서도 비극의 묘미를 높이 샀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이 주는 감동이 관객의 마음을 넘어 신체에 영향을 준다고 보고 카타르시스 효과를 언급한 바 있다. 이후 카타르시스는 단순히 감정적 해소뿐만 아니라 예술을 통해 얻는 정서적 효과까지도 포함할 때도 있다.

천구의, 1579-Vienna

천구의, 1579-Vienna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하늘에 관심이 많았다. 지구가 우주의 어디쯤 있는지도 궁금했다. 구 모양으로 천체를 상상하기 시작한 것은 2천년 정도 되는데 중국, 한국, 유럽 등 여러 곳에서 천체를 한눈에 담고 싶어 했다. 인간의 눈으로 본 세상을 담아서인지 대부분 지구가 중심에 있었다. 특히 유럽에서는 16세기에 접어들면서 호기심 많고 유복한 이들을 위해 장인들이 만든 천구의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후 천체에 대한 지식이 늘면서 천구의도 점점 정교해졌다.

리모지의 성골함

리모지의 성골함

기독교가 일상을 지배하던 중세시대, 프랑스의 리모지(Limoges)는 금속에 에나멜을 입힌 기술이 발달했다. 특히 스페인의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로 가는 성지순례의 중간 기착지로 순례자들이 지나면서 리모지의 장인이 만든 에나멜 성골함을 사곤 했다. 성골함은 귀한 성물이나 귀중품을 보관하는 상자로 당시에는 선물용이나 개인용으로 인기였다. 집모양의 상자가 많은데, 사실은 교회 모양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12세기 번성하던 리모지의 성골함은 14세기 영국의 침략을 받은 후 장인들이 희생되면서 과거의 영광을 되찾지 못했다.

리플리의 믿거나 말거나

리플리의 믿거나 말거나

미국 볼티모어에 가면 <리플리의 믿거나 말거나> 전시장이 있다. 기괴한 얼굴부터, 동물, 온갖 형상이 넘친다. 현실과 먼 상상의 세계에서나 가능함직 한 것들이다. 코가 큰 사람, 외계인같은 형상까지, 과장된 이미지를 통해 현실의 평범함을 잊게 하는 실내 테마 공원이다. 믿으면 상상 속에 살게 되고 믿지 않으면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

18세기 프랑스 방

18세기 프랑스 방

18세기 프랑스 귀족의 삶은 이탈리아의 바로크 양식을 수입해서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베르사이유 궁전에 잘 나타나듯이 태양왕의 취향을 닮아 실내장식, 도자기, 카페트 등에서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냈다. 그라세의 카브리 후작의 집도 그런 귀족적 취향을 잘 보여준다. 도금한 장식, 신고전주의적 정갈함이 배어있다. 아쉽게도 정신병자로 구금된 후작과 수녀원에서 남은 생애를 보낸 후작부인은 집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떠돌던 실내장식물이 20세기 들어 미국에 팔렸고, 지금은 미술관의 한 방을 차지하고 있다.

로스코와 뉴만, 미국 미술의 탄생

로스코와 뉴만, 미국 미술의 탄생

대형 추상미술 작품이 벽에 걸려있다. 왼쪽은 마크 로스코, 오른쪽은 바넷 뉴만이다. 대형 캔버스에 추상을 그렸다는 이유로 색면 추상이라고 불린다. 유럽의 추상미술과 달리 형태의 넉넉함과 큰 캔버스가 주목받는다. 미국이 20세기 들어 유럽에서 수입해서 가장 성공한 미술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대형 추상작업이다. 1950년대 이후 추상을 그린 미국작가들은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미국식 회화라는 새로운 용어와 민주주의의 대변인이라는 수사를 얻었다.

뒤샹의 여행용 가방

뒤샹의 여행용 가방

마르셀 뒤샹은 변기를 전시장에 가져다 놓았던 작가로 유명하다. 그가 말년에 공을 들인 몇 개안되는 작업 중에 <여행용 가방>이 있다. 말그대로 여행용 가방 크기 안에 자신이 만든 모든 작업의 축소판을 제작해 담아 어디든지 갈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한국에도 몇 년 전 이 시리즈 중의 하나가 미술관에 소장되었다. 쉽게 공항을 통과했지만 적법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술관장은 해임되었고 이후 오랜 소송에 시달리기도 했다.

벛꽃의 계절

벛꽃의 계절

올해도 벚꽃이 핀다. 호수가에, 길가에 핀 벚꽃을 보며 봄의 화사함과 처연함을 동시에 맞본다. 일본의 꽃이라서 알려져 너무 반기기에도 그렇고 반기지 않기에는 익숙한 봄이 풍경이 되었다. 그런데 일본이 왕벚나무도 유명하지만 제주도에도 토종 벚나무가 있다. 두 벚나무는 유전이 다르며 이것저것 교배한 벚꽃도 많고 하니 벚꽃을 보며 괜히 국가를 생각하기보다 봄의 전령으로 느긋하게 감상하는 게 나을 것 같다.

호텔아트페어

호텔아트페어

1994년 뉴욕의 한 호텔에서 아트 페어(아모리 쇼)가 열린 이후 조그만 호텔방에 작품을 배열하고 전시후 판매하는 아트페어가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몇 년간 한국에서도 다수의 호텔 아트페어가 열리고 있다. 제일 큰 장점은 부스비 등 부대비용 없이 호텔방에서 자고 작품도 팔 수 있다는 점이다. 화장실, 침대 위 등 다소 어색한 공간에서 작품을 선보인다는 단점도 있지만 비용대비 효율적인 이유로 한동안 인기세는 멈추지 않을 것 같다.

과격한 예술

과격한 예술

한 작가가 녹색의 안료에 뱀 독을 섞어 전시장 벽에 칠했다. 그리고 그 안에 9개의 사라진 언어로 부르는 사랑의 노래를 틀고 <클레오파트라-아카펠라>라고 제목을 붙였다. 사라진 언어도 낯설지만 맹독을 벽과 바닥에 칠한 후 들어갈 때 조심하라고 붙인 경고문은 더 섬뜩하다. 들어오라는 것일까? 아니면 알아서 들어오지 말고 가라는 것일까?

도시를 살리는 벽화

도시를 살리는 벽화

자유로운 영혼과 젊은 영혼이 모이기 시작하면 동네가 바뀐다. 성수동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단순히 도시재생을 하겠다고 소문만 낸 것 때문이 아니다. 공장이 돌아가고, 꾸불꾸불한 골목길의 숨은 공간에 조그만 디자이너 공방, 카페, 문화 공간이 들어서면서부터이다. 그러자 누군가 낡은 벽에 그림을 그리면서 동네를 환하게 만들었다. 원래 주민에게는 낯선 풍경이지만 새로운 이주자들에게는 매력적인 동네로 보이기 시작하고 언론은 그런 변화를 보도하고 뉴스를 본 사람들이 찾아온다. 도시 재생은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작은 베이커리, 성수동

작은 베이커리, 성수동

요즘 핫한 동네 성수동에는 재미있는 가게가 많다. 보난자 베이커리는 좋은 재료로 느리게 만든 빵으로 유명하다. 2014년 문을 연후 첨가물 없는 건강한 빵을 파는 곳으로 알려지면서 7평짜리 작은 가게에는 테이블도 변변치 않은데 종종 이태원이나 홍대 앞에 있는 베이커리와 동급이 되었다. 당일 제작, 당일 판매, 남은 빵은 동네 복지관에 기부하는 철학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줄을 선다.

홈리스와의 공존

홈리스와의 공존

외국 여행이 일반화된 요즈음 어느 도시를 가던 무숙자(홈리스)가 눈에 띈다. 지하철 벤치에도 번화가 쇼핑몰 앞에도 있다. 집이 없는 진짜 무숙자도 있지만 집이 싫어서 나온 이들도 있다. 전쟁, 화재나 사고로 집을 잃은 사람들은 과거에도 있었다. 사회에서 이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공론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근대에 들어서이다. 보호소를 만들고, 집을 제공하고, 각종 프로그램으로 무숙자를 도왔다. 그러나 완벽하지 못한 제도는 계속 무숙자를 만들어낸다.

셜록홈즈 바

셜록홈즈 바

호주 멜버른의 <셜록 홈즈> 바는 전설적인 사립탐정 홈즈를 테마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소설에 나오는 모리아티를 딴 코너와 왓슨 박사의 바도 있다. 1985년에 생긴 이 술집은 1870년대 영국식 분위기에 탐정소설의 주인공을 가미하여 홈즈 문화를 상업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고 현대가 빠진 것은 아니다. TV도 있고 술도 현대의 것들이어서 과거와 현대, 소설과 현실을 오가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시장이 추천하는 가게

시장이 추천하는 가게

멜버른의 길을 걷다보면 <시장이 칭찬하는 곳>이라는 표지판이 있는 가게가 종종 보인다. 2005년부터 소상공인을 치하하고 스토리텔링으로 상업을 활성화하려는 의도에서 시작한 사업이다. 10년 이상 사업을 해온 가게 중에서 선별하며, 선발이 되면 시정부의 후원을 받아 마케팅 혜택을 볼 수 있다. 면도사의 가게가 2014년 선발되어 주인의 사진이 든 큼직한 광고판이 창가에 세워졌다. 선발에 상관없이 주인은 오늘도 열심히 면도에 임한다.

케익의 향연

케익의 향연

현대인에게 케익은 달콤함의 정수이자 생일 등 특별한 날 주고받는 특별한 음식이다. 케익의 역사는 문명의 역사이다. 그리스, 로마의 고대인도 밀가루에 계란, 우유를 섞어 구운 케익을 먹었다. 르네상스 이후 부드러운 스폰지같이 구운 후에 장식을 하는 케익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오늘날은 디저트 문화의 확산으로 온갖 케익이 만들어진다. 파이, 타르트 등 종류도 다양하고 치즈케익, 티라미수 등 맛도 다양하다. 케익가게의 윈도우에서 눈을 뗄 수 없을 지경이다.

치펜데일 스파이스 앨리

치펜데일 스파이스 앨리

시드니 켄싱턴 가 뒷골목을 스파이스 앨리(spice alley)라고 부른다. 차가 들어올 수 없는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들어가면 야외에 테이블과 의자가 널려있고 이국적인 식당들이 즐비하다. 일본, 태국, 말레이시아 등 여러 나라의 음식이 팔리고 있는데, 한끼 식사부터 디저트까지 다양하다. 마치 동남아시아의 식당가를 축소해서 만든 것 같아 익숙하면서도 이국적이다.

치펜데일 문화예술지구

치펜데일 문화예술지구

시드니의 치펜데일 지역에 켄싱턴 가가 있다. 최근 이곳의 낡은 건물과 좁은 골목이 변하고 있다. 이런 변화의 발단은 디벨로퍼 그린클리프가 1840년대 지은 건물들을 리모델링하면서 시작되었다. 16개 건물을 다듬어 갤러리, 카페, 바 등이 문을 열면서 인근의 고층건물에 일하는 사무직과 관광객을 끌며 신흥 문화지구로 부상하고 있다. 과거의 향기와 현대의 세련됨을 살려내고 축제를 열면서 사람을 끌고 있다.

과일의 진화

과일의 진화

인간이 지구의 지배자가 되면서 많은 것들이 변했다. 인간이 고기를 먹고 싶으면 소와 돼지를 키우며 개체수를 늘렸고, 과일을 먹고 싶으면 대규모 과일 농장이 생겨났다. 달콤하고 맛있는 과일을 만들기 위해 온갖 기술이 동원되고 예쁜 색을 입히기 위해 또 온갖 기술이 사용된다. 심지어 씨가 없는 과일을 만들고자 인위적으로 결실을 방해하기도 한다. 언젠가 1개만 먹어도 하루치 영양을 다 흡수할 수 있는 놀라운 과일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멜버른의 문화유산 호텔

멜버른의 문화유산 호텔

호주 멜버른의 오래된 호텔 프린스 브리지 입구에 ‘호주국립유산’이라는 명패가 자랑스럽게 붙어있다. 1853년 처음 문을 연 호텔답게 건물의 붉은 색 세라믹 타일도 고풍스럽기 그지없다. 지구상에 이 건물만큼 나이가 든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저절로 감동이 다가온다. 그러나 문화유산 앞에서는 감동 말고도 갖추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깔끔한 복장이다. 왼쪽의 호텔 유리문에는 ‘옷을 깔끔하게 입지 않으면 관리인이 쫓아낼 수도 있다’는 경고문이 붙어있다.

해외로 간 한식

해외로 간 한식

라면, 콩나물국밥, 갈비, 김밥. 흔한 한식 메뉴이다. 시드니의 한 분식가게에 한식이 현지문화를 입고 변신했다. 브렉퍼스트 메뉴로는 콩나물해장라면과 김밥이 있고, 브런치 스페셜로 갈비세트와 콩나물비빔밥이 있다. 거기에다 김치를 더 달라고 하면 1달러를 내야한다. 매일 가능한 메뉴에는 김밥, 순대, 김발이 튀김부터 빙수까지 다양하다. 말 그대로 없는 건 없고 있는 건 다 있다.

해변의 예술가

해변의 예술가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해변가, 사람들은 바다로 달려간다. 예술가는 바다보다 해변을 아름답게 만드는데 신경을 쓴다. 가지고 온 붓과 물감을 꺼내 삭막한 시멘트 벽에 서핑을 타는 개를 그리고 바다를 즐기러 온 사람들을 위해 사진이라도 찍도록 배려한다. 시드니 외곽이 본다이 해수욕장(Bondi Beach)은 그렇게 아름다워진다.

멜버른의 뒷골목 먹자거리

멜버른의 뒷골목 먹자거리

웬만큼 오래된 도시는 중심부에 ‘올드 타운’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 낮은 건물과 좁은 길이 난 구도심은 관광, 쇼핑 등의 시설로 채워지는데 멜버른의 올드 타운도 마찬가지다. 특히 차도 들어올 수 없는 좁은 골목마다 식당, 카페로 채워져 있다. 도심을 구경하며 걷다가 들려서 중국, 일본,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 음식을 쉽게 먹을 수 있다.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어울려 사는 법을 저절로 배우게 된다.

시드니 워터프런트 식당가

시드니 워터프런트 식당가

오래전 항구는 먼 나라에서 온 배가 물건을 내리고 새 물건을 싣고 떠나는 곳이었다. 거친 선원들이 고단한 몸을 이끌고 술을 마시고 쉬던 선술집, 여관이 있었고 선원이 되기 위해 들어가는 학교, 세관 등 공공기관도 있었다. 과거의 항구가 새로 ‘워터프런트 재개발’로 태어나고 있다. 시드니에는 오래된 건물을 개조한 식당가가 들어와 바다를 보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려는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

켄 돈의 예술

켄 돈의 예술

시드니 출신의 화가 켄 돈(Ken Done)은 한마디로 애향심이 넘치는 작가이다. 젊은 시절 디자이너로 활동했으나 40세가 넘어 그림에 전념하기로 결심했다. 이후 화려한 색채, 호주 바다와 풍경에서 영감을 받은 소재를 담은 그림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앙리 마티스를 연상시키는 원색과 간결한 표현은 그의 그림의 힘이자 상업적으로 성공한 토대이기도 하다. 현재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갤러리가 시드니에 있고,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온라인으로도 작품과 생활 소품을 판매한다.

해비타트 필터, 멜버른

해비타트 필터, 멜버른

호주와 북미에서 고속도로를 운영하는 회사 트랜스어번(Transurban)은 도로만 만들고 통행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도로 근처의 빈 공간을 활용한 공원이나 조형물을 세우기도 한다. 모두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려는 시도이다. 2016년 멜버른에 세운 <해비타트 필터>는 공모를 통해 선정한 작품으로 재활용 재료와 태양광 발전을 이용하고 있다. 태양열이 만든 전기로 밤에도 반짝이는 조형물이 된다. 같이 조성된 공원에는 풀이 자라고 새들을 위한 집도 곁들여 있다.

앵무새와의 교감

앵무새와의 교감

인간과 동물의 교감은 오래되었다. 4천년 전부터 새를 애완동물로 기르기 시작했다는 기록도 있다. 애완동물 새는 비둘기와 앵무새가 처음이었다. 로마시대에는 애완 앵무새를 보살피는 노예가 있을 정도였다. 새도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을 기억한다. 공원에서 보이는 비둘기나 앵무새도 먹거리를 준 사람과 자신을 쫓는 사람을 기억한다고 한다. 사진은 먹이를 맛있게 먹는 야생 앵무새.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미래의 시드니를 대표하는 건축을 짓자는 염원에서 비롯되었다. 덴마크 건축가 욘 웃존이 디자인했으며 1959년 시작되어 10년이 넘어 완성되었다. 당시의 기술적 한계로 원래 디자인했던 곡선미를 살리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20세기 주요 건축물이자 관광객을 끄는 랜드마크 건물로 자리 잡았다. 푸른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도자기 타일을 입은 흰색 지붕이 물결을 이루면서 장관을 이룬다.

테슬라, 무인주행의 시대

테슬라, 무인주행의 시대

사람이 운전하지 않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2040년경이 되면 현재 자동차의 75%까지 자율주행 자동차로 바뀔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기 힘든 인간을 위해 기계가 대신 운전을 해줄 수 있다는 놀라운 개념을 실현하는 자동차 회사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운전대에서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기술을 아직 비싸다. 신기술의 약점 때문에 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이제부터 걱정해야 할 일은 시간이 많이 생긴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이다. 사진은 테슬라 매장.

퀸 빅토리아 빌딩, 시드니

퀸 빅토리아 빌딩, 시드니

대영제국의 번성기는 빅토리아 여왕을 빼고 말할 수 없다. ‘여왕폐하 만세’를 외치며 전 세계에 식민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영토였던 호주 시드니에도 빅토리아 여왕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1890년대 문을 연 퀸 빅토리아 빌딩은 산업화 시대에 부강한 대영제국의 위상에 걸맞게 성당건물 크기로 지은 시장이었다. 한때 철거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1980년대 화려하게 부활하였다. QVB의 ‘로열 클락(Royal Clock)'은 19세기 기술로 만든 인형극이 동반된 시계로 쇼핑하던 관광객의 시선을 끈다.

치펜데일의 벽화

치펜데일의 벽화

시드니의 치펜데일 지역은 도심에 있으면서도 낡은 건물 때문에 이민자가 많이 살던 동네였다. 최근 시드니에 재개발 붐이 불면서 이 지역의 낡고 낮은 건물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예술가들이 찾기 시작했고 카페, 갤러리 등이 들어서고 있다. 그중 지지(Zigi's)는 요리학교, 치즈 바, 와인 등을 팔면서 동시에 갤러리도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지지의 입구.

원 센트럴 파크, 시드니

원 센트럴 파크, 시드니

2000년대 들어 시드니에도 재개발 바람이 불었다. 양조장이 있던 동네에 들어선 Central Park는 주고층 건물과 공원을 적절히 활용한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One Central Park는 그중에서 주거용 아파트 건물로 유명건축가 장 누벨이 디자인했으며 2013년 완성되었다. 이후 세계 건축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데, 베란다에서 늘어진 정원과 고층 건물이 조화를 이루며, 건물에 대한 상식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시드니 크루즈 여행

시드니 크루즈 여행

바다로 둘러싸인 호주에서 크루즈 산업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 크루즈가 벌어들이는 돈이 32억 달러이며 크루즈 관광객은 연간 1백만 명을 넘는다. 로얄 캐러비안, 오베이션 오브 더 시즈 등이 호주를 찾는다. 거대한 배부터 중소 규모의 크루즈까지 다양한 배가 시드니의 항구에 들린다. 시드니 연안을 둘러보는 크루즈도 관광객에게 인기이다. 저녁마다 항구에는 연안 크루즈를 타려는 젊은이로 붐빈다

시드니 달링하버

시드니 달링하버

산업시대 호주 시드니에 밀과 울을 운송하던 항구를 개발한 달링 하버는 도시 만들기의 좋은 사례이다. 1988년 국가설립 200년을 기념하면서 시작된 항구 재개발 프로젝트는 19세기 항구의 분위기를 업그레이드해서 관광, 쇼핑, 숙박, 레저 및 문화시설 등을 결집한 명소를 탄생시켰다. 최근 컨벤션 센터를 새로 개장하였고, 앞으로도 주거, 사무 및 숙박시설을 지어 집적 효과를 높여 시드니의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장소로 키울 예정이라고 한다.

남쪽의 동백꽃

남쪽의 동백꽃

고전을 보면 동백은 남쪽에서 자라는 아름다운 나무로 적혀있고 12월에 붉은 꽃이 핀다고 한다. 꽃은 약재로 쓰고 씨는 기름을 받아 화장품으로 쓰곤 했다. 민요에는 동백의 붉은 색 때문인지 ‘아주까리 동백아 열지를 마라 건너집 숫처녀 다놀아 난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세월을 견디며 우리와 함께 해온 꽃임은 틀림이 없다. 추운 겨울을 비웃듯 남쪽 서귀포에 동백이 아름답게 피고 있다.

연말연시

연말연시

올해도 어김없이 연말이 다가왔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트리에 장식이 달리고 건물기둥이 산타로 변했다. 초록색과 빨간색이 대비는 어느새 크리스마스라고 쓰지 않아도 연말이 왔다는 것을 알린다. 크리스마스 용품이 매년 조금씩 바뀌고 반복되면서 보기만 해도 이해되는 문화적 코드가 되었다.

광화문의 창의력

광화문의 창의력

국민의 관심을 모으며 주말마다 집회가 열리는 광화문의 풍경은 거대한 촛불이 다가 아니다. 자세히 보면 구석구석 저마다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고 애도와 유머가 공존한다.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는 구명복 설치작업도 등장했다. 희생자 수만큼 구명복이 바닥에 놓이고 노란 리본, 촛불이 추가되었다. 높은 함성이나 전단지가 없어도 그 자체로 어떤 의도인지 금방 이해된다. 소소한 창의력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한옥의 활용

한옥의 활용

한옥의 활용은 무궁무진하다. 오래된 한옥은 주거공간, 호텔, 식당, 카페, 전시장 등 여러 가지로 사용되고 있다. 한옥을 문화사랑방으로 쓰는 곳도 있다. 소박한 인테리어와 작은 공간은 왠지 서로 가까이 느껴지게 한다. 추운 날 모인 젊은이들이 열심히 강사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이 한옥에 귀가 있다면 오래전 사람들이 하던 말과 현대의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세상을 진단할 것이다. 제주시 향사당의 모습.

포스트모던 건축

포스트모던 건축

수직적이며 단순한 형태를 강조했던 모더니즘 건축은 철골과 유리, 시멘트로 효율성을 높인 건물을 선호했다. 그러나 지나친 단순화가 지쳐갈 무렵인 1970년대부터 장식적 요소가 돌아오고 파격적인 형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바로 포스트모던 건축이다. 재미와 위트를 위해서라면 과거의 건축요소와 현대를 자유롭게 조합하기도 했다. 사진은 전라남도의 한 소도시 기차역에 서있는 아치형 구조물로 포스트모던하다. 서양의 건축전통에서 빌린 형태가 광장 가운데에 서서 눈과 공간의 재미를 끌고자 애쓰고 있다.

2016 부산비엔날레

2016 부산비엔날레

광주에 광주비엔날레가 있다면 부산에는 부산비엔날레가 있다. 한국의 양대 비엔날레라고 할 정도로 각각 규모가 대단하다. 올해 부산비엔날레는 부산시립미술관과 F1963에서 열리고 있는데 각각의 전시공간을 고려하여 미술관에서는 1960년대-1980년대 한국, 일본, 중국의 아방가르드 미술이 전시되고 있고, F1963에서는 최근 작업들이 있다. 사진은 한 작가가 흔하게 구할 수 있는 물건으로 꾸민 명상을 하는 공간이다. 다리가 아픈 관객들에게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F1963, 부산

F1963, 부산

부산에서 요즘 가장 핫한 문화공간은 F1963이다. 고려제강이 와이어로프를 생산하던 공장을 리모델링해서 카페, 레스토랑, 전시장을 도입했고, 현재는 부산비엔날레의 전시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오래된 산업시설을 문화공간으로 바꾸는 시도가 유럽에서 시작되어 한국에 착륙한지 몇 년, 이젠 도시재생의 기본원칙처럼 작동하며 부산에도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F는 factory에서 따왔고 1963은 공장을 설립한 년도이다.

공장과 창고의 변신

공장과 창고의 변신

1970년대 이후 서울 여기저기에 공장이 생기면서 생산기지 역할을 한 적이 있다. 구로동, 성수동, 문래동 등에는 용접, 가죽가공, 신발제조 등을 맡은 공장들이 들어섰으나 외국으로 빠져가거나 수입품으로 대체하면서 과거의 활기를 잃기 시작했다. 빈 공장과 창고 건물이 문화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작업실, 카페, 연극무대 등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면서 효용이 다한 건물이 새로운 생명을 얻고 있다. 소위 ‘인더스트리얼 룩’이라는 이름으로 퍼지기 시작한 유행은 거친 시멘트벽과 배관을 노출시키며 세련된 것에 지친 감수성을 유혹하고 있다.

한옥의 변신

한옥의 변신

20세기 들어 근대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옛것들이 많이 사라졌다. 불편하더라도 오래된 집이나 가구를 지키는 전통에 대한 인내심은 유행을 빨리 쫓아간 사람들에게 없었다. 특히 한옥은 근대화 바람의 희생양이다. 일본식으로 개조되었다가 결국 시멘트 건물로 대체되곤 했다. 그나마 남아있는 한옥은 오래된 공공건물이다. 경복궁이나 누각, 관청 등이다. 향사당은 조선시대 제주의 지역의 원로들이 모여서 민심을 나누며 미래를 논하던 장소였다. 낡아서 새로 짓기는 했지만 한옥의 멋을 지키며 문화행사를 개최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대박난 가게

대박난 가게

1913 송정역시장이 붐을 타면서 손님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식빵을 파는 빵집은 대박이 났다. 다른 곳보다 약간 달게 느껴지는 빵들이 입소문과 SNS를 타고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빵굽는 시간이 손님의 수요를 쫓아가지 못한다. 늘 기다리는 줄이 있고, 몰리는 시간대에는 1-2시간을 기다려야 빵을 살 수 있다. 그나마 1인당 구매할 수 있는 수도 2-3개로 제한적이다. 대박의 비결이 궁금하다면 줄서서 기다리며 경험해 보면 된다.

송정역시장

송정역시장

광주광역시 송정역은 KTX가 서는 곳이자 1913년 문을 연 재래시장이 있는 동네이다. 대부분의 재래시장처럼 이곳도 사양길에 들어섰으나 정부가 추진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새롭게 변모했다. 국밥집, 건어물집이 있던 길을 정비하고 건물을 다듬었고, 청년 상인들이 들어와 디저트, 간식거리를 파는 작은 가게를 열어 젊은 손님들을 유치하기 시작한지 몇 달이 되었다. 예쁜 거리가 언론에 소개되기 시작하고, 한 맛집 소개 TV 프로그램에 나오자 멀리서도 손님이 몰리기 시작했다. 사진은 야간에도 사람이 북적거리는 1913송정역 시장.

김숙경 드로잉

김숙경 드로잉

주부로 살면서 예술을 포기하지 않은 김숙경 작가. 틈틈이 천, 종이에 끄적거리거나, 천과 종이에 바느질을 하며 다양한 종류의 드로잉을 해왔다. 드로잉은 한 예술가의 습작이자 대형 작업을 하기 전의 마음의 준비과정을 잘 보여준다. 이번 가을 김숙경은 2001년부터 지금까지 만든 드로잉 상자를 열어서 그중 130여개를 골라 전시하고 있다. 부지런한 농부처럼 부지런한 예술가의 손맛, 생각의 조각을 볼 수 있는 전시이다. 스페이스 D에서 11월 26일까지 전시한다.

가을국화

가을국화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퍼진 국화는 특히 중국에서 인기를 끌면서 여러 품종이 개발되었다. 문인화에서 중요한 식물인 매난국죽에도 포함될 만큼 국화의 기품과 향기는 높이 평가되어 왔다. 관상용뿐만 아니라 식용, 약용으로도 쓰이는 국화는 색, 크기, 형태가 다양하여 많은 이의 사랑을 받고 있다. 가을의 주인공답게 올해도 노란 국화가 등장해 세월의 풍파에 지친 우리를 위로하고 있다.

한옥의 맛

한옥의 맛

콘크리트 건물이 주는 안락함에 살다보면 가끔씩 한옥이 색다르게 다가온다. 수직, 수평의 구조로 기능과 효율성을 높인 현대식 건물이 좋다는 건 누구나 안다. 그런데 남산 한옥마을이나 지방의 전통마을, 또는 옛날 관가를 재현한 곳에 들러보면 마당과 정원, 나무 마루, 늘어진 처마, 가지런한 기왓장, 오방색 단청이 새삼 조용히 감동을 준다. 옛날 글씨로 된 현판 앞으로 떨어지는 빗줄기를 보면서 잠시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게 되는 데, 고층건물에 익숙한 현대에 느끼는 한옥의 맛이다.

코스모폴리탄 도시 거리

코스모폴리탄 도시 거리

거리를 걷다보면 문득 어느 도시에 있는지 망각할 때가 있다. 간판은 모두 영어로 되어있고, 건물도 어디에선가 본 듯한 건물들이다. 유럽의 여느 도시의 모습이나, 라스베가스와 비슷한 풍경이 잠깐씩 서울의 거리에 나타난다. 가을 어느 날 서울 북촌의 거리는 마치 유럽의 도시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패션, 건축, 식음료 문화까지도 유럽의 과거와 현재에서 수입하여 일상으로 소비하며 사는 코스모폴리탄 서울의 풍경이다.

2016 광주비엔날레

2016 광주비엔날레

세계 5대 비엔날레로 우뚝 선 광주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1995년 시작되어 20년이 넘은 광주비엔날레는 2년마다 한번씩 열리며 수십억의 예산을 들인 국내 최고, 아시아 최고의 국제미술축제이다. 올해는 상상력을 통해야 갈 수 있는 ‘제8기후대’를 설정하고 그 공간에서 예술이 할 수 있는 것을 모색하는 전시를 선보인다. 스웨덴의 유명 큐레이터 마리아 린드가 기획했으며, 예년과 달리 화려하지 않고 점잖게 작품을 배열한 것이 특징이며, 영상작업이 많은 것도 주목할 만하다. 11월 6일까지 휴일 없이 계속된다.

김숙경 전시

김숙경 전시

델코가 운영하는 문화공간 스페이스 디에서 중견작가 <김숙경> 전시가 열린다. 동양화를 그리면서 틈틈이 일상을 녹여낸 드로잉, 오브제 등을 만드는 작가의 개인전이다. 커피 필터에 메모를 하고, 양파 망, 광고지로 입체 작업을 하기도 한다. 보통 사람처럼 매 시간을 일과 책임으로 채우면서도 자투리 시간에 창의력을 발휘하는 예술가의 삶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전시이다. 10월 22일 오프닝 이후 11월 26일까지 계속된다.

술집광고

술집광고

노가리 한 마리를 굽고 소주한잔을 기울이는 가을밤. 왠지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 밤의 풍경이다. 그런 고객의 마음을 헤아리듯, 노가리를 내건 술집이 한 여대 인근에 등장했다. 그리고 말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여성 고객을 부르듯, ‘그 자식 씹고 싶을 때 노가리, 너를 만나 반가워’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사랑은 성공보다 실패하기 쉬운 데, 그 실패한 여성들에게 솔깃하게 다가올 법한 문구이다. 광고 문구도 튀어야 살아남나 보다.

제주에 사는 예술가

제주에 사는 예술가

서울에서 교수생활을 하던 한 예술가가 제주에 내려와 산지 20여년. 그는 제주에서의 삶을 ‘중도(中道)’라고 부르며 산다.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고 느리게 자연, 이웃, 골프와 벗하며 사는 삶을 그는 그렇게 부른다. 사람마다 ‘중도’에 대한 개념이 다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자신만의 ‘중도’를 실천하며 자신의 ‘중도’를 그림으로 그리는 데, 그런 그림이 미술시장에서 잘 팔리며, 그의 삶을 더욱 풍족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 자비와 후원자의 도움으로 서귀포에 ‘왈종미술관’을 열어 자신의 작업을 널리 알리고 있다.

장쩌민의 방문

장쩌민의 방문

산을 일궈서 분재예술원을 만든 남자가 있었다. 그냥 좋아서 시작한 일이 평생의 즐거움이자 업이 되었는데, 정작 분재는 점점 전성기를 지나 잊히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적처럼 중국의 주석 장쩌민이 방문하고 그의 업을 칭찬했다. 그러자 그 남자는 중국의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 되었고, 그의 정원은 ‘생각하는 정원’으로 바뀌어 중국관광객을 맞고 있다. 사람들의 냉소를 받으면 분재와 정원에 미쳤던 세월이 미래를 위한 투자가 된 것이다. 그에 대한 감사의 표시처럼 그의 정원 한가운데에 장쩌민의 이름과 글씨가 새겨져 있다.

퍼포먼스, 창원

퍼포먼스, 창원

인간이 몸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은 언어보다 앞선다. 말을 배우기 전 어린 아기는 소리와 손짓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는다. 어른이 되면 몸은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을 위한 도구가 된다. 바닥에 드러누워 항의의 강도를 높이기도 하고, 춤을 추며 건강함을 자랑하기도 한다. 예술가의 몸은 항의나 자랑을 넘어 평소에 볼 수 없는 표현으로 우리를 생각에 잠기게 한다. 푸른 옷을 입은 남자와 흰색 옷을 입은 여자, 차위에 올라간 남자, 저마다 느리게 움직이며 다채로운 몸의 언어를 보낸다. 창원조각비엔날레 오프닝 행사 장면.

빛, 서예의 맛

빛, 서예의 맛

고대 중국에서 붓으로 글자를 쓰면서 서예가 시작되었다. 갑골이 대나무판, 종이 등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라면 다 활용했고, 붓을 먹물에 찍고 누르는 압력을 조절하고 움직임의 속도를 조절하면서 글자의 멋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손을 움직이며 느리게 또는 빠르게 글을 쓰다가 시대에 따라 선호하는 스타일이 나오면서 전서, 예서, 초서, 행서, 해서 등 글씨체가 발달하기도 했다. 글자의 예술인 서예가 현대에 들어서 서예가의 개인적인 스타일을 보여주는 예술로 진화하고 있다. 한 유명 서예가가 ‘빛’이라는 단어를 마치 그림을 그리듯 호방하게 그려냈다.

비양도 풍경

비양도 풍경

섬은 특별하다. 고립된 자기만의 세계를 가진 고아함이 있고, 복잡한 세상에 휘둘리지 않는 고즈넉함이 있다. 한눈에 섬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서 풍경으로 보는 섬은 고아함과 고즈넉함이 배가 되어 다가온다. 제주시 한림읍의 금능 해수욕장에서 바라보는 비양도는 바로 그런 매력을 가지고 있다. 모래덕분에 화사한 아쿠아 마린 색깔의 해변 너머로 보이는 비양도에도 사람이 산다. 고기를 잡고 고구마를 기르며 1천년이 조금 넘은 섬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그런 삶의 고단함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은 비양도만의 아름다운 풍경과 멋스러움 때문이리라.

발자크 동상

발자크 동상

프랑스 문인 발자크는 사실주의 소설로 유명하다. 근대 파리의 여러 인간들이 복잡하게 사는 모습을 세밀하게 그려내곤 했다. 그러나 건강이 좋지 않던 그는 51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그의 사망 후 수십 년이 지난 1891년, 프랑스 문인협회가 조각가 로댕에게 발자크를 기념할만한 조각을 의뢰했다. 로댕은 수년에 걸쳐 고민하다가 자신의 스타일로 위대한 문인이 마치 거대한 유령처럼 서 있는 석고 조상을 발표했는데 정작 문인협회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퇴짜를 놓았다. 그리고 로댕이 사망한 지 수십 년이 지나자 발자크 조상은 로댕의 대표적 작품으로 인정받았으며 다수의 석고, 청동 작업으로 제작되었다. 그 중 하나가 경기도 모란미술관에 들어와 조용히 미술관 구석을 지키고 있다.

의장대 공연

의장대 공연

의식이 행해질 때 격식이 갖춰지면 왠지 더 엄숙해진다. 군대 의장대의 절도 있는 행진만큼 격식이 있는 것도 없을 것 같다. 준수한 외모에 잘 다려진 유니폼, 각을 세우고 걷는 걸음, 총을 다루는 솜씨, 어느 것 하나 정성이 안 들어간 것이 없다. 총칼을 들고 있기는 한데 전쟁터에서 싸우는 용도가 아니라 정교한 의식을 위해 사용하는 도구로 변한다. 그래서 중요한 행사에 의장대가 출현하면 그 행사의 격을 높여준다. 매 순간 변하는 자세와 행렬 때문에 눈을 뗄 수 없는 공연으로 변한다. 사진은 해군해병 의장대.

부자의 취향

부자의 취향

몇 년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 종교인 집안은 사치스러운 취향으로 유명했다. 특히 이 집안의 아들은 고가의 시계, 미술품 등을 사들여 카페와 레스토랑에 전시하곤 했다. 그러나 언론의 포화와 검찰조사가 이어지면서 그가 운영했거나 디자인에 간여했던 사업체들은 하나 둘 문을 닫았다. 당시 입방아에 올랐던 한 스시 식당은 아직 운영 중인데, 식당 내부 인테리어에 그 아들이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옻칠과 금칠로 가득한 실내 한 가운데에 소라껍질을 이어 만든 샹들리에가 우아하게 달려 있는데, 사라진 한 부자의 취향을 보여준다.

재래시장 생선구이

재래시장 생선구이

언제부터인가 집에서 생선을 굽기가 꺼려진다. 냄새가 진동하고 환풍을 해도 한동안 그 냄새가 남아있어서이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지 재래시장 골목에는 생선구이집이 성황이다. 재래시장이 사양길이라고 생선구이 집은 예외인 듯하다. 남대문 시장의 갈치골목, 인천 중구의 삼치골목, 부산 자갈치 시장의 생선구이 골목 등 여기저기에 수십 년된 식당이 매일 연기를 피우며 여러 구이 메뉴로 손님을 모은다. 고소한 냄새를 맡으며 침을 다시다가 생선구이 한접시가 돋보이는 정식을 먹자면 어릴 적 어머니가 주시던 밥상이 떠오른다.

수저와 포크의 진화

수저와 포크의 진화

동로마제국에서 사용되었다고 알려진 포크는 지금의 것과 형태가 달리 단순했다. 중세를 거쳐 근대 독일에서 지금의 것과 유사한 휘어진 포크가 개발되었고, 이후 대량생산 체제를 거쳐 오늘날의 포크가 나왔다. 수저 또는 스푼은 포크보다 역사가 오래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용되었다. 여러 형태로 변형되어 그 용도도 다양한 데, 스푼역시 19세기를 거치면서 대량생산되기 시작한다. 오늘날 플라스틱 또는 나무로 만든 1회용 스푼과 포크가 흔하다. 편리함을 숭배하는 현대문화의 산물이자, 한때 유용했던 식기가 지금은 자원낭비와 지구오염의 대명사가 되었다.

해수어연구원, 청계천

해수어연구원, 청계천

물고기를 길러 본 사람은 안다. 얼마나 신경을 쓰고 공이 들어가는 일인지. 바다에서 자라던 예쁜 물고기를 기르는 일은 더 어렵다. 바닷물처럼 물을 유지하면서도 오염물질을 정화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고객을 위해 해수어를 연구해서 파는 곳이 몇 곳 청계천에 있다. 그중에는 수십 년간 해수어 기르기에 도전하며 노하우를 터득한 곳도 몇 곳 있는데, 해수어에 대한 변치 않는 애정과 헌신, 자부심을 상징하듯 주인의 이름을 간판에 내걸었다.

동네부엌 천천히, 파주

동네부엌 천천히, 파주

창조계급/창의계급에 속하는 디자이너, 출판인, 작가 등이 모여 일하는 파주 출판단지에 2014년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식당이 하나 생겼다. 파주에 입주한 업체 직원들이 먹을 만한 식당을 만들었는데 이익을 추구하는 장사가 아니라, 협동조합 식당이다. 점심만 제공하지만 주로 채식위주에 정갈한 집밥처럼 조미료없이 담백한 음식들이다. 뷔페식이어서 줄서서 순서를 기다려야 하고, 음식을 남기지 않도록 조심하고, 먹고 나서 각자 설거지하는 모습이 힘든 농부의 수고, 식량의 소중함, 노동의 신성함과 더불어 책임있는 한끼를 강조하는 것 같다. 조합회원으로 가입하면 1인당 6000원에 먹을 수 있다.

마음안의 것들

마음안의 것들

최현희 작가는 오랫동안 정물화를 그리고 있다. 소소한 물건들을 쌓고 배열하여 생명을 불어넣는다. ‘collection of the mind’라는 주제로 작업하면서 물건들이 그냥 움직이지 않는 무생물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감정의 대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 최작가의 정물화에는 배경이 등장한다. 녹음이 내리운 풍경, 밀밭처럼 식물로 가득찬 배경이 들어가 가까운 거리와 먼 거리를 오가는 원근법을 구사한다. 마치 정물이 꿈을 꾸는 듯한 장면을 만들어내며 감정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오래된 서가

오래된 서가

책이 보통 사람들에게 퍼지기 시작한 것은 인쇄술이 발달하면서부터이다. 원래 진귀한 물품이던 책은 소수 권력층이 수집하던 물건이었으나 인쇄술이 책을 대량생산하기 시작하면서 보통 사람도 책을 읽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책을 수집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책의 종류도 다양해지니 책을 꽂은 서가도 다채로워진다. 한국 책의 역사를 보여주는 서가가 파주 출판도시 열화당에 있다. 열화당 책박물관은 동서양 고서부터 현대의 책까지 골고루 수집하며 ‘책’이 종이를 떠날지 모르는 미래에 대비하고 있다.

애월바다, 제주

애월바다, 제주

제주바다의 멋은 검은 현무암과 푸른 바다가 만나는 해안선에 앉아 멀리 수평선을 지나는 새, 배, 비행기를 보다가 문득 구름도 있다는 걸 깨달을 때이다. 이글거리던 용암이 오돌오돌한 돌 표면 위에 그 흔적을 그대로 담고 있는 현무암을 밟고 서면 아스팔트와 시멘트 길에 익숙한 몸이 휘청거린다. 뜨거운 태양이 비추고 비릿한 바다 냄새가 코를 휘감으며 파도가 다가와 돌에 부딪혀 부서지는 광경을 바라다보면 어제까지도 머리를 짓누르던 것들이 멀어지면서 완전한 자유가 몸을 감싼다.

테이블이 된 간판

테이블이 된 간판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한 예술가가 버려진 간판 하나를 제주의 시골에서 발견했다. 그리고 각목을 대고 적당히 잘라 테이블로 만들어 사용한다. 한때 귤을 따서 보관하고 선별작업을 하던 창고의 간판이 테이블로 탄생하니 그 위용이 남다르다. 굵은 글씨체는 왠지 정직한 감귤농사의 정신을 잇는 것 같고, 단단한 목재위에 난 때 묻은 자국도 새로운 주인을 찾는 데 큰 흠이 되지 못한다. 낡은 것에도 따스한 시선을 주는 예술가는 ‘재주도 좋아’라는 팀의 멤버로 활동하면서 제주도의 환경을 구하고 있고, ‘반짝반짝 지구상회’를 운영하고 있다.

실연에 관한 박물관

실연에 관한 박물관

크로아티아의 한 커플이 헤어지고 난 후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실연 박물관(Museum of Broken Relationships)’을 만들었다. 2006년 문화기획자이자 예술가인 이 커플은 자신들의 관계가 끝났지만 공유했던 물건들을 버리기가 아까워 ‘박물관’을 만들었는데, 이후 사랑을 잃은 사람들이 기증한 물건들을 모아 ‘실연 박물관’을 키워갔다. 쉽게 버릴 수도 있는 물건들과 그에 얽힌 소소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모아서 인간의 사랑을 기린다는 박물관은 독창적 아이디어라는 찬사를 받으며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아시아 최초로 제주의 아라리오 미술관 동문모텔 II에서 전시되는 ‘실연 박물관’의 모습.

앤트러사이트, 제주

앤트러사이트, 제주

제주의 옹포리의 ‘앤트러사이트(Anthracite)’는 최근 제주에 생긴 카페 중에서 주목할 만한 곳이다. 이정표도 없고, 낡은 폐 공장을 개조한 카페이다. 마을 주민이 고구마를 전분으로 만들던 공장에다 흙바닥위에 화초를 심고, 낡은 금속 위에 물건을 놓고, 거친 목재로 테이블을 만들어 말 그대로 ‘폐허의 미학’을 살린 곳이다. 카페 이름은 ‘무연탄’을 일컫는데, 커피를 열심히 만들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합정동에 신발공장을 개조한 본점을 열었던 주인은 제주에 와서 옹포리 분점을 열고, 최근에 한남동에도 동명의 카페를 만들었다고 한다.

몽상, 애월

몽상, 애월

요즈음 제주에 핫한 카페 중의 하나는 유명 연예인이 만들었다는 소문이 무성한 애월리의 ‘몽상’이다. 이 카페 때문에 조용한 바닷가 마을이 관광객으로 넘쳐난다. 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통 큰 유리창과 높은 천정, 그리고 포스트모던하기 그지없는 샹들리에가 인상적이다. 그리고 바다로 난 길 끝에 소담한 나무구조물이 있는데 그 안에 앉아 24시간 해와 바다의 조우를 감상할 수 있다. 먼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곳을 한없이 보다보면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명료해진다.

전각의 미

전각의 미

고대 중국에서 시작되었다는 전각은 문인에게 빼놓을 수 없는 문화가 되었다. 좋은 재료를 골라 고대의 유산에서 영감을 받은 문양과 글자를 새겨서 자신만의 미학을 추구하곤 했다. 전각문화가 발달하면서 덩달아 고대 비문을 연구하는 금석학이 발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과거의 재해석이야말로 전각의 미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고려시대 한반도에도 전각문화가 들어왔으며 조선시대에는 직접 자신만의 전각을 만드는 문인이 늘기도 했다. 지금은 인사동에서 전각 디자이너가 미리 만든 양식으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보급형도 있다. 사진은 중국의 오래된 전각을 종이에 찍은 모습.

소망의 나무

소망의 나무

어딘가에 물건을 매달아 소망을 비는 일은 오래된 관습이다. 과거 서낭당(성황당)은 마을 입구의 나무에 물건을 매달아 소원을 빌면서 탄생했다. 돈을 벌게 해달라고 짚신 조각을 걸기도 하고 장수를 빌며 옷조각을 걸기도 했다. 서낭당에 비할 수는 없으나 나무에 종이를 매다는 일은 현대 예술로 퍼져갔다. 한 예술가가 관객에게 소망을 적어 나무에 매달라고 하자, 끊임없이 매단 종이로 나무가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현대판 서낭당이라도 만들어 행운을 바라고 싶은 사람의 행렬이 그치지 않는다.

쿠사마의 호박

쿠사마의 호박

예술가는 종종 한 가지 물건이나 이미지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세잔느는 사과로 유명했고, 마티스는 누드로 유명했다. 박수근은 시골 아주머니 모습에, 이중섭은 소에 집착했다. 일본작가 쿠사마는 호박 이미지를 좋아한다. 어릴 적 일본에서 자랄 때 집에서 기르던 호박들이 자라며 커가던 모습, 그리고 수확 후 넘쳐났던 호박들을 기억하며 그리기 시작했다. 호박에 땡땡이 무늬를 가미한 후 탄생한 쿠사마의 컬러풀한 호박은 조각, 판화, 회화 등 여러 가지로 나온다. 정신질환을 앓으면서도 창작을 포기하지 않는 쿠사마의 집념만큼이나 호박 이미지도 끊임없이 반복된다.

단색화 열풍

단색화 열풍

1970년대 초중반 한국에 전에 보기 힘들었던 종류의 추상화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한 가지 색조를 위주로 제작된 추상화였다. 그동안 모노크롬 회화, 모더니즘 회화, 단색조 회화 등 여러 가지로 불리다가 2012년 <단색화>전시를 계기로 용어가 통일되었다. 통일의 힘일까? 이후 한국의 단색화는 세계의 경매시장과 화랑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우환, 박서보, 정상화 등 노인이 된 작가들이 각광을 받으며 스타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이우환의 위작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아트페어에 나온 단색화. 왼쪽은 이우환의 회화.

장식의 미

장식의 미

산업화가 대세가 되고 거의 모든 것이 대량생산체제로 변하기 시작한 지 200년이 되지 않는다. 양말, 수건, 책상 등 일상의 모든 것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시대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수공예가 대세였다. 손수 만든 옷을 입고 동네 장인이 만든 신발을 신고 다녔다. 지하실의 환기구 문도 손으로 만들던 시대가 있었다. 대량생산에 익숙해서인지 손으로 만든 것을 보면 귀하게 보인다. 유럽의 길에서 만난 작은 환기구의 장식은 오래된 돌집만큼이나 정겹고 창의적이며 사람의 흔적을 느끼게 한다.

섭리의 눈

섭리의 눈

유럽 교회의 장식을 보다 보면 종종 삼각형 안에 눈이 담겨있고 주변에 빛이 퍼지는 이미지를 보게 된다. 삼각형은 삼위일체를, 눈은 항상 인간을 바라보고 있는 신의 눈을 형상화한 것으로 ‘섭리의 눈(eye of providence)’이다. 우주를 창조한 신이 교회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다면 그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 겸손해질 것은 분명하다. 이 이미지는 중세부터 교회에서 천정이나 스테인드 글래스 창문 등 여러 장식에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후 세속의 문화에도 들어와 가문의 문장에도 사용되었으며, 근대이후 미국의 지폐, 문신, 셔츠 등 여러 곳으로 확산되었다.

한옥의 멋

한옥의 멋

집은 문명 진화의 얼굴이자 인간의 철학을 보여준다. 한옥은 한국인의 철학과 문명을 담고 있다. 두툼한 나무의 휘어짐을 버리지 않고 집의 구조물로 활용하고, 닥나무로 만든 한지를 발라 문을 만들었다. 돌, 나무, 종이, 흙, 철로 만든 한옥은 투박하면서도 편안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마루에 누워 낮잠이라도 자면 정원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여름 바람과 오래 묵은 집의 냄새가 섞여 향수를 일깨운다. 새집에 들어가기 전 포름알데히드, 아세톤 등 여러 화학물질을 걱정해야 하는 오늘날, 잘 가꾼 한옥이 부러워진다.

베니스의 가면

베니스의 가면

정교한 장식과 다양한 디자인을 자랑하는 베니스의 가면은 베니스 카니발로 유명하다. 축제기간동안 멋스런 가면을 쓰고 화려한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자유를 갈망하며 돌아다니곤 한다. 언제부터 가면이 사용되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14세기 문헌에 가면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자신의 신분이나 외모를 가리는 문화는 상당히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계급과 체면에 얽매이던 사회를 벗어난 오늘날 베니스의 가면은 화려한 베니스 전통 문화를 흠모하는 관광객을 위한 상품이 되었다.

버스 정류장 광고

버스 정류장 광고

광고는 노출을 먹고 산다. 시선을 끌기 위해 유명인, 동물, 가능한 모든 것을 활용한다. 한 항공사가 유명 연예인을 모델로 세웠다. 제복이 잘 어울리는 그가 경례를 하는 모습은 드라마에서 광고로 이전해도 여전히 멋있기 때문이다. 멋진 그가 경례하는 광고가 도시의 한가운데 버스정류장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중요해진 요즘, 사람들의 시선은 손에 더 오래 머무른다. 멋진 모델이 머쓱해진다.

성수동 카우앤독

성수동 카우앤독

청년 창업이 장려되는 시대이다. 청년 실업 시대를 탈피하자는 분위기 속에 젊은 열정을 태울 기회와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성수동의 카우앤독(소와 개)은 소셜 벤처 인큐베이팅 회사 ‘소풍’이 만든 협업공간이다. 세련된 건축물에 디자이너 등 청년들이 일종의 코워킹을 하는 공동사무실 체제를 담았다. 회원으로 가입하면 1인 기업가를 위해 만든 전화용 부스부터 회의실까지 필요한 시설을 사용할 수 있다. 외부 강연자를 초빙해 세상의 흐름도 읽을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사진은 카우앤독의 1층 카페 공간.

‘사랑해요’ 광고

‘사랑해요’ 광고

21세기 초 한국은 현대문화의 첨단을 걷는다. 그중에서도 한류는 대중문화의 확산과 새로운 마케팅의 실험의 장이 되었다. 그 힘의 원천은 물론 재능있고 ‘사랑스러운’ 인력을 시장에 내놓는 업계의 기획력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그들을 사랑하는 팬들이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그들은 열과 성을 다해 사랑을 표현한다. 건대 지하철역사에는 종종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광고가 등장한다. 한국 연예인을 사랑하는 외국인 팬들이 광고기획사에 의뢰해서 붙인 광고들이다. 사진은 한 연예인의 데뷔 10주년을 축하하며 호주, 홍콩, 중국에 있는 3명의 팬이 붙인 광고이다.

건대역 커먼 그라운드

건대역 커먼 그라운드

컨테이너가 물건을 운송하는 상자에서 일약 현대건축의 총아로 떠올랐다. 저비용, 친환경 건축이 필요한 현대의 요구에 부응했기 때문이다. 간편한 주택부터 VIP 라운지까지 컨테이너가 사용되는 영역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서울 건대역 인근 유휴지를 빌려 코오롱이 컨테이너를 이은 ‘커먼 그라운드’ 쇼핑몰을 연지 1년이 넘었다. 여느 쇼핑몰과 같이 패션, 식음료 등 업종은 비슷하지만 젊은 취향에 어울리는 매장들이 금속과 시멘트가 조합된 공간에서 색다른 경험을 준다. 벌써 80만명이 넘는 방문객이 다녀갈 정도로 서울의 핫 플레이스로 자리를 잡았다.

성수동 대림 창고 카페

성수동 대림 창고 카페

서울 성수동의 재생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유명 배우가 건물을 샀다는 소문이 들린다. 서울시가 길을 정비하고 작가 스튜디오를 제공하고, 임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반면에 민간은 건물을 임대하거나 사들여 허름했던 지역에 공연장, 전시장, 공방, 갤러리 카페 등을 만들어 손님을 끌고 있다. 최근에 문을 연 카페는 대림 창고 건물을 최소한으로 리모델링하여 전시장과 카페를 겸하고 있다. 거친 벽에 걸린 그림과 앙상한 철제 구조물, 천장까지 닿는 나무와 향긋한 커피, 맛있는 음식 냄새가 섞여서 도시 감성을 자극한다.

초의선사의 일지암

초의선사의 일지암

차 한잔을 마시며 깨달음을 얻었던 초의선사는 우리나라의 차문화를 정립한 인물로 평가된다. 15세에 출가한 후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과 교류했으며, 그가 쓴 <동다송>은 한국차의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식견이 높았던 그가 경기 지역에 가면 한양의 고관대작이 찾아와 그를 만나고 갈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그러나 남도의 대흥사 계곡에 일지암을 짓고 주변에 차나무를 키우고 정원을 만들어 40년간 은거하며 살다가 갔다. 그의 사후 사라졌던 일지암은 1970년대 이후 다도를 사랑하는 애호가들이 나서서 재건되었고, 지금도 다도를 사랑하는 이들의 순례가 끊이지 않는다.

가파도 보리밭

가파도 보리밭

보리는 인류가 최초로 재배한 곡물중의 하나였다. 후에 수확한 보리가 썩어 발효되면서 맥주를 발견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보리는 쌀과 함께 주된 주식이었다. 쌀은 가을에 수확하고 보리는 여름에 수확하며 살았는데, 문제는 봄이었다. 쌀이 떨어지고 보리를 수확되지 못한 봄, 종종 기근을 겪었는데 이때 보릿고개라는 말이 생긴 것이다. 농업이 산업화되고 세계에서 수입한 곡물이 들어오는 오늘날 보릿고개는 사라졌다. 대신에 봄의 푸른 보리밭을 거닐며 친근한 노래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을 부르며 계절을 만끽할 수 있다.

크루즈 여행

크루즈 여행

크루즈 선을 타고 해양을 누비며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는 여행이 상품화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이다. 지중해 지역을 누빈 P&O 증기선사가 최초의 회사였다. 이후 크루즈 산업은 상승세를 타다가 제트기가 상용화되며 여행객을 뺏기기도 했다. 그러나 고급화, 서비스 다양화를 통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현재 세계 크루즈 산업 규모는 400억 달러로 2000년대 들어선 이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작년 한해에만도 수백 척의 크루즈선이 2천만명이 넘는 관광객을 싣고 전 세계를 누볐다. 중국 관광객의 증가로 2020년 아시아 크루즈 시장은 700만 명을 넘을 것이라는 진단도 있다. 사진은 제주에 정박한 크루즈 선.

수원 예술공간 봄

수원 예술공간 봄

이윤숙 관장이 수원의 오래된 도심 행궁동에 대안공간 눈을 열고 동네를 벽화마을로 만들기 시작한지 10년이 넘었다. 허름한 동네에서 돈이 벌리지도 않고 시간과 에너지만 들이는 그의 문화 활동을 의심스럽게 생각한 주민도 있었으나, 기금을 받고 예술가가 오고가고 동네가 활기를 띄기 시작하자 그의 비전을 높이 평가하는 주민도 생겼다. 한 주민이 집을 팔게 되자 그를 찾아서 꼭 사달라고 부탁을 했다. 조건은 자신이 아끼던 건물의 원형을 보존한 채 문화공간으로 만들어달라는 것. 그렇게 2014년 예술공간 봄이 대안공간 눈 옆에 문을 열고, 수원의 문화 자생력을 키우고 있다. 바로 옆에는 오래전부터 있던 창호공방.

문래동 도시재생

문래동 도시재생

문래동에 철강공장, 용접소 등 거친 기계 소리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대기오염이 가속되면서 1980년대 이후 서울시의 정책으로 이전하는 공장이 늘기 시작했다. 빈 공간에 홍대 등 인근 미술대학에서 조각 등을 전공한 예술인들이 싼 임대료에 이끌려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약 25년 전. 지금 문래동은 각종 장르가 어우러진 문래예술촌으로 더 유명해졌다. 군데군데 벽화가 보이고, 철로 용접한 조각도 보인다. 사진은 문래예술촌의 대표 얼굴로 잘 알려진 깡통 로봇.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2015년 가을 수원에 문을 연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은 논란과 비판을 먹고 탄생한 곳이다. 아파트 브랜드 ‘아이파크’로 유명한 현대산업개발은 수원에도 대단지 아파트를 개발해왔다. 그런 인연으로 수원시가 제공한 부지에 300억을 들여 미술관 건물을 짓고 시에 기부한 것이다. 조건은 바로 미술관 명칭에 있다. 공공시설을 의미하는 ‘시립’과 비즈니스 브랜드를 보여주는 ‘아이파크’라는 명칭이 공존하게 되었는데, 당연히 시민단체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세련된 건물에 좋은 전시를 열면서 사람들이 몰리자 한정된 재정을 가진 지자체의 성공한 문화사업 사례로 언급되고 있다.

당진 아미미술관

당진 아미미술관

미술관은 꿈을 먹고 탄생한다. 설립자가 누구인가에 따라서 꿈의 크기도, 질도, 깊이도 달라진다. 여느 시골처럼 당진에도 폐교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폐교에 한 부부작가가 정착한 것은 1990년대 말. 파리 유학중 만나 결혼한 부부는 남편의 고향 당진의 낡은 학교 건물에 현대미술을 담고 사람들에게 새로운 미학을 보여주고 싶었다. 15년 넘게 매달려 오래된 건물을 개조하고 보수해 미술관을 열었다. 소담한 시골학교는 이제 자연과 예술이 조화를 이룬 쉼터가 되었고 홍보를 하지 않아도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몰려온다. 미술관 카페에서 잠시 차 한잔을 마셔도 좋은 곳.

리빙룸 뮤지엄

리빙룸 뮤지엄

쇼핑의 천국 홍콩. 홍콩의 백화점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바로 예술을 통해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것이다. 타임스 스퀘어 백화점 1층 광장에 전시장을 만든 것은 2015년 초. 그러나 식상한 문화센터나 갤러리가 아니라 고급스런 ‘뮤지엄’이라는 명칭을 택했다. 집이 좁은 홍콩의 주민을 유혹하기 위해 ‘거실’을 칭하는 ‘리빙 룸’을 표방하며 마치 거실에서 편안하게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듯이 전시장에 오라는 의미로 ‘리빙룸 뮤지엄’을 만들었다. 지상 광장 최고의 자리에, 독특한 디자인의 건물을 만들어, 특이한 예술가의 작업을 전시하면서 첨단을 달리는 백화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진은 마이클 라우의 전시를 하는 리빙룸 뮤지엄.

중국어 수요

중국어 수요

21세기 한국문화는 중국인과 중국문화를 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중국식당, 중국어 간판, 중국어 가이드. 끝도 없이 이어지는 중국인의 한국행 덕분에 계속 생기는 것들이다. 중국인 관광객만 오는 것은 아니다. 대학에는 중국인 학생도 다수 온다. 투자 이민을 오는 이도 있고, 노동자도 있다. 사람이 몰리면 세상도 변한다. 대학가 교회에 중국어 예배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렸다. 정부가 종교가입에 개입하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교회로 오게 하려면 낯설지 않은 모국어 예배가 제격이기 때문이다.

가파도의 까치집

가파도의 까치집

도시의 까치들은 봄마다 전쟁이다. 산란을 위해 봄이면 집이 필요한데, 선로나 전기공급선에 집을 지었다가 한전, 코레일에서 나온 직원에게 압류당하기 쉽다. 영특한 까치는 나뭇가지 말고도 금속, 비닐 등 쓸만한 재료는 죄다 동원해서 집을 짓기 때문이다. 제주 가파도의 까치도 고민은 많다. 높은 나무가 많지 않아서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적기 때문이다. 영특한 까치가 스피커 봉에 까치집을 지었다. 피뢰침 때문에 번개가 칠 수도 있고,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가 시끄러울 수도 있는데, 일단 집이 급했는지, 지어놓고 본 것 같다.

가파도의 유토피아

가파도의 유토피아

제주도 남쪽 가파도는 원래 무인도였다. 조선후기부터 사람이 들어와 개간을 하면서 마을을 형성했는데 1제곱킬로미터도 안되는 작은 섬이라 아직도 사는 사람이 많지 않다. 섬 자체가 나지막한데다, 집들도 나지막해서 도시에 지친 사람에게 적격인 섬이다. 사람이 있는 곳에 문명이 있는지라 가파도의 집마당은 주인의 개성을 보여준다. 바다에서 주워온 물건, 돌을 쌓아 올리고 좋아하는 풀과 꽃을 심어 자기만의 유토피아를 만드는 주민도 있다. 한때 낚시꾼이 손님의 전부였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4-5월의 청보리축제를 보러 오는 방문객이 넘쳐나서 잠시 유토피아가 소란스러워 지기도 한다.

제주 ICC의 벼룩시장

제주 ICC의 벼룩시장

벼룩시장이 문화산업이 되고 있다. 문화이주자들이 몰리는 제주에서 마을마다 주말에 여는 벼룩시장은 이주민들의 교류의 장이다. 최근 제주도는 동아시아문화도시 개막식을 개최하면서 마을벼룩시장의 상인들을 모아 컨벤션센터의 로비에 임시 장을 만들었다. 초현대식 건물의 로비에 펼쳐진 장은 소담한 마을의 장터만큼 운치가 있지는 않다. 다만 사람이 모이는 장터가 중요한 행사의 부대행사가 될 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사실이 고무적이다. 결국 문화는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홍콩 ADC Art Space

홍콩 ADC Art Space

근 홍콩이 문화예술의 도시로 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정부의 홍콩예술발전위원회(HKADC)는 문화예술정책과 기금을 제공하고 있는데,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예술가를 지원하고 있다. 기업의 후원을 받아 예술가에게 저렴한 작업실을 제공하는 것도 이 기구의 업무이다. 2014년 허름한 공장지대의 웡죽항가에 문을 연 ADC 아트 스페이스는 낡은 건물을 리모델링한 힙싱홍사의 협력으로 시장보다 싼 가격에 공간을 임대하여 젊은 예술가와 단체에 재임대하고 있다.

BMW 아트 카

BMW 아트 카

1975년경부터 독일의 자동차 회사 BMW는 ‘Art Cars’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세계적인 예술가와 협업을 하고 있다. 엘베 풀렝이라는 예술 경매사가 자동차 레이싱을 좋아한 나머지 BMW에 자신의 경주용 차를 지원하도록 설득한 후에 얻은 차에다 당대 미국의 원로작가 알렉산더 칼더로 하여금 그림을 그리게 한 것이 시발점이다. 이후 BMW는 여러 예술가에게 아트 카를 의뢰하면서 40년 넘게 전통을 지키고 있다. 사진은 1976년 미국의 유명 작가 프랭크 스텔라에게 의뢰한 아트 카이다.

프린지 클럽, 홍콩

프린지 클럽, 홍콩

비영리 예술공간을 표방하는 홍콩의 프린지 클럽. 1984년 급하게 유가공 공장이었던 식민지 시대 건물에서 일군의 예술가들이 프린지 페스티발을 진행하다가 눌러 앉게 된 것이다. 이후 건물을 수리하고 예술가들이 모이는 클럽으로 만들어 지금까지 예술의 자유를 표방하고 있다. 고층 건물로 즐비한 홍콩의 센트럴 지역에 있으면서도 고풍스런 외양덕분에 주류를 거부하고 ‘주변’을 강조하는 클럽문화에 어울리는 공간이 되었다. 공연을 올리고, 이벤트 행사에 공간을 임대하고, 카페의 수익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최근 문화예술의 도시로 부상한 홍콩의 명물로 대접받고 있다.

웨스턴 마켓, 홍콩

웨스턴 마켓, 홍콩

영국식민지 시대인 1906년 홍콩의 웨스턴 마켓에 영국 에드워드 양식의 건물이 들어섰다. 홍콩의 역사를 담은 오래된 건물 중의 하나였으나 점차 시장은 사라지고 주변이 고층건물이 즐비한 상업지구로 변하면서 원래의 시장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결국 1990년대 쇼핑몰로 개조되어 카페, 공예품 가게 등이 들어서 있다. 그나마 2층의 원단가게들은 원래의 시장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며, 꼭대기 층에는 연회장으로 유명한 ‘그랜드 스테이지’가 있는데 딤섬으로도 유명하다. 사진은 그랜드 스테이지.

홍콩 JCCAC

홍콩 JCCAC

영국인들이 진출한 홍콩에 경마 클럽이 만들어진 것은 1841년. 홍콩 자키 클럽은 이후 경마장을 운영하며 쏠쏠한 이익을 내곤 했다. 그리고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이익의 일부를 홍콩의 문화예술에 기부하기 시작했다. 2008년 문을 연 JCCAC(자키 클럽 창의예술센터)는 홍콩 자키 클럽이 기부한 돈으로 낡은 공장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1990년대 봉제공장이 쇠퇴하기 시작하자 나온 공장건물의 기존 구조를 그대로 살린 채 홍콩의 문화예술인의 창작센터로 만들었다. 이곳에는 현재 100개가 넘는 예술단체, 그룹, 개인 작가 등이 작업실, 공방, 가게 등을 열고 있으며 이외에도 갤러리, 카페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사진은 건물의 내부모습

맞혀 보세요.

맞혀 보세요.

수년 전부터 영어권에 돌아다니는 유머가 있다. 소위 ‘얼마나 빨리 다음 단어들을 맞힐 수 있나요?’이다. 정답은 매우 평범한 단어들로 질문 바로 밑에 있다. 그런데 혹시 정답과 다른 단어, 특히 성과 관련된 단어를 연상한 사람이 있을까봐, ‘you dirty minded freak!'이라고 맨 끝에 쓰고 있다. 정답과 다른 답이 많이 나오는 것은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의 작용 때문이다. 툭하고 내놓은 말과 행동은 사실 그 사람의 무의식의 표출이기 때문이다. 이 퀴즈는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면서 지금까지도 인터넷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가 하면, 티셔츠 등 일상용품에도 실리고 있다. 사진은 한 화장실의 문.

K11

K11

현대 자본은 젊은 수재를 좋아한다. 패기 넘치는 젊은이가 똑똑하고 재능까지 있으면 어딘가 쓸모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30대의 한 젊은이가 2008년 홍콩에 K11이라는 쇼핑몰 브랜드를 만들었다. 애드리안 챙이 예술과 쇼핑을 결합한 ‘아트 몰’을 지향하며 문을 연지 8년. 백화점과 쇼핑몰이 경쟁하는 가운데 선택한 차별화 전략으로 성공한 그는 2011년에 ‘K11 예술 재단’을 만들어 중국현대미술을 후원하고 있다. 대대로 사업으로 부를 축적한 집안의 후손답게 문화와 예술에 쓰는 돈의 규모도 남다르다. 그래서인지 2014년에는 현대미술계의 힘 있는 인물 100인에 포함되기도 했다. 사진은 홍콩의 K11의 플라자.

3개의 시간

3개의 시간

3개의 시계가 3곳의 시간을 말해준다. 홍콩, 바젤, 마이애미의 시간이다. 이 3곳의 공통점은 ‘아트페어가 열리는 도시’이다. 1970년 스위스 바젤에서 시작된 아트페어는 2002년부터 미국 마이애미 비치에서, 그리고 2013년부터 홍콩에서도 열리고 있다. 여는 아트 페어보다 아트 바젤이 성공한 이유는 바로 ‘수질 관리’이다. 홍콩은 3월에, 바젤에서는 6월에, 마이애미에서는 12월에 열리는데, 1년 중 쉴 새 없이 여는 미술장터는 이제 믿을 만한 투자처를 찾아 돌아다니는 자본을 흡수하는 글로벌 비즈니스가 되었다. 부동산, 주식처럼 미술에 투자하려는 부자들이라면 이 3개의 아트페어 중 한 곳에는 꼭 들리고 있다.

홍콩 아트 바젤

홍콩 아트 바젤

중국 근대사의 아픈 기억을 간직한 홍콩. 그러나 자유무역항이자 무관세 정책으로 지금은 세계의 자본이 몰리는 곳 중 한곳이 되었다. 지난 20년간 가장 큰 홍콩의 변화는 세계미술시장으로의 도약이다.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진출하면서 중국과 아시아의 미술을 거래하고, 홍콩 아트 바젤, 아트 센트럴 등의 아트페어가 성장하면서 홍콩을 빼고 미술시장을 논할 수 없을 정도이다. 특히 홍콩 아트페어에 스위스의 아트 바젤이 개입하면서 시장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지난 주말 열린 홍콩 아트 바젤의 전시장 모습.

이중섭 거리, 서귀포

이중섭 거리, 서귀포

이중섭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되었다. 평양인근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유학하고, 평양, 원산, 부산, 통영 등 여러 곳을 전전하다 사망한 불운의 예술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6.25 피난시절 일본인 부인과 두 아들을 데리고 떠돌아다니던 도시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중섭의 족적을 기리고 있다. 제주는 이중섭을 기리며 문화예술 활성화에 성공한 곳이다. 이중섭미술관, 이중섭 거리를 만들고 제주의 대표적인 예술의 거리로 성장시켰다. 특히 이 미술관이 운영하는 창작스튜디오는 무료로 1년 동안 서귀포에서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어느 새 국내 예술가들 사이에 인기 있는 곳이 되었다.

입춘 맞이 축제

입춘 맞이 축제

사람의 삶이 자연에 의해 좌지우지되던 시절, 계절의 변화는 중요한 일이었다. 음역 1월 대한과 우수 사이에 입춘을 두고 봄의 시작을 기념하곤 했다. ‘입춘대길’이라고 쓴 입춘방을 기둥이나 문에 써 붙이고 봄이 도래를 기뻐했다. 특이하게 제주도에서는 입춘에 ‘입춘굿’을 한다. 아마도 척박한 화산섬이라 무당 문화가 성행했던 전통에서 나오지 않았나 싶다. 입춘굿이 열리면, 축하행렬이 시내 곳곳을 누비고, 행정기관이었던 관정정 앞마당에서 극과 음악을 즐기곤 했다. 사진은 올해 입춘굿의 장면.

명품취향

명품취향

이탈리아 명품이 한국의 일상에 들어온 지도 한참 되었다. 지하철에서도 명품 가방을 든 여성들이 흔히 보일 정도이다. 그중에서도 한 브랜드의 가방은 유독 한국과 일본의 여성들이 좋아했고, 지금은 중국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자주 눈에 띄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특정 패턴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패턴은 곧 유사품을 낳는다. 한 버스의 의자커버도 바로 그 명품 브랜드의 패턴을 따르고 있다. 공공버스의 의자커버에 등장한 패턴은 진짜인지 가짜인지의 여부를 떠나서, 명품의 힘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리얼리즘의 귀환

리얼리즘의 귀환

그림을 그릴 때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그리는 그림을 구상이라고 한다. 그런 구상회화 중에서도 사회의 현실을 드러내는 구상미술을 리얼리즘 회화라고 부른다. 예컨대, 낡은 농부의 신발을 통해서 고단한 노동을 드러낸다거나, 고개 숙인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침묵 속에서 인내하는 보통 시민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과 함께 리얼리즘이 한국화단을 강타한 적이 있다. 이름하여 민중미술. 그런데 요즘 그런 리얼리즘 미술이 다시 화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인사동에서 열린 한 전시에 굵직한 작가들이 모여서 현실문제를 화두로 삼은 예술을 선보이고 있다.

테이크아웃드로잉, 이태원

테이크아웃드로잉, 이태원

한 예술가 공동체가 <테이크아웃 드로잉>을 만든 지 10여년이 되었다. 대학로, 성북동, 이태원 등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카페를 겸한 문화공간을 운영해 왔다. 운 좋게 얻은 이태원 가게는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성공은 곧 임대료 인상과 주인의 매도로 이어졌다. 유명가수가 이 건물을 산 후 퇴거하라고 하자, 이들은 더 이상 ‘젠트리피케이션’의 희생이 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투쟁을 시작했다. 혹여 철거명령을 이행할까봐 예술가들은 밤에도 카페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자신들의 투쟁에 ‘대망명’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절박함을 호소하고 있다.

길기원, 예술가의 게임

길기원, 예술가의 게임

한 예술가가 길을 가다가 바둑을 두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흔한 의자에 대충 만든 테이블로 된 임시 ‘기원’이었다. 이 기원을 만든 사람들은 심지어 누가 의자나 테이블을 가져갈까봐 ‘길기원’이라고 크게 써놓았다. 예술가가 바둑을 두는 사람들에게 새로 의자와 테이블을 사다 줄테니 지금 있는 것들을 가져가고 싶다고 말하자, 의아해하면서도 허락을 했다. 예술가는 그 물건들을 전시장에 가져다가 자신만의 게임을 만들고 그 게임장 소품으로 활용했다. 유목연 작가의 <예술가의 게임>은 그렇게 길에서 발견된 물건들을 통해 예술로 탄생했다.

거로마을 문화공간 양

거로마을 문화공간 양

제주시 화북동은 일찍이 포구를 통해 신문물이 들어오는 곳이었다. 그래서 화북의 거로마을은 유학을 숭배하는 문화가 퍼지고, 예의바른 동네였다. 그러나 일제시대 일본군은 마을 한 가운데로 큰 도로를 빼면서 조용한 마을을 두 동네로 갈라버렸다. 도시화가 진행된 오늘날 거로마을은 한적한 시골 모습 그대로이다. 그런 동네에 할머니가 남겨주신 집을 문화공간으로 만들어 주민들과 호흡하는 이가 있다. 김범진 관장은 김연주 큐레이터와 작가를 초대하는 레지던시, 전시공간, 교육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며 오래된 마을에 온기를 지피고 있다.

윤석남의 사모곡

윤석남의 사모곡

나이 40을 넘겨서 예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윤석남. 가정주부로 산 삶을 뒤로 하고 그림을 배우고 전업작가로 나섰고, 1990년대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작가가 되었다. 70을 넘긴 지금까지도 윤석남의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 주제는 바로 ‘어머니’.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산 어머니를 그리며 수십 년간 작업의 화두로 삼아왔다. 그러나 아직도 다 못한 어머니 이야기는 한지, 구슬, 나무 등 흔한 재료로 만든 설치작업으로 탄생했다. 사진은 최근작 <화이트 룸-어머니의 뜰 IV>이다.

제주의 봄

제주의 봄

섬이 펼쳐진 서귀포 앞바다를 보고 매료되는 사람이 많다. 그중에는 조각가 박충흠도 있다. 볕이 잘 드는 산자락에 <제주 봄>을 만들어 살고 있다. 성공한 예술가로 살다가 온 서귀포에 카페, 작업실, 갤러리, 게스트하우스를 짓고 손님을 맞고 있다. 갤러리는 요청한 손님에 한해 문을 열어 주는데, 예술가가 만든 공간이어서인지 설치작품과 어두운 조명, 고즈넉한 분위기는 시선을 사로잡는다. 먹고, 자고, 보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갖추고 예술가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은 갤러리로 들어가는 입구.

추사유배지, 제주

추사유배지, 제주

조선시대 제주는 권력에서 소외된 이들이 오는 유배지였다. 그들 중 일부는 제주에서 통한의 나날을 보내기도 했지만, 자신을 연마하며 빼어난 결과를 얻은 이도 있다. 학자이자 서예로 중국에까지 명성을 날렸던 추사 김정희는 1840-1849년까지 제주도 서남쪽 대정현에서 9년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때 그린 <세한도>는 삭풍이 부는 움막에서 고고히 자신의 철학을 지키는 선비의 기개를 보여준다. 2010년 대정에는 건축가 승효상이 추사의 <세한도>를 해석해서 설계한 추사관이 들어서 그의 삶을 반추하게 해준다. 사진은 기념관의 내부.

서귀포 관광극장

서귀포 관광극장

1963년 개관한 서귀포 관광극장은 오랫동안 서귀포의 명물이었다. 종종 누전사고가 생기면서 문을 닫은 후 방치되어 있었다. 2015년 노천극장으로 다시 태어난 이곳은 하루에도 수백 명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서귀포시가 원 소유주에게 건물을 빌려서 리모델링한 후 지역주민협의회에 운영을 맡겼다. 이중섭 거리라는 위치도 그렇고, 오래된 건물을 재생했다는 기쁨이 배가되면서 밴드 공연, 체험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역시 도시 재생과 활성화에는 문화예술만한 것이 없다.

서점의 진화

서점의 진화

책을 파는 책방, 서점은 책의 진화와 맥을 같이 한다. 15세기 금속활자가 발명되고 이후 이를 활용한 인쇄기가 보편화되면서 17세기 이후 책이 대량 생산되기 시작했다. 당시 가장 인기있던 책은? 당연히 성경이었다. 이후 중산층이 늘어나면서 그 수요를 따라가기 위해 기업화되고, 특화되면서 서점이 나오기 시작했다. 인터넷이 발달한 오늘날, 서점은 예전만 못한 것 같다. 그래도 밝은 매장에 전시장, 독서할 수 있는 책상, 소파 등을 구비해서 책읽는 즐거움을 잊지 않게 해준다. 서귀포에 들어선 한 서점의 모습.

서촌의 변화

서촌의 변화

2000년대 들어 변모한 서울의 동네 중에서도 서촌은 독보적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허름한 동네였던 이곳은 지금 아기자기한 건물이 새로이 들어서면서 제트리피케이션이 제공하는 모든 변화를 보여준다. 서촌에서도 경복궁이 가까운 동네에 새로이 갤러리와 식당이 들어선 건물이 세워졌다. 보고 먹는 여가생활에 적절한 시설들이다. 토요일 짬이 날 때, 지하의 갤러리에서 전시를 보고, 1층의 일본식 가정식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사람도 곧잘 보인다. ‘개미둥지’ 식당을 홍보하듯, 개미들이 건물을 뒤덮고 있다. 예술적 사고로 건물을 보는 주인의 여유가 돋보인다.

미드웨스트의 평원

미드웨스트의 평원

미국 영토에서도 북부 중앙부분을 미드웨스트라고 부른다. 일리노이주를 비롯한 약 12개주에 걸쳐 펼쳐진 ‘미드웨스트’는 19세기부터 전형적인 미국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의미로 사용된 용어이기도 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많고, 농업에서 중공업으로 변화한 산업구도를 그대로 보여기 때문이다. 옥수수, 밀, 콩 등 곡물농사로도 유명한 미드웨스트를 차로 지나다보면 끝없이 펼쳐진 밭이 인상적이다. 신대륙의 비옥한 토양위에 자라는 곡물은 미국의 아침식사를 책임진다고도 알려져 있다.

김삿갓 마케팅

김삿갓 마케팅

조선시대 양반가에 태어났으나 조부의 행동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평생 삿갓으로 얼굴을 가리고 살았던 김병연. 지팡이에 의존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살았던 방랑시인의 이미지로 잘 알려져 있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쫓지 않고 마음이 닿는 대로 자유인의 삶을 산 그는 양심과 고아한 지성을 가진 신비로운 인물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서울의 한 재래시장에 김삿갓이 등장해 상품을 홍보한다. 모든 것이 소비의 망을 벗어날 수 없는 오늘날 김삿갓의 이미지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청파동 상가

청파동 상가

6.25를 겪고 새로 태어난 서울은 현대적인 건물이 즐비하다. 높은 고층건물이 많기는 하지만 그 사이로 낮으면서도 규모가 작은 오래된 건물도 많다. 청파동은 특히 그런 건물이 많이 보이는 곳 중 하나이다. 서울역 인근에 있어서인지 교통과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았고, 사람이 많아서 상가도 발달했다. 일제 시대 부터 소규모 상가건물이 많았고, 지금도 앙증맞은 가게가 즐비한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마치 인공적으로 조성한 테마파크의 거리를 걷는 듯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는 곳이다.

제주도의 돌집

제주도의 돌집

제주도에 이주 열풍이 불고 있다. 작년에는 한 달 평균 1650명이 제주도로 이주했다고 한다. 늘어나는 인구에 비례해서 새 집을 짓고, 헌 집을 고치고 있다. 사진은 이주민이 새롭게 바꾼 돌집. 원래 초가지붕에 돌과 흙을 섞어서 만들었던 집이 1970년대 슬레이트 지붕으로 개조되었다가 2000년대 들어 사진처럼 현대적인 집으로 바뀌고 있다. 파, 마늘이 들어섰던 텃밭은 잔디밭으로 바뀌고 예쁜 파라솔과 의자도 들어섰다. 이렇게 고친 집은 직접 거주하기도 하고 독채 펜션으로 임대해서 수익을 올리고 있다.

1월의 수선화

1월의 수선화

자기 사랑과 고결함을 상징하는 수선화는 지중해에서부터 한국에 이르기까지 여러 곳에서 자란다. 언제부터인지 한국에서는 제주도와 거문도에 자생하기 시작했는데, 해마다 1월이 오면 향긋한 내음을 풍기며 수선화가 만개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제주도에 수선화 향기가 퍼지고 있다. 카페 주인은 수선화 한 다발을 사다가 유리병에 담아 차가운 바람을 피해 온 손님을 반긴다.

피카소의 누드

피카소의 누드

1929년경 피카소는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입체파 시기와 달리 형상은 원래의 인체 모습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도 비현실적으로 그리고 있었다. 또한 당시 부인 올가와 관계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내성적인 부인과 달리 쾌활하면서 다혈질이었던 피카소는 여성에 대한 관심이 빨리 바뀌는 편이었다. 그래도 그는 자신이 좋아했던 여인들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무너지는 결혼을 암시하듯, <안락의자의 누드> 속에 보이는 올가는 원래의 아름다운 모습과 달리 말라서 늘어진 시체처럼 표현되어 있다. 사진 속의 오른쪽 그림이다.

소파와 냉장고

소파와 냉장고

프랑스 작가 베르트랑 라비에는 일상적 관습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는 이것을 ‘증명’이라고 부르는데, 사진에 보는 것처럼 입술모양의 소파를 냉장고 위에 놓고 그 맥락을 생각하게 만든다. 사실 섹시할 정도로 빨간 입술모양의 소파는 원래 살바도르 달리가 1937년 여배우 매이 웨스트의 입술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든 소파이다. 그리고 냉장고는 유명회사 보쉬가 제작한 것인데, 라비에는 흔한 냉장고 위에 소파를 놓고 질문을 던진다. 이 둘은 어떤 관계일까?

오베르의 교회

오베르의 교회

천재 화가 반 고흐가 말년을 보낸 마을이 바로 오베르 쉬르 오아조이다. 파리에서 약 40분 거리에 있는 이 마을에 가세박사가 살고 있었고 그 박사의 치료를 받기 위해서 왔던 것이다. 1890년경 이 마을에 잠시 머무는 동안 반 고흐는 마을 곳곳을 화폭에 담곤 했다. 마을 한 가운데에는 13세기에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가 있다. 데 그는 이 교회를 배회하면서 화폭에 담곤 했는데, 구불구불한 선으로 형상을 그리는 성숙한 그의 화법을 구사했다. 현재 그의 그림은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고, 교회는 여전히 오베르 마을에 서있는데, 반 고흐의 이야기는 이 마을을 살리는 스토리텔링이 되었다.

제주도의 일출

제주도의 일출

새해가 뜹니다. 구름을 제치고, 산등성이를 지나, 해가 뜹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해가 뜹니다. 변화무쌍한 세상을 딛고 자연은 계속 우리를 찾아옵니다. 그 변함없는 모습을 모든 사람이 닮아가길 빕니다.

제주 벨롱장

제주 벨롱장

제주시 동쪽 바닷가 세화리에는 한 달에 2번 노천 장터가 열린다. 해변을 따라 공예품, 먹거리가 판매되는데 제주로 이주한 이주민과 토착민, 여행자가 어우러져 정감어린 시간을 보낸다. 멀리서 불빛이 반짝인다는 의미의 제주어 ‘벨롱’을 따서 만든 명칭이다. 아쉽게도 겨울이 되면 잠시 장을 닫게 되는데, 올해는 따뜻한 벙커에서 12월 장을 이어가고 있다. 커피 박물관 바움이 보유한 벙커에서 열리는 벨롱장, 따스한 바닷바람은 없지만, 따뜻한 사람 입김으로 채워진다.

벙커의 변신

벙커의 변신

1990년 한국통신이 만든 벙커가 제주에 있었다. 해저 광케이블을 관리하던 국가기반시설로 오랫동안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던 곳이다. 지하에 만들어서인지 내부는 16도 정도로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데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제주도 동쪽에 있는 이곳을 인수한 한 커피 박물관이 벙커를 문화인들에게 오픈했다. 900평에 달하는 공간을 노래하고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문을 열어 닫혀있던 곳에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코릿 푸드 페스티발

코릿 푸드 페스티발

한국과 미식이 만나면, Korea+Eat가 만들어지고, 그렇게 한국대표 레스토랑 랭킹 코릿(KOREAT)이 탄생했다. 미식전문가 100명이 맛을 따지고 고른 레스토랑들이 선정된다. ‘코릿 페스티벌’은 그 식당의 셰프들이 푸드 트럭에서 음식을 파는 축제로, 2015년 가을 제주에서 열렸다. 모든 음식이 1개에 5000원인데, 한 끼 식사로 배를 채우려면 3개를 구매해야 할 정도이다. 피자에서 스시, 타파스까지 싼 편이 아닌데도 고급스런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소문에 줄이 꼬리를 물고 늘어났다. 여행과 요리를 접목한 새로운 축제로 성공할 것 같다.

북한음식

북한음식

평양비빔밥, 해주비빔밥, 개성장국밥. 익숙하지 않은 요리이다. 종로의 한 식당 광고에 나온 음식들로 분단의 시대에 경험할 기회가 없던 것들이라서 그런지 눈이 간다. 맛을 어떨까? 어떤 재료가 들어갈까? 언제 통일이 올지 모르고, 이산가족은 상봉할 기회도 많지 않은 한반도에서 남과 북은 긴장과 공포, 그리고 아픔과, 그리움, 아쉬움을 안고 산다. 이보다 인간적일 수 없을 정도로 쓰라린 현실이다. 그 현실 속에서 음식으로라도 먼 곳의 삶을 상상할 수 있다는 건 다행이다.

혼성문화

혼성문화

혼성문화 서울의 문화를 보려면 명동의 간판을 보면 된다. 서울의 쇼핑가인데도 한국어보다 중국어와 영어간판이 대다수이다. 소비자를 위해 변하는 가게들. 큰 간판들은 누가 제일 큰 고객인지 말해준다. 변하는 명동의 가게를 통해 단지 중국인과 외국인 소비자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취향과 패션, 음식문화도 점점 뿌리를 내리고 한국의 음식뿐만 아니라 외국음식끼리 혼합되기도 한다. 그래서 명동은 가장 빠른 속도로 문화가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자, 글로벌 시대의 소비문화의 향방을 예측할 있는 곳이다.

예술가의 위로

예술가의 위로

현대예술이 어렵다고 외면하는 사람을 위해 예술가들이 나섰다. 차를 만들어 대접하고, 요리도 해주고, 음악도 들려준다. 1990년대부터 관객의 행복과 즐거움을 꾀하고 행복한 관객들이 서로 담소를 나누게 만드는 예술이 등장했다. 인간 사이의 관계회복을 모색하는 ‘관계미학’을 추구하는 이런 예술은 그동안 실패한 적이 거의 없다. 다만 예술가에게 돌아오는 것이 거의 없어서 미안할 정도이다. 한 예술가가 피로에 지친 사람에게 마사지를 제공하고 있다. 왼쪽에 앉은 작가가 마사지에 앞서서 관객에게 줄 타월(예술가가 지방 여관이나 모텔에 갈 때마다 가지고 온 것이다.)에 사인을 하고 있다.

소설 베끼기

소설 베끼기

미술관 작은 방에 책상과 의자, 그리고 필기도구가 있다. 미리 온라인으로 신청한 사람이 한 명씩 그 방에 들어가 책상위에 있는 책을 그대로 공책에 베낀다. 그 책들은 카프카의 <성>, 이상의 <날개> 등 예전에 한번 읽어봤을 법한 것들이다. 작가 안규철은 책이 소중했던 옛날, 병원에서 퇴근한 아버지가 의학서적을 정갈하게 베끼며 공부하던 모습을 떠올려 이 작업을 구상했다. 관람객은 집중하며 소설을 베끼고, 멀리서 다른 관객은 그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무엇인가를 쓰는 사람은 멋있게 보일 뿐만 아니라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자극을 준다.

어린이재단 기금모금

어린이재단 기금모금

약자를 돕는 문화가 뿌리내리고 있다. 미국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와 어린이 구호사업에 봉사한지 수십 년이 지났다. 그 사업를 이어가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매년 기금을 모아 국내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이 어린이를 돕고 있다. 녹색리본을 달고 걷기대회를 하기도 하고, 사진전을 여는가 하면, 청계천에 초록우산을 매달아 후원자의 고운 마음을 알리고 있다. 올 가을에도 청계천에 걸린 초록 우산들이 걸렸다. 우산 손잡이에는 후원자의 이름을 알리는 명찰이 붙여, ‘당신도 동참하시겠습니까?’라고 말을 건다.

늙은 예술가의 내공

늙은 예술가의 내공

‘다시 만나는 세운상가’ 프로젝트는 만드는 워크숍, 판매대, 전시, 퍼포먼스 등으로 진행되었다. 늙은 건물의 수명을 아쉬워하듯, 늙은 예술가가 등장해 퍼포먼스를 벌인다. 그의 이름은 성능경. 1970년대 등장해서 전위적인 퍼포먼스로 한국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건물도 유한하고, 사람도 유한하고, 모든 것이 왔다가 사라진다. 그런 불변의 진리 앞에서 그는 굴하지 않고 흰머리와 굽은 등을 안고 팔을 뻗고 소리를 지른다. 마치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삶을 사랑하겠다는 것처럼.

세운상가의 변화

세운상가의 변화

1960년대 말 종로에 최신 유행을 앞세우고 들어선 세운상가. 발전하는 한국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면서 서울 최고의 전자상가로 성장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빈 가게와 음침한 분위기로 오래된 서울의 얼굴이자 빨리 정리하고픈 애물단지가 되었다. 도심재생을 외치며 세운상가를 개발하겠다던 계획도 철거 후 개발을 외치다가 지금은 보존형 개발로 방향을 틀었다. 그런 세운상가에 서울문화재단이 후원하는 ‘다시 만나는 세운상가’ 프로젝트가 2주간 열렸다. 상인들은 사람이 많이 오길 바라고, 예술가들은 낡은 환경에서 작업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동상이몽이 따로 없다.

제주산지천

제주산지천

중국인 관광객과 투자자, 그리고 귀농귀촌 이주민 열풍으로 제주도의 부동산이 난리다. 혹자는 이런 분위기를 ‘단군이래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설명한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게 되면서 집값은 오르고 집을 지으려면 물류이동이 풍족하지 않아서 1년을 기다려야 한다. 더구나 최근 제2공항 계획으로 이런 분위기는 더 부풀어 오르고 있다. 구도심 재개발도 한창이다. 제주시 중앙에 흐르는 산지천 주변으로 문화광장이 들어서는데 한참 부수고 고르고 다듬고 있다. 이 모든 사업이 끝난 2025년이면 제주는 어떤 모습일까?

웨딩드레스

웨딩드레스

신부라면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는다. 왜 흰색일까?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결혼식에서 흰색드레스를 입은 후부터이다. 영국 귀족 결혼식에 흰색드레스 열풍이 불었고 이후 대중적인 결혼문화의 일부로 자리잡았다. 순백색을 만들기가 어려웠던 시대에 하얀 드레스는 부의 상징이자, 백합과 같은 순수함과 정결함의 상징이 되었다. 서양문화를 수입한 한국에서도 흰색 웨딩드레스는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빠르게 자리 잡았다. 인생의 중요한 날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여성을 위해 디자이너가 만든 고가의 드레스가 인기를 얻고 있다. 웨딩숍 윈도우에 걸린 드레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양은희입니다. 300회를 맞아 인사드립니다. 그동안 저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이 기회에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영문학, 미학, 미술사, 박물관학을 공부하고 현재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진은 그동안 제가 쓴 책과 번역한 책들입니다. 궁금한 것이 많아 이것저것 읽고 돌아다니며 살고 있습니다. 미디어 덕분에 글보다 이미지가 더 힘을 가지는 시대에 색다른 글쓰기를 하고 싶어서 시작한 것이 <양은희의 시각문화 이야기>인데 벌써 300회를 맞아 저도 감회가 남다릅니다. 앞으로도 이러저런 이미지와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해변의 의자

해변의 의자

바닷가 바람을 맞으며 의자나 벤치에 앉아 풍경을 즐기는 여유는 귀한 경험이 되었다. 시간을 내어 바다와 바람이 좋은 곳으로 가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휴가 또는 휴양이라고 불리는 이 시간의 질을 높이면 입소문이 나고 상품가치가 만들어진다. 제주도 월정리 해변의 의자. 작은 카페에 나무의자가 놓이자 그 의자는 아름다운 바다에서 누리는 시간의 대명사가 되고, 해변을 찾는 이마다 사진을 찍는다. 그러자 하나둘씩 의자가 늘어나고 의자를 놓은 카페의 홍보도 치열하다.

아시아문화전당, 광주

아시아문화전당, 광주

역대 대통령들은 광주에 관심이 많았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도시 광주가 문화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덕분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광주비엔날레를 선사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선물했다. 민주화항쟁의 장소이자 광주 구도심의 상징인 전라남도 도청이 있던 자리와 인근지역을 합쳐서 아시아문화전당으로 만들기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4-6층짜리 건물이 즐비한 동네를 배려해서 전당건물은 높이보다 깊이를 고려해서 땅 속으로 파고 들어가 건물을 지었다. 극장, 전시관, 정보원 등 여러 기관과 건물이 들어서는데 오는 25일 정식 개관한다.

캔디

캔디

달콤한데다 색깔까지 예쁜 캔디는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먹거리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꿀과 과일, 견과류를 섞어서 만들기 시작했다는 캔디는 꿀 대신에 설탕이 들어가면서 보다 보편화된다. 다른 음식과 마찬가지로 캔디도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대량생산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초콜렛을 사용한 캔디, 미국에서 유명한 롤리 팝 등, 모양과 색, 맛을 달리하면서 캔디는 중요한 상품으로 떠올랐고, 아이들과 키덜트를 유혹하는 먹거리로 자리를 잡았다.

제주 월정리 카페촌

제주 월정리 카페촌

2010년경 제주 동쪽 해변가 마을 월정리에 카페가 하나 생겼다. 조용한 해변과 에메랄드 바다 빛에 반한 젊은 여자들이 만든 <아일랜드 조르바>는 올레길 순례자를 통해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카페에서 찍은 사진과 카페 앞 의자에서 바라보는 바다가 블로그를 통해 알려지면서 ‘가고 싶은 카페’가 되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주인들은 의견이 맞지 않아 일부가 떠나면서 <아일랜드 조르바>를 가지고 갔고, 일부는 남아 새로이 이름 <고래가 될>을 만들었다. 그리고 허름한 카페 하나 덕분에 월정리는 새로운 카페와 게스트하우스가 즐비한 새로운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다. 부동산 값은 뛰고 뛰어 현재 평당 500만원-1000만원을 웃돈다고 한다.

인재를 아끼는 법

인재를 아끼는 법

서울처럼 대도시에서 자란 사람은 잘 모른다. 시골 마을은 단순히 여러 세대가 모여 사는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시골에서는 농사일도 나눠서 하고, 아이도 같이 돌보며, 잔치도 같이 차린다. 마을에 똑똑한 인재가 나면 존경을 표하고 마치 가족의 일인냥 자랑스러워한다. 물론 질투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그 질투를 공동체를 위해 꾹 누른다. 예전에 시골 마을이었던 곳에 현수막이 내걸렸다. 박사학위 취득 축하 현수막. 매년 1만 3천명 정도의 박사가 나오는 나라에서 박사학위 취득은 큰일도 아닌데, 축하하는 마음이 앞섰나 보다.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고 도시로 변했지만 동네 사람 마음은 여전히 예전 시골공동체의 순수함을 버리지 않고 있다.

도시의 비둘기

도시의 비둘기

오래전 인간과 인연을 맺은 이후 비둘기는 개, 돼지, 소처럼 중요한 동물이 되었다.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를 잡았고, 일부 문화권에서는 요리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비둘기는 한때 인간이 할 수 없는 우편배달 업무를 수행하면서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다. 로이터 통신의 창시자인 폴 로이터가 수십 마리의 비둘기를 이용해 뉴스를 전달하던 때도 있었다. 비둘기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례는 전쟁터를 누비며 중요한 메세지를 제때에 전달하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1차와 2차 세계대전에서 공을 세운 비둘기 수십 마리가 훈장을 받았다고 한다. 인간과 너무 가까워져서일까. 비둘기가 마치 집이 필요한 것처럼 부동산 가게 앞을 맴돈다.

날개의 유행

날개의 유행

우리나라에 공공미술이 유행한 지 한참 되었다. 허름한 동네 빈 벽에 벽화를 그리는 것에서 시작하여 길거리에서 벌이는 퍼포먼스까지 다양한 종류의 작업이 공공미술이라는 명칭으로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벽화는 마을을 깔끔하게 만들고, 주위의 시선을 끈다는 이유로 종종 선호되는 방식이다. 그러나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로 동네가 붐비게 되면 주민들은 불편을 호소하기도 한다. 탤런트 이승기가 종로구 이화마을의 날개 벽화를 배경으로 TV프로그램을 찍은 적이 있다. 그러나 밀려드는 사람으로 인해 결국 지워졌고, 이후 이를 아쉬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왕십리, 부산 등 여러 지역에 날개 벽화가 그려지면서 하나의 유행을 만들었다. 사진은 제주의 한 마을에까지 나타난 날개.

레몬

레몬

서양요리에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시큼한 레몬. 생선요리, 음료 등 쓰임새도 다양하다. 레몬은 나뭇잎부터 껍질, 그리고 속살까지 버리는 것 없이 다 사용되는 식자재이다. 잎은 차로, 껍질은 소스에, 속살은 시큼한 맛을 가미할 때 사용된다. 노란색 열매가 주는 맛의 세계가 놀라울 따름이다. 그뿐만 아니다. 레몬은 피클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재료의 일부는 세제로도 사용된다. 그런 레몬은 원래 아시아 태생이다. 인도, 중국 지역에서 자라던 레몬이 유럽에 들어간 것은 로마시대로 이후 아랍권과 지중해권을 중심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현재 세계3대 레몬 생산국은 중국, 인도, 그리고 멕시코이다.

거울의 마법

거울의 마법

옥수수가 널린 방 중앙 벽에 거울이 있다. 그 거울에 옥수수뿐만 아니라 오래된 찬장이 비쳐진다. 이 모든 것을 바라보는 사람 역시 찬장 정 가운데에 상반신이 비치면서 장면을 완성한다. 거울로 된 방은 수수께끼같은 호기심을 일으키는 장치로 유럽의 왕실뿐만 아니라 보통사람들이 노는 놀이공원 등에 활용되어 왔다. 예술가가 신기한 거울 방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야요이 쿠사마부터 여러 예술가가 거울의 반사작용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하는 설치작업을 한 바 있다. 사진속의 작품은 마르지아 밀리오라(Marzia Migliora)의 <정물화>(2015)이다.

유럽 건물의 리모델링

유럽 건물의 리모델링

오래된 건물로 가득 찬 유럽의 도시들은 고민이 많다. 과거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건물을 부수고 새로운 도시를 개발하려니 도시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그대로 두려니, 좁고 낡은 건물을 수리하는 비용과 시간에 비해 얻는 결과가 효율적이지 못하다. 유럽의 건축가들은 현대적 기술로 낡은 건물의 외양을 살리면서도 넓은 공간을 확보하여 주거, 사무, 문화 등 여러 용도에 맞는 건물을 짓는 기법을 개발하고 있다. 사진속의 건물은 오래된 건물의 외벽 한 면만 살리고, 나머지는 현대식으로 지은 것이다. 과거와 현대의 절묘한 절충이다.

바벨탑

바벨탑

구약성경 창세기에 바벨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의 언어를 구사하는 민족이 높은 탑과 도시를 만들어 정착하고자 했으나, 이에 노한 신이 내려와 그 민족의 언어를 여러 개로 만들어 서로 의사소통하지 못하게 하고, 뿔뿔이 흩어져 살도록 만들었다는 이야기이다. 학자들은 바빌론 제국의 뛰어난 건축과 문명에 희생된 히브루 민족의 관점에서 비롯된 이야기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어쨌거나 이후 이 이야기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언어에 대한 설명이 되었고, 바벨탑은 인간의 거만함을 상징하게 되는데, 화가들은 겸손을 강조하기 위해 그림으로 묘사하곤 했다. 사진속의 그림은 16세기 안트워프 지역에서 풍경화로 유명했던 유스 드 몸페어(Joos de Momper)의 바벨탑.

파스타

파스타

오래전 실크로드 상인들도 먹었다는 누들이 발전하여 파스타가 되었다. 오늘날의 파스타는 1100년경 이탈리아에서 나왔다고 한다. 모양과 색깔이 다양한 파스타는 현대 이탈리아 요리에 빼놓을 수 없는 음식재료가 되었고, 글로벌 시대에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요리된 파스타가 한국을 강타하고 있다. 특히 마른 파스타면은 저장과 보관이 쉬워서 대부분의 가정에서 한두 봉지씩 가지고 있을 정도이다. 17세기 등장한 파스타 제조기가 이탈리아의 가정을 넘어 공장의 대량생산체제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파스타의 종주국 이탈리아는 연간 3백만톤이 넘는 파스타를 생산하며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마이욜의 조각

마이욜의 조각

20세기 초 파리에 고전주의를 표방하는 한 조각가가 있었다. 판화, 회화 등 여러 장르를 전전하던 그는 40대에야 조각으로 전향했다. 그리고 아름다운 여성의 몸을 통해 미를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오래전 그가 다녔던 미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에서 배운 것이기도 했지만, 1908년 그리스 여행을 다녀오면서 확신을 얻게 된다. 그의 이름은 아리스티드 마이욜(Aristide Maillol). 로댕의 표현적인 조각에 비해 보수적인 마이욜의 조각은 파리인의 마음을 금방 사로잡았다. 파리를 비롯한 유럽 전역에 그의 여성누드 조각이 있다. 사진은 파리의 튈레리 공원에 있는 그의 <세잔느 기념비>(1925)이다. 벗은 여성의 누드는 불멸의 예술혼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저명한 인상파 화가 세잔느를 기리고 있다.

아르 누보 가구

아르 누보 가구

19세기 말 20세기 초, 자연의 모티프에서 영감을 얻은 스타일이 디자인과 공예계를 강타했다. 이름 하여 아르 누보(Art Nouveau). 건축, 공예, 직물 패턴 분야에 빠르게 전파된 이 양식은 곡선미를 강조하고, 장식을 가미하여 한 때 유럽 신흥 부자가 꿈꾸는 집의 스타일이기도 했다 이후 간결함과 직선미를 선호하는 모더니즘 양식에 자리를 내주기는 했지만, 웅장하고 세련된 유럽문화를 보여준 양식으로 기억된다. 사진은 아르 누보 가구 디자인으로 유명했던 루이스 마조렐(Louis Majorelle)의 책상과 가구. 프랑스 낭시에 가면 그가 아르 누보 양식으로 지은 자신의 집 빌라 마조렐(Villa Majorelle)이 있다.

바로크 시대의 정물화

바로크 시대의 정물화

17세기 네덜란드 지역은 상업으로 번창하고 있었다. 돈이 돌아가니 살림이 좋아졌고, 집집마다 그림이 걸리는 건 시간문제였다. 새로운 중산층이 집에 걸고 싶어 한 그림은 풍경화와 정물화. 아름다운 세상을 집안에 들여놓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수요가 있으니 그림쟁이가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이치. 그들은 과일과 꽃, 그릇과 먹거리를 정교하고도 섬세하게 그려냈다. 그리고 각각의 사물에 우정, 사랑 등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사진은 17세기 네덜란드 최고의 정물화 작가로 꼽히는 얀 다비즈 데 헴(Jan Davidsz de Heem)의 정물화.

거리의 악사

거리의 악사

고대부터 길거리 악사는 일종의 자영업으로 각광받아왔다. 축음기가 발명되기 이전 음악은 연주자의 손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귀족은 집안에 악사를 불러 음악을 들었고, 서민은 길거리에서 연주하는 악사들을 통해 음악을 들었다. 음악뿐만 아니라 갖가지 재주를 선보이는 공연까지 길 위의 예술은 보통 사람에게 중요한 문화향유의 기회였다. 오늘날 거리의 악사는 예전과 같은 영광을 누리지 못하지만, 가끔씩 분주한 도시의 삶에 아날로그 감성을 일깨우는 기회를 준다. 사진은 파리 지하철의 악사들.

아르토

아르토

인간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건강한 신체는 필수. 그러나 질병과 사고로 인해 본인이 바라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예술가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때, 자신의 처한 상황을 예술로 풀어내기도 한다. 앙토냉 아르토는 어릴 적 질병 때문에 얻은 장애로 고생하다 사망한 프랑스의 문인이다. 자신이 격은 고통을 언어로 표현하면서 세상을 저주하기도 했다. ‘모든 글은 돼지 똥이다.’ 그가 말년에 했던 말이다. 글로 자신을 표현했던 스스로를 지워버리는 이 말을 낸시 스페로라는 여성 시각예술가가 평면작업으로 옮겼다. 같은 말이면서도 사용자에 따라 자기학대에서 문명비판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빈센트

빈센트

레오나로도 다 세르 피에로 다 빈치, 미켈란젤로 디 로로비코 부오나르티, 라파엘로 산지오 다 우르비노.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들의 이름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을 이렇게 긴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단순히 이름만을 따서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라고 부른다. 그건 마치 김철수 작가를 철수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친근하게 느낄 정도로 유명한 예술가의 이름을 부르는 서양의 방식이다. 우리가 고호라고 부르는 작가의 성명은 빈센트 윌렘 반 고흐이다. 한국에서는 반 고호 또는 고호라고 부르나 정작 그가 살았던 지역에서는 빈센트(Vincent)라고 부른다. 그가 지나던 거리, 그림을 그리던 장소를 표시하기 위해 만든 금속 표지판에 그의 이름이 선명히 보인다.

탈출하라

탈출하라

지난 여름, 파리의 ‘북역(Gare du Nord)’ 입구에 커다란 문구가 떴다. ESCAPE. 탈출하라. 하루에 70만명이 통과하는 역 정면에 붙은 문구는 의아스럽게 보인다. 광고? 이 문구는 다름 아닌 프랑스 작가 SP38이 제작한 예술작품이다. 파리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Quai 36’의 일환으로 설치된 것. 사실 이 문구는 2011년 서울에 먼저 나타났다. 세계를 돌아다니면 벽에 낙서하는 그라피티 작업을 하는 SP38이 서울의 빈 벽에 같은 디자인의 문구를 썼었다. 왠지 복잡한 도시를 탈출하라는 신호처럼 보이는 건 어깨가 무거운 사람들만의 동병상련일까?

공사장 가림막

공사장 가림막

19세기 도시화 이후 시작된 건축 붐은 끝이 없다.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더 아름답고, 더 높은, 더 개성있는 건물을 지으려는 수요는 넘쳐난다. 기능과 실용성, 효율성을 강조하는 건축 현장의 먼지를 막고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설치하는 가림막에 아름다움이 가미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예술가들이 무미건조한 가림막에 그림을 그리다가 아예 공공미술처럼 건축주가 예술가에게 작품을 의뢰하는 경우까지 생겨났다. 21세기 들어 세련된 건축주라면 가림막에 메시지를 담는 것이 예의가 되었다. 오래된 바로크 시대의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브뤼셀의 가림막. 궁금한 사람들에게 가려진 건물의 모습을 보여준다.

와플의 세계

와플의 세계

중세 시대 기독교 신자들 끼리 팬에 구워 나눠 먹던 웨이퍼(wafer)가 진화하면서 골이 깊이 파인 팬으로 만드는 와플로 진화했다. 특히 벨기에 지역에 널리 퍼지면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은 까닭에 지금도 ‘벨기에 와플’은 전통을 상징한다. 18세기 벨기에 주교의 요리사가 개발했다는 리에지(Liège) 와플이 등장한 후 설탕을 입힌 달콤한 맛이 널리 퍼졌고 ‘와플(waffle)'이 영어에 입성하기도 했다. 이후 길거리 음식에서 고급 식당의 디저트, 아침식사용까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사진은 오래된 전통을 자랑하듯 온갖 토핑을 얹어 갖가지 맛을 내는 와플을 팔고 있는 벨기에의 한 와플 가게.

베니스의 빌라

베니스의 빌라

베니스의 구도심은 마치 15세기로 돌아간 듯한 환상을 준다. 수변에 세워진 빌라와 팔라조는 당시 권세를 누리던 집안의 흔적들이다. 수백 년 된 이 건물들의 원래 주인은 역사와 함께 다 사라지고 없으나, 아름다운 건물은 시대가 바뀌면서 새로운 역할을 맡고 있다. 일부는 고급 호텔로 개조되기도 하고, 일부는 연회장, 파티 대여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때로 예술 전시장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사진 속의 두 건물은 그러한 전시장이다. 건물 앞에 붙은 현수막이 그 안에 담긴 예술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자동차가 없던 시절 지은 건물이기 때문에 당연히 주차공간이 없으며, 대신에 베니스의 수상택시인 곤돌라를 타고 오거나 걸어서 와야 한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19세기 말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릴 때 이탈리아 물의 도시 베니스에 ‘베니스 비엔날레’가 탄생했다. 마치 상품 엑스포를 열듯이 각 나라의 예술을 선보이는 ‘예술 엑스포’를 지향했는데,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웬만한 제국이 자국의 전시관을 지어 국력을 자랑하곤 했다. 한국이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관을 지은 것은 그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1995년. 문민정부의 문화정책과 백남준의 조언과 노력으로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유수의 작가들을 선보이고 있다. 올해의 한국 대표는 문경원, 전준호 작가. 배우 임수정이 재능기부로 참여하여 미래의 인류가 사는 법을 보여주었다.

빨래 옷 너는 거리

빨래 옷 너는 거리

햇빛이 쨍쨍한 날, 기쁜 마음으로 빨래한 옷을 널던 시대가 있었다. 세탁한 옷들은 미풍에 날리고 자외선을 담뿍 맞고서 자연 살균되었다. 언젠가부터 사람이 지나다니는 곳에 빨래를 널면 마치 교양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차 매연 탓에 야외에 빨래는 너는 것이 힘들기도 했지만 개인위생을 보여주는 옷을 공공장소에 넌다는 것이 왠지 구질구질하다는 가치관이 퍼지면서 부터이다. 최근에는 전기로 작동하는 옷 드라이어가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지구상 어딘가에는 아직도 햇빛에 옷을 말리는 친환경 문화가 살아있다. 베니스의 한 동네 모습.

나무의 미학

나무의 미학

한 프랑스 예술가가 전시장에 커다란 나무 몇 그루를 뿌리 채 전시하고 있다. 뿌리에 묻은 흙까지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혁명>이라는 제목의 이 설치작업은 나무뿐만 아니라 잔잔히 들리는 음향도 배경에 깔려있다. 하얀 공간에 뿌리 채 판 나무. 왠지 인공적인 문명과 자연의 어색한 만남을 드러내는 것 같다. 18세기 낭만주의 시대 자연을 인간가까이 끌어오려는 시도가 정원으로 이어졌었다. 바로 그런 감수성을 연상케하는 설치작업이다. 자연을 소유하고자 하면서도 자연과 공존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마음이 드러난다. 자연과 인간에게 모두 이상적인 생태란 어떤 것일까?

희생자를 기리는 법

희생자를 기리는 법

브뤼셀의 오래된 동네를 걷다 보면 길 바닥에 사진과 같은 금속 패널이 박혀 있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사진 왼쪽 패널 위에는 ‘Ici habitait Abram Goldstein ne 1893 Arrete 3.8.1943 Detenu Malines Deporte 1943 Auschwitz Assassine’ 라고 새겨져 있다. 대충 번역을 하면 ‘여기에 아브람 골드스타인 (1893 출생)이 살았다. 1943년 8월 3일 체포되어 추방당한 후 아우슈비츠에서 살해되었다.’이다. 이 패널 옆의 것들은 그의 부인과 아들의 죽음을 기리고 있다. 유대인 골드스타인 가족이 살았던 건물 앞 길 바닥에 설치된 추모의 패널. 희생자를 기리는 브뤼셀 시민의 용기와 깊은 역사 의식이 부럽다.

커피와 정복의 역사

커피와 정복의 역사

나침반과 돋보기, 컴퍼스와 망원경, 지도와 여행가방. 유럽 문명이 만든 각종 도구 사이 사이에 돌맹이, 동물의 뼈와 조개껍질, 그리고 원두 커피가 놓여져 있다. 브뤼셀의 한 커피 가게의 쇼 윈도우를 장식한 물건들이다.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커피문화는 아랍 문명을 거쳐 유럽으로 상륙했다. 검은 음료를 마시면 힘이 난다는 소문 때문에 17세기 유럽 전역에 카페가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 커피가 유럽인의 기호품이 되자 덩달아 식민지에 커피 농장이 문을 열었다. 이때부터 저임금 노동에 의존하는 커피 산업의 영광과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글로벌 시대의 커피는 그런 역사를 추억하듯이, 아련한 과거의 향수에 기대어 마케팅을 하기도 한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 교회는 오랫동안 순례자들이 찾는 성지이다. 예루살렘에서 온 성 제임스(St. James)의 유해가 묻혀있다고 알려진 후 중세부터 순례자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교회로 가는 순례길에 올랐는지 모른다. 나침반이 흔하지 않던 시절, 수백 킬로를 가야했기 때문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이정표가 유럽 곳곳에 세워지곤 했다. 사진에 보이는 것은 그 이정표중의 하나이다. 조개모양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는 뜻. 왜 조개모양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상징이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성 제임스가 어부출신이어서 그럴 수도 있고, 스페인에 이 조개가 많이 나오기 때문일 수도 하다. 확실한 것은 중세부터 사용된 상징이라는 것.

변하는 교회

변하는 교회

교회의 권력이 강했을 때 신의 메시지는 절대적으로 신봉해야 하는 원칙이었다. 지구가 직육면체라면 직육면체로 믿어야 했던 시절이다. 따라서 신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이자 신의 대리인이 사는 교회는 엄숙하고, 수직적일 수밖에 없었다. 맨 앞에 제단과 예수의 상이 있고, 그 앞에서 신부가 미사를 주도했다. 신도들은 가지런히 배열된 의자에 앉아 앞만 바라보며 경청했다. 그러나 유럽 북부에 카톨릭을 비판하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등장하자 카톨릭 교회도 변하기 시작했다. 사진 속은 원형으로 의자를 배치한 교회의 내부. 일방적인 설교의 공간이 아니라, 서로 교감하고 소통하는 공간으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이다.

베니스의 시장

베니스의 시장

<투어리스트>(2014)는 요즘 핫한 배우 안젤리나 졸리와 조니 뎁을 주연으로 아름다운 두 도시, 파리와 베니스를 배경으로 촬영한 영화이다. 스파이와 폭력조직, 그리고 영국 경찰이 서로 쫓는 추격전으로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영화이다. 영화중에는 우아한 안젤리나를 사랑하는 조니가 파자마 차림으로 악한에 쫓겨 도망가다가 시장의 천막위로 떨어지는 장면이 있다. 바로 베니스의 메르카토 델라 프루타(Mercato della Frutta), 즉 과일 시장이다. 베니스의 명물인 이 시장은 지금도 맛있는 여름 과일과 채고, 생선을 사려는 베니스 사람들과 관광객으로 넘친다.

병기창의 중국작가

병기창의 중국작가

물의 도시 베니스는 원래 작은 도시국가였다. 해상 무역으로 부를 쌓았고, 그 과정에서 강력한 해군력이 밑받침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니스의 아스날(Arsenale)은 12세기부터 20세기까지 무역선과 군함을 만드는 무기공단이었다. 번잡한 베니스의 중심가에서 잘 보이지 않는 이면에 위치한 이곳에, 일찍이 조립 라인을 구축하고, 은밀하게 새로운 기술로 신함을 만들 수 있었다. 선박업을 기반으로 한 최초의 산업단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관광업이 주를 이루게 되자 베니스의 아스날은 전시장이 되었다. 원래 배를 축조하던 자리에 한 중국 작가의 작품이 걸렸다. 비상하는 불사조 피닉스의 모습으로.

아포테오시스

아포테오시스

Apotheosis. 그리스어 apotheoun (신으로부터 나온)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라틴어로 어떤 것의 최상의 상태를 말한다. 마치 신이 준 최고의 순간과 같다. 신학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점차 예술에서 죽은 자를 기념하는 그림을 그릴 때 주제로 사용되었다. 망자의 최고의 모습을 그리는 장면에 제목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Apotheosis of St. Catherine 은 성 카트린느의 훌륭한 모습을 기념하는 그림이 되는 것이다. 현대에 들어와 이 단어는 어떤 새로운 깨달음을 얻거나, 최정상의 모습으로 종말을 맞는 것을 의미한다. 한 예술가가 이 단어를 전시장 밖에 걸었다. 깨달음과 종말, 그는 어느 쪽에 방점을 두었을까?

피노 컬렉션

피노 컬렉션

프랑스 기업인 프랑소아 피노(Francoise Pinault) 회장은 공격적으로 프렝탕, 구찌 등 유명 브랜드를 확보하면서 자산을 늘린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현대미술 컬렉터로도 유명하다. 그는 전 세계의 컬렉터 중에서도 상위 5위에 드는데, 그의 컬렉션으로 미술관을 지으려 했지만, 까다로운 프랑스에서 불가능했다. 루브르, 오르세이 정도는 되어야 미술관이라는 명칭을 달 수 있다는 관습 때문이다. 대신에 그가 선택한 곳은 베니스. 물의 도시 베니스의 빈 건물을 사들여 2개의 미술관을 열었다. 사진에 보이는 곳은 그 중의 한 곳인 푼타 델라 도가나(Punta della Dogana). 2009년 문을 연 이곳은 원래 세관 건물이었는데 피노 회장이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게 리노베이션을 맡겼고 지금은 세계적인 현대 미술관이 되었다.

주식 거래소

주식 거래소

파리와 브뤼셀 등 유럽의 여러 도시에 가면 주식거래소를 부어스(Bourse)라고 부른다. 파리 부어스, 브뤼셀 부어스. 이 용어는 바로 최초의 주식거래소를 운영한 반 데어 부어스(Van der Buerse) 집안의 성을 따서 나왔다. 이 가문은 상품을 거래하는 중개인 집안으로 14세기경 테어 부어스(Ter Buerse)라는 여관을 운영하면서 동시에 여관 앞 광장에 비공식적 주식 거래소를 만들었다. 중개인을 위한 공간은 이후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파리를 거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사진에 보이는 건물은 우아한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로 브뤼셀의 부어스가 있는 곳이다. 2000년대 들어 EU가 형성되면서 유럽의 부어스는 이제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되었다.

초콜렛 명가 노이하우스

초콜렛 명가 노이하우스

맛있는 초콜렛을 먹기 시작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고대에는 음료로 마시기도 했다. 남미에서 카카오를 발견한 콜럼부스가 유럽에 소개한 이후 초콜렛은 점차 왕궁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근대화를 거치면서 초콜렛을 생산하는 회사도 설립되었다. 노이하우스(Neuhaus)는 그러한 초콜렛 명가중의 하나이다. 1857년 스위스 이민자가 브뤼셀에 설립한 이 회사는 원래 약을 맛있게 먹게 하기 위해 초콜렛으로 코팅하곤 했다. 그러다가 약 주문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미각을 즐기는 쪽으로 방향을 돌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초콜렛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반이었다. 벨기에 초콜렛이 유명한 것은 바로 노이하우스의 명성 때문이기도 하다.

데세리

데세리

베니스의 유리공예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13세기 초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자 베니스로 피난을 온 일부 장인들이 자리를 잡으며 시작되었다. 투명하면서도 다채로운 색을 머금은 유리는 유럽전역에 소문이 나게 된다. 베니스는 그런 기술이 다른 도시로 누출되지 않게 장인들을 무라노 섬에 가두고 입출입을 엄격히 제한하기도 했지만 문익점의 목화씨처럼 유리 기술은 조금씩 타지로 퍼져 나갔다. 사진속의 유리 장식은 18세기 베니스에서 유행했던 유리 정원 데세리이다. 귀족의 실내 인테리어의 센터피스이자 식탁 장식으로 화려한 기교와 모양을 통해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집에 온 손님을 즐겁게 하곤 했었다.

카페 플로리안

카페 플로리안

물의 도시 베니스에 가면 산 마르코 광장이 있다. 그 한 쪽에 1720년 개점한 카페 플로리안(Caffe Florian)이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다. 유럽 최초의 카페이자 처음으로 여성과 남성이 모두 드나들며 새로운 사상을 토론하고 여론을 만드는 카페 문화가 만들어진 곳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베니스의 유명인들뿐만 아니라 괴테, 바이런, 디킨슨과 같은 북쪽 유럽에소 온 문인들도 즐겨 찾는 휴식처가 되었다. 다양한 나라의 인물이 찾는 곳이어서인지 1858년 리모델링을 하면서 여러 개의 방을 만들었는데, 그 결과 나온 원로 방(Sala del Senato), 그리스 방(Sala Greca), 중국 방(Sala Cinese), 동양의 방(Sala Orientale)등은 개방적인 베니스의 취향을 그대로 보여준다.

리옹역

리옹역

파리의 전성기였던 1900년 설립된 리옹역은 당대 최고의 기술로 만들어졌다. 유리로 된 높은 천정, 그 천정을 떠받드는 철골 골조, 그 골조에 담은 우아한 아르 누보(Art Nouveau)의 곡선이 그 일부이다. 외관 역시 도도한 고전적 양식의 건물로 주로 프랑스 남부, 이탈리아 등으로 가는 승객을 하루에 수만 명씩 실어 나르는 역으로 쓰기에 아까울 정도이다. 리옹역의 외부와 내부에 있는 큰 시계탑은 시계가 흔하지 않던 시절,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던 소중한 시설로 지금은 추억의 기념물이 되었다.

벼룩시장

벼룩시장

1880년대 파리에 중고물품을 취급하는 야외시장이 등장하면서 ‘벼룩 시장(marché aux puces)'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이젠 한국에서도 익숙한 이 단어는 남이 버린 물건에서 발견의 기쁨을 찾는 곳을 의미하게 되었다. 주말, 주중, 또는 연중 내내 열리는 다양한 벼룩시장이 등장해서 필요한 물건을 찾거나 여가 시간을 보내려는 사람들을 유혹한다. 사진은 브뤼셀에서 가장 큰 벼룩시장. 모로코 상인들이 거의 점령하다시피 하지만, 그래도 벼룩시장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마리아 마르탱

마리아 마르탱

유럽의 문화를 그대로 이식한 브라질 출신의 마리아 마르탱. 1940년대 외교관이었던 남편과 함께 뉴욕에 온 그녀는 당시 2차 대전을 피해 뉴욕에 와 있던 많은 유럽의 예술가와 교류하며 조각가로 활동했다. 몬드리안, 뒤샹, 브레통 등 당대 유럽 최고의 예술가, 지성인과 교류하면서 초현실주의를 습득했고, 현대미술 애호가가 되었다. 1951년 브라질로 돌아간 후 남미 최고의 현대미술 축제인 상파울로 비엔날레를 설립하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사진 속의 조각은 새와 물고기를 동시에 연상시키는 기이한 골격으로, 신화와 상상력을 선호했던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은 그녀의 작품.

모든 사람이 예술가다.

모든 사람이 예술가다.

독일에 한 예술가가 있었다. 독특한 시선으로 주목받았던 그는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학생의 입학금에 의존하는 학교와 원하는 학생이라면 누구든지 수업을 듣게 한 그는 충돌하게 되고, 결국 해임되었다. 이후 그는 학교, 예술, 정치 등 부조리를 안고 있는 제도와 사회의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영웅, 즉 예술가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사람이 예술가다.’라고 말했다. 창의성을 토대로 기존의 불합리한 가치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의 이름은 요셉 보이스. 그를 추종하는 젊은 예술가들이 공원에 텐트를 치고 제도화된 미술계를 비판하고 있다.

늙은 소나무

늙은 소나무

일송정 푸른 솔은 흘러 흘러 갔어도...푸른 소나무는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며, 오랫동안 우리 문화 속에서 격랑을 이기고 버티는 한국인의 모습과 비교된다. 오래된 소나무는 굵은 기둥과 휘어진 허리를 버티며 살아온 시간을 보여주며 우리를 감동시킨다. 그런데 그런 소나무를 볼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될지 모른다. 동아시아 문화에서 중요한 식물이었으나 소나무 재선충병으로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 병을 극복하고 살아남은 소나무는 인내와 인고의 상징이 될지도 모르겠다.

법보단

법보단

불교에서 깨달음은 중요하다. 자신의 처지에 대해, 세상을 사는 이치에 대해 빨리 깨달을수록 어리석은 삶을 피할 수 있다. 육조스님은 그런 깨달음의 대가이자 법보단경의 원천이다. 법보란 깨달음을 얻고 법문을 시작한 육조스님의 말씀이 곧 보배이자 중요한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해인사에 가면 법보단이라는 현판이 있다. 고대 인도와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온 불교의 주제어를 해강 김규진이 쓴 것이다. 김규진도 중국에 건너가 서화를 연구하기도 했으니, 평범한 현판 하나에도 문화의 교류사가 그대로 배어있다.

김환기 전시

김환기 전시

전라남도의 한 섬에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난 김환기는 남다른 삶을 살았다. 아버지가 사망하자 동네 소작인이 빚 대신에 맡긴 전답문서를 모두 무상으로 돌려주었다. 자신에겐 아버지의 유산이었으나 소작농에겐 자유를 주었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경제적으로 힘든 예술가의 길을 가면서도 당시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서양의 미술현장에서 실력을 검증받고 싶었던 그는 이후 파리를 거쳐 뉴욕에 간다. 그가 뉴욕에서 얻은 것은 점으로 구성된 추상화. 세상의 무수한 사람과 하늘의 무수한 별처럼 수많은 점을 찍던 그는 1974년 사망했고, 그의 분신이었던 부인 김향안은 이후 서울 부암동에 환기미술관을 열었다.

20세기 우리나라 작가 중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 3인을 꼽으라면

20세기 우리나라 작가 중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 3인을 꼽으라면

20세기 우리나라 작가 중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 3인을 꼽으라면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이다. 3인 모두 몸과 영혼을 불태우며 예술가의 삶을 살았고, 죽는 순간까지도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 속에 산 사람들이다. 그중에서 김환기는 큰 키에 나직한 목소리, 뛰어난 글 솜씨를 가진 지식인이자 예술가였다. 도자기, 특히 조선백자를 사랑해서 그림의 모티프로 많이 사용했고, 일본 유학파이면서도 한국의 전통에서 영감을 받곤 했다. 사진은 환기미술관에 재현된 그의 작업실이다. 작업실 뒷벽에 잔뜩 모은 도자기가 인상적이다.

부엌을 위한 그림

부엌을 위한 그림

화가 장욱진은 작은 그림을 좋아했다. 심지어 그리는 물건이나 사람도 작게 그렸고, 선 몇 개만으로 간결하게 그리곤 했다. 천성적으로 작고, 단순하고, 최소의 것을 지향하는 미니멀리스트이다. 그가 작업실 부엌에 그린 그림은 그가 하루 일과에서 먹는 것의 의미를 어떻게 보는지 잘 보여준다. 수저와 포크 나이프, 생선, 밥, 커피와 물컵. 1963년 그린 이 벽화는 그가 매일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던 일종의 만다라이다. 스님처럼 자신을 수행하기 위해 그리거나 바라보는 그림이다.

장욱진미술관

장욱진미술관

2014년 문을 연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어색한 긴 미술관 이름에 비해 미술관 건물은 세련되기 그지없다. 간결한 형식에 담백한 정신을 담은 예술로 잘 알려진 장욱진을 기리는 미술관답게 흰색을 위주로 디자인되었고, 전체적으로 복잡한 다면체의 입체감을 잘 살리고 있다. 햇살이 아름다운 장흥 유원지 인근에 위치한 이 미술관은 기존의 미술관과 달리, 작으면서도 공간에 대한 사색이 빼어난 점을 인정받아 2014년 김수근 건축상과 BBC가 선정한 위대한 뉴 뮤지엄 8개 중의 하나로 선정된 바 있다.

서울의 풍경

서울의 풍경

고즈넉한 한옥 옆으로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 있고 지붕에는 마네킹같은 조각이 얹어 있다. 길에는 외국인 젊은이 몇 명이 담소하고 교통을 단속하는 경찰이 주변을 배회한다. 은행나무 잎이 푸른 늦은 봄 서울 사간동의 풍경이다. 한옥과 현대식 건물은 갤러리이며, 그런 동네를 상징하듯이 이용백 작가의 <피에타> 상이 지붕위로 솟아있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대표 작가였던 이용백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재해석한 작품이 굽어보는 동네에 어울리게 고급 세단이 주차된 인도. 그리고 자유롭게 오고가는 외국인들. 모든 것이 섞이고 혼재하면서도 나름대로 질서와 균형을 유지하는 서울의 모습이다.

셸리의 시

셸리의 시

19세기 영국. 체면을 중시하던 사회를 떠나 유럽을 돌아다니며 살던 시인 셸리. 30세에 요절할 때까지 사랑을 하고 사랑을 시로 쓰면서 자유로운 인간의 삶을 살았다. 생전에 자유와 사랑을 주장한 위험한 사상의 소유자라는 이유로 영국사회의 인정을 받지 못했으나 사후 수십 년이 지나서 문인과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19세기 영국이 알아주지 않았던 셸리의 시가 21세기 서울 지하철역에 등장했다. 출퇴근길에 고단한 시민들은 ‘당신의 사랑은 나의 모든 것’이라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얼마나 공감을 할까.

폐허의 예술

폐허의 예술

20세기 문명이 남긴 것 중에 제일 골치 아픈 것이 폐기물이다. 건축폐기물부터 핵폐기물까지 재활용되지 못하면 우리가 지구에 남긴 쓰레기가 된다. 그래서인지 예술가들은 일찍이 그러한 폐기물을 가져다가 작품으로 만들곤 했다. 일종의 재활용인데, 그렇다고 예술이 모든 쓰레기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예술가가 이런 저런 폐기물을 가져다가 조합해서 만든 작업이다. 미술용어로 이렇게 주변의 것을 사용해서 뚝딱하고 만드는 방법을 브리콜라지(bricolage)라고 한다. 흑백사진, 유리 장식, 낡은 계단. 어느 것도 서로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바로 브리콜라지가 만드는 모호하면서도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예술의 세계이다.

남해바다

남해바다

내 고향 남쪽바다. Somewhere beyond the sea. 여수 밤바다. 시와 노래에 담긴 바다 이야기는 끝이 없다. 그리운 고향바다부터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이의 노래까지 바다를 품은 인간의 감성 퍼레이드는 계속된다. 아마도 바다는 현재를 잊고 과거를 추억하고 미래를 꿈꾸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출렁거리는 물결, 아련한 수증기와 구름이 퍼지면서 펼쳐지는 미지의 세계, 해와 달과 바람이 만들어내는 변화무쌍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은 백련사에서 본 남해바다의 풍경.

남성성

남성성

독일의 권위있는 일간신문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자이퉁 위에 남성의 몸을 묘사한 드로잉, 조각 사진 등이 붙여있다. 고대 그리스부터 르네상스 시대의 미켈란젤로, 낭만주의 시대의 로댕 등 서양의 조각사에서 주요한 작품 사진과 그러한 조각을 공부하듯이 스케치한 그림, 심지어 현대 남성의 누드사진도 들어있다. 그리고 중간에 영어로 ‘남성성(masculinity)’와 ‘지배(dominance)’가 손으로 씌여 있다. 가히 남성 누드의 향연이자 남성성을 예찬하는 작품이다. 신문과 사진을 활용하여 제작한 이 작품은 여성의 눈요기를 위한 장난이 아니라, 그동안 남성의 역사에서 은폐되어온 동성애 남성의 역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영자의 전성시대

영자의 전성시대

현재는 과거를 먹고 살아간다. 최근 1990년대 문화를 재조명하는 복고풍은 좋은 예이다. 과거는 현재의 삶의 의미를 찾는데 유용하며, 때로 우리의 숨은 얼굴을 보여준다. 1970년대, 40년전 한국은 전근대와 근대의 문화가 공존하던 시기였다. 영자라는 이름도 흔했고, 가난한 시골을 벗어나 도시에서 새 삶을 살려는 젊은 여성도 많았다. 그러나 근대화의 물결 속에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그들을 위한 일자리는 한정적이었다. 팔이 잘릴 정도로 힘들게 생존을 위해 극적인 삶을 살던 여성을 앞세운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1975)는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이후에는 ‘한국영화 100선’에 꼽혔다. 가끔 그 영화 포스터가 마치 당시의 얼굴처럼 불현듯 나타난다.

피카소의 은인

피카소의 은인

20세기 초 파리. 스페인에서 온 피카소는 열정이 넘치는 젊은 예술가였다. 가난에 찌들려 끼니를 잇기도 힘든 시절, 그에게 갑자기 나타난 은인은 프랑스 사람도, 스페인 사람도 아닌, 미국인이었다. 거투르드 스타인. 남동생과 파리에 여행을 왔다가 머물게 된 스타인 여사는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기꺼이 돈을 주고 구입한다. 심지어 자신의 초상화까지도 의뢰하는데, 사진 왼쪽에 보이는 것이 바로 그 초상화이다. 아프리카 가면처럼 뭔가 음산하면서도 예리한 모습은 보통 사람이 원하는 초상화와는 거리가 멀다. 가난한 예술가를 위해 지갑을 연 미국 시인의 마음씀씀이가 아름답다. 오른쪽 그림은 그 무렵 그린 피카소의 작품.

하늘과 틀

하늘과 틀

고대인은 하늘을 보고 세상을 파악했다. 하루의 시간, 계절별 시기, 심지어 인간의 운명까지도. 하늘의 밝기와 구름의 흔적, 별자리의 움직임 등 하늘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통해 넒은 우주에서 힘없이 살아가는 인간의 미래를 이해하려고 했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하늘은 인간이 만든 틀 속으로 들어왔다. 시간은 시계로, 별자리는 망원경으로, 푸른 하늘은 아름다운 창문 속으로 들어오면서, 점점 하늘에 대한 의존도가 줄기 시작했다. 가끔 우연히 운 좋게도 푸른 하늘을 보게 되면, 왠지 먼 고향을 보는 듯 아련하게 느끼는 것은 우리의 DNA에 남은 고대인의 기억 때문일까?

서자복

서자복

복을 바라는 인간의 마음은 도상을 만들어냈다. 부처의 상, 예술의 상, 성모마리아의 상까지 다양한 도상이 나왔다. 세계 대형종교의 영향이 미미한 곳에서는 토착화된 신앙이 도상을 만든다. 사진 속의 석상은 제주의 한 마을에 있는 서자복. 원래 모자가 없는 민머리 승의 모습이었으나 누군가 돌모자를 만들어 씌웠고, 옆에는 남근 모양의 투박한 돌을 가져다 놓았다. 토속적 석상문화에 불교의 영향이 가미되었다가 아들을 기원하는 여성들의 소망이 더해져서 나온 결과이다.

건축의 미

건축의 미

건축의 역사를 몇 마디로 줄이자면 다음과 같다. 클수록 좋다->많을수록 좋다->적을수록 좋다->윤리적일수록 좋다. 거대한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 베르사이유의 궁전, 그리고 유리와 시멘트로만 된 모더니즘 양식이 앞의 3개 문장을 대표한다면, 마지막은 오늘날 생태, 친환경을 강조하는 건물을 말한다. 사람을 위한 집이 수천년을 거쳐 결국 지구에 가장 해가 되지 않는 건물로 귀결이 된 것이다. 사진 속에 겸손한 단층 건물이 보인다. 기와가 흐트러져도, 벽과 문이 낡아보여도, 부수고 새로 짓지 않고 아끼면서 시간에 맞서 지키려는 인간적인 노력이 보인다.

나만의 텃밭

나만의 텃밭

한 뼘의 땅이 공짜로 생겼다. 당신을 그 땅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지구를 위해 나무를 심을 것인가? 아니면 나를 위해 야채를 심을 것인가? 농경문화에 익숙한 한국인은 빈 땅이 있으면 고추, 깻잎부터 심고 본다. 뉴욕이나 아틀란타로 이민을 가도 뒤뜰이나 앞뜰 조그만 땅에 잔디를 심기보다는 고추와 깻잎을 심기 때문에 금방 한국인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주의 한 동네에 있는 한 뼘 텃밭. 돌을 고르고 씨를 뿌린 자신의 흔적을 보호하기 위해 엉성하나마 만든 울타리는 농부의 DNA를 가진 현대인의 얼굴이다.

트릭 아트

트릭 아트

Seeing is believing. 봐야 믿을 수 있다고 했다. 인간의 감각기관 중에서 눈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일 것이다. 과연 그럴까? 새가 과일을 먹으려고 달려들 정도로 감쪽같이 그린 정물화의 이야기나, 사람을 감동할 정도로 정교하게 그린 교회의 천정 돔은 예술가의 실력을 말하는 전설이 되었다. 감쪽같이 그린 그림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든 것은 일본이다. 영어에 없던 ‘Trick Art’라는 용어를 만들어 마치 현실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그림들을 모아서 선보이는 것이다. 사진은 화산이 폭발한 후 용암이 분출하는 그림으로 눈을 속일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특정 각도에서 보면 그럴 듯하게 보인다.

마구잡이 현대미술?

마구잡이 현대미술?

인간이 문명을 이룩하기 시작한 이래로 가장 자유로운 영토가 있었다면 법이 미치지 않는 먼 변방이나 식민지, 계급제도를 벗어날 수 있는 곳, 그리고 예술을 들 수 있다. 자유를 먹고사는 예술은 타협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예술의 영역에서 타협은 존재 논리를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뉴욕, 런던, 상하이 등 예술의 첨단을 보여주는 유수의 미술관은 그렇게 타협을 모르는 젊은 예술가들을 찾아서 선보인다. 그들은 주전자, 비디오 영상, 옷가지, 종이 등, 도저히 서로 관련을 지을 수 없는 재료를 자신만의 맥락으로 조합한다. 그래서 상식으로 무장한 현대인에게 현대미술은 이해할 수 없는 마구잡이 영토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해 못할 현대미술?

이해 못할 현대미술?

인간이 처음 뭔가를 그리고 만들기 시작한 것은 동굴에서 살 때부터이다. 사회와 국가 체계가 만들어지면서 기술도 여러 갈래로 갈라지기 시작했고, 그림을 그리고 조각상을 만드는 쟁이들이 모여서 하나의 계급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들이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진화하면서 19세기에 독창성을 높이 사는 예술 분야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일단 자신감과 자유를 얻은 인간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현대미술이 이해하기 어려운 건 바로 적어도 예술에서는 그 자신감과 자유의 길이 무한대로 뻗어있기 때문이다. 가끔 ‘관객 친화적’인 생각을 하는 예술가도 있긴 하지만.

스튜디올로

스튜디올로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은 서로 자잘한 전쟁을 많이 벌였고 항상 경쟁의 관계였다. 정치적 경쟁관계는 문화로 이어지는데 저마다 뽐내듯이 통치자의 궁궐에 예술작품을 들여놨다. 그중에서 그림으로 채워진 방을 ‘스튜디올로(studiolo)’라고 부르곤 했다. 초기 스튜디올로는 주로 벽화로 도배된 방으로 당시 유행했던 눈속임 기법의 그림이 많았다. 어둡게 밀폐된 방은 주로 사색과 감상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사진은 페데리코 공작이 15세기 후반 구비오에 마련한 방으로 자신이 선호했던 물건을 그린 그림으로 채워졌다. 책, 악기 등을 좋아한 그의 취향은 당시의 세련된 통치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육전(리우보)

육전(리우보)

인간의 생의 대부분은 지식과 기술을 배우고, 생업에 종사하며, 삶을 꾸려가며 보낸다. 잠시 그 틈 사이에 여가시간을 찾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인간은 소중한 여가 시간을 위해 많은 것을 발명했다. 그림도 그렸고, 놀이도 개발했다. 사진 속에 보이는 장면은 고대 중국에서 유행했던 육전. 6개의 막대를 가지고 판위에 표시된 지점으로 이동하면서 노는 게임이다. 신선처럼 육전에 몰두한 두 남자의 모습이 진지해 보인다. 수백년간 인기를 누린 이 게임은 바둑이 등장하면서 사양길로 들어섰다. 모든 문화가 그렇듯이 육전도 중국은 넘어 이웃나라에도 전파되었지만 지금은 유물로만 볼 수 있는 과거의 문화가 되었다.

리처드 롱

리처드 롱

한 분야의 전문성을 강조하는 사회는 인간을 기계화한다. 평생 구두만 만들고, 빵만 굽고, 영어만 가르치거나 치아만 바라보다가 은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기계화를 강요하는 사회를 벗어나 산과 들로 걷다보면 잠시나마 자유를 느끼는 것이 인간이다. 등산인구가 늘고, 캠핑 가족이 느는 것은 그 자유와 휴식의 시간을 찾는 행렬 때문이다. 리처드 롱(Richard Long)은 동네에서 시작해 전 세계의 산과 들을 누빈 예술가이다. 다행히 예술가였기 때문에 그 누빈 시간과 기록은 모두 그의 예술작업이 되었다. 간혹 돈이 필요하면 자연에서 가져온 재료로 작업을 만들었다. 사진 속의 원형 돌 구조물이 바로 미술관에 전시된 그의 작업.

잭슨 폴록

잭슨 폴록

수없이 피워대는 담배 연기로 정작 본인도 눈을 찡그린다. 그리곤 어젯밤에 마신 술 때문에 떨리는 손 아래로 아무렇게나 담뱃재를 터는데 그 재는 바닥에 놓인 천위로 떨어진다. 붓을 든 화가는 물감을 찍고 천에 바르는 게 아니라 툭하고 물감을 뿌린다. 그리고 바닥이 거의 덥힐 때까지 뿌리는 데 그 사이에 담배재도 무수히 떨어진다. 그 작가의 이름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술과 담배에 젖어 살다가 요절한 예술가이나 그가 고안한 뿌리기 기법은 추상미술의 뼈대를 만들었다. 지금은 1940년대 미국미술을 대표하는 추상표현주의 예술가로 역사에 자리를 잡았다.

수평의 미학

수평의 미학

종교가 숭배되던 시기에도, 왕권이 견고한 시대에도, 높은 건축물은 같은 의미를 가졌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권력의 위상. 왕실 정원에 높은 나무가 들어서고 그 나무를 정갈히 다듬는 문화가 정원술로 발전했다. 그런데 그런 수직의 문화는 오늘날 수평의 문화의 도전을 받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문화의 주요 화두로 나오면서 수직성, 질서, 권력의 이미지가 보여주는 획일적 모습이 예전처럼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대신에 작은 것, 낮은 것,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대두되었다. 한 미술관의 정원에 사막에서나 자랄 것 같은 키작은 풀들이 심어졌다. 모눈종이처럼 표시된 구획은 그나마 사람의 흔적이 있었다는 징표.

야요이 쿠사마

야요이 쿠사마

한 예술가의 운명은 알 수 없는 것. 여성 예술가의 운명은 더더욱 알 수 없다. 취업과 결혼, 잘사는 삶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예술가는 가난과 고생을 사서 가는 직업이다. 유리천정이 높은 사회에서 여성 예술가는 남성 예술가보다 더 힘든 과정을 겪는다. 그런 모든 상식을 깬 사람이 있다. 일본의 야요이 쿠사마. 냉대와 가난을 견디며 예술가의 길을 건 쿠사마가 성공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정신병원에 스스로 들어가 치료를 받으면서 예술을 한 이후이다. 지금은 점이 박힌 노란 호박 조각으로 전 세계의 사랑을 받고 있고 일본을 대표하는 원로작가가 되었다.

도시의 무지개

도시의 무지개

자연이 만드는 불가사의한 현상 중의 하나는 무지개이다. 태양광이 빗물, 안개 등에 반사되어 굴절되면서 7가지 색환을 만드는 것이다. 원래 무지개는 완전한 원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지상에 비치는 반쪽만 우리에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어쨌거나 같은 무지개라 할지라도 특정 거리와 특정 각도에서만 보이기 때문에 무지개를 보는 날이 평생에 몇 번 되지 않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인간이 무지개에 대한 연구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 시대에 한 철학자는 무지개에 대한 책을 쓰기도 했다. 오늘날은 인공적으로 무지개를 만들 수도 있다. 서울의 한 고층 아파트를 에워싼 무지개. 최첨단 문명 속에서도 자연의 경이는 계속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린 빌딩 시청사

그린 빌딩 시청사

친환경, 에너지 절약, 지속가능한 도시. 미래를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화두이다. 한정된 에너지원을 아끼고, 대체 에너지를 찾아야 하며, 지구를 아끼는 것이 곧 인류의 미래를 보장하는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 화두를 반영한 건물을 ‘그린 빌딩(green building)’이라고 한다. 그린 빌딩은 에너지를 절감하고 친환경적인 재료로 친환경적인 효과를 내고자 건축한 건물이다. 말이 많았던 서울시 신청사의 건물도 그린 빌딩에 속한다. 태양광을 활용하고 실내에 식물을 심어서 공기정화 기능까지 갖춘 이 건물은 서울이 지속 가능한 도시가 되려는 몸부림의 상징이리라.

복합문화공간 마루

복합문화공간 마루

고서화를 다루는 상인이 모여들면서 1960년대에 형성된 인사동은 1990년대 이후 부침이 많았다. 한때 화랑의 집결지로 왠만한 예술가라면 이곳에서 개인전을 여는 것이 소망일 정도였으나 지금은 관광객에게 자리를 내준지 오래고, 오히려 쇼핑의 거리로 유명하다. 화랑과 함께 사라진 것은 오래된 식당, 병원, 약국이다. 최근 혜정병원이 있던 자리에 복합문화공간 마루가 들어섰다. 복합문화공간이라지만 사실 복합쇼핑공간이 더 정확하다. 길 건너에 먼저 들어선 쌈지길과 유사한 이곳은 다시 한번 인사동이 관광객으로 먹고 살고 있는 경제의 공간이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

종로에 있던 공간사옥이 미술관으로 변했다. 한국 근대건축가 김수근이 1971년 지었고 그가 설립한 공간그룹의 보금자리이자 문학, 미술, 음악 등 여러 예술가의 교류의 장이었으나 운영난에 봉착하면서 결국 소유주가 바뀌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며 담쟁이 덩굴이 건물을 뒤덮어서인지 경매에서도 팔리지 못했던 이 건물을 인수한 이는 아리리오의 김창일 회장. 인수하자마자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하여 자신의 주요 컬렉션을 배치해 놓은 후 2014년 9월 문을 열었다. 신관에는 맛있는 음식과 음료를 파는 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제주 아라리오 미술관

제주 아라리오 미술관

최근 제주에 부는 바람을 요약하면, 보헤미안의 이주와 중국인의 부동산 투자이다. 사람이 들어오니 부동산 가치가 상승하는 것은 정해진 이치. 그런데 보헤미안이라고 다 같은 보헤미안이 아니다. 한국 미술계의 ‘이단아’이자 파격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천안 아라리오 대표가 서울, 베이징, 뉴욕에 이어서 제주에 미술공간을 열었는데, 제주시 탑동에 있던 낡은 영화관을 개조해서 자신의 컬렉션을 선보이는 미술관을 지었다. 관광지가 아닌, 토박이들이 어찌할 줄 모르고 있는 동네에 중요한 공간을 만들어 문화 제주를 이끌고 있다.

제주 본태박물관

제주 본태박물관

얼음공주로 유명했던 한 아나운서가 시집을 간다고 방송이 요란했던 게 몇 년 전이다. 그 아나운서의 시어머니가 제주도 비오토비아 옆에 박물관을 지었다. 사실 개인이 지은 박물관은 크기가 크지 않고 마치 별장의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이 딱 맞는 경우인 것 같다. 소담한 크기에 개인이 모은 조선시대 반상, 자수품등과 함께 야요이 쿠사마의 현대미술이 어우러져 개관전을 치렀다. 하필이면 고른 건축가가 일본의 안도 다다오. 한국부자의 일본 건축가 애호는 끝이 없다.

비오토피아 두손미술관

비오토피아 두손미술관

현대 건축의 시멘트 사랑은 끝이 없다. 이타미 준이 비오토피아 내에 만든 돌, 물, 바람 미술관외에도 두손미술관이 있는데 시멘트 패널을 활용한 공간이다. 손이 두 개 모여있는 ‘두손’을 연상시키는 이 공간은 작품전시를 하는 실용적인 미술관이기도 하다. 한여름에도 시원한 시멘트의 찬 성질이 그대로 느껴지는가 하면 문밖으로 나오면 제주도 야산의 풍광이 펼쳐지는 곳이다. 자연속의 시멘트 건물. 상반된 두 가지가 어울린 미술관이다.

방주교회

방주교회

재일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이 제주의 고급 휴양지 비오토피아 내에 지은 건축 중에서도 <방주교회>는 종교의 공간을 가장 현대적으로 풀어낸 곳이다. 물로 둘러싸인 교회는 성경에 나오는 방주를 연상시키고,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실내는 간결하기 그지없다. 현대적인 재료를 가지고 비정형의 공간을 만들어내는데 건축이면서 동시에 조각과 같은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바티칸의 예배당이 개관했을 때 당시 신자들을 감동시켰듯이 이곳도 현대인의 미적 감각으로 천상의 원리를 만날 수 있다.

이타미 준의 물 박물관

이타미 준의 물 박물관

일본의 현대 건축은 인공적인 시멘트와 돌, 물, 나무 등 자연재료를 혼합하면서도 미니멀한 감성을 보여준다. 특히 안도 다다오가 나오시마 섬에 지은 <베네세 하우스 오벌(Benesse House Oval)>(1995)은 시멘트와 물을 조화롭게 보여주면서 동시에 하늘까지 감상할 수 있는 호텔이다. 제주에 지은 이타미 준의 <물 박물관>(2006)도 유사한 물과 원형의 시멘트 구조물 천정으로 하늘을 담아내는데 단지 차이가 있다면 호텔방이 없다는 것. 구도하는 승려처럼 조용한 명상의 공간으로 빠지게 만든다.

이타미 준의 돌 박물관

이타미 준의 돌 박물관

돌, 바람, 여자. 삼다의 섬 제주를 좋아한 재일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은 고급 휴양지 비오토피아 내에 돌, 바람, 물을 위한 박물관을 각각 지었다. 말이 박물관이자 자연을 관조할 수 있는 명상의 공간처럼 작은 공간이다. 억새가 펼쳐진 둔덕에 위치한 돌 박물관의 외관은 철로 일부러 부식되게 만들어 비와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그 흔적을 남긴다. 안에는 돌과 나무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아주 흔한 것들이지만 우리가 시작된 곳이 어디인지 생각하게 해준다.

이타미 준의 바람 박물관

이타미 준의 바람 박물관

찬 공기가 더운 공기로 데워지면서 기류가 변하고 그 기류가 지속되면서 바람이 만들어진다. 볼 수 없으나 느낄 수는 있는 바람. 그 바람을 위한 박물관이 있다. 바람이 많은 섬 제주에 한 건축가는 나무 구조물로 틈새를 둔 텅 빈 박물관을 만들었다. 바람이 그 틈새로 지나가도록. 그런데 이 박물관에서 바람은 틈새를 지나갈 뿐만 아니라 나무와 부딪히면서 예측할 수 없는 소리도 낸다. 제주의 고급 휴양지 비오토피아 내에 건립된 바람 박물관은 재일교포이자 제주를 제2의 고향으로 여겼던 건축가 이타미 준 (본명 유동룡)의 걸작 중 하나이다.

치훌리의 유리나무

치훌리의 유리나무

가장 성공한 유리공예 작가이자 예술가로서 대접받는 데일 치훌리(Dale Chihuly). 다채로우면서도 화려한 형상을 뽐내는 그의 유리 작업은 남녀노소 누구나에게 인기가 있다. 샹들리에에서부터 설치작업까지, 유리여서 불가능하다는 선입관을 깨고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러나 입으로 불면서 유리를 다루는 방식은 까다롭기로 유명한데, 그는 그 어려움을 딛고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대가의 수준에 올랐다. 사진은 보스턴 미술관에 있는 치훌리의 작업으로 13 미터에 달하는 높이에, 입으로 불면서 만든 2천 3백 개의 유리 잎을 모은 것이다.

주전자와 스타벅스

주전자와 스타벅스

미국 보스턴 중심가에 거대한 주전자가 걸려있다. 주전자의 사연은 이러하다. 원래 ‘오리엔탈 티 컴퍼니’라는 회사가 1873년 회사의 이미지를 위해 찻주전자를 사용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찻주전자가 걸리고 주전자 안에 수증기를 만드는 장치가 가끔 물이 끓는 것처럼 연기를 만들어내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시작하자 문화가 시작되었다. 그 안에 얼마나 물이 들어가는지 맞히는 대회가 열리기도 하고, 지나가는 관광객을 위한 이야기 거리가 이어지면서 도시의 아이콘이 되었다. 이런 명소에서 스타벅스 커피전문점이 들어온 건 탁월한 상술이다.

사무엘 아담스 묘비

사무엘 아담스 묘비

맥주 이름으로 유명한 사무엘 아담스. 사실 아담스는 보스턴에서 맥주보리 사업을 하던 비즈니스맨이자 후에 정치가로서 미국독립혁명의 선봉장으로 활동하면서 미국 민주주의의 초석을 닦은 사람이다. 그런 그를 기리기 위해 1984년 보스턴 맥주회사에서 내놓은 브랜드명이 역사적 인물보다 더 유명하게 된 것이다. 어쨌거나 보스턴 맥주회사는 이 브랜드로 미국에 ‘크래프트 비어(craft beer)’시장을 선도하게 되었고, 보스턴은 다시 한번 위대한 정치가를 통해 도시를 알리게 되었다. 사진은 보스턴 시내 중심에 있는 아담스의 묘비.

추모를 위한 조각

추모를 위한 조각

미국 보스턴 중심가 도로변에 추모비가 하나 있다. 1915년과 1922년 사이에 터키(당시의 오토만 제국)에서 아르메니아인 1백5십 만명이 죽음을 당한 사건을 기억하자는 추모비다. 멸망의 기로에 있던 오토만 제국에서 제법 잘 살던 아르메니아 정착자들은 1차세계대전의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터키에 위협적인 존재로 몰리면서 결국 추방과 대학살의 대상이 된다. 내정의 혼란을 이민자 탓으로 돌리는 극우주의의 결과였다. 그 대학살에서 살아남아 미국으로 이주한 아르메니아인들은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 보스턴에 기증하는 형식으로 이 추모비를 세웠다. 세상이 바뀌어도, 망각의 동물 인간에게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솔 르윗의 정원

솔 르윗의 정원

대학을 졸업한 예술가가 성공할 확률은 매우 낮지만 일단 성공 가도에 오르면 일이 몰려온다. 다른 모든 직업도 그렇듯이. 미국 작가 솔 르윗(Sol LeWitt)도 성공의 대열에 오르자 수많은 주문을 받게 된다. 그 중에는 정원 프로젝트도 있었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가면 솔 르윗이 디자인한 야외 정원이 있다. 여느 정원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가 좋아했던 기하학적 디자인을 적용해서 꽃과 나무를 배열했다는 것이다. 새로움을 보여주라! 예술가와 미술관의 영원한 과제이다.

솔 르윗의 벽 드로잉

솔 르윗의 벽 드로잉

어떤 예술가는 평생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어떤 예술가는 평생 기계만 만지작거린다. 솔 르윗은 디자인, 회화, 오브제 등 여러 가지에 관심이 많은 예술가였다. 먹고 사는 걱정은 있었지만 그래도 완전히 어떤 순수한 아이디어에 몰두한다는 것은 예술가만이 누리는 사치 중의 하나이다. 미국 작가 솔 르윗(Sol LeWitt)는 1969년부터 벽에 직접 색칠을 하는 작업을 했는데 2007년 사망할 때까지 1200개가 넘은 벽 드로잉 작업을 남겼다. 모두 점, 선, 면 등 기하학적 요소를 활용한 벽화로 그가 작성한 지시문에 따라서 조수들이 실행에 옮긴 작업으로 아이디어를 중시하는

미술관 정원

미술관 정원

오래된 미술관에는 꼭 실내 정원이 있다. 실내정원은 오래 전 왕실과 귀족의 문화였고, 예술도 왕실과 귀족의 문화였기 때문에 예술의 전당에 실내정원이 들어선 것은 처음부터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 그러나 물이 흐르고, 식물이 자라면서 곰팡이를 만들어내는가 하면, 자연채광을 들이기 때문에 실내정원 근처에는 조각 등 곰팡이에 저항력이 강한 예술품과 자외선에 강한 유물만 배열한다. 아무렴 어떤가. 물소리를 들으며, 이국적인 풀과 꽃을 보다가 잠시 오래된 석상을 보는 시간은 마치 과거 유럽의 한 궁전에 있다는 귀중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미술관 의자

미술관 의자

미술관은 보물같은 예술작품을 보관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찾아오는 이에게 예술의 감흥을 전달하는 분위기도 만들어야 한다. 적절한 감상을 위해 조명, 채광, 공간의 크기, 작품의 배열, 동선 등 챙겨야할 것도 많다. 100년전에는 벽이 꽉찰 정도로 그림을 걸었다면, 지금은 적절한 간격을 두고 띄엄띄엄 배열하여 집중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100년전에도 지금도 변하지 않는 것은 감상하는 이를 위한 소파와 의자이다. 노년의 관객이던, 젊은 관객이던 서서 잠시 보다가 가버리는 것보다 앉아서 그림을 보면서 쉬는 시간은 미술관만의 시간이다. 소위 ‘관조’의 시간, 그것은 인생의 행복과 불행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이다.

디아 비컨

디아 비컨

뉴욕주 비컨에도 낡은 공장이 있었다. 역시 미국 산업화 시대의 잔재이다. 뉴욕시에서 DIA 라는 예술센터를 운영하는 디아재단은 대형미술관 자리를 찾다가 뉴욕시에서 북쪽으로 1시간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는 이 낡은 나비스코 공장을 개조하여 2003년 문을 열었다. DIA Beacon은 현재 미니멀리즘, 개념미술의 진수를 볼 수 있는 세계적인 미술관이자 허드슨 강변의 작은 마을을 글로벌 문화지도에 자리매김한 원동력이 되었다. 도시재생과 마을재생에 문화와 예술보다 더 좋은 답은 없다.

매스 모카

매스 모카

미국 산업화의 흔적은 매사추세츠 주의 작은 동네 노스 아담스에도 그대로 남아있다. 18세기말 이곳은 농업, 축산업으로 마을을 형성했고, 한때 가죽가공, 신발, 벽돌 등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경제 동력을 찾기도 했다. 하지만 2차 세계 대전이 끝나면서 공장을 문을 닫기 시작했고 마침내 이를 안타깝게 여긴 미술인들이 1999년 덩그러니 남은 폐허에 현대미술관 매스 모카(MASS MoCA)을 유치하여 마을을 재생하게 된다.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면서 명성을 날리자 지금은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주하여 문화와 예술이 주가 된 생태문화마을로 변모하고 있다.

피츠버그의 도시 재생

피츠버그의 도시 재생

피츠버그의 오래된 주거구역은 도심재생의 어젠다에서 후순위였다. 최근에야 대로변을 중심으로 새로운 타운하우스가 들어서고 있지만 골목안쪽에는 여전히 100년 가까이 된 집이 즐비하다. 지저분하게 쇠퇴하던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은 건 예술이었다. 젊은 예술가와 기획자가 모여 대안공간을 열자 예술가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자생적인 마을 가꾸기가 시작된 것이다. 벽화로 덮힌 센트럴 노스사이드의 한 골목.

피츠버그의 변화

피츠버그의 변화

한때 철강산업의 중심지였던 피츠버그는 미국 산업화의 얼굴을 그대로 보여준다. 공기오염, 지저분한 거리, 불편한 교통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1950년대 이후 3700개의 건물을 부수고 5000가구 이상을 이주시키면서 도심을 정비했으나 철강산업이 동력을 잃으면서 인구와 자영업자가 줄면서 도시 활성화는커녕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70년대 이후 새롭게 도심 활성화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고층건물과 비즈니스를 유치하고, 공공미술과 문화 부흥을 통해 잃었던 인구를 끌어들이고 있다. 최근 피츠버그의 스카이라인.

차 매니아의 티팟

차 매니아의 티팟

중국에서 시작된 차 문화는 아시아, 유럽, 미국으로 퍼져갔다. 차잎을 우려낼 도구가 필요해 지면서 차 주전자(티팟)도 같이 개발되었는데, 차를 대접하는 주인의 취향을 반영한 다양한 모양의 차 주전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송대의 중국에서 다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명대의 중국에서 현재의 차 우리는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17세기 근대 유럽의 상인들이 아시아의 차와 차 주전자를 수입하여 판매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유럽에서 차 주전자를 생산하기도 했다. 박물관에 전시된 수많은 티팟은 차를 좋아한 인류의 흔적이다.

영원한 모네

영원한 모네

모네는 자신이 태어난 파리와 그 인근의 자연, 도시와 자연에서 문화를 만드는 파리사람을 그리곤 했다. 해가 나고 지는 사이에 변하는 모습을 포착하려고 매일 한 장소에서 그림을 그렸는데, 그중 유명한 것이 루앙 성당 시리즈이다. 1892년경 성당 맞은편에 작업실을 차리고 성당 파사드(정면)를 그리곤 했다. 현재 전 세계 미술관에 흩어져 있는 총 30여점의 루앙 성당 그림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빛이 색을 어떻게 보여주는지 잘 드러낸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바쁜 19세기 말 조용히 한켠에서 자신이 좋아한 것을 파고든 사람이 만든 불멸의 예술작품이다.

MIT 문장

MIT 문장

미국의 MIT는 미국의 산업화 시대의 결과물이다. 19세기 후반 과학과 엔지니어링 분야의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과학자도 많이 배출했지만 이 대학을 나온 후 기업을 차린 동문도 많아서 현재 MIT 동문이 만든 회사의 매출을 다 합치면 세계 경제에서 11위를 차지한다고 한다. 현재 우리가 누리는 디지털 시대에 기여한 많은 인물이 이 대학 출신이다. 지금은 기하학적인 수직 문양을 사용하고 있지만 2003년까지 MIT를 상징하는 문장은 ‘Mens et Manus’라는 라틴어를 담고 있는데 ‘정신과 손’이라는 뜻이다. 책만 읽지 말고 손도 써야 한다는 말로 왼쪽에는 기술자가, 오른쪽에는 학자의 모습을 새기고 있다.

MIT의 프랭크 게리 건물

MIT의 프랭크 게리 건물

20세기 문명은 수직과 수평의 질서를 통해 자리를 잡았다. 대학은 그러한 질서를 지키면서도 미래를 위해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기도 한다. 공대로 유명한 미국 MIT의 캠퍼스에는 건축의 새로운 모델을 보여주는 스트라타 센터(Strata Center)가 있다. 1990년대 이후 위대한 건축가로 추앙받는 랭크 게리가 2004년에 설계한 건물로 마치 찌그러진 건물처럼 수직, 수평의 질서를 파괴하고 있다. 기존의 건축 규범을 파괴하고 마치 조각처럼 다양한 형식과 재질을 사용하여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핵심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런 건물 안에서 강의를 하고 듣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간판의 미학

간판의 미학

도시마다 간판이 다르다. 서울은 한때 고속성장의 도시답게 광란의 간판이 많았으나 ‘디자인 도시 서울’사업 덕분에 다소 정비되었고 대신에 앙증맞은 간판이 늘어났다. 미국 예일대학이 있는 대학도시 뉴헤이븐은 전형적인 미국 북동부의 잘사는 도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간판도 적당하게 개성있는 디자인을 입고, 적절한 크기로 달려있다. 간판의 색깔과 형태 역시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다. 역시 도시의 간판은 간판을 주문하는 사람과 제작하는 사람의 취향이 맞아 떨어져서 나오는 ‘간판의 미학’에서 나오는 것 같다.

국제테니스 명예의 전당

국제테니스 명예의 전당

19세기 말 미국부자들이 여름을 보내던 뉴포트(Newport)에 테니스장을 갖춘 리조트인 ‘뉴포트 카지노’가 들어섰다. 잔디가 아름다운 이곳에 미국 최초의 테니스대회가 열리면서 범미국적인 관심을 받았으나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고 결국 1950년대에 들어서 건물을 구하기 위해 국제테니스 명예의 전당과 함께 소매 가게를 유치하게 된다.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양식을 수입해서 만든 단순한 건축양식의 이 건물은 세상이 변하면서 미국 최고의 갑부부터 세계 최고의 테니스 스타까지 예사롭지 않은 인간의 흔적을 담은 유적이 되었다.

바다를 배경으로 보는 미디어 아트

바다를 배경으로 보는 미디어 아트

보스턴에 가면 해안을 개발하면서 설립한 ICA가 있다. 현대예술을 선보이는 일종의 복합문화공간이다. 이 현대식 건물에 들어선 ‘Poss Family Mediatheque'는 가장 압도적인데 유리창이 보스턴 내항의 수면을 향해 수직으로 나있어서 수평선이나 하늘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수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물과 함께 컴퓨터를 통해 미디어 아트를 감상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행운의 조각상, 하버드 대학

행운의 조각상, 하버드 대학

행운을 바라는 마음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절실한 것 같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캠퍼스에는 이 대학 입학을 바라는 사람들이 손으로 만지느라 한 동상의 발이 노랗게 닳아 있다. 이 동상의 주인공은 바로 존 하버드(John Harvard)로 그가 남긴 유산으로 대학을 지은 후 그를 기리는 동상을 만들었다. 그러나 1884년 동상을 만들 때 하버드는 이미 사망한지 200년도 넘었기 때문에 동상의 얼굴은 당시 하버드를 대표할 만한 한 학생의 얼굴을 따서 만들었다고 한다. 제3의 인물을 따서 만든 하버드의 동상을 만지면서 하버드에 들어갈 꿈을 꾸는 것이다.

H&M의 문화마케팅

H&M의 문화마케팅

기업이 문화와 예술을 후원하면서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려는 전략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글로벌 시대에 들어서면서 문화예술마케팅은 필수적인 경쟁처럼 보인다. 프라다, BMW, 샤넬, 카르티에 등 유수한 기업들이 그동안 예술가와 손잡거나 문화행사를 통해 기업의 존재감을 과시한 바 있다. 지난여름 H&M은 뉴욕의 플랙쉽스토어의 건물 전면을 제프 쿤스의 작품 이미지로 도배를 하고, 같은 이미지를 담은 가방을 출시했다. 노란 풍선으로 만든 강아지모양의 이미지는 H&M의 로고와 함께 관광버스에도 나타났다. 같은 기간 동안 쿤스는 휘트니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하고 있었으니까 기업도 예술가도 윈윈하는 마케팅이다.

프리덤 타워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

프리덤 타워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

2001년 911로 사라진 뉴욕의 월드 트레이터 센터의 쌍둥이 빌딩 자리에 새로이 건물이 들어섰다. 수천 명의 희생자를 기리는 박물관이나 기념탑을 지을 것 같던 초창기 분위기와 달리 땅주인은 결국 지상 104층의 고층건물을 짓기로 했다. 맨해튼의 비싼 부동산 시장을 고려하면 이해할 만한 일이다. 아까운 월스트리트의 인재가 911의 불길과 같이 사라졌던 악몽의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건물에 벌써 중국기업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테넌트가 계약을 맺고 있다고 한다. 사람의 기억은 짧고 욕망은 강렬하다.

화분의 미학

화분의 미학

인간이 자연을 집안으로 들여오기 시작한 이후 화분은 정원과 원예에서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이집트와 로마인들은 화분에 나무와 꽃을 심어 집을 장식하곤 했다. 도자기 문화가 발달하면서 테라코타로 만들던 화분은 비싼 도기와 세라믹으로 제작되기 시작했고, 그 이후 화분을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여 다양한 형태로 생산되고 있다.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화분에도 새로운 미학이 생겼다. 소위 ‘아나바다’ 정신을 계승하여 재활용 물건, 재활용 재료로 제작된 화분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한 창의적 발상의 한 단면이다.

뉴욕의 애플 매장

뉴욕의 애플 매장

인간이 일상생활에서 누리는 테크놀로지의 최첨단 장비 중 가장 사랑하는 것은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일 것이다. 작고 앙증맞은 기계는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남녀노소가 전세계적으로 애호하는 도구가 되었다. 소비자의 마음을 훔치려는 스마트폰 제조회사의 경쟁은 선호도에 비례해서 커지고 있다. 검은 티와 청바지를 입고 소비자를 감동시키던 창립자의 정신에 맞게 애플의 매장은 캐주얼함, 실용성을 선호하는 젊은이에 맞게 디자인을 도입했다. 최신 상품을 만져보고 작동해 보는 것은 기본이고 ‘지니어스 바(Genius Bar= 천재의 카운터)'를 운영하면서 현대문명의 최전선에 있다는 느낌을 준다. 사실 이곳은 애플의 상품을 잘 아는 직원들이 고객과 상담하는 곳이다.

뉴욕의 임시 급수대

뉴욕의 임시 급수대

글로벌 도시 마다 수돗물이 안전하다고 홍보한다. 그도 그럴 것이 깨끗한 물, 건강한 물을 먹는 일은 웰빙의 척도가 되었고 20세기에 지어진 대부분의 도시는 오래된 배관 시설로 깨끗한 물을 장담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을 보내는 수원지는 깨끗할지 모르나 도시의 낡은 시설은 그 질을 보장할 수 없는지 수돗물을 외면한 시민들은 점차 늘고 있다. 서울은 아리수를 홍보하고 있는 반면에 뉴욕시는 ‘Water-On-the-Go'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여름마다 공원, 광장 등 사람이 많은 곳에 임시 급수대를 만들어 질 좋은 뉴욕물을 공짜로 마시라고 홍보하고 있다.

회전 목마

회전 목마

유럽의 오래된 도시에 가면 동네 한 가운데에 회전목마가 아이들을 유혹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원래 기마병 문화에서 비롯된 말타기가 아이들의 회전목마로 탄생한 것은 17세기 말 파리이다. 이후 기술의 발달로 회전목마는 더 정교해졌고 19세기 말이 되면 기업화된 회전목마단이 도시마다 유랑하면서 아이들을 불러 모으거나 만국박람회와 같은 행사의 인기 손님이 되었다. 이후 신대륙과 아시아로 확산되었고 놀이공원이나 테마파크의 주요 시설이 되었다. 회전목마의 문화는 오늘날 하나의 코드로 자리 잡아서 위아래로 움직이는 목마를 탄 어린 아이의 웃는 모습은 행복한 어린 시절의 상징이 되었다.

기하학과 미

기하학과 미

수학의 한 분야로 발전한 기하학은 점, 선, 면, 입체 등 기본적인 형태의 속성을 연구한다. 소크라테스는 기학학은 마치 신이 우주를 만들 때 작용한 원리와 같다고 했다. 그만큼 자연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본적인 형태가 자리잡고 있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예술가는 사물과 인간, 자연의 형태를 본능적으로 배운다. 그 안에 들어있는 질서와 조화를 포착한다. 한 예술가가 기학적 도형을 통해 미의 토대를 보여주면서 현대인의 위치를 드러낸다. 도형을 만든 재료가 색채가 가미된 플랙시글래스이기 때문이다. 1928년 개발된 이 재료는 유리보다 약하기는 하지만 가벼우면서 유리대체효과가 있어서 자주 사용되는 물질인데, 20세기 문명의 상징이기도 하다

노구치 스타일

노구치 스타일

모든 것이 조각이다. 예술가 이사무 노구치는 눈에 보이는 것을 조각으로 보았다. 일본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예술가이기는 하지만 무대미술, 디자인 등 여러 장르를 오가며 작업을 했다. 그리고 그러한 횡단이 모두 조각이라는 기본적인 활동의 연장이라고 본 것이다. 돌, 물, 나무와 같은 자연의 재료를 사용하기도 하고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램프, 커피 테이블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그의 ‘조각’의 특징은 최소한의 단위를 사용해서 최대한 추상적으로 접근한다는 것. 사진에 보이는 것이 노구치가 디자인한 램프와 가구이다. 노구치 스타일은 물질을 삶속으로 담는 스타일이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옥상정원과 댄 그래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옥상정원과 댄 그래햄

19세기 말 문화에 목마른 뉴욕시민이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과 런던의 대영박물관을 벤치마킹해서 만든 미술관이 바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다. 유럽의 양대 박물관이 모두 왕실 컬렉션에서 출발했다면 뉴욕미술관은 문화를 사랑하는 뉴요커의 선행과 의지로 탄생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이후 개인의 기증과 귀하게 구한 유물과 예술을 관리하면서 세계 4대 미술관으로 성장했는데 센트럴 파크 안에 위치하는데다가 볼거리가 많아서 누구든지 찾는 문화명소가 되었다. 옥상정원은 맨해튼 전망을 보고, 예술을 감상하고 음료를 즐길 수 있는 인기 있는 여가 공간이다.

록펠러 센터의 제프 쿤스

록펠러 센터의 제프 쿤스

도시화의 역사에서 록펠러 센터는 20세기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좁은 공간에 고층건물을 지어 기업을 유치하여 경제를 활성화하는 모델을 대표한다. 1930년대 대공황을 극복하고자 건립된 이 센터는 1980년대 말 일본기업 미츠비시가 소유한 적도 있을 만큼 뉴욕 부동산 시장의 척도가 되었다. 현재 19개의 고층건물에 수많은 국제기업, 언론이 입주해 있으며 그 센터의 한 가운데 위치한 광장에는 UN 소속 국가의 국기가 날리고 유명 예술가의 예술품이 설치되며,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진다. 광장 아래에 장식된 황금색 조각은 산업화와 도시화를 외치던 20세기 중반의 모습을, 광장 위에 설치된 예술가의 임시 설치는 지금의 얼굴을 보여준다. 최근 가장 사랑받는 제프 쿤스의 작업이 보인다.

브랑쿠지 스튜디오, 퐁피두 센터

브랑쿠지 스튜디오, 퐁피두 센터

퐁피두 센터 한켠에 브랑쿠지가 생전에 사용했던 작업실이 옮겨와 전시되고 있다. 루마니아 출신이나 파리에서 성공한 브랑쿠지는 추상조각으로 유명하다. 로댕이 <생각하는 사람>으로 인간의 고뇌를 표현했다면, 브랑쿠지는 계란형 덩어리로 인간의 머리를 단순하게 표현하여 고뇌가 사라지고 이성만 남은 인간을 표현했다. 20세기 조각의 역사를 바꾼 브랑쿠지는 자신의 작업실을 프랑스 정부에게 기부하겠다는 유언을 남겼고, 이후 퐁피두 센터에 그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스튜디오가 재건되었다.

퐁피두 센터, 파리

퐁피두 센터, 파리

1970년대 고색창연한 파리에 신종 건물이 등장했다. 복합문화공간으로 미술관, 전시장, 도서관 등 여러 기능을 결합한 ‘센터’가 바로 퐁피두 센터이다. 완성된 6층짜리 건물은 배관, 골조가 그대로 방치된 모습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배관에 기능별로 색을 입히고, 에스컬레이터가 노출되어 영원히 건축이 진행 중인 것 같은 이 건물은 이제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대표적 작업이 되었고 렌조 피아노를 비롯한 건축가 3명은 유명인사가 되었다. 깔끔하고 질서 있는 건축양식에서 벗어나 복잡하고 미완성인 건축도 가능하다는 인식의 전환을 불러온 건물이다.

팔레 드 도쿄, 파리

팔레 드 도쿄, 파리

글로벌 미술계에서 새로운 예술을 볼 수 있는 전초기지가 몇 개 있다. 뉴욕의 뉴뮤지엄, 파리의 팔레 드 도쿄가 그중에 속한다. 파리에 웬 도쿄냐고 할지 모르지만 프랑스가 제국의 영광을 누리고 있던 1937년에 연 <예술과 기술 국제박람회>용 전시장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오랫동안 제대로 사용되지 못하다가 2002년 현대미술전시장으로 개관했다. 외관은 그대로 두고 내부를 뜯어내어 창고와 같은 분위기를 살렸으며 이런 분위기를 활용한 전시를 기획하면서 ‘팔레 드 도쿄’는 전성기를 맞고 있다.

까르티에 재단, 파리

까르티에 재단, 파리

보석과 시계로 유명한 까르티에가 설립된 것은 1847년 파리. 파리가 문화의 도시로 자리를 잡은 역사와 까르티에가 성공한 역사는 서로 분리할 수 없을 정도이다. 유럽과 미주의 엘리트와 부자들이 파리에 와서 문화를 소비하면서 까르티에도 성공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명품회사로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까르티에 본사는 파리에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다. 문화의 도시에서 성공한 회사답게 1984년 예술을 장려하는 까르티에 재단을 설립했다. 장 누벨이 설계한 건물은 유리로 된 현대식 건물로 동시대 예술가를 선보이는 중요한 문화공간이 되었다.

소르본느 대학가의 카페

소르본느 대학가의 카페

파리의 소르본느 대학이 있는 동네는 ‘라틴구역(Latin Quarter)’이라고 불린다. 오래전 소르본느가 탄생한 중세는 대부분 라틴어로 말하고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지식인/성직자라면 라틴어는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 언어로, 마치 오늘날의 영어처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언어였다. 그래서 라틴어를 사용하는 지식인이 많은 곳이라는 의미로 ‘라틴구역’이 되었다. 지금도 소르본느를 비롯한 많은 대학이 밀집한 곳으로 지식인이 공부하고 놀던 동네답게 오래된 카페가 좁은 골목마다 자리 잡고 있다. 카페는 그래서 지식의 전당 뒤에 빼놓을 수 없는 여가의 공간이다.

소르본느 대학

소르본느 대학

인구감소로 한국의 대학은 구조조정중이다. 미래학자들은 대학이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의 대학은 어땠을까. 원래 대학이라는 개념은 소수의 재능있는 젊은이를 교육하는 곳이었다. 파리의 소르본느 대학은 신학자를 배출하기 위한 교육기관으로 1250년대에 설립된 대학이다. 프랑스 혁명, 교회와 국가의 분리 정책을 거치면서 소르본느도 변모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문과대학으로 자리잡는다. 다시 1968년 학생운동을 거치면서 파리 대학 시스템 속에 편입되어 지금은 오래전의 영광을 대표하는 곳이 되었다. 사진은 1880년대에 새로이 지은 소르본느 대학 본관.

파리의 오스망 양식 건물

파리의 오스망 양식 건물

1850년대 파리. 밀려드는 인구와 주거문제, 위생문제를 견디다 못해 나폴레옹 3세는 파리의 도시를 정비하게 된다. 좁은 골목, 오래된 건물을 헐고 넓은 길, 하수도, 공원, 광장 등 프랑스 제국의 수도에 걸맞는 도시계획이 추진되었다. 오늘날 파리의 구도심은 바로 이때 진행한 도시정비의 결과이다. 가로수가 있는 길, 센느 강의 섬과 육지를 잇는 다리, 기차역 광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넓은 대로변 좌우로 늘어선5-6층짜리 아파트 건물이다. 사진 속에보이는 건물이 바로 오스망 양식의 아파트 건물로 1층은 가게, 2층은 가게 주인의 집, 3층부터 중산층이 거주하는 주거공간이었다. 지금은 멋을 추구하는 부자들이 선호하는 아파트가 되었다.

갈레리 베로 도다

갈레리 베로 도다

1820년대 파리. 하수도와 포장도로도 없고, 중세시대 건물이 그대로 있던 시절, 거리는 온갖 오물의 냄새로 진동했다. 신흥 중산층이 외출해서 갈만한 곳이 많지 않던 당시, 손님들에게 도시의 오물을 피해서 깨끗하고 안락한 쇼핑 거리를 제공한 곳이 갈레리 베로 도다(Galerie Vero-Dodat)이다. 베로 도다는 최초의 아케이드형 쇼핑가로 천정은 유리로 막아 날씨를 막을 수 있었고 좌우로 배열된 가게에서 먹고 마시고, 새로운 물건을 살 수 있었다. 이후 이 모델은 파리에 널리 퍼져서 1850년대 파리에 150여개의 아케이드가 있었으나 이후 백화점의 등장으로 사양길에 들어섰다.

에펠탑

에펠탑

1890년 파리. 유럽의 제국과 경쟁하면서 자긍심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다. 마침 파리에서 열린 1889년 만국박람회를 위해 그 자긍심에 어울리는 기념물을 제작했는데 바로 에펠탑이다. 당시에 세계 최고의 높이를 자랑했던, 소위 19세기판 ‘바벨탑’이라고 할 수 있는 이 탑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으나 지금은 파리와 프랑스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문명과 문화는 논란을 먹고 자란다.

파리의 아르누보 지하철 입구

파리의 아르누보 지하철 입구

1900년 파리. 해가 지지 않은 영국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파리는 유럽에서 가장 세련된 문화의 도시였다. ‘파리 메트로’라고 불리는 지하철이 생긴 것도 이때이다. 문화의 도시답게 지하철 디자인도 아름답게 만들었다. 공모를 거쳐 선정한 디자이너 엑터 기마르(Hector Guimard)는 지하철 내부는 곡선으로 터널을 만들고 흰색 타일로 마감처리를 했으며 지하철 입구는 아르누보(art nouveau) 양식으로 만들었다. 곡선미가 넘치는 아르누보 양식은 당시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모티프를 우아하게 표현하면서 인기를 누렸던 양식이나 지금은 오래전 파리의 영광을 추억하는 기념물이 되었다.

몽마르트르

몽마르트르

19세기 말 몽마르트르는 시골이었다. 가난한 농부와 상인이 살던 마을에 예술가가 몰려온 것은 도시 개발로 파리 시내에서 비싼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피카소, 모딜리아니 등 20세기 전반 미술의 역사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긴, 그러나 가난했던 예술가가 살면서 몽마르트르는 시골 동네에서 파리의 예술가촌으로 변모했다. 오늘날 몽마르트르는 당시 예술가의 흔적을 찾아서 온 관광객으로 붐빈다. 식당, 카페, 기념품점, 교회 등 붐비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100년 전 임대로 들어왔던 예술가 덕분에 온 동네가 문화관광으로 경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선례를 보여주는 곳이다.

피카소 작업실

피카소 작업실

20세기 위대한 작가로 꼽히며 많은 예술가가 존경하는 피카소가 고향인 스페인을 떠나 파리에 온 것은 19세기 후반. 가난한 젊은 예술가였지만 그림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었던 그는 파리에서도 변두리였던 몽마르트르 언덕에 작업실을 얻었다. 그리고 그 작업실에서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렸고 신진 작가의 예술에 관심이 많던 컬렉터의 호감을 얻으면서 이후 승승장구 하게 된다. 사진 속의 건물은 피카소의 작업실이 있던 곳. 지금은 몽마르트르 박물관이 인수하여 역사유적으로 보존하고 있다. 1층에 100년 전 살았던 피카소에 대한 설명문이 보인다.

주 드 폼, 파리

주 드 폼, 파리

주 드 폼은 ‘손바닥 게임’이란 뜻으로 프랑스 궁정에서 행하던 실내 테니스 경기를 말한다. 19세기 중반 주 드 폼은 실내 테니스 코트장으로 설립되었으나 1940년대 나치가 파리를 점령하면서 이곳은 테니스가 아니라 역사적 사건으로 더 유명하게 되었다. 나치는 예술품을 약탈한 후 독일로 가져가 히틀러를 위한 미술관을 지으려고 했다. 그리고 그 약탈한 미술품을 잠시 보관한 곳이 바로 주 드 폼이었다. 주 드 폼에서 근무하던 여성 큐레이터 로즈 발랑드는 이곳을 거쳐간 예술품의 목록과 행선지를 비밀리에 기록했고, 미국을 포함한 연합군은 이를 추적하여 작품을 회수한 바 있다. 최근에 나온 영화 은 바로 이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린 영화이다. 이 건물은 현재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파리 오페라하우스

파리 오페라하우스

오늘날 글로벌 도시라면 오페라 하우스 하나 정도는 있다. 파리의 오페라 하우스는 그런 오페라 하우스의 원조격이다. 이곳은 ‘팔레 가르니에’ 또는 단순히 ‘더 오페라’라고 불린다. 파리가 문화의 도시로 성장하던 19세기 중반 샤를르 가르니에라는 건축가가 디자인했으며 장식이 많은 보자르 양식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이곳은 웅장한 외관뿐만 아니라 화려한 내부로도 유명한데, 소설 <오페라의 유령> (1910), 이후 뮤지컬로 나온 동명의 작품의 배경으로 등장했던 오페라 극장이기도 한다. 지금은 과거 제국의 향수를 머금은 곳으로 많은 관광객의 시선을 끈다.

나무의 일생

나무의 일생

모든 것이 태어나서 사라진다. 귀여운 아기는 성인을 거쳐 노인이 되어 흙으로 돌아간다. 유한한생명을 가진 만물에서 주어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는 교훈을 얻는다. 그런데 어떤 것은 죽은 후에도 쓸모 있게, 아름답게 남는다. 나무는 최선을 다해 산 다음에도 예술가의 손을 거쳐 아름다운 예술작품으로 변한다. 씨앗과 뿌리에서 자라서 녹음을 만들다가 죽은 후에는 예술로서 새로운 삶을 갖는 것이다. 인간은 죽은 후에 어떤 삶을 살 수 있을까? 영혼이 떠나버린 세상에 아름다운 예술과 감동적인 책과 같은 것으로 남아 지속되지 않을까.

아트 전화부스

아트 전화부스

상상력은 시작도 끝도 없다. 무한대로 퍼져가는 안개와 같은 것이다. 예술가들이 모여서 작업하는창작공간에는 모든 것이 상상력의 무대가 된다. 의자, 식탁, 문, 복도 등등. 한 예술가가 전화부스에 에너지를 쏟았다. 한쪽에는 전화기가, 다른 쪽에는 나무가 자라고, 나무 위에는 네온사인으로 된 ‘Art’라는 단어가 주렁주렁 열려 있다. ‘전화부스 위에 Art가 열렸네….’

뷰티 아티스트

뷰티 아티스트

사람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사람을 뷰티 아티스트라고 부른다. 아마도 인간의 미를 다룬다고 해서 붙은 명칭일 것이다. 화장술, 헤어 스타일링을 다루는 전문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 이후 미국식 소비문화가 널리 퍼지면서 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했고 특히 여성에게 경제력을 갖춘 직업군으로 인식되면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미용사나 메이크 업 아티스트는 초기에 헤어 살롱과 같은 작은 규모의 샵에서 조수로 훈련을 받기도 했지만 이후 보다 본격적인 직업학교의 등장으로 체계적인 과정을 이수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MBC와 같은 방송회사도 뷰티스쿨 사업을 벌이고 있다. Change to Artist. ‘예술가로 변하세요.’란 뜻인지 ‘예술가에게 변화를.’이란 뜻인지 알쏭달쏭하다.

도자기의 영어 명은 china이다. 중국에서 온 물건을 보고 유럽

도자기의 영어 명은 china이다. 중국에서 온 물건을 보고 유럽

도자기의 영어 명은 china이다. 중국에서 온 물건을 보고 유럽인들이 부르기 시작하면서 비롯되었다. 중국의 도자기 산업은 오랫동안 세계 최고를 자랑했고, 14세기 이후 유럽의 왕실은 중국 도자기를 수입하여 왕실을 장식하기 위해 열을 올리기도 했다. 유럽에서 본 차이나와 같은 도자기 생산에 주력하기 시작한 것은 이렇게 유럽에서 달아오른 도자기 열기 때문이기도 했다. 귀한 도자기를 장식용으로 쓰는 문화는 이후 새롭게 부상한 중산층에게도 퍼져 나갔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중산층의 수집 욕구를 채우기 위한 장식용 기념품 접시가 대량생산되기 시작해서 오랫동안 유지되었으나 요즘은 과거의 일이 되었다. 사진은 프랑스 가정에서 수집한 장식용 접시들

힐링 쇼핑

힐링 쇼핑

힐링 바람이 분지 몇 년이 되었다. 힐링 푸드, 힐링 여행, 힐링 산책, 힐링 강좌….끝도 없는 힐링의 바람은 현대인의 황폐한 마음을 보듬어줄 뭔가가 절실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 인터넷 쇼핑몰은 드디어 ‘힐링 쇼핑’을 내걸고 광고를 하고 있다. 확실히 카드로 사고 싶은 것을 사는 것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한 달 후에 날아온 카드 명세서는 그 힐링이 얼마나 순간적인 것인지 잘 보여준다. 그래서 거리의 철학자 강신주는 말한다. 힐링은 순간의 나약함을 채워주는 미봉책에 불과한 것이라고.

네모, 블루 스퀘어

네모, 블루 스퀘어

2011년 문을 연 한남동의 블루 스퀘어는 짧은 시간 동안 공연장의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언덕배기라는 지형탓에 건물의 구조와 동선이 복잡하면서도 흥미로운데, 이곳을 핫 플레이스로 만드는 요소는 또 있다. 그 중에서도 2012년 컨테이너 박스 17개를 이용해서 만든 네모(Nemo) 복합문화공간은 단연 눈길을 끈다. 노랑, 주황 등 강렬한 색채로 옷을 입은 컨테이너 박스 안에는 갖가지 전시가 열리면서 블루 스퀘어의 또 다른 얼굴을 만들고 있다. 임시 물건을 담는 구조물이 변화무쌍한 현대미술을 보여주고 있는데, 논현동에 있는 플래툰 쿤스트할레와 더불어 컨테이너 건축물에 예술을 담은 명소로 자리잡았다.

아트 페어

아트 페어

미술시장이 형성되면서 아트 페어라는 집약된 행사가 열리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쾰른, 뒤셀도르프, 바젤 등을 중심으로 아트딜러, 갤러리스트 등이 모여 단기간에 미술품 거래의 장을 만들었다. 1990년대 세계가 글로벌화 되자 유럽식 아트 페어가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홍콩의 아트 바젤, 마이애미의 아트 바젤은 이제 스위스의 원래 아트 바젤과 함께 가히 세계 최고의 규모와 수준을 자랑한다. 한국은 2000년대 들어서야 KIAF(한국국제아트페어)를 출범시켰다. 최소한 국내외 미술을 전시, 판매하는 미술시장을 만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시장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다. 올해 KIAF는 9월 25-29일 사이에 코엑스에서 열린다.

아케이드 시장

아케이드 시장

길거리에 가게가 즐비하게 생기고 사람들이 분주히 쇼핑하기 시작한 것은 중산층이 대거 출현했던 19세기 말이다. 수입이 증가한 중산층을 상대로 파리와 같은 유럽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사시사철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쇼핑객을 유치하려고 건물과 건물 사이 천정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생긴 아케이드는 이후 지하상가로, 쇼핑몰로 확산되면서 소규모 점포가 밀집된 형태로 발전했다. 하지만 집약적이면서도 효율적인 구조의 상가아케이드는 점차 구식이 되고 있다. 마치 외국의 거리를 걷는 착각을 주는 스트리트형 아케이드가 쇼핑몰, 아울렛에 도입되면서 밀리고 있다.

길거리 수제 햄버거

길거리 수제 햄버거

소고기를 갈아 조리한 후 빵 사이에 넣어먹는 햄버거가 나온 것은 100여년 전 미국에서이다. 샐즈버리 스테이크라고도 불리는 햄버거는 이후 화이트 캐슬, 맥도널드 등 레스토랑 체인이 생기면서 널리 보급되었고 지금은 미국 패스트푸드의 상징이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6.25 이후 미군을 통해 햄버거가 소개되었고 1979년 국내 최초의 햄버거 가게 롯데리아가 생겼으며, 맥도널드가 한국에 상륙한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때 문화를 개방하던 시기였다. 지금은 패스트푸드 햄버거에 맞선 수제버거가 서울을 누비고 있으며, 길거리 음식에도 퍼져가고 있다. 태평로의 한 수제버거 가게.

현대 예식장

현대 예식장

일제 시대 교회를 중심으로 서양식 결혼식이 등장한지 90년이 넘었다. 이후 ‘김구 예식부’, ‘만화당예식부’와 같은 전문 예식장이 등장했으며, 6.25 이후 점차 미국문화가 확산되면서 전통혼례식보다 서양식 결혼식이 늘기 시작했다. 베이비부머가 결혼 적령기에 들었던 1970년대 후반 이후 예식장 문화가 널리 퍼져갔으며 그 결과 하얀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는 보통 한국 청년의 결혼 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덩달아 서양식 궁전을 차용한 웨딩홀이 번성했는데 어디의 어떤 곳을 구체적으로 모방했다기 보다는 웅장함과 근사함에 영감을 받아 그럴듯하게 재창조한 공간이라고 보는 게 맞다.

프랑스 수닭 장식품

프랑스 수닭 장식품

프랑스 시골집에 빼지지 않는 장식품 중에 수닭이 있다. 일찍 일어나 꼬꼬댁하고 소리내는 영특한 비서역할을 하며, 집에서 기르는 닭들을 통솔하는 가장이 역할도 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용맹과 부지런함의 상징이 된 수닭은 이후 프랑스 혁명의 깃발에도 등장했고 20세기 레지스탕스 운동을 상징하기도 했다. 교회의 첨탑에 있는 종의 장식에도 사용되었다. 많은 프랑스인의 사랑을 받아서인지 공예품 가게에 가면 여전히 색이 화려한 수닭 장식품이 많고, 박물관에는 오랫동안 사랑을 받은 수닭 조상이 전시장을 차지하고 있다.

길

사람이 다니는 길이 생기고, 차가 다니는 길도 생겼지만 길의 진화는 끝을 모른다. 사색을 위한 올레길이 생기고 올레길을 추종하는 둘레길 등 다른 길도 생겼다. 그렇게 길은 사람과 함께 진화한다. 길에 사색이 가미되기 시작한 것은 산업화로 삶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느리게 걷는 일이 정신적으로 여유있는 시간으로 부각되면서이다. 19세기 영국인인 바로 그런 여유를 즐기기 시작한 문명인이다. 위대한 철학자들도 길을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하곤 했다. 독일 철학자 칸트는 매일 오후 3시면 마을의 길을 따라 걸었다고 하며, 일본 쿄토에 가면 니시다 기타로가 걷던 ‘철학자의 길’이 있다. 21세기 문명인에게도 이런 사색의 길이 절실히 필요하다.

절미통

절미통

밥을 지을 때마다 어머니는 쌀을 한 줌 덜어 항아리에 담았다. 그 항아리는 부엌 한 켠에 얌전히 있다가 안이 가득하게 되면 시장에서 돈으로 바꾸어 생활용품을 사거나 아이의 학비로 사용하기도 하고, 가난한 사람을 돕기도 하고, 쌀이 떨어지는 일이라도 생기면 요긴하게 사용되기도 했다. 특히 아껴 쓰는 일이 일상이던 1960년대와 1970년대 널리 퍼지면서 집집마다 꼭 갖추어야 하는 필수 항아리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옹기를 사용했는데 나중에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항아리에 절미통이라고 새긴 상품이 나오기도 했다. 이젠 쌀이 남아돌아 더 소비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쌀=주요 식량’이던 시절의 유품이다. ‘좀도리’는 전라도 지방에서 부른 절미통의 이름이다.

복개당

복개당

유구한 역사가 흐르는 동안 많은 종교가 한반도에 들어오고 생겨났다. 그 중에서도 민간에 널리 알려진 무속은 원래 여러 명의 신을 섬긴다. 이런저런 설화의 주인공을 섬기기도 하고 간혹 백성의 존경을 받은 관리나 왕을 신으로 모시기도 한다. 서울의 마포 신수동에 있었던 복개당은 역사 속에서 권력투쟁의 상징이었던 조선 시대의 왕 세조를 신으로 섬겼다. 전설에 따르면 손복개라는 마을 사람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집 마당에 걸린 세조대왕의 어진을 모시라는 말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세조의 절대권력에 압도되어 나온 조치로 보이는데 안에 모셨던 세조는 문무관을 거느린 근엄한 자세로 앉아있고 좌우로 일월도가 배치되어 있다. 1970년대 철거된 영정은 지금 박물관 유물로 전시되고 있다.

하트에 담긴 창의성

하트에 담긴 창의성

시골의 한 식당 벽에 3개의 하트 모양이 자리잡고 있다. 흙이 많은 시골이라 그런지 황토벽에다 가지런히 배열한 하트는 알록달록 앙증맞기까지 하다. 자세히 보면 사은품으로 흔한 라이터가 무수히 자리잡고 있다. 라이터로도 모자라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용 전구와 전선으로 한껏 모양을 냈다. 특별히 이름을 날릴 수 있거나 돈을 받아 팔 수 있는 전시장도 아닌데 가지런히 라이터를 붙이며 혼자 즐거워했을 주인의 얼굴이 그려진다. 아름답고 즐거운 일을 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순수한 사랑의 노동의 결과이다. 아마추어(애호가)의 창의성은 이렇게 나온다.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관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관

건축가는 건물에 영혼이 있다고 생각한다. 구 대한제국의 벨기에 영사관 건물은 손을 많이 탔으면서도 도도하다. 서양인과 일본인이 합작으로 1905년 준공되어 사용되다가 1919년부터 일본기업의 사옥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일본 군대의 사무실로 사용되기도 했고 해방 이후 해국헌병대 건물로 변신했다. 현재 우리은행 소유이지만 무상으로 서울시립미술관에 임대하여 현재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거쳐갔지만 벽돌과 석재로 된 건물은 여전히 위풍당당하게 100년 전 도도함을 뽐낸다. 건축가가 잘생긴 건물에 담아 놓은 영혼 때문일 것이다.

명동의 밤

명동의 밤

명동이 상권이 된 것은 일제시대. 남촌에 사는 일본인이 주로 쇼핑하는 동네, ‘본정’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미쯔코시 백화점이 들어서고 상권이 자리잡은 1930년대가 되면 당시 경성의 ‘모던 보이’, ‘모던 걸’은 명동에서 외국에서 온 신상품을 사고, 카페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현대인이 되기를 갈망했다. 80년이 지난 21세기 명동은 일본인, 중국인 그리고 모든 국적의 외국인이 찾아오는 쇼핑의 메카가 되어 불야성을 이룬다. 그리고 가게에는 한국산, 중국산 등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물건들이 현대인을 유혹한다.

다문화 서울

다문화 서울

글로벌 시대의 서울은 한국의 수도이기도 하지만 세계전역에서 온 사람들이 머물고 사는 다문화 도시이다. 서울에 온 이유도 다양하다. 일자리를 찾아서, 또는 여행을 위해, 때로는 결혼 때문에, 또는 정치적 난민이 되어서 등등이다. 이태원은 그러한 다문화 서울의 현재를 잘 보여준다. 무슬림 교회에서부터 프랑스 빵집, 독일식 식당에, 글로벌 취향을 보여주는 맥주집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울려 퍼지는 언어도 영어, 독어, 프랑스어, 아랍어 등 셀 수 없이 다양하다. 사진은 이태원의 한 카페에서 연 아랍어 수업장면.

봄-복수초

봄-복수초

봄을 알리는 식물은 굳은 얼음과 차가운 바람을 견뎌야 한다. 복수초는 눈을 뚫고 자라는 강인한 꽃 중의 하나지만 여름이 오면 더위 속에서 사라져 버린다. 우리나라 산야에 야생으로 자라는 복수초는 오랫동안 그저 무심한 눈길을 받으며 약초로 살아남았다. 福壽. 복 복에 장수할 수. 이름에도 아시아인이 애호하는 의미를 그대로 담고 있다. 일본에서는 장식꽃으로 즐겨 사용하는데 우리나라는 최근 야생화 재배 바람이 불면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봄-제주 유채꽃

봄-제주 유채꽃

겨자과에 속하는 노란 꽃, 유채꽃이 피는 봄이다. 원래 제주인은 유채 잎과 줄기를 데쳐서 먹고, 씨앗은 기름을 얻는데 사용했다. 이젠 봄을 알리는 전령사가 되었는데 제주에서 남해안까지 그 영토도 넓어지고 있다. <제주 서귀포 유채꽃 국제 걷기 대회>는 제주의 봄의 상징인 유채꽃을 보면서 건강한 걷기운동을 접목한 행사로 올해 16회를 맞는다. 이 행사는 몇 년 전부터 부는 ‘올레길 걷기’문화를 확산시키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올해는 3월 29-30일 사이에 열린다. 성산 일출봉을 배경으로 본 유채꽃 밭.

차길 위의 사람들

차길 위의 사람들

길에 사람을 위한 인도가 따로 마련되기 시작한 것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이다. 중세에는 길이 좁아지면서 인도가 사라졌지만 17세기에 들어서면서 말과 사람이 다니는 길이 다시 분리되었고, 19세기에는 늘어난 인구를 소화하기 위해 전반적으로 도로가 정비되기 시작했다. 오늘날은 차가 달리는 차도가 인도보다 더 넓으며 차도는 감히 보행자가 범접하지 못할 위험한 공간이자 차만을 배려하는 배타적인 공간이 되었다. 예외적으로 축제가 열리면 차도는 잠시 보행자에게 개방되는데 아스팔트 차도 위를 자유롭게 걸으면 왠지 낯설면서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마도 금지된 공간에 들어왔기 때문일까?

디자인을 입은 버스 정류장

디자인을 입은 버스 정류장

우리나라 도시에 디자인을 입히는 운동이 불기 시작한지 10년이 되어간다. 서울을 시작으로 ‘디자인’이 깃든 도시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고 실제로 가시적인 결과들이 나타났다. 간판의 크기가 작아졌고, 대형건물 외벽에는 미디어 작업이 종종 나타난다. 한강 위에는 근사한 랜드마크 건물이 들어서 둥둥 떠있다. 비롯 완전히 사용되지 못하기는 하지만. 디자인 바람은 지방에도 불기 시작했다. 광주, 부산, 청주 등 글로벌 문화 도시를 지향하는 곳에 점점 세련된 디자인이 거리를 덮기 시작했다. 사진은 대형간판을 뒤로 하고 나무를 형상화한 산뜻한 버스 정류장을 설치하는 청주의 모습.

다남 베개

다남 베개

옛날 옛적, 여성이 서당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바느질, 서화로 소양을 닦던 시절, 자수는 거의 필수적인 공예였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일상용품에 자수를 놓았는데 그 중에는 베개모와 베개의 양쪽 마구리도 있었다. 멀리 나가기도 못하고, 기왓집 울타리 안에서 가문이 중시하는 가르침을 받들며 살다가 나이가 차면 시집을 가는 것이 여자의 일생이었고 ‘다남’, ‘자’라고 한자로 새긴 베개를 가지고 시집을 기곤 했다. 아들을 많이 낳아서 남편의 대를 잇는 것이 가장 큰 미덕이던 시절, 예쁜 꽃 문양과 함께 ‘다남’이라고 새기는 일은 마치도 자신이 부질없는 존재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을 것이다. ‘다남’이 여성만의 능력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고, ‘딸바보’가 유행어가 된 오늘날 ‘다남 베개’는 그 옛날 쓰라린 여성의 삶을 보여주는 유물이 되었다.

혼례용 양초

혼례용 양초

두 집안의 결합을 알리고 두 남녀의 한평생을 약속하는 전통결혼식은 화려한 물건으로 가득 찬 혼례상을 가운데 놓고 진행된다. 사철나무, 대나무, 동백나무로 장식하고, 청홍색 촛대에 불을 켜며, 봉황을 상징하는 조각품이나 닭 암수 한쌍을 올리기도 한다. 촛대도 그냥 두지 않고 목단무늬와 여러 장식을 혼합하여 경사스러운 날을 기렸다. 목단은 꽃 중에서도 기품있고 아름다워서 문양으로 만들 때 화목과 번영, 부귀영화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식이 끝나면 친지, 이웃과 잔치를 벌여 음식을 나눠 먹으며 좋은 날을 축하했는데 오늘날 호텔식 결혼식에 부조금 봉투만 늘어가는 결혼식과는 확실히 격이 다른 시대였다.

야간 조명

야간 조명

사람이 사는 도시에 야간 조명은 오랜 숙원이었다. 기름, 석탄을 이용한 조명을 사용하다가 본격적으로 길거리 가로등에 가스등을 사용한 것은 19세기 초반이다. 당시 산업혁명의 중심이었던 런던, 파리를 중심으로 가스등이 도입되었고 20세기에 들어 전기등이 활용되기 시작했다. 20세기 중반이 되면 미국을 중심으로 크리스마스에 조명장식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오늘날은 문명의 상징처럼 일본,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에도 널리 확산되어 크리스마스뿐만 아니라 일년 내내 도시 야간 조명이 다채롭게 사용된다. 하지만 에너지 낭비라는 주장과 도시의 즐거움을 확대하는 장치라는 의견대립은 팽팽하다.

거리의 악사

거리의 악사

인류의 문명이 발달하면서 거리 공연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로마시대에도 있었고 중세를 거쳐 근대와 현대로 이어지는 동안 음악, 연극 등 자신의 재능을 보여주고 돈을 받는 사람은 거리에 항상 있었다. 거리의 악사는 일본, 중국 등 비서구권 문화에도 존재한다. 사람이 있는 곳이면 길거리 어디엔가 음악소리가 들리고 왁자지껄한 놀이판이 벌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거리공연을 완전히 금지하는 지역이 생기고 등록을 거쳐야 공연자격을 얻는 등 길거리 예술에 대한 대접이 예전과 같지 않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도시는 길거리 예술을 교통질서위반, 소음공해 등의 문제로 보기 때문이다. 사진은 인사동에서 연주하는 외국인 악사.

아프리카 게스트하우스

아프리카 게스트하우스

여행을 좋아하는 주인(그를 촌장이라 부른다)은 10년이 넘도록 세계를 돌아다녔지만 아직 아프리카를 가지 못해서 언젠가 가리라는 꿈을 가지고 만든 게스트하우스이다. 고향인 제주에 돌아와 만든 게스트하우스는 자유분방한 촌장의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주는데 대부분의 가구와 인테리어는 그가 직접 만든 것들이다. 고즈넉한 해변가에 있는 이곳을 올레길이 통과하면서 비슷한 취향의 여행객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제주에 자리잡은 아프리카 사랑. 문화는 이렇게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복을 부르는 두꺼비

복을 부르는 두꺼비

발가락이 3개인 두꺼비는 복을 불러오고 액운을 제거한다고 한다. 고대 중국의 설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원래 두꺼비는 발가락이 4개인데 그 중에 기형인 두꺼비가 복 두꺼비로 둔갑한 것이다. 복 두꺼비 이야기는 행운을 바라는 현대인에게도 매력적이다. 두꺼비 꿈은 길한 꿈이라고 하고 금 두꺼비는 귀한 선물이 되었다. 한 식당 앞에 세워진 두꺼비 조상이 넉넉하게 자리잡고 앉아 자신의 발가락 3개를 쩍 벌린다. 이 두꺼비를 사진을 보시는 여러분께 올 한해 복이 가득하시길.

예술가의 맛

예술가의 맛

한동안 인문학 강좌가 유행했고, 예술 강좌도 유행했다. 이젠 ‘융합’의 시대라고 예술과 와인, 영화와 음식, 색과 냄새 등 서로 다른 것들을 결합시키는 강좌, 마케팅이 유행이다. 아마도 미술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의 식당처럼 이 마케팅이 반가운 곳도 없을 것이다. 후기 인상파의 대가 세잔느, 낭만주의 조각의 대부 로댕, 색채의 마술사 마티스를 주제로 맛과 미의 향연을 소개하는 어느 일본 미술관의 식당. 과연 맛도 3명의 예술처럼 개성이 있을진 모를 일이다.

칼더의 모빌

칼더의 모빌

아이들 방에 하나씩은 있음직한 모빌. 현대미술관이라면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모빌. 장난감이 예술로 변했다. 바로 미국작가 알렉산더 칼더의 이야기이다. 그가 미술을 공부하려고 파리에 머물던 1920년대, 새로운 것이라면 다 시도되고 있었던 이곳에서 주변의 권유로 장난감을 만들기 시작했고, 어릴 적부터 뚝딱거리는 데 일가견이 있었던 그는 곧 재주를 인정받았는데 호앙 미로, 피에트 몬드리안 등을 만나면서 점차 움직이는 추상조각으로 분야를 확대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 이후 빨강, 검정 등 원색 금속판이 매달린 모빌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사진은 일본의 한 미술관에 설치된 칼더의 모빌.

테쉬폰

테쉬폰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파르티아 왕국의 수도 테쉬폰 (Ctesiphon)에는 아치형의 독특한 궁전이 있었다. 근대에 들어서 아일랜드계 호주인 엔지니어 제임스 월러(James Waller)가 콘크리트에 천을 첨가하여 철골구조가 없이도 집을 지울 수 있는 기법을 발명하였다. 비용이 적게 들었던 이 기법은 카톨릭 신부들이 전세계로 포교활동을 하면서 현지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신속히, 저렴하게 개선하는데 사용되었다. 아일랜드계 카톨릭 신부가 세웠던 제주의 이시돌 목장에는 바로 이 테쉬폰 기법으로 지은 집이 남아있는데 작은 방 몇 개로 이루어진 소박한 집으로 한때 농장의 일꾼들의 소중한 보금자리였다.

예술가가 되어보세요!

예술가가 되어보세요!

보헤미안과 공예가,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서귀포 예술시장은 호객하는 광고도 남다르다. ‘예술가가 되어보지 않으실래요?’ 이 곳은 창작자들이 물건을 나와서 팔기도 하지만 시장에 들린 사람들이 참여해서 직접 그리거나 만드는 체험형 가게도 있다. 토요일 오후 느릿느릿 나온 사람들과 호기심 많은 어린 아이들이 어울려 적은 돈을 주고 뭔가를 만들어 본다. 아마도 물건을 사는 일에만 익숙한 사람들에겐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담백한 시간일 것이다. 다음 순서는 돈을 주지 않고서 집에서 쓰지 않는 물건을 가지고 뭔가를 만드는 것. 완전한 나만의 시간과 체험이다.

거리 시장

거리 시장

사람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시장이 탄생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날 교회나 사원 근처에 생기기도 했고 어선이나 상선이 물건을 내리는 항구에 생기기도 했다. 장터가 따로 만들어지자 인근의 온갖 소식과 새로운 정보와 기술을 거래하는 문화가 퍼지기도 했다. 그러나 근대화,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장터는 정보와 대화의 장보다는 흥정의 장이 되었고 대형마켓이 확산되자 손님을 부르는 종업원의 목소리만 들린다. 이제 장터 만들기는 행정기관에서 도시문화활성화 차원으로 향수와 낭만을 불러일으키는 전략적 문화사업이 되었다. 사진은 서귀포의 예술가를 위한 길거리 시장.

야생화 정원

야생화 정원

자연을 인간에 가깝게 끌어오는 방법 중의 제일 즐거운 일이 정원이다. 한때 서양의 꽃들이 수입되어 우리 정원을 채웠는데 10여년 전부터 야생화를 기르는 일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자연에서 거칠게 자란 녀석들을 사람의 손으로 키우는 일은 세밀함을 요한다. 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빛은 얼마나 좋아하는지, 시시콜콜 알아야 잘 키울 수 있다. 그 개성을 파악한 후 적절한 화분을 맞춰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잘난 척하는 녀석인지, 아니면 수줍어하는 녀석인지 알아야 조화로운 정원을 만들 수 있다. 주인의 섬세함이 묻어나는 한 야생화 정원.

아마추어 화가

아마추어 화가

아마추어는 미숙한 사람을 말하지 않는다. 라틴어 amator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원래 ‘애호자’를 의미한다. 그러니 오늘날 수많은 애호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기술과 예술이 발전하는 밑거름이다. 그들이 없다면 몇 명의 프로페셔널만 있는 세계는 황량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 바닷가에서 한가하게 파도를 그리는 아마추어 화가의 모습이 한가로워 보인다. 그는 미술시장이 요동쳐도, 가짜와 진짜의 논란도, 작품을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스트레스도 감히 넘볼 수 없는 고요한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저 광활한 바다 앞에서도 여유롭기 그지없다.

옹기 항아리

옹기 항아리

최초의 농부는 여성이었다고 한다. 들판에서 우연히 곡식을 거두기 시작한 후 먹거리를 보관하려고 토기를 만들기 시작했고, 불에 굽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옹기가 개발되었다. 불을 땔 때 나무에서 생기는 재가 불길을 따라 옹기표면에 달라붙어 생기는 천연유약은 옹기의 색을 다양하게 만든다. 술, 장을 담그는 발효문화가 널리 퍼지자 옹기항아리의 디자인과 크기도 다양해졌다. 계급사회가 자리를 잡으면서 집안의 장독대를 보면 그 가세를 가늠할 정도였는데, 오늘날 장독대는 고택, 사찰이나 식당 등 사업체가 아니면 보기 어려운 시설이 되고 말았다. 한 식당의 장독

대리석

대리석

야산을 깎아서 대리석 덩어리를 만든 후 건축물에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부터이다.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장점 때문에 큰 건물의 기둥에 많이 사용되었는데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이 그 예이다. 원래 흰색의 무결점 돌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marmaros’에서 비롯된 대리석(marble)은 이후 흰색뿐만 아니라 갈색, 회색 등 온갖 종류의 색을 가진 돌을 말하게 되었다. 성당, 궁전 등 중요한 건물에 꼭 대리석이 들어가자 대리석의 문양은 고급스러움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보통 건물에도 장식용으로 대리석판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높은 수요를 맞추느라 합성대리석이 나오기도 했다. 화려한 문양을 자랑하는 사진 속의 대리석벽은 강남의 한 지하철역의 벽이다.

아치

아치

두 개의 벽을 이은 후 위에서 연결하는 구조를 아치(arch)라고 하는데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처음 벽돌로 개발한 건축방식이다. 그리고 아치를 활용하여 다리, 건물, 창문 등 온갖 종류의 건물에 응용한 것은 로마인들이다. 이후 중세와 근대를 거치면서 아치는 서양건축의 필수요소로 자리잡았고, 아치가 여러 개 연결된 구조를 아케이드(arcade)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특히 보행자를 궂은 날씨로부터 보호하는 아케이드는 근대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했으며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쇼핑몰에 많이 쓰이기 시작했다. 현대에는 철골로 아치를 만들기도 한다. 넉넉하게 퍼진 사진 속의 아케이드는 서울의 한 지하철역의 환승 통로이다.

소금과 돌

소금과 돌

예술가는 아름다운 세계만 찾지 않는다. 스스로 성장하면서 책임감 있는 인간이 되고자 노력하는 예술가도 있다. 김주현 작가는 자연과 생태에 관심이 많은 작가다. 자연과 생태가 파괴된 세상이라면 인간도, 예술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남도의 염전에서부터 제주도의 돌까지, 버려진 화분에서부터 문명의 찌꺼기인 신문지까지, 이 작가에게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최근 제주도에서 연 전시에는 소금 2톤과 제주도에서 구한 현무암을 가지고 마치 섬들의 바다처럼 만들었다. 얼마나 친환경적인 재료인가!

점집

점집

인간이 자신의 운명과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오늘날처럼 불안감을 친구처럼 안고 살아가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래는 좀처럼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불명확한 미래를 알려줄 것만 같은 실마리가 있기는 있다. 오래 전부터 사주, 궁합, 수상, 관상, 해몽 등 온갖 방법이 등장해서 마치 그 실마리를 보여줄 것처럼 인간을 설득한다. 낙원동 길거리의 한 포장마차는 그런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사주와 궁합과 같은 오래된 예측에서부터 사업, 승진, 이사, 매매 등 현대인이 궁금한 사안까지 모두 해결해 줄 것처럼 유혹한다.

해주백자

해주백자

흰색 백자토 위에 푸른 코발트 색으로 문양을 그린 도자기를 청화백자라고 한다. 중동에서 개발된 푸른 염료는 9세기경 중국에 수입되었고 이후 14세기경 처음으로 세련된 청화백자가 탄생했다. 한국은 왕실의 주도하에 15세기경에 경기도 광주를 중심으로 청화백자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왕실에서 관장하던 도화서 화원의 화가가 도자기 위에 풍경, 꽃 등의 그림을 그려 넣어서 당대의 취향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후 19세기가 되면 도자기 산업도 민영화되기 시작해서 해주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사진 속에 보이는 도자기는 약간 투박하면서도 호방한 문양과 형태를 보여주는 해주의 청화백자이다.

재활용 벤치

재활용 벤치

환경보호와 에너지 절약이 시대의 화두인 오늘날 일상에서 쓰는 가구도 지속가능성을 표방한다. 반짝반짝, 세련된 재질로 만든 근사한 가구가 아니라, 재활용한 재료, 재활용 가능한 재료, 자연자원을 절약하는 재료로 단순한 기능을 강조한 가구가 나오고 있다. 사진 속에 보이는 벤치는 그러한 재료로 만든 가구로 소박하면서도 검소한 정신을 보여주는데 안락함이나 편리함과는 다소 거리가 멀 수도 있다. 녹색 시대에 인간이 지구보호라는 대의를 위해 감내해야 하는 불편함이다.

가게 앞의 홍보원

가게 앞의 홍보원

새로 출시된 상품을 알리는 홍보원이 열심히 몸을 숙이며 인사한다. 자세히 보면 전동장치가 달린 마네킹이다. 마네킹이 가게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5세기 유럽. 19세기엔 파리의 가게에 널리 퍼지기 시작했고, 오늘날도 패션과 관련된 가게에 필수적인 물건이 되었다. 드디어 서울의 한 핸드폰 가게에도 마네킹이 등장해서 상냥하게 들어오라고 권하고 있다. 그런데 상냥한 홍보원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다. 짧은 스커트에 날씬한 몸매. 2013년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한국의 세계 양성평등 순위는 136개국 중 111위로 아랍국가와 유사한 수준이다. 여전히 남성중심적인 사회답게 감성노동자의 전형도 여성이다.

녹색 건물

녹색 건물

문명사회에 에너지 위기가 닥친 후 에너지를 줄이고 환경에 피해를 덜 주는 녹색 건물(Green Building)이 화두가 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는 녹색 시대라고 할 정도로 에너지 효율성, 건물의 크기 및 디자인, 물, 쓰레기, 운영비 등에 있어서 효율성이 높은 건물을 장려하고 있고 이제 전 세계적인 추세가 되었다. 건물외부를 풀로 덮거나 실내에 정원을 들여서 건물온도를 조절하거나 태양광을 도입하는 등의 기술이 널리 퍼지고 있다. 전통을 자랑하는 서울의 한 유명 호텔도 녹색 시대에 맞게 외관에 초록을 입혔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산소를 내뿜는 풀이 아니라 플라스틱 모형이다. 아마도 녹색 시대에 동참하려는 마음만 앞섰던 모양이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지난 9월, 강북에 새로운 문화시설이 생겼다. 문화향수 기회의 확대차원에서 서울시에서 설립한 북서울 미술관이다. 시청인근에 서울시립미술관이 있다면 하계역에서 가까운 강북의 공원에 북서울 미술관이 있다. 이 미술관은 벌써 이 동네의 명물로 동네 아파트 단지에서 가족 단위로 온 관람객들로 붐빈다. 지하의 강의실에는 교육프로그램, 심포지엄, 강연회가 이어지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경제적 효과를 직접적으로 계산한 수 없는, 그러나 행복하고 건강한 인간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예술 경험의 확대를 위해 공적 투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 파급효과가 얼마나 즉각적인지 잘 보여준다.

무라카미의 가벼운 예술

무라카미의 가벼운 예술

만화는 어릴 적부터 아이들의 마음과 정신을 사로잡는다. 일본의 만화문화는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데 일본작가 다카시 무라카미는 어른이 되서도 동심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애니메이션에서 영감을 받고 만든 캐릭터를 통해 세상의 부조리, 즐거움을 예술작품으로 담아낸다. 미술학 박사학위까지 마친 그는 그러한 자신의 미술을 ‘수퍼 플랫 (super flat)’이라고 명명했다. 최고로 가벼운 미술이라는 뜻이다. 만화처럼 가볍게, 무겁지 않게. 예술도 삶도 항상 무겁기만 하면 재미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우스 갤러리

하우스 갤러리

갤러리는 예술을 파는 가게를 말한다. 과거에는 보통 가게자리에 근사하게 꾸민 갤러리가 들어섰었는데 지금은 온갖 장소가 갤러리로 변한다. 그동안 정미소, 다방, 목욕탕 등 기존의 기능이 다한 공간을 예술공간으로 바꾼 사례가 있었다. 청담동 갤러리 타운에 주택을 개조한 갤러리가 2006년 들어섰다. 주인의 이름을 따서 유진 갤러리라고 명명했는데 전시, 아트 컨설팅 등 사립화랑이 보통 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도 부동산 가격이 높은 동네의 집을 개조해서 그런지 뭔가 달라 보인다.

밥솥 아트

밥솥 아트

평범한 것을 색다르게. 진부한 것을 새롭게.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치기 어린 장난에서부터 진지한 탐구에 이르기까지 온갖 실험을 할 수 있는 분야가 예술이다. 밥솥에 예술을 입힌다면?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 예술가들에게 구형 밥솥을 주고 아무거나 해달하고 했더니 형형색색 얼굴로 단장을 시켜놓았다. 맛있는 밥을 먹고 싶은 솥이 아니라 눈요기, 감상거리로 변해버렸다. 이제 밥솥은 사라지고 볼거리 예술, 근사한 오브제가 등장했다.

나무 벤치

나무 벤치

다년생 풀 대나무의 종류만도 1450가지나 된다고 한다. 동아시아, 동남아시아에서 주요한 자원인 대나무는 호주 북부, 아메리카 대륙과 아프리카 일부에서도 자란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아시아문화는 대나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건물을 지을 때 장비로 쓰기도 하고 무기, 가구, 서예도구, 그릇, 음식재료로도 사용한다. 뿐만 아니라 길고 오래 자라는 성질을 높이 사서 장수의 상징이기도 하여 그림에도 많이 등장한다. 사진에 보이는 것은 대나무를 활용하여 만든 예술적인 가구. 앉을 수도 있고 누울 수도 있으니 벤치와 평상 중간 정도 되겠다.

대나무 바구니의 변신

대나무 바구니의 변신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닌 대나무. 쑥쑥 자라 하루에도 수십 센치에서 1 미터 씩 자라는 대나무는 총 60 미터까지 자란다고 한다. 잘 자라고 사시사철 푸르러 보기에도 좋고 쓰임새도 좋아 사람에게 유익한 식물이 아닐 수 없다. 대나무를 가지고 물건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수백 년이 되었다고 한다. 바구니, 차 도구, 부채, 가구 등 사람이 만들 수 있는 종류도 다양하다. 최근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선보인 바구니를 이용한 설치작업. 물건을 담는 용기를 거꾸로 매달아 곶감처럼 주렁주렁 매다니 마치 버섯무리처럼 살아있는 것 같다.

샘소나이트 여행가방과 예술가가 만나다.

샘소나이트 여행가방과 예술가가 만나다.

여행 가방으로 유명한 샘소나이트. 1910년 미국 덴버에서 처음 시작된 회사로 성경에 나오는 거인 삼손을 따서 가방의 브랜드 명칭을 만들었다가 1941년 샘소나이트(Samsonite)로 바꿨다. 이 회사는 여행인구가 증가하면서 찢어지지 않고 가볍고 튼튼한 가방이 필요해지자 크게 성장했다. 한 때 미국시장을 주름잡았지만 지금은 해외에 공장을 두고 전 세계 시장을 상대로 영업을 하고 있다. 여행가방의 디자인에 예술가의 아이디어를 입히는 것도 그런 영업의 일환이다. 2012년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에 갤러리들과 나란히 부스를 열고 예술작품처럼 여행 가방을 전시하자 특이한 상품을 좋아하는 관객의 발이 끊이지 않았다.

도심의 고물상

도심의 고물상

사람이 지나간 곳에는 꼭 부산물이 남는다. 쓰다버린 종이, 책상과 의자, 헤어 드라이어, 세수대야 등등. 어떤 것은 그대로 버려지기도 하지만 그중에서 자원으로 재활용할 만한 것을 골라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도시에서 살아가는 인간과 고물상은 쓰고 버리고 처리하는 관계를 만들어왔다. 최근 이런 고물상이 폐기물에서 나온 중금속 때문에 토양 오염을 초래하는 부정적인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환경부는 폐기물관리법을 만들어 고물상을 관리하기 시작했는데 전국의 고물상 주인이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이 법 때문에 생계가 어려워진다고 집회를 열었다고 한다. 건강한 환경과 지구의 자원보호를 위해 법도 필요하고 고물상도 필요하다. 슬기로운 해결책이 절실하다. 세련된 주상복합 건물 바로 옆에서 할 일을 다하는 고물상의 모습.

소리박물관, 서귀포

소리박물관, 서귀포

체험경제가 문화를 강타한지 꽤 되었다. 어디를 가도 체험을 외친다. 음식체험, 신상체험, 딸기 따기 체험 등등. 박물관도 마찬가지다. 만지지 말라는 경고를 보면 움츠려들다가도 체험할 수 있다는 곳이 있으면 쏜살같이 모여든다. 만지고 듣고, 누르고, 먹어보고 입어보면서 이곳에 왔다는 사실도 체험하고, 지식을 쉽게 향유하면서 만족도 얻는다. 그러니 박물관 마케팅에도 체험 프로그램은 필수가 되었다. 오감을 만족시키는 기회 만들기. 입장객 수가 박물관의 성패를 가늠하는 시대에 사람을 부르는 방법은 당분간 계속 인기를 누릴 것이다.

메르츠바우, 하노버

메르츠바우, 하노버

예술가들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을 것 같은 물건에도 적잖은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뭔가를 만들어내는 데 특별히 용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바로 창의성의 발현 그 자체 이외에는 별 목적이 없다. 20세기 초 일련의 작가들이 그렇게 별로 쓸모가 없는 물건을 모아 창의적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쿠르트 슈비터스(Kurt Schwitter)이다. 그의 작업 중에서 독일 하노버의 자신의 아파트를 추상적인 구조와 물건으로 채워 넣은 메르츠바우는 단연 압권이다. 나치를 피해 떠난 1937년까지 14년 가까이 매일 자신의 집이자 작업실의 구조를 바꾸면서 건축, 설치 등 어떤 용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종합예술작업을 만들었다. 하노버의 스프렝겔 미술관에 설치된 메르츠바우.

제천 리솜 포레스트

제천 리솜 포레스트

리조트가 ‘힐링’을 품었다. 해발 500미터의 높은 산 속에 위치한 리솜포레스트는 맑은 공기 속에서 쉴 수 있도록 설계된 곳이다. 커다란 건물에 호텔처럼 수백 개의 방을 만들었던 과거 리조트와 달리 빌라처럼 독립된 건물 200여 채에서 숙박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스파, 식당, 카페의 메뉴도 모두 건강과 치유를 지향하는 것들로 채워져 있다. 주중에는 바쁜 도시에서 일을 하고 주말에는 고즈넉한 산속에 들어와 가파른 언덕과 숲속을 거닐며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싶은 현대인들에게 적합한 모델이다. 세련된 건축과 조경덕분인지 공격적인 마케팅 덕분인지 국내 유명 드라마와 잡지에 자주 소개되기도 한다. 카페에서 본 풍경.

영월 한반도 전망대

영월 한반도 전망대

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 옹정리. 수많은 이름 중에 하필이면 한반도일까. 산세가 좋고 석회암 등 자연자원이 풍부한 영월에 한반도 모양과 흡사한 지형이 있기 때문이다. 강원도 양구군에는 한반도 섬이 있다. 영월의 지형은 자연적인 풍화에 의해 깎인 산이 한반도 모양을 형성하고 있고, 양구의 섬은 습지를 개발한 호수 내에 인공적으로 만든 섬으로 양구군이 한반도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일종의 테마형 섬이다. 영월의 한반도는 자연의 에너지가 만들어내는 비술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고 양구의 한반도는 인간이 가진 재능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동강국제사진제, 영월

동강국제사진제, 영월

강원도 영월에 위치한 동강사진박물관은 지방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수준 높은 전시로 유명하다. 바로 한국사진계의 전문가들이 운영과 작가선정에 대해 조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설전도 볼만 하지만 2002년부터 시작된 동강국제사진제는 올해 12회째를 맞는다. 가난한 영월군의 예산에 비해 전시의 질은 가히 국제적이다. 외국현대사진의 흐름을 보여주고, 유망한 사진작가를 선정하여 상을 주기도 한다. 해마다 여름에 열리는 이 사진제와 인근 문화유적을 보기위해 영월군 인구보다도 더 많은 수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문화가 일으키는 작은 변화이다.

동강사진박물관, 영월

동강사진박물관, 영월

과거 강원도 영월에는 탄광이 있었다. 1970년대까지도 17만이 넘는 사람이 북적이던 곳이었지만 탄광이 사라진 지금은 간신히 4만의 인구를 유지하고 있고 노인 자살률은 전국 상위권이다. 경제가 동력을 잃고 마을은 성장하지 않자 영월은 10여년 전부터 문화자산을 활용한 새로운 도약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단종의 묘, 김삿갓 유적지뿐만 아니라 새로이 곤충박물관, 아프리카미술박물관, 동강사진박물관 등 16개의 박물관을 지어 ‘박물관 고을 특구’로서 관광객 유치에 공들이고 있다. 사진에 보이는 곳이 한국 최초의 공립 동강사진박물관으로 한미약품이 설립, 운영하고 있는 서울 송파구의 한미사진미술관과 함께 유일하게 사진을 전문적으로 전시하는 곳이다. 영월군청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가을 고추

가을 고추

16세기경 우리나라에 들어온 고추는 한국음식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맛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매콤하면서 달콤한 고추장은 어디에도 없는 한국의 문화이다. 태양초. 언제부터인가 햇볕에 빨갛게 익고, 다시 햇볕에 잘 말린 고추를 부르는 말이 되었다. 어딘가 마케팅 냄새가 나는 단어이긴 하지만 정감이 가는 말이다. 가을이 오면서 고추를 재배하는 집마다 태양초 말리기에 한창이다. 아직은 초록색인 꼭지와 잘 익은 붉은 색이 보색을 이루며 고혹적인 고추의 자태를 뽐낸다. 언젠가 그 고추로 만든 고추장을 먹는 날을 상상하면 자연에 감사하게 되는 계절이다.

가을 정원

가을 정원

사람이 자연을 길들이기 시작한 이래로 정원은 가장 인간적인 자연이 되었다. 자연 속에서 자유분방하게 자랄 수도 있는 나무를 가지런히 배열하고, 형상을 만들어내는데 마치 잘 깍은 사람의 머리를 보듯이 잔가지를 정리한다. 유럽의 수도원이나 왕실의 유명한 정원은 대부분 이런 정리와 장식을 거친다. 때로는 가지정리를 넘어 식물의 색, 꽃의 색을 고려해서 정원의 배치를 질서 있게 만들기도 한다. 주변 건축의 형상과 색채와 어울리게 배치하기도 하고, 조각상이나 예술작품을 배열하기도 하는데 거의 예술의 경지에 와 있다. 사진은 서양의 정원술을 응용한 통영 외도의 정원.

일본 가정의 정원

일본 가정의 정원

황실, 귀족, 사찰 등 권력의 중심에 있던 일본인들은 모두 정원을 좋아했다. 중국에서 수입한 정원 문화에 불교의 사상과 융합하여 일본식 정원문화를 만들어 냈고 오늘날 세계에 뽐낼 만한 문화를 구축했다. 그러나 귀족이나 부자와 달리 평범한 일반인에게 정원을 만들 땅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 한그루, 꽃 몇 송이를 즐기려는 마음까지 부족한 것은 아니다. 사진에 보이는 모습은 작은 다다미 건물 앞 주차장 공간을 쪼개서 만든 녹음이 우거진 정원이다. 가진 것이 적을수록 인간은 더 창의적으로 변한다.

교토 인화사(닌나지) 금당

교토 인화사(닌나지) 금당

9세기 말 설립된 교토의 인화사는 수백 년간 일본 황실의 일원이 주지를 맡아온 절이다. 심지어 우다 황제는 왕위를 버리고 이곳의 주지스님이 되었을 정도로 일본 황실과 인연이 깊다. 그래서인지 황제가 방문했을 때 거처하는 숙소가 따로 마련되어 있고 5층 목탑, 금당 등 들어선 건물 모두가 타 사찰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웅장하고 화려하다. 그중에서도 금당은 실제 황실에서 사용하던 건물을 1637년에 옮겨와 본당으로 만든 것인데 고대 백제의 건축을 수용한 흔적을 볼 수 있다. 6세기부터 수입한 한국의 넉넉한 곡선과 안정된 구조가 일본 황실의 절에 그대로 남아 있는데 문화의 흐름은 아무도 막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교토 용안사(료안지) 호조

교토 용안사(료안지) 호조

용안사 바위정원으로 들어가려면 ‘구리’라고 불리는 건물을 통과한 후 이어진 ‘호조’로 들어가면 왼쪽으로 고즈넉한 정원이 보인다. 원래 구리는 부엌이 있는 살림공간이고 호조는 선불교 승려가 거처하던 건물로 손님을 맞는 용도로 쓰이는 넓은 다다미 방이 여러 개 연결되어 있다. 선불교 승려는 호조의 다다미 방을 둘러싼 여러 문에 그려진 그림을 감상하기도 하고 남쪽으로 난 문을 열고 바위정원을 보면서 명상할 수 있다. 후수마에라고 불리는 문그림은 원래 중국회화의 영향을 받았다가 점차 일본식으로 자리잡았는데 금박으로 칠한 화려한 그림부터 단순한 수묵그림까지 다양한 양식을 사용한다.

교토 용안사(료안지) 정원

교토 용안사(료안지) 정원

헤이안 시대부터 일본 귀족의 집에는 정원이 꼭 달려 있었다. 그냥 정원이 아니라 당시 선불교의 영향으로 극락을 표현한 정원을 만들곤 했다. 극락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세에서도 얻을 수 있다는 신념의 표현이다. 오늘날 유명한 절과 정원은 그렇게 만든 귀족의 집과 정원이 용도를 바꾼 것이다. 중국의 영향을 받아 숲처럼 자연의 모든 것을 담은 정원도 있지만 인구가 늘면서 정원은 축소되기 시작했고 일부 정원에서는 추상적으로 거친 돌, 이끼 덩어리, 나무 몇 그루로 극락의 핵심을 담아내기도 한다. 용이 평온하게 있다는 의미의 용안사의 바위정원은 15세기 일본의 대표적인 선불교 정원으로 작은 자갈돌이 곱게 깔린 위로 바위 15개가 작은 산처럼 서있는데 그 단순미, 절제미가 빼어

교토 금각사(킨카쿠지) 정원의 부처

교토 금각사(킨카쿠지) 정원의 부처

천국과 지상의 조화를 표현하고자 했다는 킨카쿠지는 번쩍이는 건물보다도 천천히 걸으면서 음미할 수 있는 정원이 더 아름답다. 작은 폭포, 잘 다듬어진 나무들을 따라 걷다보면 우주의 삼라만상이 다 들어있는 것 같다. 그중에도 오래된 돌부처 군상은 ‘금각사’라는 명칭에 어울리지 않게 소박하기 그지없는 부처들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저마다 소원을 빌며 부처 앞에 놓인 돌 바구니에 동전을 던진다. 로마의 분수대, 청계천의 돌다리 등 소원을 들어줄 것 같은 곳이면 어디든지 동전을 던지는 연약한 우리의 초상이다.

교토 금각사(킨카쿠지)

교토 금각사(킨카쿠지)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 일본을통치했던 아시카가 쇼군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요시미츠는 11세에 부친을 여의고 3대 쇼군이 되었다. 1394년 다시 9세 된 아들에게 쇼군의 지위를 양위한 요시미츠는 은퇴 후 조용히 불교를 공부하면서 거처할 빌라를 구입했고 1408년 사망하면서 선불교 사찰로 만들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찰이 교토에서 가장 관광객이 많이 온다는 킨카쿠지 (금각사)이다. 사람들은 아미다 부처의 천국을 본따서 만들었다는 정원보다 ‘거울 연못’옆에 당당히 서있는 금박으로 도배된 3층 건물을 보면서 죽음 이후의 천국보다는 번쩍이는 현세에 더 관심이 많다.

교토 은각사(긴카쿠지) 정원

교토 은각사(긴카쿠지) 정원

미니멀리즘. 최소의 것에서 가치를 찾는 사고이다. 일본 선불교는 언어, 사고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기를 장려하는 미니멀리즘 철학을 실천한다. 쿄토 긴카쿠지의 모래정원은 명상과 관조를 강조하는 일본 선불교의 철학을 그대로 담고 있다. 이 선불교의 정원에는 모래, 돌, 자갈 등 자연재료와 함께 풀, 나무를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전통을 독특하게 지키고 있다. 가지런한 써레질과 밭처럼 이랑이 반복되는 모습 한 켠으로 작은 숲처럼 만든 나무와 돌, 그리고 이끼는 낯설면서도 시공을 초월한 예술처럼 보인다. 한쪽 코너에는 ‘달을 보는 관망대’라고 불리는 모래구조물이 원뿔형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후지산을 닮았다고 한다.

교토 은각사(긴카쿠지)

교토 은각사(긴카쿠지)

전통과 문화를 자랑하는 일본 교토에는 사찰이 넘치고 그 사찰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빼어난 정원으로 유명한 긴카쿠지는 원래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은퇴한 후 살기위해 1482년 지은 집이었으며 그가 사망하자 절이 되었다.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다양한 건물과 나무, 모래정원과 이끼정원이 유명하다. 섬세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절의 분위기는 전통문화와 예술을 사랑했던 쇼군의 정신을 잇고 있기 때문이며, 결국 선불교의 중이 된 쇼군이 교토의 희노애락을 멀리하고 툇마루에 앉아 나무, 모래, 연못, 목조 다리, 이끼 등 작은 것에서도 우주를 찾았던 철학 덕분이다. 눈이 닿는 곳마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교토 청수사(기요미즈데라) 지주신사(지슈)

교토 청수사(기요미즈데라) 지주신사(지슈)

기요미즈데라에는 여러 개의 건물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사랑과 좋은 인연을 찾아주는 신을 모신 지주신사이다. 과거에 고즈넉한 본당에 저마다 바라는 바를 기원하려고 찾아왔다면 오늘날 이 절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짝을 찾지 못한 젊은 남녀가 찾아오는 지주신사이다. 특이 신사 마당에는 돌 3개가 6미터 거리에 세워져 있는데 눈을 감고 그 사이를 성공적으로 걸으면 짝을 찾는다는 전설이 내려오는데 반신반의하면서도 걸어보는 현대인의 모습은 초자연적인 힘이 있기를 바라는 디지털 인간의 아이러니이다.

교토 청수사(기요미즈데라)

교토 청수사(기요미즈데라)

일본 교토는 10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정치적, 문화적 수도이자 지금도 1600개가 넘는 절이 있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798년에 세워진 기요미즈데라는 오랫동안 일본 불교의 상징으로 현재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633년 지금의 모습으로 지은 건물은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짓는 일본 목조건물의 정수를 보여주며 특히 절벽아래 13미터 높이와 연결된 목조구조는 본당을 지탱하는 기초인데 그 기술도 놀랍지만 푸른 산과 물에 둘러싸인 채 문명과 자연의 가교로서 묵묵히 버티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사진에 보이는 것이 본당의 모습이다.

상하이 예술발전소의 앤디 워홀

상하이 예술발전소의 앤디 워홀

전기를 생산하던 생동감 넘치는 발전소가 현대미술의 창의성을 선보이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상하이 예술발전소의 내부는 높은 천정, 각층의 구분이 모호한 공간배열로 현대작가들이 좋아할만한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다. 이번 여름 예술발전소에 미국작가 앤디 워홀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미국의 소비문화와 대중매체를 영리하게 차용했던 워홀의 작품을 중국 최고의 소비도시중의 하나인 상하이에서 만나는 것은 글로벌 시대가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상하이 예술발전소

상하이 예술발전소

상하이에 오래된 발전소가 있었다. 1897년 청나라 말기에 세워진 이 발전소는 오랫동안 상하이에 전기를 공급해 왔다. 1985년에는 165미터가 넘는 높은 굴뚝을 추가하여 웅장한 공장의 모습을 갖추었다. 그래서 이 건물은 근대 상하이의 흥망성쇠를 다 보고 겪은 증인이다. 중국정부는 2010년 상하이 엑스포를 위해 이 건물의 내부를 개조하여 ‘미래관’으로 사용했다가 엑스포 이후 현대미술을 전시하는 ‘예술발전소’로 지정했다. 최근 세계적으로 낡은 건물을 개조하여 문화공간으로 사용되는 사례가 많은데 이곳도 그런 트랜드를 반영하고 있다.

M50의 한 갤러리

M50의 한 갤러리

M50의 갤러리들을 보면 중국현대미술 향수의 현재를 그대로 보여준다. Shanghart Gallery처럼 1990년대부터 국제적인 미술을 선보이는 유서 깊은 화랑이 있는가 하면 마치 대량생산한 것처럼 알록달록한 그림을 싼 값에 파는 상업 화랑도 있다. 이곳의 한 신생 화랑에서 한국, 중국, 일본 등 여러 국가의 젊은 작가 작품을 모아서 전시를 하고 있다. 좌대위에 전시된 계란모양의 흰 덩어리들은 솜으로 된 두상으로 한국작가 김순임이 제작한 작품이다.

M50, 상하이

M50, 상하이

상하이 모간산로 50번지는 과거 공장과 창고지대였다. 낡은 건물 탓에 싼 임대료에 반한 예술가가 모여들면서 예술가 작업실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 10여년 전이다. 지금은 작업실, 갤러리, 소규모 창조산업체, 카페 등이 모여 형성된 문화지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전 세계에서 온 예술가들이 작업을 하고, 전시를 하며, 여유롭게 상상력을 펼치는 곳이다. 베이징에 798 지구가 있다면 상하이에는 M50이 있다고 보면 되는데 그래서인지 상하이에서 꼭 경험해야 하는 장소 10곳 중의 하나로 꼽힌다.

중화예술궁의 전시작품, 상하이

중화예술궁의 전시작품, 상하이

중화예술궁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무수한 사실주의 회화와 조각이다. 보통 ‘사회주의 사실주의’라고 불리는 이 양식은 이야기를 담아내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그래서 중화예술궁에는 특히 중국의 근현대사, 인민해방의 역사에 관련된 회화가 많은데 주로 마오쩌둥의 홍군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대부분의 작품의 크기가 엄청나서 이곳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압도한다. 중국 각지에서 온 관광객이 거대한 조각상 앞에서 작품 설명을 듣고 있다.

중화예술궁, 상하이

중화예술궁, 상하이

2010년 상하이 엑스포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더불어 21세기 중국의 문화, 경제 수준을 보여주는 대형 이벤트였다. 당시 30억 달러를 투자하여 528 헥타르의 면적에 각국이 전시관을 지어 경쟁하는 지상최대의 쇼를 열었었다. 그때 중국관으로 지어진 건물이 사진속의 빨간 건물이다. 160,000 제곱미터에 달하는 면적에다 지상에서 49미터 높이의 건물로 굵은 붉은 색 선이 인상적이다. 엑스포가 끝난 후 이 건물은 2012년 ‘중화예술궁’으로 전환되었는데 기존의 상하이 미술관의 컬렉션과 중국의 근현대 작품을 모아 만든 미술관이다. 미술관은 한 나라의 문화의 척도라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라오창팡 내부, 상하이

라오창팡 내부, 상하이

상하이의 화려한 근대역사를 보여주는 건물 라오창팡의 개조는 내부의 시멘트로 된 복잡한 구조와 기존의 동선을 그대로 살리면서 현대식 조명, 화장실 등 일부 시설이 추가되었다. 소들이 이동하는 동선과 사람이 이동하는 동선이 구분되어 있는데 지금은 마치 미로를 걷는 듯 신비롭다. 2층에는 스포츠카 브랜드 페라리 클럽이 들어서있고, 고급 식당, 작은 공연장도 들어서 있다. 건물을 개조하자마자 입주율은 30%에 불과했으나 조금씩 상하이의 보헤미안 문화를 즐기는 이들을 위한 새로운 가게와 식당들이 들어오고 있다.

라오창팡, 상하이

라오창팡, 상하이

1930년대 상하이는 외국이 문물이 대규모로 들어오면서 코스모폴리탄 도시로 변모하고 있었다. 그러한 30년대의 풍요로움을 보여주는 곳 중의 하나가 라오창팡 도살장이다. 영국의 한 건축가가 설계한 이 건물은 시멘트 및 모든 재료를 영국에서 수입해서 지었다고 한다. 근사한 외관에 비해 내부는 기본적으로 도살장으로 가기 전 소들이 머물던 임시 거처로 특이한 것은 두터운 벽이다. 또한 햇빛의 적절한 조절 때문에 지금도 에어컨 없이도 항상 서늘하게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2007년 상하이 도심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역사적 건물을 개조, 복구하는 분위기 속에서 라오창팡은 도살장의 역사를 딛고 공연장, 클럽, 식당, 스튜디오 등 다양한 문화, 상업시설이 들어선 라이프스타일 쇼핑몰이자 복합공간으로 변모했다.

상하이 푸동

상하이 푸동

상하이 번드 바로 맞은편에 있던 어촌 푸동은 지난 20년간 상하이의 자존심으로 떠올랐다. 1993년 특별경제구역으로 지정된 이곳은 황포강 동쪽에 위치했다 해서 푸동이라고 불리는데 그동안 수많은 최고층 건물이 즐비한 금융, 비즈니스 지구로 성장했다. 상하이 주식거래소, 동방명주라고 불리는 타워 등 상하이의 랜드마크가 즐비하고, 지금도 드래곤 타워가 한참 올라가는 중이다. 빠른 속도로 자본주의를 흡수한 이곳의 야경은 마치 21세기판 신기루를 보는 것처럼 이국적이며 화려하기 그지없다.

상하이 번드

상하이 번드

19세기 중반 아편전쟁에 패한 중국이 개항을 하자 그 바람을 타고 상하이에 세계 열강이 들어오면서 조용하던 황포강가의 어촌은 외국인을 위한, 외국인의 의한, 외국인 상업, 거주지역으로 변모했다. 번드(Bund)라고 불리는 이 지역은 한 때 외국계 은행, 사업체로 붐비는 아시아의 세계주의 현장이자 유럽의 건축을 자랑하던 곳이었다. 160여년이 지난 오늘날,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서양식 건물은 이미 중국은행이 차지하고 있고 그 위로 중국국기인 오성홍기가 휘날리는 가운데, 중국과 전세계에서 온 또 다른 외국인들이 번드를 거닌다.

음악 케익

음악 케익

티라미수의 맛은 달콤하면서 느끼하고 동시에 쌉싸름하다. 사보야르디 비스켓, 계란 노른자, 치즈, 코코아, 럼이나 와인 등을 재료로 만든 이 케익은 원래 이탈리아에서 처음 선보였다. 정확한 제작 시기는 논쟁중이지만 1980년대 이후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티라미수를 번역하면 “나를 행복하게 해주세요”이다. 그래서인지 한 카페에서 주문한 티라미수 옆에 높은음자리표가 초콜렛으로 그려져 있다. 케익을 준비한 전문가가 솜씨를 뽐내며 그린 음표는 마치 달콤한 음악을 들려주는 것 같다. 작은 티라미수 한 조각에도 이렇게 창의성을 입히는 이들이 바로 창조적 인간이다.

바쁘니까 청춘이다

바쁘니까 청춘이다

새 드링크 음료가 나왔는지 홍대입구 지하철역 광고판에 크게 도배되었다. 에너지 넘치는 푸른색의 드링크 위로 “바쁘니까 청춘이다”라는 문장이 지나간다. 작년 우리나라 청년들 사이에 화제가 되었던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차용해서 살짝 비틀었다. 성공신화에 물든 사회에서 미래를 걱정하는 세대에게 주는 조언을 모았던 책인데 광고에서는 나약한 청춘이 아니라 피가 솟구치는 청춘을 부르고 있다. 아파도 청춘이고, 당신의 생물학적 나이가 얼마이든지 상관없이 매일 바쁜 삶을 살고 있어도 청춘이다. 기왕이면 바쁜 청춘이 낫지 않을까.

청파동 가게

청파동 가게

서울 청파동은 과거 일본인이 많이 살았던 동네로 지금도 일본식 가옥이 조금 남아있다. 이후 빌라, 연립주택, 원룸 등 온갖 건물이 들어서서 외관은 많이 변했지만 소규모 단위의 택지에 지은 나지막한 집들은 과거 이 동네의 모습이 어땠는지 짐작케 한다. 낡은 집에 거주하면서 재개발을 기다리는 주민도 많지만 오히려 개발하지 않은 지금이 더 좋다는 사람도 있다. 재개발이 늦어지는 동안 그 더딘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길가의 가게는 계속 변신한다. 여대 근처라 유행에 민감한 앙증맞은 가게가 다닥다닥 붙어있는데 저마다 개성이 넘친다. 작은 옛 주택을 개조한 코너의 가게는 핫핑크로 단장하고 손님을 기다린다.

신사동 가게

신사동 가게

도산공원 인근에는 유독 명품가게가 많다. 에르메스, 랄프 로렌 등등. 뿐만 아니라 갤러리, 아트 센터, 고급식당도 있다. 가히 강남스타일로 넘치는 곳이다. 그런 강남스타일에 도전하듯이 에르메스가 있는 골목에 <맛다방>이라는 가게가 있다. 고급스런 동네에 일부러 튀려고 허름하게 꾸몄는지 건물재료도 대충 사용한 듯하다. 지붕의 시계는 퇴근 후 들리라는 듯이 6시 10분을 지나 멈춰있다. 정겨운 옛날 가게를 생각나게 하는 이곳은 외관에 어울리게 순대볶음, 김밥, 라면, 떡볶이, 막걸리 등을 착한 가격에 팔면서 시간을 보낼 손님을 기다린다.

섭지코지 성당

섭지코지 성당

제주의 성산포 인근 섭지코지에는 호젓한 성당이 서 있다. 바람부는 언덕에 고즈넉이 서있고 주변에는 해안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로 구성된 정원도 있다. 혹 올레길을 걷다가 이 성당이 보이면 들어가서 잠시 기도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단아한 모습이다. 그러나 이곳은 진짜 성당이 아니다. 배우 이병헌과 송혜교가 주연을 맡았던 드라마 <올인>에 사용되었던 무대세트이다. 자세히 보면 창문도, 벽도 어딘지 가벼워보인다. 한때 태풍에 파괴되었던 것을 다시 지어 드라마 전시장, 웨딩하우스로도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은 드라마처럼 잊혀진 곳이자 상상의 드라마에서 따온 가짜성당일 뿐이다.

서울의 풍경

서울의 풍경

조선시대, 일제시대, 그리고 급속 성장을 이룬 1970, 80년대를 거치면서 서울의 풍경은 많은 변화를 거쳤다. 종로에서 떡을 사먹던 어릴 적 기억이 그대로인데 오늘날 서울의 삶은 프랑스산 와인을 기울이면서 사교를 해야 하고, 외제차를 뽐내며 탈 정도로 라이프스타일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런데 그 성장의 속도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디자인 서울’을 외치며 도시의 간판을 거의 다 바꿀 정도의 바람이 분지도 꽤 지났건만 강북 어느 동네의 닭집 간판은 그때도 지금도 변함없이 주인이 직접 쓴 글씨간판이다. 기계가 세련되게 만든 간판이 넘쳐나는 오늘날 손글씨로 쓴 간판이 달콤한 미소를 짓게 한다.

서울의 변화

서울의 변화

서울은 빠르게 변한다. 고령화, 저성장 등 비관적인 뉴스에도 불구하고 서울은 정체된 도시라기보다는 빠르게 변하는 도시이다. 스타벅스 등 글로벌 브랜드뿐만 아니라 서울의 중심지에서나 볼 수 있었던 외국계 식당이 점차 동네골목으로 들어오고, 우리의 입맛뿐만 아니라 음식에 대한 상식도 바꾸고 있다. 중국식당, 일본식당은 기본이고 베트남, 태국음식은 이제 흔히 볼 수 있으며, 몽골, 인도, 터키의 음식문화도 들어오고 있다. 사진에 보이는 <아시아 아시아>식당은 인도식 커리와 난을 맛볼 수 있는 인도식당이다. 이국적 간판을 통과해서 타지마할이 그려진 실내에서 먹는 이국적인 음식은 글로벌 시대의 서울의 맛이기도 하다.

망치질하는 사람

망치질하는 사람

광화문 사거리에서 서대문 방향으로 가다보면 수직의 고층건물 사이에 고개를 숙인 거대한 검은 조각상이 망치질을 하고 있다. 미국작가 조나단 보로프스키의 <망치질하는 사람>이다. 높이 21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조각으로 작가는 1979년 처음 만들 때 근로자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 모두가 어딘가에서 일하는 사람이기에 전 세계에 같은 조각상을 여러 개 만들어 퍼뜨리고 싶었단다. 지금까지 <망치질하는 사람>은 서울뿐만 아니라 로스엔젤레스, 시애틀, 달라스, 바젤, 프랑크푸르트 등 여러 도시에 우뚝 서서 묵묵히 망치질을 하고 있다. 마치 저 건물 속에서 근무하는 무수히 많은 근로자들처럼.

제주 애서원

제주 애서원

제주도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 밭과 숲만 펼쳐진 곳에 애서원이 있다. 자원봉사를 하면서 미혼모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임애덕씨가 2003년 만든 미혼모 입소 시설이다. 미혼으로 아이를 가진 여성들이 이곳에 와서 출산을 하고 출산 후 일정기간 동안 사회 재적응과 자립을 위한 교육을 받은 후 사회로 나간다. 대부분의 입소자는 제주가 아닌 타지에서 온 젊은 여성들. 도움을 구하려고 해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집을 짓자 또 다른 사람들이 와서 자원봉사를 하며 도움을 준다. 세상은 이렇게 착한 사람들 덕분에 바르게 돌아간다.

청파동 프로젝트 141의 마지막

청파동 프로젝트 141의 마지막

<양은희의 시각문화 이야기 16>에서 소개했던 개념있는 가게, 프로젝트 141이 최근 문을 닫았다. “쇼핑은 정치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공정무역 커피를 2000원에 팔아 그중 일부를 유니세프에 기증하려고 열었던 가게이다. 주인 한재우씨는 1.3평 가게 월세 55만원. 기타 부대비용을 감당하면서 1년 2개월간 운영하다가 결국 문을 닫았다. 한때 커피 40잔을 팔기도 했지만 인근에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점이 늘어가면서 하루에 2-3잔 정도로 줄었다고 한다. 주인은 문을 닫으면서 착한 가게 주인답게 감사의 말을 남기고 갔다.

몽인 아트 스페이스

몽인 아트 스페이스

신당동에 한 재벌 창업주가 살던 집이 있다. 저택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소박하고 그냥 보통집이라고 하기에는 넓은 정원이 예사롭지 않다. 건물주인 애경그룹이 이곳을 개조하여 작가들이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 <몽인 아트 스페이스>로 만들어 개방한 것이 2007년. 1, 2층에 작업실이 있고, 주방에는 간단한 요리도 할 수 있다. 그동안 국내외 유수의 작가들이 이곳을 거쳐 갔고, 지금도 4-5명이 작가가 작업실에서 작업하기도 하고 정원에 나와 담소를 나누며 창작의지를 다진다. 최근에 서울에 불고 있는 오래된 것을 활용하여 문화공간으로 가꾸는 보헤미안 문화는 대기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가의 새발견> 취미 수집품 전시

<여가의 새발견> 취미 수집품 전시

<문화역 서울 284>에서 열린 ‘여가의 새발견’ 전시가 열리고 있다. 예술가, 취미 동호회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참여하여 대중문화와 일상생활을 즐기는 현대인의 삶을 전시로 만들었다. 그 중 한 전시장에는 베어브릭, 코카코라 병, 장난감, 스타벅스 텀블러 등 자신이 좋아하는 사물에 꽂혀 수집하는 이들의 컬렉션을 전시했다. 사진 중앙에 보이는 것이 스타벅스 텀블러 컬렉션이다. 수십 년 동안 수만 점을 모으는 사람은 분명 그냥 굴러다니거나 지나치는 물건에도 남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자신의 분신을 찾은 것처럼 열정적으로 모았을 것이다. 그래서 모은 물건을 보면 그 주인의 마음과 욕망이 보인다.

텐트 전시

텐트 전시

<문화역 서울 284>에는 4월 14일까지 ‘여가의 새발견’이라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예술가, 취미 동호회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참여하여 대중문화와 일상생활을 즐기는 현대인의 삶을 전시로 만들었다. 그중에서 사진에 보이는 전시장은 ‘Soul Camper Seoul'로 빠르게 성장하는 캠핑문화에 대해 다루고 있다. 작가뿐만 아니라 여러 장비 업체가 참여한 공간으로 마치 캠핑용품 전시장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사람이 살다보면 상품과 여가생활, 미술과 대중문화의 접점에서 특별한 생각보다 그저 즐기면서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이런 여유있는 삶을 전시장에서 맛볼 수 있다.

문화역 서울 284

문화역 서울 284

일제 시대 서울의 인구가 증가하자 수요에 맞추어 1925년 경성역이 새로 건설되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만주로 사람을 싣고 달리는 기차 정거장이었으나 사실은 일본이 부산에서 경성을 거쳐 모스크바, 베를린까지 이어지는 철도 교통망 구축시도의 결과였다. 해방 후 서울역으로 명칭을 바꾸었으나 2000년대까지 이용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결국 바로 옆에 신축 건물을 세우고 구역사는 새로이 실내를 정비한 다음 2012년부터 문화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서울 스퀘어 빌딩에서 바라 본 <문화역 서울 284>는 서양식 건축언어를 습득한 한 일본 건축가의 디자인에다 21세기 조명을 달아 100여년전의 수치스러운 과거를 낭만적으로 소화하고 있다.

안도 다다오의 지니어스 로사이

안도 다다오의 지니어스 로사이

Genius loci. 원래 로마 신화에서 수호신을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후에는 황제의 집을 지을 때 수호신처럼 이용하기도 했다. 땅과 지역에 고유한 정령이 새로 짓는 집을 보호해 줄 것이란 소망에서 비롯된 문화이기도 하다. 일본의 저명한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제주의 동쪽에 ‘피닉스 아일랜드’의 일부로 만든 명상의 공간도 바로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제주의 돌, 바람에다 시멘트 블록을 섞어서 만든 지하 구조물로 평온한 지면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지하 깊숙이 들어가게 되고 그 안에서 빛과 소리, 어둠과 침묵의 대조를 느끼게 된다.

담 게스트하우스, 제주 명월리

담 게스트하우스, 제주 명월리

글로벌 시대의 보헤미안 문화는 이제 제주의 시골에도 들어오고 있다. 올레길이 만들어지고 배낭을 매고, 자전거를 타고 움직이는 이들이 잠시 머무는 게스트하우스가 한참 유행이다. 상권이 약화되고 있는 구도심뿐만 아니라 고령화로 인적이 드물어진 시골 동네에도 집을 개조한 숙박공간이 생기고 있다. 이 동네로 시집온 한 며느리가 수백 년 된 팽나무 아래 돌담집을 개조하여 게스트하우스와 식당을 마련했다. 리모델링한 건물 내외부도 아름답지만 식당에서 만들어주는 음식은 집밥처럼 정성이 가득하다. 삼계탕과 갈비찜은 단연 최고. 하지만 예약은 필수.

비앤비 판 게스트하우스

비앤비 판 게스트하우스

영어 게스트하우스(guest house)는 고급 별장식 손님용 집에서부터 주인이 사는 안채 옆에 붙어있는 바깥채에 있는 숙식시설까지 다양하게 일컫는다. 이 용어가 아시아 지역으로 수입되면서 개인 주택이나 빌딩을 개조한 숙박시설을 지칭하고 있다. 서울생활에 지친 주인은 제주에 내려와 2012년 ‘B&B 판 게스트하우스’를 만들었다. 제주 구도심의 오래된 가옥을 개조한 이곳은 bed &breakfast를 지향하면서도 호스텔의 자유분방함을 가미했다. 젊은 보헤미안 문화의 주축답게 판의 페이스북에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 온 손님들의 인사가 가득하다.

호스텔코리아제주

호스텔코리아제주

글로벌 시대의 보헤미안은 여행문화를 이끈다. 뉴욕, 파리, 런던, 서울, 토쿄 등 전 세계의 도시가 이들의 기착지이다. 제주도 예외는 아니다. 배낭을 매고 공항에 도착한 후 사전에 예약한 곳으로 잠을 자러 가는데 이들을 위한 호스텔, 게스트하우스가 한참 유행이다. 한때 국내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별장같은 펜션바람이 불다가 지금은 ‘게스트하우스’로 불리는 숙박공간이 증가하고 있다. 사진에 보이는 곳은 제주 구도심에 들어선 호스텔코리아제주 1호점이다. 기존 건물을 구입하여 약간의 리모델링을 거친 후 보헤미안 문화에 걸맞게 특이한 외관그림을 더했다. 상권이 약화되고 있는 구도심에 들어서는 새로운 숙박공간 덕분에 아침과 저녁마다 사람 사는 동네 냄새가 난다.

나리타 공항

나리타 공항

공항은 현대인의 여행과 이동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이며, 중간 기착지이다. 제트기가 상용화된 1970년대를 거치면서 공항은 국가 간의 이동을 보다 빠르고 만들면서 현대문명의 화려함을 자랑하는 곳이 되었다. 여러 국제공항의 설립역사가 보여주듯이 국가 정체성의 구현장소이자, 충분한 부와 지식, 여유시간을 확보한 “키네틱 엘리트(kinetic elite)"들이 현대 유목민으로서 통과하는 곳이기도 하며, 고향을 두고 경제적으로 발전된 외국으로 직장을 찾아 나가야 하는 이주노동자들이 거치는 곳이며,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잠시 머무르는 동안 쇼핑, 관광, 오락, 휴식을 즐길 수 있는 다목적복합공간이다. 인천공항처럼 아시아 여러 지역과 미주 지역을 연결하는 중간기착지인 일본 나리타 공항에 석양이 깃든다.

뉴욕 버스광고의 낙서

뉴욕 버스광고의 낙서

뉴욕, 파리, 런던이 유명한 관광지인 이유는? 볼거리가 많기 때문만은 아니다. 각각의 도시를 개성있게 만드는 보헤미안들이 많은 도시라는 점이 더 크게 작용한다. 뉴욕의 한 버스에 “다음은? 당신을 보호하는 일.”문구와 함께 1150개의 CCTV가 설치될 것이니 미소를 지으라는 소식을 전하는 버스회사의 광고가 붙여있다. 그러자 여기에 “당신이 다른 이의 여자” “또는 남자와 같이 있다면”이라는 사족이 달리고, 심지어 CCTV에 대해 노골적으로 “이런 걸 스파이질이라고 부르죠!”라고 크게 쓴 낙서도 있다. 표현의 자유, 의견의 다양성. 뉴요커가 누리는 자유이자 보헤미안으로 넘치는 도시의 거침없는 모습이다.

당나라의 불상

당나라의 불상

문화는 계속 교류될 수밖에 없지만 교류 과정에서 갈등과 화해의 과정은 필수이다. 불교가 인도에서 수입되자 중국은 외국문화라고 타박을 하면서도 불교의 설득력에 감화되기도 했다. 사진속의 불상은 당나라에서 나무로 제작된 좌불로 온화한 미소가 매력적이다. 그런데 정작 석가모니가 죽은 후 인도에서 그의 제자들은 불상을 만들지 못하게 했다. 성스러운 존재에 대한 모욕이라고 간주했던 것이다. 그러나 서구에서 성상문명이 들어오고 일반인을 감화시키려면 역시 사람과 닮은 이미지가 제격이었기 때문에 결국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부처의 모습이 탄생했다. 그 불상이 동으로, 동으로 전달되어 7세기 중국, 한국에 유사한 불상이 만들어졌다.

이디오피아의 성경책

이디오피아의 성경책

문화는 경계가 없다. 아프리카에서도 아라비아 반도에 가까운 이디오피아는 오래 전부터 아라비아 반도뿐만 아니라 이집트, 지중해 지역의 문명과 교류가 많았다. 사진 속의 성경책은 그러한 문화 교류를 통해 기독교를 수용하면서 자체적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유럽의 성경책과 달리 자세히 보면 아랍권 건축물이 보이고 예수의 모습도 수도자처럼 정적이다. 4세기경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신학자들이 이디오피아의 왕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면서 본격적인 기독교 문명의 수혜자가 되었다. 기독교가 토착화되면서 수도원을 비롯한 종교문화가 발전했는데 지금도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세계의 모든 도자기

세계의 모든 도자기

박물관 전시장에 도자기 여러 점이 놓여있다. 모두 18세기의 것으로 화려한 장식, 다양한 형태가 얼핏 보기에 유럽의 어느 왕가에서 사용했을 것같이 예사롭지 않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어느 도자기도 한 지역의 문화적 산물이 아니다. 모두 아시아와 유럽의 장인의 손결과 관심이 섞여있다. 왼쪽에 있는 주전자는 일본의 도자기에서 차용한 적, 청, 금색의 패턴을 활용하여 네델란드의 장인이 만든 것이고, 그 위에 걸린 접시는 청나라 시대 접시로 가운데에 꽃병이 그려져 있는데 이 꽃병과 접시 주변의 장식은 중국의 ‘평화와 행운’을 기원하는 것들로 장식되어 있다. 그 오른쪽 상단은 일본의 도자기로 유럽 수출용으로 제작된 것이며, 바닥에 놓인 것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제작된 것이다. 문화는 이렇게 연못에 고여 있지 않고 시간을 따라 흐르고 지구를 따라 돈다.

중국과 한국의 청자 다완

중국과 한국의 청자 다완

청자는 원래 중국에서 시작되었다. 다완의 모양도 중국에서 기본 형태를 잡고 나왔다. 그런데도 고려청자는 세계최고로 평가된다. 왜 그럴까? 사진 속의 다완 2점은 중국과 한국의 청자가 어떻게 다른지 보여준다. 양쪽 모두 넝쿨이 다완 안쪽에 문양처럼 배열되면서 그 중간에 아이들이 놀고 있는 장면을 담고 있다. 모두 틀에 넣어 문양을 찍어내는 기법을 썼다. 그러나 왼쪽에 있는 11세기 중국 북송시대의 청자는 올리브 장아찌 색을 띄고 있고 12세기 고려청자는 비취색이 영롱하다. 그러니까 고려청자는 중국에서 다완 형식과 문양, 제작기법을 차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완성된 결과물은 세계최고라는 것. 오늘날 세계를 점령한 한국의 스마트폰은 우연이 아니라 이렇게 다른 문화에서 빌려온 기술로 완성품의 수준을 높이는 한국의 전통을 잇고 있다고 하겠다.

뉴욕의 거리, LOOK!

뉴욕의 거리, LOOK!

뉴요커의 ‘제이 워킹’은 악명이 높다. 뉴요커는 한국 사람보다도 성질이 급해 빨간 신호등인데도 차가 멀리 떨어져서 오고 있으면 그냥 건넌다. 파란불을 보고 달리던 차도 그렇게 걸어가는 보행자를 보면 어쩔 수 없이 멈춘다. 가히 보행자 중심의 문화다. 요즘에는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스마트폰을 보면서 횡단보도를 건너다 차에 치이는 보행자가 많아졌다. 2010년에만 9000명의 보행자가 다치고 41명이 숨졌다. 뉴욕교통국이 대대적인 캠페인에 들어갔는데 바로 뉴욕의 번화가 주요 사고지점 110개의 횡단보도에 Look!이라는 경고문을 반영구적으로 설치하여 경각심을 높이자는 것이다. 그냥 바닥을 ‘보라’는 뜻이 아니라 ‘차를 잘 보라’는 뜻이다

뉴욕 백화점 쇼 윈도우

뉴욕 백화점 쇼 윈도우

백화점의 마케팅은 쇼 윈도우에서 시작된다. 멋없이 브랜드 로고와 광고모델사진만 있는 지루한 외관이 아니라 깔끔한 유리창 안에 환상적인 세계가 펼쳐질 때 이목을 끈다. 사진 속은 뉴욕의 5 애브뉴에 위치한 한 고급백화점 쇼 윈도우. 동화 속 주인공처럼 보이는 두 여자가 서로 의심쩍은 인사를 나누고 있다. 화려한 빨강을 배경으로 서있는 원색 드레스의 두 여성, 사슴머리를 한 남자의 등장이 예사롭지 않다. 정확히 무슨 내용인지 모르지만. 이렇게 쇼윈도우를 책임지는 직업을 윈도우 드레서라고 부른다. 성공적인 윈도우 드레서를 위해 전문가가 말하는 조언. 1. 이야기를 담아라. 2. 눈을 즐겁게 할 시각적 장치를 써라. 3. 고객을 놀라게 만들라. 4. 대담한 색, 형태를 사용하라. 5.조명에 신경 써라 등등.

뉴욕 지하철, 지속가능한 행복

뉴욕 지하철, 지속가능한 행복

뉴욕 지하철도 서울의 지하철처럼 광고가 넘쳐난다. <지속가능한 행복>은 “실천철학학교”에서 내건 광고이다. 혹시 서울에도 필요한 광고인지 읽어보고 싶은 분을 위해 내용을 번역한다. “직장은 왔다가 간다. 신체의 아름다움도 사라지고, 시장도 떴다가 진다. 가까운 관계에도 끝이 찾아온다. 그러나 철학의 혜택은 평생 간다. <철학이 유용해>라는 이 강좌는 자유와 지속적 행복을 가져다주는 오래된 원리를 제공한다. 지혜가 어떻게 현실적인 만족에 이르는지 보여주며, 삶을 보다 의식적으로 사는 방법,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해 주의력을 모으는 법을 가르쳐준다. 총 10회, 매회 3시간 강의에 90달러임....”

뉴욕 지하철

뉴욕 지하철

다른 대도시처럼 뉴욕도 지하철과 버스같은 공공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 100년이 넘은 뉴욕지하철은 계단, 역사자체가 가히 서울에 비할 수 없이 낡고 지저분하다. 더구나 서울의 지하철보다 폭이 좁아서 일단 타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다양한 인종이 모여 있어서 조심스러운데 설상가상으로 좁은 칸에서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모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에 수천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것은 뉴욕만이 가진 문화와 거친 도시의 모습 때문이다. 새해가 되자 차이나타운에서 <복>이라고 크게 금색으로 장식된 빨간 중국식 달력을 구입한 중국계 노부부 옆에 아이폰에 푹 빠진 아랍계 남성이 앉아 저마다의 행선지로 가고 있다.

뉴욕, MoMA, The Clock 스크리닝

뉴욕, MoMA, The Clock 스크리닝

세계 제1의 현대미술관답게 모마의 프로그램은 전시부터 영화상영까지 다양하다. 사진 속에 보이는 줄은 스위스 작가 크리스티앙 마클레이의 <시계 The Clock>이라는 비디오 작업을 보려고 기다리는 관객들이다. 이 작품은 그가 2010년 내놓은 24시간짜리 비디오이다. 영화, TV 드라마와 같은 영상속에서 시간과 관련된 장면을 뽑아서 편집한 작업으로 모마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비디오 작업의 길이만큼 그대로 24시간동안 상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니까 새벽 3시에 모마에 가면 3시 근처의 작업을, 오후 6시가 가면 6시 근처의 영상을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작업으로 마클레이는 전세계 언론과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상을 받은 바 있다.

뉴욕, MoMA

뉴욕, MoMA

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은 영화관이나 공연장이 아니다. 바로 뉴욕이 자랑하는 현대미술관 (Museum of Modern Art)의 로비다.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과 뉴요커들이 티켓을 사려고 기다리고 있다. 세잔느부터 현대예술가, 미즈 반 데어 로헤부터 안도 다다오까지 미술, 디자인, 건축, 사진 등 20세기 주요 예술가의 작업을 볼 수 있는 미술관이자 뉴욕의 주요 문화관광지이다. 연간 2백5십만 정도의 관람객이 찾아오는 곳으로 가히 ‘자석’처럼 관광객을 끌어 모은다. 컨텐츠가 도시를 지속가능하게 만든다는 교훈을 준다.

뉴욕의 마케팅-오래된 커피가게

뉴욕의 마케팅-오래된 커피가게

최첨단 브랜드만 뉴욕에 있는 것은 아니다. 동네 구석구석 100년도 넘은 가게들이 숨어있다. 사진 속의 원두커피 가게는 1907년부터 뉴욕에서 원두커피를 수입해서 판매해 온 포르토 리코 (Porto 꺄채) 상사의 그리니치 빌리지의 소매점이다. 일찍이 유기농, 친환경 커피를 수입하면서 뉴요커의 인정을 받아 여러 개의 소매점으로 확장할 수 있었다. 전통적인 자루에 커피원두를 담아 오래된 가구와 인테리어로 옛날 풍경을 연출하면서 맛과 멋을 아는 사람들을 유혹한다.

뉴욕의 마케팅-데시구엘(Desiguel)스토어

뉴욕의 마케팅-데시구엘(Desiguel)스토어

1984년 바르셀로나에서 창업한 데시구엘은 중저가 패션 브랜드이다. 30년 가까이 조용히 성장한 이 브랜드는 72여개 국에 진출해 있는데 뉴욕에도 여러 개의 스토어를 가지고 있다. 데시구엘은 스페인 어오 “똑같지 않은”이라는 뜻이다. 남들과 차별화를 꾀하는 젊은 층을 타겟으로 강렬한 색과 디자인으로 승부를 걸어온 브랜드답게 뉴욕 메이시 백화점 인근에 위치한 스토어 외관도 예사롭지 않다. 낮에는 화려한 벽화를 자랑하고 밤에는 창문에 설치한 빛 설치가 주변에 브랜드의 존재감을 알린다.

스톤 반즈 센터 (Stone Barns Center for Foo

스톤 반즈 센터 (Stone Barns Center for Foo

친환경, 유기농을 강조하는 뉴욕주 북북의 스톤 반즈 센터에는 돌로 지은 근사한 건물들이 있고 그 안에는 교육장, 카페, 샵 등 여러 시설이 들어서 있다. 그 중에서도 ‘블루 힐(Blue Hill)'이라는 식당은 이 센터와 인근 타 농장에서 기른 질 좋은 재료로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는 곳으로 고가의 메뉴에도 불구하고 워낙 인기가 있어서 미리 1년 전에 예약을 해야 할 정도이다. 이곳까지 못 오는 뉴요커를 위해서 맨해튼에도 ’블루 힐‘을 운영하고 있다. 농장에 들린 방문객은 그 대신에 ’블루 힐 카페‘에서 예약 없이 같은 재료로 만든 저렴한 스프, 샌드위치 등을 사서 먹을 수 있다.

스톤 반즈 센터 (Stone Barns Center for Foo

스톤 반즈 센터 (Stone Barns Center for Foo

뉴욕의 부자들이 사는 법. 부를 사회에 돌려만 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유명한 록펠러가는 20세기 초 뉴욕시에서 북쪽으로 한참을 간 포칸티코에 낙농업을 주로 하는 농장을 만들었고 이후 6 에이커에 달하는 농지에 유기농 농업과 농산물을 생산하는 센터로 발전시켰으며 ‘신토불이’를 모토로 이 지역에 고유한 작물 등을 재배하면서 지속가능한 환경을 전파하고 있다. 예를 들어 퇴비를 사용하고 6년 순환주기로 농토를 활용하며, 가축을 방목해서 기르는 것이다. 2004년 비영리 단체로 등록한 후 일반에게도 개방되고 있는데 청소년을 대상으로 친환경 농업에 대한 교육도 담당하고 있다. 멀리 방목된 닭 무리가 보인다.

뉴욕 그랜드 센트럴 역사의 상업공간

뉴욕 그랜드 센트럴 역사의 상업공간

뉴욕 그랜드 센트럴은 기차역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하에는 오래된 ‘오이스터 바’가 여전히 기차를 기다리는 고객을 맞고 있고 이외에도 최근에 새로이 들어선 식당이 맛있는 냄새로 유혹한다. 곡선이 강조된 실내는 오래전 ‘타이타닉’호가 만들어진 시대의 화려함을 연상시킨다. 옛 것과 새로운 것이 적절히 섞인 그랜드 센트럴과 인접한 건물에는 하야트 호텔 등 초현대식 상업, 비즈니스 시설이 들어서 있다. 100년의 역사를 한꺼번에 고스란히 느끼게 해주는데 이것이 바로 뉴욕의 매력이다.

뉴욕 그랜드 센트럴 역사 1

뉴욕 그랜드 센트럴 역사 1

뉴욕의 발전과 함께 20세기 초 지어진 그랜드 센트럴 스테이션. 뉴요커들은 편하게 ‘그랜드 센트럴’이라고 부른다. 1년에 2천만 명이 넘는 유동인구와 관광객이 찾아오는 이곳은 뉴욕의 북쪽을 이어주는 기차역이자 뉴욕의 주요한 지하철과 연결된 교통의 중심지이다. 역사로 들어서면 웅장한 크기의 천정과 창문이 압도적인데 곡선과 우아함을 강조하는 보자르(Beaux-Arts)양식을 보여준다. 역사를 존중하는 뉴욕은 맨해튼 42가 중심지를 재개발하지 않고 대대적인 보수에 들어가서 1998년 100여년 전의 화려함을 재현해 냈다. 천정은 천체의 지도를 펴놓은 듯 별자리가 펼쳐져있는데 중세의 책에서 이미지를 옮기느라 실제와 달리 뒤집어진 배열이라고 한다. 역사 중앙에는 오팔이 들어간 시계탑이 있는데 감정가 100억을 넘는다.

볼티모어 파워플랜트 (Power Plant)

볼티모어 파워플랜트 (Power Plant)

도시 재개발의 성공적인 사례인 볼티모어 이너 하버에 들어선 여러 시설 중에서 파워 플랜트는 말 그대로 전에 발전소였던 건물을 리노베이션한 것이다. 지금은 이너 하버에 오는 많은 관광객, 시민들을 위한 쇼핑, 식음시설들이 들어서 있는데 미국 최고의 서점 반즈 앤 노블, 록큰롤 매니아들이 찾는 하드 락 카페 등이 주요 테넌트로 들어와 있다. 발전소의 위용 넘치는 외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기자기한 간판, 안내판 등이 어우러져 볼티모어의 새로운 볼거리로 자리 잡았다.

볼티모어 이너 하버(Inner Harbor)

볼티모어 이너 하버(Inner Harbor)

도시의 고령화. 인간만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도시도 늙어간다. 늙은 도시는 흉물스런 건물과 인적이 없는 거리로 변해가고 인근의 부동산 가치도 같이 떨어진다. 산업화와 도시화를 먼저 격은 미국 볼티모어의 경우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1950년대 도시 고령화와 항구도시로서의 기능을 상실하면서 사그라져가던 이 도시의 Inner Harbor 지역은 정치인, 행정가, 기업인이 힙을 합쳐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점차 재개발에 착수하는데 그 결과 1980년대가 되면 호텔, 박물관, 쇼핑센터, 무역회관 등이 들어선 매력적인 동네로 변모한다. 1984년 미국건축가협회로부터 “미국역사상 최고의 대형 도시 디자인 개발사례”라고 평가받으면서 지금까지 여러 도시의 벤치마킹 사례가 되고 있다. 사진은 이너 하버 전경.

현대미술 전시-전통과 현대

현대미술 전시-전통과 현대

현대미술 전시는 시간과 공간의 선택에 있어서 제한을 넘는다. 전라남도 강진은 청자도요지로 유명한 곳으로 강진청자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청자 유물이 전시되는 공간으로 고려의 향기와 전통을 음미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 가끔씩 현대 회화 작업과 입체작업이 전통 청자와 나란히 전시되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특별전 형식으로 열리는 이런 전시는 어딘지 낯설지만, 달리 생각하면 안되리라는 법도 없다. 상식을 넘는 제스춰는 현대미술의 주요한 자질이다.

현대미술 전시-여행과 쇼핑

현대미술 전시-여행과 쇼핑

현대미술은 대중문화, 소비문화 속을 파고 들어와 누가 창작자인지 누가 소비자인지 모를 정도로 구분을 못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사진 속의 모습은 2012년 1월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여의도 공항에서 인천국제공항까지>라는 전시의 한 부분이다. 큐레이터는 ‘여행’이라는 주제를 던지고, 전시에 출품한 작가들과 일반인은 외국을 다니면서 쇼핑한 물건을 전시했는데 이 사진 속의 출품 작가는 직접 백화점과 쇼핑몰에서 쇼핑한 가방과 쇼핑백을 중심으로 전시하고 있다. 마치 누군가의 쇼핑벽을 훔쳐보는 듯하지만 SNS에 자신이 먹은 음식까지 다 공개하는 오늘날, 이제 ‘나는 어디서 무엇을 했다’도 전시의 좋은 내용이 되는 시대이다.

지하도 병원 광고

지하도 병원 광고

대한민국 성형지존. 광고는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정도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나뉜다. 그래서 창의적이기도 해야 하지만 설득력도 있어야 한다. 강남의 한 지하철로 가는 지하도에 들어선 성형외과의 광고는 한동안 생각에 잠기게 한다. 보통 before &after로 고치기 전과 고친 후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착한 가격을 강조하는 성형외과 광고가 많은데 이 광고는 그 모든 이미지와 숫자 대신에 8자로 된 ‘대한민국 최고의 성형외과’라는 메시지를 내건다. 그런데도 이 광고가 왠지 그럴듯해 보이는 것은 서예체로 된 글자가 주는 안정감 때문이리라.

지하철 치킨 광고

지하철 치킨 광고

서울은 광고로 넘쳐난다. 어디를 가든 광고가 없는 곳이 없다. 서울의 지하철역은 어느 곳이든 하루에도 수만에서 수십만이 오고가는 유동인구로 인해 광고의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스크린 위의 광고는 이제 광고라기보다는 매일 어디론가 이동해야 하는 현대인의 시각적 행복을 책임진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달콤한 소스로 치장한 치킨이 번들거리면서 사람을 유혹한다. 그런데 원래 손바닥보다 작은 조각이 지나가는 여성의 몸만큼이나 크게 확대되어 왠지 맛있는 먹거리처럼 보이지 않고 경배해야 할 성물처럼 보인다. 큰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제주 예술인마을 규당 조종숙의 집

제주 예술인마을 규당 조종숙의 집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글이 넉넉한 돌 위에 새겨져 있다. 대문은 있는 듯 없는 듯 정주목만 서있고 멀리 호젓한 건물이 보이는데 이곳이 바로 <먹향기 나눔터>라는 한글 이름을 단 규당 조종숙의 작업실이자 예술가의 집이다. 제주도 예술인마을에 위치한 여러 예술가들의 집중에서도 안이 잘 들여다보이게 지어서 시간이 있으면 들어가서 주인을 찾고 싶은 집이다. 1960년대 서예를 시작하여, 국전, 대한민국미술대전 등에서 두각을 보이며 한글 궁체의 대표적인 여성 서예가로 인정받는 조종숙 선생이 오랜 서예의 전통을 이어가고자 지은 곳이다. 제주 예술인마을에는 그의 작품을 소장한 <규당미술관>이 2012년 개관해 관람객을 맞고 있다.

양평군립미술관

양평군립미술관

시립미술관, 도립미술관은 자주 보여도 군립미술관은 드문 편이다. 그만큼 인구가 적은 곳에 미술관을 유치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그런데 인구대비 예술가 수가 많다는 경기도 양평에 2011년 양평군립미술관이 들어섰다. 밖에서 보면 조용하지만 안에 들어가면 지역예술가, 타지 예술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학생들도 붐빈다. 주말에 미술관도 보고 인근 맛집에 들러 미각을 충족하기에 좋은 곳이다. 양평은 이외에도 문화예술 관련 사업이 계속 추진되고 있다. 양평 남한강연수원 일대에 <남한강 예술특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2012년부터 진행되고 있으나 지속적인 예산확보가 관건이다.

녹우당의 종손

녹우당의 종손

해남 윤씨 집안은 해남지역의 명문가이자 상류층이었다. 자손들은 대를 이어 과거에 급제했으며 정치에서 밀려나면 돌아와 녹우당에서 회한을 풀곤 했다. 아파트 생활과 화려한 도시의 삶을 동경하는 오늘날도 윤씨 종손이 녹우당을 지키며 살고 있는 것은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라고 배운 가통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알 수 있다. 현재 지키고 있는 종손도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도시 생활을 맛보았음에도 고향에 돌아와 주어진 책임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녹우당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운이 좋으면 종손과 담소를 나눌 수도 있는데 고즈넉한 정원을 보며 기품있는 종손과 대화를 하다보면 수백 년 전 과거 속으로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고산 윤선도의 녹우당 사랑채

고산 윤선도의 녹우당 사랑채

“떨어진 꽃잎이 흘러오니 무릉도원이 가까이 있는 듯. 아! 인간 세상 더러운 때가 얼마나 내 눈을 가렸던고.” 윤선도는 <어부사시사>에서 봄을 맞는 해탈한 어부의 심정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그는 17세기 뛰어난 문인이자 복잡한 정치환경 속에서 서인의 공격에 유배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주인공이다. 해남 윤씨 종가 녹우당은 윤선도의 4대 조부에 의해 시작되었고 효종이 사부였던 윤선도를 위해 수원에 지어준 집의 일부를 뜯어 옮겨와 보강되었다. 윤선도의 증손자이자 초상화로 유명한 윤두서도 낙향하여 이곳에서 거주한 바 있다. 녹우당은 인근 나무가 바람에 흔들릴 때 비가 내리는 소리처럼 들린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산토리니 서울, 홍대

산토리니 서울, 홍대

홍대인근 허름한 옛 건물 지하에 목욕탕이 있었다. 지하 2층이자 낡은 목욕탕은 인기가 없었고 이 자리에 새롭게 복합문화공간 <산토리니 서울>이 들어선 것은 2010년. 갤러리, 카페 등과 함께 사람들의 눈을 끄는 것은 관객의 눈을 의심하게 하는 작품들이 소개된 ‘트릭아이미술관’이다. 스포츠음료를 든 손이 바닥에서 튀어나오는가 하면 그림 속 주인공들이 그림 밖으로 나와 걸어 다닐 것만 같은 작업들이 대부분이다. 인간의 눈은 보는 것이 모두 사실이 아니라,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지하 2층에서 마치 유럽과 아시아 문화 속을 산책하듯이 경험하기에 좋은 곳이다.

신세계 옥상

신세계 옥상

천재시인 이상은 <날개>에서 미쯔코시 백화점 옥상에서 날고 싶은 욕망을 사르는 주인공을 묘사한 바 있다. 1929년 경성에 들어선 미쯔코시 백화점은 우리나라 최초의 백화점이며 해방이전 장안의 세련된 서울사람들이 드나들던 곳이다. 해방 후 미쯔코시 백화점 건물은 이리저리 소유권이 넘어갔다가 1960년대 현재의 신세계에 인수되면서 이후 신세계백화점 본점 건물이 되었다. 오늘날 이 건물 옥상은 날고 싶던 이상의 주인공대신에 현대미술을 감상하려는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자 파티 등 이벤트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사진에 보이는 것은 옥상에 설치된 저명한 미국작가 제프 쿤스의 <신성한 마음>이다. 현재 국제미술시장에서 스타급 작가의 작품으로 세계 주요미술관에서나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치킨배달 오토바이

치킨배달 오토바이

“치킨 왔습니다.” 배달부의 목소리는 항상 반갑기 그지없다. 그 배달하는 아저씨도 일상에서 반복적인 것을 벗어나 새로운 것을 찾는다. <포츈 치킨>아저씨의 배달가방은 그냥 철가방이나 보온 가방이 아니라 뭔가 색다른 가방이다. 이왕이면 거리의 손님들 눈에 띄게 알록달록 조화와 그림으로 장식된 것이다. 배달부도 마치 예술가처럼 배달가방을 만드는 세상이다. 치킨뿐만 아니라 삶의 의욕까지 배달하는 것 같아 더 반갑다.

제주도 황금륭 빅버거

제주도 황금륭 빅버거

금강산도 식후경. 여행과 음식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여행의 재미가 배가 되고, 음식이 맛이 없으며 뭔가 부족하다. 제주도에 2003년 문을 연 황금륭 버거집은 주택이 거의 없는 휑한 중산간 지역에 있지만 하루종인 관광객으로 붐빈다. 이곳에는 판매되는 빅버거 때문인데 빅버거는 웰빙의 섬 제주에서 판매되는 버거답게 제주도산 돼지고기, 야채, 과일과 우리밀로 만든 야채버거이다. 주인이 직접 텃밭에서 재배한 허브를 이용하여 1인용이 아니라 2-3인용으로 만든 초특대형 버거로 입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는데 최근 2호점이 생기기도 했다. 이 초대형 버거를 먹고 감동한 사람들이 허름한 식당 테이블과 기둥에 남긴 흔적 때문에 빅버거를 두고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창의력이 만나 특별한 공간을 만들고 있다

경기도 미술관 내일 도서관

경기도 미술관 내일 도서관

컨테이너는 제작하기 쉬운데다가 응용하기도 쉬워서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된다. 최근 주목받는 작가 배영환은 2009년 컨테이너로 도서관을 만들고 ‘내일 도서관’이라 명명했다. 경기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문화소외지역에 도서관을 보내는 프로젝트인데 이동하기도 쉽고, 접근성도 좋아서 수원, 시흥, 남양주, 양평, 광주에서 선보인 바 있다. 동네주민들이 오는 사랑방, 놀이터의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도록 외벽은 유리로 만들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 후 경기도미술관 앞마당에도 설치되었는데 미술관 앞이라 그런지 바깥에서 보는 사람만 많고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적다

경기도미술관 강익중 작가의 <5만의 창, 미래의 벽>

경기도미술관 강익중 작가의 <5만의 창, 미래의 벽>

“문화와 종교 그리고 사는 환경이 전혀 다른 곳에서 모여진 아이들의 이야기들이지만 언제나 발견되는 모습은 순수함이다.” 뉴욕에 사는 한국작가 강익중이 어린이들과 작업하면서 든 생각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어린이와의 협업을 좋아하는 작가 강익중은 종종 한국에서 이런 순수함을 예술로 담아내곤 한다. <5만의 창, 미래의 벽>은 강익중이 전국에 있는 5만 명의 어린이에게 가로세로 각각 3인치의 작은 나무패널에 그림을 그리도록 하여 모은 후 경기도 미술관 실내 벽에 설치한 작업이다. 2008년 5개월에 걸쳐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자신의 꿈을 말하는 동심의 세계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작은 패널 하나하나 설치하기 위해 대학생, 군인, 장애인, 보호감찰 대상자들 여러 자원봉사자들이 수고한 벽화 작업이다.

테마파크의 섬 제주, 항공우주박물관

테마파크의 섬 제주, 항공우주박물관

2008년까지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는 서귀포시 안덕면 일원에 신화역사공원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최근 유치한 박물관이 새로이 건립되고 있는 항공우주박물관이다. 이곳은 공군에서 사용연한이 지난 전투기, 헬기와 함께 우주산업, 항공산업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곳으로 계획된 곳이다. 테마파크의 섬 제주에 컨텐트가 뛰어난 거대한 박물관이 하나 더 추가되는 것은 좋은 소식이며 오설록차박물관 바로 옆이자 영어교육도시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는 지리적 장점을 어떻게 이용해서 성공적인 문화관광을 이끌어갈지 궁금하다.

테마파크의 섬 제주, 세계자동차제주박물관

테마파크의 섬 제주, 세계자동차제주박물관

문화관광이 관광산업의 미래를 이끌 것 이라는 기대가 높다. 제주도는 그러한 관광산업의 다각화를 위해 다양한 박물관, 테마파크의 인허가를 내주고 있는데 현재 그 수가 너무 많아 반복되는 컨텐츠에 관리소홀로 향후 어떤 방향으로 발전될지 궁금하다. 2008년 문을 연 세계자동차 제주박물관은 그중 컨텐츠가 뛰어난 곳 중의 하나다. 사업가 김영락씨가 수집한 온갖 종류의 자동차를 수리, 보존처리하여 전시하고 있는 곳으로 화학사업을 하며 돈을 번 그가 2002년 회사를 매각한 후 박물관 설립의 꿈을 안고 돌아다니던 중 뉴욕 자동차박물관을 보고 벤치마킹한 곳이다. 마라도가 보이는 한적한 야산에 위치한 이 박물관에 클래식 카 매니아들, 자동차의 역사에 대해 궁금해 하는 학생들로 붐빈다. 롤스로이스, 벤츠 등 한때 현대문명의 첨단을 누렸던 차들이 위풍당당하게 전시되어 고즈넉한 제주의 자연과 묘한 대조를 이루다.

대안공간 눈과 수원의 벽화마을 2

대안공간 눈과 수원의 벽화마을 2

예술가 몇 명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변화는 그 크기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대안공간 눈>이 자체 전시장에 전시를 선보이고, 국내외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 골목영화제, 공공미술프로젝트 등을 실행하면서 예술가와 동네 주민이 만남을 주선했고 점차 주민 스스로 창작의 주체가 되도록 유도하기 시작하자 수원행궁 인근의 마을은 그 변화 속도가 빨라졌다. 여기에다 시에서 도로개선을 지원하자 땅값이 오르지 않는다고 버려지던 동네가 부활하기 시작했다. 예술보다 더 좋은 도시 활성화 촉매제는 없다.

대안공간 눈과 수원의 벽화마을 1

대안공간 눈과 수원의 벽화마을 1

수원 토박이 이윤숙씨가 남편 김정집씨와 함께 수원행궁 근처의 조그만 주택을 문화공간으로 만들어 <대안공간 눈>을 만든 것은 2005년. 낡은 구식 건물이 다닥다닥 붙은 동네는 점점 사그라들고 있었고, 빈집이 늘어가는 좁은 골목은 으슥한 분위기 때문에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이 되고 있던 차였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12년 이 동네는 완전히 다른 곳이 되었다. <대안공간 눈>이 주축이 되어 국내외 예술가를 초빙하여 벽화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조금씩 늘어간 벽화는 온 동네를 덮어 ‘벽화마을’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그뿐이 아니다. 이 벽화를 보려고 늘어나는 유동인구 덕분에 동네가 살만한 곳이 된 것은 가장 큰 수확이다.

금천아트캠프 2

금천아트캠프 2

금천아트캠프에 입주한 작가들이 허름한 건물과 주변 환경을 활용한 것을 보면 예술가가 없는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입주 작가 중에는 음악가가 있는데 답답한 건물보다 건물뒤쪽에 버려진 공간에 <음악가의 밭>을 만들어 이런저런 식물과 야채를 심었다. 왼쪽에 보이는 것이 그 밭이고 여기에다 마치 빨래를 넌 것처럼 바람에 날리는 천 작업을 더해 자칫 황량할 수도 있는 허름한 동네를 산책하고 싶은 동네로 만들고 있다.

금천아트캠프 1

금천아트캠프 1

용도가 없어진 공간을 문화예술로 채워 넣는 것은 유행이 되었다. 금천구는 금천구청 인근에 위치한 군부대 부지에 있는 낡은 건물을 금천아트캠프로 단장하고 문을 열었다. 이 캠프에는 지역의 작가, 음악가, 창작동아리 등이 입주해서 작업할 수 있는 작은 사무실 같은 공간이 20여개 있다. 입주한 작가와 모임은 자신들의 작업을 할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목공예, 악기연주 등 자신들의 재능을 기부하고 있다. 사진 속에 보이는 것은 캠프 건물과 목공예 작업장.

카셀 도큐멘타, 숲속의 음악

카셀 도큐멘타, 숲속의 음악

카셀 도큐멘타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예측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예술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여름 전시에 소개된 작업 중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숲속에 설치된 사운드 아트작업이다. 사진에 보이는 사람들은 나무와 나무 아래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30개 이상의 스피커에서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 나무가 떨어지는 소리, 폭탄이 터지는 소리, 거칠게 몰아쉬는 숨소리, 노래 소리 등이 사실적으로 들린다. 사람들은 이 소리를 들으면서 그 상황을 상상하게 되고 그 상상 속에서 수없이 긴 역사의 시간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며 현실과 과거를 오고가게 된다. 자넷 카디프와 조지 버스 밀러의 <1000 년>이라는 작업이다.

카셀 도큐멘타, 폐허를 살린 예술가들

카셀 도큐멘타, 폐허를 살린 예술가들

카셀 도큐멘타는 작은 도시 카셀에 예술가의 혼을 입힌다. 그 예상치 못한 결과는 종종 사람들을 즐겁게, 때로는 불편하게 만드는데 바로 그 예상을 뒤집는 새로움이 이 전시의 가장 큰 매력이다. 사진에 보이는 건물은 낡은 채 방치되었던 건물이었다. 여기에 예술가들이 들어가 주거공간, 부엌, 전시장 등을 만들었다. 물론 대단한 기술을 가진 작가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있는 재료로 대충 무너지지 않게 기능하도록 만들었고 이곳에서 숙식을 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가 아닌 예술가가 만든 공간은 우리에게 공간을 어떻게 쓸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벽에 보이는 ‘IN THE MIDDLE OF'라는 글은 로렌스 위너의 작업이다. 마치 인간의 성숙이 아직도 진행중이라는 말처럼 들린다

카셀 도큐멘타, 현대미술 최고의 전시

카셀 도큐멘타, 현대미술 최고의 전시

2차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되었던 독일의 조그만 도시 카셀에 5년마다 전세계에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바로 <카셀 도큐멘타>를 보기 위해서다. 이 전시는 프레데리치아눔과 같은 전통적인 건물의 전시장에서, 도큐멘타 홀과 같이 현대적 전시장까지, 조그만 대안공간에서 호텔 로비나 기차역까지, 사람이 다니는 곳, 다니지 않는 곳을 가리지 않고 예술가가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면 모두 개방하여 가히 그 개방성이나 총감독의 안목을 실현하는 점에서 가히 세계최고이다. 사진에 보이는 것은 올해 여름 열린 도큐멘타의 도큐멘타 홀에 전시된 대형작품들로 가운데에 보이는 작품이 토마스 베일의 <비행기>이다. 고무나무를 찍은 흑백사진을 조합하여 만든 이 수제 비행기는 비행의 꿈을 실현한 인간이 점점 세련된 비행기를 추구하는 관성에 대해 그 이전의 소박한 시대를 연상시키는 작업이다.

베를린의 공사 가림막

베를린의 공사 가림막

대도시 건설 공사장이나 재건축 공사장 가림막이나 펜스에 예술작업이 나타나기 시작한 지 30여년이 넘었다. 밋밋하고 기능적인 가림막보다는 시선을 사로잡고 보기에도 매력적인 아트 펜스가 널리 퍼치고 있다. 뉴욕의 에버그린 스튜디오가 1979년 경 건설업자와 손잡고 시작한 아트 펜스는 이제 전 세계로 퍼지면서 파리, 베를린, 서울, 토쿄 등 많은 곳에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베를린의 한 공사장에서 본 가림막은 눈속임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 건물이 있는 것 같지만 가만히 보면 오른쪽 끝만 실제 건물이고 나머지 부분은 그 건물의 외양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어서 공사 중인지 거의 모를 정도이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서양인들이 애호했던 눈속임 기법이 아트 펜스에 사용되어 우리가 보는 것이 사실은 다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하노버의 거리 장사꾼

하노버의 거리 장사꾼

길을 가다 출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파는 거리장사 전통은 오래 되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생선튀김을 파는 장사꾼이 있었고, 고대 로마에서는 콩수프를 파는 업이 유행했으며, 아시아의 길거리에서 흔하게 보는 국수요리도 오래 전에 길을 지나는 행인의 바쁜 시간을 위해 고안된 것이다. 오늘날도 거리음식은 계속되고 있다. 소시지, 꼬치, 삶은 달걀, 와플, 프렛첼 등등 문화권에 따라 그 종목은 다양하다. 사진속의 장사꾼은 하노버의 번잡한 쇼핑가에서 소시지를 구워 빵과 같이 팔고 있는데 앞에 단 판의 뜨거운 열기가 소시지와 함께 장사꾼의 몸도 달구고 있어 길거리 장사가 힘든 일임을 드러낸다. 비와 햇빛을 피하려고 세운 파라솔, 그 앞뒤도 소시지와 빵의 광고물, 뒤쪽 보관함 표면에는 인근 지역 지도까지, 길을 지나가는 사람을 위해 만든 종합구조물은 장사를 위해 발휘된 창의력의 결과이다.

베를린 빌리 브란트 박물관

베를린 빌리 브란트 박물관

빌리 브란트(Willy Brandt)는 독일의 현대역사에서 놀라운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1913년 미혼모하에서 태어나 어려운 환경을 딛고 독일의 평화를 위해 헌신한 정치가가 되었으며 1971년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히틀러가 집권할 때 파시즘에 맞서 싸운 사회주의자였으며, 나치가 집권을 하자 북유럽으로 가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했으며, 스페인 내전을 취재 중에 공산주의의 만행에 회의를 품고 소련의 스탈린과의 연대가 위험하다고 경고한 인물이며, 분단된 서베를린의 시장을 역임했으며, 후에 독일 총리직에 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러나 1974년 가까운 동료가 동독의 스파이로 판명되면서 총리직에서 하차하기도 했다. 다행히 그는 독일의 통일이 어느 정도 완성된 1992년 세상을 떠났으며 현재 그를 기리는 재단 및 박물관이 베를린 한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데 지난 세기 치열하게 전개된 독일의 역사가 그의 족적을 통해 설명되고 있다.

베를린 KW

베를린 KW

베를린처럼 전쟁과 파괴, 재건 등의 역사를 거친 곳은 항상 예술이 꽃피기에 최적의 장소인 것 같다. KW(Kust-Weke) 현대미술관은 좋은 예이다. 1990년대 초 독일이 통일되자 버려진 마가린 공장건물을 복구하고 인접건물을 재생하기 시작한 후 마침내 1999년 2000제곱미터 규모의 전시장, 작가 스튜디오를 보유한 현대미술센터로 문을 열었다. 제한된 공간 때문에 기존의 미술관처럼 컬렉션을 확보하기 보다는 실험적인 전시, 이벤트를 보여주는 장소로서 기능하고 있다. 뉴욕의 P.S.1처럼 비영리로 운영되면서 국고보조금을 받고 있으며, 베를린에서 가장 실험적인 작업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1996년부터 시작한 베를린 비엔날레는 이 미술관의 대표행사인데 2012년 현재 7회를 맞아 정치적 신념과 예술을 접목한 작업들로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앤디 워홀의 마오

앤디 워홀의 마오

마오쩌둥에 대한 애정은 중국인만의 것이 아니다. 미국작가 앤디 워홀, 한국작가 김동유 등 예술가도 중국의 정치가이자 혁명가인 마오를 그렸다. 예술가의 작품을 통해 그려진 마오는 더 이상 공포의 정치가가 아니라 매력적인 유명인사로 변모한다. 워홀은 1970년대부터 마오의 이미지를 실크스크린, 회화로 제작했으며, 그가 즐겨 그리던 마릴린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 등과 함께 당시 미국의 적국이었던 중국의 정치인을 유명인사로 만들고 있다. 사진의 장면은 베를린의 함부르그 반호프 미술관에 소장된 워홀의 작업으로 그 거대한 크기 때문에 미술관의 대표작품이 되었다. 마오의 초상을 그린 그림이 통일된 베를린의 한 미술관의 상징처럼 대접받는 시대. 확실히 예술은 국가를 넘고, 시대를 넘어 오래 남는 것 같다.

리처드 아츠워거

리처드 아츠워거

1929년생인 아츠워거는 한때 아이들 사진을 찍으면서 생계를 유지하던 예술가 지망생이었으며, 딸이 태어나자 가구를 만들어 팔면서 가족을 부양하기도 했다. 그러나 예술에 대한 열정을 누르지 못하고 결국 가구, 오브제를 오가면서 작업을 했고 1960년대 중반 40세 가까워서 예술가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현재 건축, 조각, 설치, 회화 등 거의 모든 장르와 영역을 넘나드는 그는 미국작가중 주목할 만한 작가로 꼽힌다. <No Exit>은 그런 그의 성향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전등에 ‘출구’라고 쓴 단어가 반복되는 작업이다. 긴 미술관 복도를 적당한 간격으로 등이 설치되어 있으나 정작 100미터가 넘는 긴 복도의 출구는 1개밖에 없는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출구’와 ‘출구 없음’은 결국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는 것이다.

베를린 함부르그 반호프 미술관

베를린 함부르그 반호프 미술관

베를린에 위치한 함부르그 반호프 미술관은 원래 기차역이었다. 19세기 중반 세운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의 기차역을 개조하여 현대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1980년대 중반 베를린의 사업가 에릭 막스가 자신의 컬렉션을 베를린시에 기증하자 시정부는 이 공간을 미술관으로 개조했다. 현대미술을 전시하는 곳답게 오늘날 독일을 대표하는 요셉 보이스, 안셀름 키퍼, 시그마 폴케 등의 작가뿐만 아니라 미국의 앤디 워홀, 로버트 라우센버그 등 다양한 작가들의 대형작업을 선보이며 때로 중국 등 아시아의 작가도 소개한다. 사진 속에 보이는 푸른 빛 설치는 댄 플래빈의 형광등 작업이다. 1960년대 중반 미국에서 형광등을 활용한 설치작업으로 등장한 플래빈은 이처럼 건축적 공간에 빛을 더하여 원래의 다소 소외된 공간을 지각과 체험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플래빈이 처음 형광등을 사용하여 작품을 제작하자 동료작가들이 ‘난 왜 그런 것을 착안하지 못했지?’라고 질투했다고 한다. 새로운 영역 탐구는

베를린 브란덴부르그 문과 파리광장

베를린 브란덴부르그 문과 파리광장

통일은 많은 것을 바꾼다. 동과 서를 나누는 적대적 공간이었던 베를린의 브란덴부르그 문은 통일이후 통일의 상징이자 관광명소로 변했다. 원래 브란덴부르그 문은 평화를 상징하는 기념비로 18세기 말 세워진 구조물이다. 그러다가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군이 프러시아를 점령하면서 이 문을 통과한 바 있고, 프러시아 제국은 1814년 연합군과 함께 나폴레옹의 정권을 내쫓기 위해 파리를 점령하는데 이를 기념해서 브란덴부르그 문 앞의 광장을 파리광장이라고 명명했다. 베를린의 파리광장. 유럽의 역사는 특정한 공간에서도 이렇게 복잡하게 얽힌다. 2012년 파리광장은 젊은이들의 공연장소가 되었다. 비보이의 춤부터 음악공연까지 다양한 퍼포먼스가 열리면서 관광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공포와 긴장의 장소가 통일이후 원래 의도한 대로 평화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온갖 인간의 몸짓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 속에서 미국과 독일의 군사 2명이 한 여성을 가운데 두고 키스하는 장면은 전쟁이 사랑으로 승화된 오늘을

베를린 의회 의사당의 한스 하케

베를린 의회 의사당의 한스 하케

독일 의회가 새로운 집을 설계하면서 예술을 포함하기로 한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보여준 과정은 논란에 휘말리게 된다. 시작은 의회 건물 앞에 “독일 국민을 위하여”라고 새겨진 문구이다. 이 문구는 1916년 빌헬름 2세의 지시에 의해 새겨진 것으로 국민을 대표하는 의회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독일작가 한스 하케는 이 문구의 구절이 현대 독일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1999년 작품설치 의뢰를 받자 <DER BEVÖLKERUNG>이라는 문구를 네온으로 건물 내부 정원에 설치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단어는 “인구” 또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시민권을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 이민자, 외부인까지도 포함할 수 있는 포괄적인 단어였기 때문에 결국 의회는 이 작품의 설치허가 여부를 투표에 부쳤고, 260대 258이라는 근소한 차이로 통과되었다. 의회에 선출된 의원들은 자신이 지역구에서 가져온 흙을 이 정원 바닥에 뿌릴 수 있는데, 의원이 바뀔 때마다 이 흙 뿌

베를린 의회 의사당

베를린 의회 의사당

독일의 통일은 여러 가지 고민을 안겨주었다. 그중 하나가 국민을 대표하는 통합된 의회의 자리였다. 선택된 곳은 바로 분단 전 1930년대까지 의회 건물로 쓰이던 곳. 그러나 이 건물은 1889년 고전적인 르네상스 양식으로 완공되어 사용되다가 1933년 화재, 1940년대 2차 세계대전의 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