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옥의 맛콘크리트 건물이 주는 안락함에 살다보면 가끔씩 한옥이 색다르게 다가온다. 수직, 수평의 구조로 기능과 효율성을 높인 현대식 건물이 좋다는 건 누구나 안다. 그런데 남산 한옥마을이나 지방의 전통마을, 또는 옛날 관가를 재현한 곳에 들러보면 마당과 정원, 나무 마루, 늘어진 처마, 가지런한 기왓장, 오방색 단청이 새삼 조용히 감동을 준다. 옛날 글씨로 된 현판 앞으로 떨어지는 빗줄기를 보면서 잠시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게 되는 데, 고층건물에 익숙한 현대에 느끼는 한옥의 맛이다. |  코스모폴리탄 도시 거리거리를 걷다보면 문득 어느 도시에 있는지 망각할 때가 있다. 간판은 모두 영어로 되어있고, 건물도 어디에선가 본 듯한 건물들이다. 유럽의 여느 도시의 모습이나, 라스베가스와 비슷한 풍경이 잠깐씩 서울의 거리에 나타난다. 가을 어느 날 서울 북촌의 거리는 마치 유럽의 도시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패션, 건축, 식음료 문화까지도 유럽의 과거와 현재에서 수입하여 일상으로 소비하며 사는 코스모폴리탄 서울의 풍경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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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수동 대림 창고 카페서울 성수동의 재생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유명 배우가 건물을 샀다는 소문이 들린다. 서울시가 길을 정비하고 작가 스튜디오를 제공하고, 임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반면에 민간은 건물을 임대하거나 사들여 허름했던 지역에 공연장, 전시장, 공방, 갤러리 카페 등을 만들어 손님을 끌고 있다. 최근에 문을 연 카페는 대림 창고 건물을 최소한으로 리모델링하여 전시장과 카페를 겸하고 있다. 거친 벽에 걸린 그림과 앙상한 철제 구조물, 천장까지 닿는 나무와 향긋한 커피, 맛있는 음식 냄새가 섞여서 도시 감성을 자극한다. |  초의선사의 일지암차 한잔을 마시며 깨달음을 얻었던 초의선사는 우리나라의 차문화를 정립한 인물로 평가된다. 15세에 출가한 후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과 교류했으며, 그가 쓴 <동다송>은 한국차의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식견이 높았던 그가 경기 지역에 가면 한양의 고관대작이 찾아와 그를 만나고 갈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그러나 남도의 대흥사 계곡에 일지암을 짓고 주변에 차나무를 키우고 정원을 만들어 40년간 은거하며 살다가 갔다. 그의 사후 사라졌던 일지암은 1970년대 이후 다도를 사랑하는 애호가들이 나서서 재건되었고, 지금도 다도를 사랑하는 이들의 순례가 끊이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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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릿 푸드 페스티발한국과 미식이 만나면, Korea+Eat가 만들어지고, 그렇게 한국대표 레스토랑 랭킹 코릿(KOREAT)이 탄생했다. 미식전문가 100명이 맛을 따지고 고른 레스토랑들이 선정된다. ‘코릿 페스티벌’은 그 식당의 셰프들이 푸드 트럭에서 음식을 파는 축제로, 2015년 가을 제주에서 열렸다. 모든 음식이 1개에 5000원인데, 한 끼 식사로 배를 채우려면 3개를 구매해야 할 정도이다. 피자에서 스시, 타파스까지 싼 편이 아닌데도 고급스런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소문에 줄이 꼬리를 물고 늘어났다. 여행과 요리를 접목한 새로운 축제로 성공할 것 같다. |  북한음식평양비빔밥, 해주비빔밥, 개성장국밥. 익숙하지 않은 요리이다. 종로의 한 식당 광고에 나온 음식들로 분단의 시대에 경험할 기회가 없던 것들이라서 그런지 눈이 간다. 맛을 어떨까? 어떤 재료가 들어갈까? 언제 통일이 올지 모르고, 이산가족은 상봉할 기회도 많지 않은 한반도에서 남과 북은 긴장과 공포, 그리고 아픔과, 그리움, 아쉬움을 안고 산다. 이보다 인간적일 수 없을 정도로 쓰라린 현실이다. 그 현실 속에서 음식으로라도 먼 곳의 삶을 상상할 수 있다는 건 다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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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니스의 빌라베니스의 구도심은 마치 15세기로 돌아간 듯한 환상을 준다. 수변에 세워진 빌라와 팔라조는 당시 권세를 누리던 집안의 흔적들이다. 수백 년 된 이 건물들의 원래 주인은 역사와 함께 다 사라지고 없으나, 아름다운 건물은 시대가 바뀌면서 새로운 역할을 맡고 있다. 일부는 고급 호텔로 개조되기도 하고, 일부는 연회장, 파티 대여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때로 예술 전시장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사진 속의 두 건물은 그러한 전시장이다. 건물 앞에 붙은 현수막이 그 안에 담긴 예술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자동차가 없던 시절 지은 건물이기 때문에 당연히 주차공간이 없으며, 대신에 베니스의 수상택시인 곤돌라를 타고 오거나 걸어서 와야 한다. |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19세기 말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릴 때 이탈리아 물의 도시 베니스에 ‘베니스 비엔날레’가 탄생했다. 마치 상품 엑스포를 열듯이 각 나라의 예술을 선보이는 ‘예술 엑스포’를 지향했는데,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웬만한 제국이 자국의 전시관을 지어 국력을 자랑하곤 했다. 한국이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관을 지은 것은 그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1995년. 문민정부의 문화정책과 백남준의 조언과 노력으로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유수의 작가들을 선보이고 있다. 올해의 한국 대표는 문경원, 전준호 작가. 배우 임수정이 재능기부로 참여하여 미래의 인류가 사는 법을 보여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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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카소의 은인20세기 초 파리. 스페인에서 온 피카소는 열정이 넘치는 젊은 예술가였다. 가난에 찌들려 끼니를 잇기도 힘든 시절, 그에게 갑자기 나타난 은인은 프랑스 사람도, 스페인 사람도 아닌, 미국인이었다. 거투르드 스타인. 남동생과 파리에 여행을 왔다가 머물게 된 스타인 여사는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기꺼이 돈을 주고 구입한다. 심지어 자신의 초상화까지도 의뢰하는데, 사진 왼쪽에 보이는 것이 바로 그 초상화이다. 아프리카 가면처럼 뭔가 음산하면서도 예리한 모습은 보통 사람이 원하는 초상화와는 거리가 멀다. 가난한 예술가를 위해 지갑을 연 미국 시인의 마음씀씀이가 아름답다. 오른쪽 그림은 그 무렵 그린 피카소의 작품. |  하늘과 틀고대인은 하늘을 보고 세상을 파악했다. 하루의 시간, 계절별 시기, 심지어 인간의 운명까지도. 하늘의 밝기와 구름의 흔적, 별자리의 움직임 등 하늘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통해 넒은 우주에서 힘없이 살아가는 인간의 미래를 이해하려고 했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하늘은 인간이 만든 틀 속으로 들어왔다. 시간은 시계로, 별자리는 망원경으로, 푸른 하늘은 아름다운 창문 속으로 들어오면서, 점점 하늘에 대한 의존도가 줄기 시작했다. 가끔 우연히 운 좋게도 푸른 하늘을 보게 되면, 왠지 먼 고향을 보는 듯 아련하게 느끼는 것은 우리의 DNA에 남은 고대인의 기억 때문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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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르본느 대학인구감소로 한국의 대학은 구조조정중이다. 미래학자들은 대학이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의 대학은 어땠을까. 원래 대학이라는 개념은 소수의 재능있는 젊은이를 교육하는 곳이었다. 파리의 소르본느 대학은 신학자를 배출하기 위한 교육기관으로 1250년대에 설립된 대학이다. 프랑스 혁명, 교회와 국가의 분리 정책을 거치면서 소르본느도 변모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문과대학으로 자리잡는다. 다시 1968년 학생운동을 거치면서 파리 대학 시스템 속에 편입되어 지금은 오래전의 영광을 대표하는 곳이 되었다. 사진은 1880년대에 새로이 지은 소르본느 대학 본관. |  파리의 오스망 양식 건물1850년대 파리. 밀려드는 인구와 주거문제, 위생문제를 견디다 못해 나폴레옹 3세는 파리의 도시를 정비하게 된다. 좁은 골목, 오래된 건물을 헐고 넓은 길, 하수도, 공원, 광장 등 프랑스 제국의 수도에 걸맞는 도시계획이 추진되었다. 오늘날 파리의 구도심은 바로 이때 진행한 도시정비의 결과이다. 가로수가 있는 길, 센느 강의 섬과 육지를 잇는 다리, 기차역 광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넓은 대로변 좌우로 늘어선5-6층짜리 아파트 건물이다. 사진 속에보이는 건물이 바로 오스망 양식의 아파트 건물로 1층은 가게, 2층은 가게 주인의 집, 3층부터 중산층이 거주하는 주거공간이었다. 지금은 멋을 추구하는 부자들이 선호하는 아파트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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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인을 입은 버스 정류장우리나라 도시에 디자인을 입히는 운동이 불기 시작한지 10년이 되어간다. 서울을 시작으로 ‘디자인’이 깃든 도시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고 실제로 가시적인 결과들이 나타났다. 간판의 크기가 작아졌고, 대형건물 외벽에는 미디어 작업이 종종 나타난다. 한강 위에는 근사한 랜드마크 건물이 들어서 둥둥 떠있다. 비롯 완전히 사용되지 못하기는 하지만. 디자인 바람은 지방에도 불기 시작했다. 광주, 부산, 청주 등 글로벌 문화 도시를 지향하는 곳에 점점 세련된 디자인이 거리를 덮기 시작했다. 사진은 대형간판을 뒤로 하고 나무를 형상화한 산뜻한 버스 정류장을 설치하는 청주의 모습. |  다남 베개옛날 옛적, 여성이 서당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바느질, 서화로 소양을 닦던 시절, 자수는 거의 필수적인 공예였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일상용품에 자수를 놓았는데 그 중에는 베개모와 베개의 양쪽 마구리도 있었다. 멀리 나가기도 못하고, 기왓집 울타리 안에서 가문이 중시하는 가르침을 받들며 살다가 나이가 차면 시집을 가는 것이 여자의 일생이었고 ‘다남’, ‘자’라고 한자로 새긴 베개를 가지고 시집을 기곤 했다. 아들을 많이 낳아서 남편의 대를 잇는 것이 가장 큰 미덕이던 시절, 예쁜 꽃 문양과 함께 ‘다남’이라고 새기는 일은 마치도 자신이 부질없는 존재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을 것이다. ‘다남’이 여성만의 능력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고, ‘딸바보’가 유행어가 된 오늘날 ‘다남 베개’는 그 옛날 쓰라린 여성의 삶을 보여주는 유물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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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례용 양초두 집안의 결합을 알리고 두 남녀의 한평생을 약속하는 전통결혼식은 화려한 물건으로 가득 찬 혼례상을 가운데 놓고 진행된다. 사철나무, 대나무, 동백나무로 장식하고, 청홍색 촛대에 불을 켜며, 봉황을 상징하는 조각품이나 닭 암수 한쌍을 올리기도 한다. 촛대도 그냥 두지 않고 목단무늬와 여러 장식을 혼합하여 경사스러운 날을 기렸다. 목단은 꽃 중에서도 기품있고 아름다워서 문양으로 만들 때 화목과 번영, 부귀영화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식이 끝나면 친지, 이웃과 잔치를 벌여 음식을 나눠 먹으며 좋은 날을 축하했는데 오늘날 호텔식 결혼식에 부조금 봉투만 늘어가는 결혼식과는 확실히 격이 다른 시대였다. |  야간 조명사람이 사는 도시에 야간 조명은 오랜 숙원이었다. 기름, 석탄을 이용한 조명을 사용하다가 본격적으로 길거리 가로등에 가스등을 사용한 것은 19세기 초반이다. 당시 산업혁명의 중심이었던 런던, 파리를 중심으로 가스등이 도입되었고 20세기에 들어 전기등이 활용되기 시작했다. 20세기 중반이 되면 미국을 중심으로 크리스마스에 조명장식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오늘날은 문명의 상징처럼 일본,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에도 널리 확산되어 크리스마스뿐만 아니라 일년 내내 도시 야간 조명이 다채롭게 사용된다. 하지만 에너지 낭비라는 주장과 도시의 즐거움을 확대하는 장치라는 의견대립은 팽팽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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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하이 번드19세기 중반 아편전쟁에 패한 중국이 개항을 하자 그 바람을 타고 상하이에 세계 열강이 들어오면서 조용하던 황포강가의 어촌은 외국인을 위한, 외국인의 의한, 외국인 상업, 거주지역으로 변모했다. 번드(Bund)라고 불리는 이 지역은 한 때 외국계 은행, 사업체로 붐비는 아시아의 세계주의 현장이자 유럽의 건축을 자랑하던 곳이었다. 160여년이 지난 오늘날,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서양식 건물은 이미 중국은행이 차지하고 있고 그 위로 중국국기인 오성홍기가 휘날리는 가운데, 중국과 전세계에서 온 또 다른 외국인들이 번드를 거닌다. |  음악 케익티라미수의 맛은 달콤하면서 느끼하고 동시에 쌉싸름하다. 사보야르디 비스켓, 계란 노른자, 치즈, 코코아, 럼이나 와인 등을 재료로 만든 이 케익은 원래 이탈리아에서 처음 선보였다. 정확한 제작 시기는 논쟁중이지만 1980년대 이후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티라미수를 번역하면 “나를 행복하게 해주세요”이다. 그래서인지 한 카페에서 주문한 티라미수 옆에 높은음자리표가 초콜렛으로 그려져 있다. 케익을 준비한 전문가가 솜씨를 뽐내며 그린 음표는 마치 달콤한 음악을 들려주는 것 같다. 작은 티라미수 한 조각에도 이렇게 창의성을 입히는 이들이 바로 창조적 인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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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풍경조선시대, 일제시대, 그리고 급속 성장을 이룬 1970, 80년대를 거치면서 서울의 풍경은 많은 변화를 거쳤다. 종로에서 떡을 사먹던 어릴 적 기억이 그대로인데 오늘날 서울의 삶은 프랑스산 와인을 기울이면서 사교를 해야 하고, 외제차를 뽐내며 탈 정도로 라이프스타일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런데 그 성장의 속도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디자인 서울’을 외치며 도시의 간판을 거의 다 바꿀 정도의 바람이 분지도 꽤 지났건만 강북 어느 동네의 닭집 간판은 그때도 지금도 변함없이 주인이 직접 쓴 글씨간판이다. 기계가 세련되게 만든 간판이 넘쳐나는 오늘날 손글씨로 쓴 간판이 달콤한 미소를 짓게 한다. |  서울의 변화서울은 빠르게 변한다. 고령화, 저성장 등 비관적인 뉴스에도 불구하고 서울은 정체된 도시라기보다는 빠르게 변하는 도시이다. 스타벅스 등 글로벌 브랜드뿐만 아니라 서울의 중심지에서나 볼 수 있었던 외국계 식당이 점차 동네골목으로 들어오고, 우리의 입맛뿐만 아니라 음식에 대한 상식도 바꾸고 있다. 중국식당, 일본식당은 기본이고 베트남, 태국음식은 이제 흔히 볼 수 있으며, 몽골, 인도, 터키의 음식문화도 들어오고 있다. 사진에 보이는 <아시아 아시아>식당은 인도식 커리와 난을 맛볼 수 있는 인도식당이다. 이국적 간판을 통과해서 타지마할이 그려진 실내에서 먹는 이국적인 음식은 글로벌 시대의 서울의 맛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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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스텔코리아제주글로벌 시대의 보헤미안은 여행문화를 이끈다. 뉴욕, 파리, 런던, 서울, 토쿄 등 전 세계의 도시가 이들의 기착지이다. 제주도 예외는 아니다. 배낭을 매고 공항에 도착한 후 사전에 예약한 곳으로 잠을 자러 가는데 이들을 위한 호스텔, 게스트하우스가 한참 유행이다. 한때 국내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별장같은 펜션바람이 불다가 지금은 ‘게스트하우스’로 불리는 숙박공간이 증가하고 있다. 사진에 보이는 곳은 제주 구도심에 들어선 호스텔코리아제주 1호점이다. 기존 건물을 구입하여 약간의 리모델링을 거친 후 보헤미안 문화에 걸맞게 특이한 외관그림을 더했다. 상권이 약화되고 있는 구도심에 들어서는 새로운 숙박공간 덕분에 아침과 저녁마다 사람 사는 동네 냄새가 난다. |  나리타 공항공항은 현대인의 여행과 이동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이며, 중간 기착지이다. 제트기가 상용화된 1970년대를 거치면서 공항은 국가 간의 이동을 보다 빠르고 만들면서 현대문명의 화려함을 자랑하는 곳이 되었다. 여러 국제공항의 설립역사가 보여주듯이 국가 정체성의 구현장소이자, 충분한 부와 지식, 여유시간을 확보한 “키네틱 엘리트(kinetic elite)"들이 현대 유목민으로서 통과하는 곳이기도 하며, 고향을 두고 경제적으로 발전된 외국으로 직장을 찾아 나가야 하는 이주노동자들이 거치는 곳이며,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잠시 머무르는 동안 쇼핑, 관광, 오락, 휴식을 즐길 수 있는 다목적복합공간이다. 인천공항처럼 아시아 여러 지역과 미주 지역을 연결하는 중간기착지인 일본 나리타 공항에 석양이 깃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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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의 공사 가림막대도시 건설 공사장이나 재건축 공사장 가림막이나 펜스에 예술작업이 나타나기 시작한 지 30여년이 넘었다. 밋밋하고 기능적인 가림막보다는 시선을 사로잡고 보기에도 매력적인 아트 펜스가 널리 퍼치고 있다. 뉴욕의 에버그린 스튜디오가 1979년 경 건설업자와 손잡고 시작한 아트 펜스는 이제 전 세계로 퍼지면서 파리, 베를린, 서울, 토쿄 등 많은 곳에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베를린의 한 공사장에서 본 가림막은 눈속임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 건물이 있는 것 같지만 가만히 보면 오른쪽 끝만 실제 건물이고 나머지 부분은 그 건물의 외양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어서 공사 중인지 거의 모를 정도이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서양인들이 애호했던 눈속임 기법이 아트 펜스에 사용되어 우리가 보는 것이 사실은 다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  하노버의 거리 장사꾼길을 가다 출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파는 거리장사 전통은 오래 되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생선튀김을 파는 장사꾼이 있었고, 고대 로마에서는 콩수프를 파는 업이 유행했으며, 아시아의 길거리에서 흔하게 보는 국수요리도 오래 전에 길을 지나는 행인의 바쁜 시간을 위해 고안된 것이다.
오늘날도 거리음식은 계속되고 있다. 소시지, 꼬치, 삶은 달걀, 와플, 프렛첼 등등 문화권에 따라 그 종목은 다양하다. 사진속의 장사꾼은 하노버의 번잡한 쇼핑가에서 소시지를 구워 빵과 같이 팔고 있는데 앞에 단 판의 뜨거운 열기가 소시지와 함께 장사꾼의 몸도 달구고 있어 길거리 장사가 힘든 일임을 드러낸다. 비와 햇빛을 피하려고 세운 파라솔, 그 앞뒤도 소시지와 빵의 광고물, 뒤쪽 보관함 표면에는 인근 지역 지도까지, 길을 지나가는 사람을 위해 만든 종합구조물은 장사를 위해 발휘된 창의력의 결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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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디 워홀의 마오마오쩌둥에 대한 애정은 중국인만의 것이 아니다. 미국작가 앤디 워홀, 한국작가 김동유 등 예술가도 중국의 정치가이자 혁명가인 마오를 그렸다. 예술가의 작품을 통해 그려진 마오는 더 이상 공포의 정치가가 아니라 매력적인 유명인사로 변모한다. 워홀은 1970년대부터 마오의 이미지를 실크스크린, 회화로 제작했으며, 그가 즐겨 그리던 마릴린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 등과 함께 당시 미국의 적국이었던 중국의 정치인을 유명인사로 만들고 있다. 사진의 장면은 베를린의 함부르그 반호프 미술관에 소장된 워홀의 작업으로 그 거대한 크기 때문에 미술관의 대표작품이 되었다. 마오의 초상을 그린 그림이 통일된 베를린의 한 미술관의 상징처럼 대접받는 시대. 확실히 예술은 국가를 넘고, 시대를 넘어 오래 남는 것 같다. |  리처드 아츠워거1929년생인 아츠워거는 한때 아이들 사진을 찍으면서 생계를 유지하던 예술가 지망생이었으며, 딸이 태어나자 가구를 만들어 팔면서 가족을 부양하기도 했다. 그러나 예술에 대한 열정을 누르지 못하고 결국 가구, 오브제를 오가면서 작업을 했고 1960년대 중반 40세 가까워서 예술가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현재 건축, 조각, 설치, 회화 등 거의 모든 장르와 영역을 넘나드는 그는 미국작가중 주목할 만한 작가로 꼽힌다. <No Exit>은 그런 그의 성향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전등에 ‘출구’라고 쓴 단어가 반복되는 작업이다. 긴 미술관 복도를 적당한 간격으로 등이 설치되어 있으나 정작 100미터가 넘는 긴 복도의 출구는 1개밖에 없는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출구’와 ‘출구 없음’은 결국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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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 알테스 뮤지엄의 로툰다최초의 박물관 건축물로 알려진 알테스뮤지엄을 설계한 칼 프리드리히 쉰켈은 신고전주의 양식을 추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알테스 뮤지엄에도 그리스, 로마건축의 요소들이 산재해 있다. 특히 건물의 중앙에는 1, 2층을 모두 차지하는 로툰다가 있는데 하단에는 그리스의 코린트양식의 기둥이 원형으로 배열되어 있고, 기둥 사이에 로마시대에 제작한 조각상들이 서 있으며, 위에도 조각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어 있다. 천정에는 로마의 판테온 신전의 돔과 유사하게 설계된 대형 천정이 있고, 그 천정 가운데로 열린 창이 있어서 햇빛이 들어온다. 이 뮤지엄은 남쪽 유럽에서 시작된 건축문명이 북쪽으로 이동하여 하나의 규범으로 자리잡은 역사를 단면적으로 보여준다. |  최초의 박물관 건축, 알테스 뮤지엄, 베를린베를린에 가면 박물관이 모여있는 ‘박물관 섬’이 있다. 이 섬에는 페라가몬 뮤지엄 등 서양문명의 뿌리를 볼 수 있는 아랍, 그리스, 이집트의 유물들이 정연히 전시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알테스 뮤지엄은 1830년에 설립된 곳으로 ‘오래된 박물관’이란 명칭답게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이다.
당시 이 지역을 통치하던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는 건축가 칼 프리드리히 쉰켈에게 왕실컬렉션을 국민에게 선보일 수 있는 박물관 건물 설계를 의뢰했다. 유럽근대문명이 꽃피던 시기에 쉰켈이 지은 이 건물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그리스의 건축과 로마시대의 건축에서 모티프를 차용하여 설계되었는데 유럽에서 박물관으로 설계된 최초의 건물로 알려져 있다. 이오니아식의 기둥이 질서정연하게 배열된 건물정면, 전시공간의 평면적 배열은 선명한 좌우 대칭과 질서를 중시하는데, 이러한 구조는 실내에도 이어진다. 199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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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천아트밸리 조각공원포천의 폐채석장을 예술과 문화에 접목하여 재개발한 ‘포천아트밸리’는 전시장, 공연장, 조각공원, 전망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조각공원은 비탈진 언덕에 위치하여 강건한 바위, 그 바위를 뚫고 자란 나무 등, 자연의 혼란스러움, 아름다움과 경쟁할 수밖에 없다. 바위 오른쪽 끝에는 누워있는 인간의 뻗은 두 다리가 설치되어 있고 전경에는 국적불명의 의자, 바위, 타공된 철판으로 이루어진 작업이 있다.
예술은 자연의 동반자일까 아니면 훼방꾼일까? 예술가는 작품을 만들 때 이런 점을 얼마나 고려할까? 미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지만 자연과 만나는 예술은 그 기준을 보다 자연에 맞춰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은 자연과 문명 사이에서 정말 무한대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있을까? 비와 바람에 페인트가 벗겨지고 화려한 색채를 상실하게 되면 자연의 힘을 알게 되진 않을까? 포천아트밸리 조각공원에서 드는 생각이다. |  포천아트밸리 호수와 무대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아와지지마에 있는 폐채석장을 상업, 문화시설로 개발하여 유메부타이(꿈의 정원)를 만든 바 있다. 간사이 공항을 지을 때 이 채석장의 돌을 가져다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은 최고급 호텔, 식물원, 정원 등이 들어서 있다.
우리나라의 포천에도 폐채석장이 있었다. 이곳은 19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화강암 채석장으로 사용되다가 용도가 다하자 버려진 곳이었는데 2000년대 들어 예술과 문화를 접목한 재개발 사업을 벌여 ‘포천아트밸리’를 조성했다. 2009년 가을 개장한 이곳은 전시장, 공연장, 조각공원, 전망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압권은 돌을 캐내면서 형성된 깊은 계곡에 물을 채워 만든 넉넉한 호수이다. 그리고 그 호수 옆에는 거대한 절벽을 뒤로한 야외 공연장이 있다. 푸른 물위로 감도는 엷은 안개는 아픈 과거의 기억을 지워준다. 자연을 탐하고 버리고 다시 가꾸는 갸륵한 정성은 역시 변화무쌍한 인간다운 모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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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의 공간사진을 잘 들여다 보라. 사진 속에서 뭔가 특이한 점이 없는지. 국밥집, 사진관, 다방, 복덕방 간판이 있는 이 길은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불조심, 반공이라는 거리포스터를 보면 짐작이 가겠지만 1970년대의 모습인데 사진 오른쪽 끝에 노랑 미니스커트를 입고 머리를 살짝 염색한 2012년 스타일의 여성이 보인다.
이 추억의 거리는 실제공간이 아니라, 박물관 야외에 재현된 소위 테마파크와 같은 체험공간이다. 나지막한 지붕, 기울어진 전봇대, 빛바랜 영화포스터, 빨간 공중전화기 등은 쥐를 잡아 학교에 가져가고, 반공표어 숙제를 하던 그때 그 시절을 연상시킨다. ‘추억’은 특정 시간과 공간에 연루된 개인적 기억, 감상적 향수이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아픈 기억도, 따뜻한 아랫목에서 먹던 찐 고구마의 달콤한 기억도 모두 추억의 일부이며, 때론 감상적으로 때론 병적으로 내가 누구인가를 드러내는 단편이기도 하다. 거의 모든 것이 자본으로 귀결되는 오늘날 ‘추억’은 개인적인 기 |  수장 1908물건이나 토지를 사고파는 일은 오래전부터 계약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져 왔다. 계약서에는 그 거래를 증명하기 위한 장치가 개입되는데 바로 도장이다. 나무나 뼈, 점토를 깎아 근사한 글자로 새긴 도장은 중국, 수메르 등 여러 고대문명에서도 발견되며 우리나라에서도 부여시대부터 사용되어 역대 왕실, 양반계급을 중심으로 널리 퍼졌다. 특히 조선시대 중기 이후에 들어서 도장은 서명방식과 함께 널리 퍼지는 데 호적 등의 문서기록에 사용되기 시작한다. 글을 잘 모르는 하위계층은 손도장을 사용했으며, 그중에서도 손가락을 대고 그리는 것을 수촌, 손바닥을 대고 손의 전체 모양을 따라 그리는 것은 수장이라고 불렀다.
사진에 보이는 것은 민속박물관에 소장된 1908년 매매계약서로 서류 왼쪽에 기입한 수장이 선명하다. 왼손을 대고 그려 매매의사를 확인하고 있다. 이로부터 몇 년이 지나지 않아 한반도를 점령한 일제는 1914년부터 인감제도를 도입했다. 사실 일본은 1871년부터 자국에서 인감제도를 시행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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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두이승을 떠나는 사람의 상여에 얹어 장식하는 형상을 꼭두 또는 목우라고 한다. 나무를 깎아 20-30센티 높이의 사람모양, 동물모양, 식물모양의 형상을 만든 것으로 투박하게 제작되었지만 화려한 오방색 색채를 입고 저승으로 가는 이의 동행자처럼 상여의 위에 놓여 있곤 했다. 말하자면 서민공예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꼭두는 정중하게 예를 취하는 자세, 위협적인 자세, 춤을 추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 등 다양한 모습을 등장하며, 아마도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수호정령과 같은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특이한 것은 지배층의 상여에는 인물 꼭두가 적다는 점이다.
오늘날 남아있는 꼭두는 대부분 조선시대 후기, 일제 강점기에 만든 것들로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지방에서 주로 나타나며, 충청도의 것은 평평한 나무를 쓰는 것이 특징이고, 경상도의 것은 불교조각의 냄새가 나는 것이 다르다. |  봉은사 4월 초파일석가모니의 탄생일, 절 마당에는 연등이 걸린다. 연꽃모양의 등을 걸고 밤에는 불을 밝혀 복을 비는 연등회는 신라시대부터 이어지는 행사이다. 조선시대에 다소 위축되기는 했지만 오늘날까지 이어지면서 부처의 가르침을 알고 인간의 마음을 밝히는 상징적인 행사가 되었고 최근에는 중요무형문화재로 등록되었다.
강남 봉은사 마당에 연등이 가득 차 있다. 연분홍 꽃모양의 등이 머리위로 즐비한데 저절로 부처의 마음 가까이 다가서는 것 같다. 연등을 만들고 거는 모든 과정이 특별한 기적도 아닌데 이런 사소한 일이 마음의 어둠을 가시게 할 정도의 위력을 갖는 것을 보면 신성한 존재를 인정하는 마음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종교는 사람을 감복시킬 수 있는 화려하면서도 웅장한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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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념있는 가게 141 프로젝트숙명여대 인근에 1.3평 크기의 작은 가게가 있다. 141 Project. 커피, 차 등 음료를 파는 데 너무 작은 가게여서 테이크-아웃만 할 수 있는 가게다. 가게는 작지만 이 가게 주인은 넓은 세상을 생각하는 개념있는 젊은이다. 서울대 법학부를 졸업한 한재우씨는 군대를 다녀오고 난 후 신발 한 켤레를 파면 한 켤레를 기부하는 ‘탐스 신발’처럼 세상에 도움이 되는 가게를 꿈꾸게 된다. 바로 공정무역 커피인 Peace 커피를 한 잔 팔 때마다 커피원두의 원가를 유니세프에 기증하는 가게를 연 것이다. 물론 공정무역 코코아와 홍차, 설탕도 사용한다. 그래서 노란 색 간판의 가게 앞에는 흔히 볼 수 없는 슬로건이 작게 쓰여 있다. “쇼핑은 정치다.” |  개념있는 가게공정무역이 쇼핑객들을 부르고 있다.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고자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지역의 수출업체가 환경보전 기준을 지키면서 생산한 제품을 정당한 가격으로 구매하자는 사회운동이 쇼핑과 만나고 있다. 유럽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1990년대 특히 붐을 일으켰고, 이제 한국에도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다. 보통 커피, 차, 꿀 등 먹는 제품이 주를 이루지만 수공예품, 옷 등도 상품대에 오르고 있다. 안국동 골목길 상권에 있는 작은 공정무역 가게의 모습이다. 작은 정원 뒤로 옷, 가방 등 수공예품을 진열한 모습이 보인다. ‘정의 사회’는 작은 쇼핑습관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더 나가 교회, 학교, 대학 등 단체가 공정무역에 참여하면 그 파급효과는 더 커질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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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1문화와 예술을 통한 도시개발.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는 이 슬로건을 내걸고 2005년부터 안양유원지를 중심으로 안양시 전역에서 2-3년에 한번씩 진행되어 온 사업이다. 처음에는 주로 안양유원지 인근에 예술가가 만든 조각, 설치를 배치한 예술공원을 만드는 일에 주력했다. 지금도 이 공원에 가면 영구설치된 작품들을 보며 산책할 수 있다.
2010년 진행된 프로젝트는 한국계 미국인인 박경 예술감독의 지휘 하에 진행되었는데 ‘동네’를 만들어 살아온 사람들처럼 결과물보다 진행과정을 강조한 작업을 선보였다. 작은 프로젝트들이 도시전역에서 진행되었고, 학운공원에는 ‘새 동네’를 만들어, 8개의 컨테이너로 만든 ‘오픈 스쿨’, ‘오픈 파빌리온’, ‘오픈 하우스’를 설립했다. 지금 사진에서 보이는 것이 독일의 라움라보어가 제작한 ‘오픈 하우스’. ‘새 동네’에는 사무실, 갤러리, 공연장, 복합공간이 들어섰고 시민, 작가, 학생, 자원봉사자 등이 어울리는 놀이터가 만들어졌다. |  안양석수시장 프로젝트대형마트의 깔끔한 진열대에서 쇼핑하려는 사람이 늘면서 안양의 석수시장과 같은 재래시장은 점점 사양길이다. 한때 옷집, 기름집 등 온갖 가게가 가득찼던 점포는 점점 비어가고 있고 아직도 영업을 하는 닭집 옆 가게는 비어 있다가 공공미술 프로젝트인 <석수시장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예술가들에게 자리를 내줬다.
2005년 시장 속에서 어떤 예술이 가능할까라는 고민에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매년 진행되면서 빈 가게에 토론과 사교를 위한 워크샵, 국내외 작가를 초대하여 작업실로 제공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 등 다양한 형태의 작업이 들어섰다. 처음에는 상인들이 가게에 예술가가 들어오는 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으나 매일 좁은 동네에서 부딪히다 보니 외국인 작가와 떡, 차를 같이 먹는 사이로 변해갔다는데 대안공간 ‘스톤앤워터’ 관장은 이를 ‘문화바이러스’의 힘이라고 믿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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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양석수시장과 미술의 만남안양에 가면 아파트 숲 사이로 1979년 문을 연 재래시장인 석수시장이 나지막하게 버티고 있다. 낡은 건물과 비좁은 거리에 손님의 흔적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한 지 꽤 된 이 시장에 예술을 통한 도시재생을 내건 일군의 문화인들이 들어와 2002년 ‘스톤앤워터’ (돌과 물, 즉 석수)라는 명칭의 대안공간을 만들었고, 2005년부터 이 대안공간의 주최로 <석수시장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석수시장이 위치한 만안구에 추진되는 뉴타운 사업에 반대하는 상인들의 현수막이 걸려있고, 그 옆으로 젊은 작가가 그린 시장상인들의 초상화가 보인다. 아직 가게 문을 열지 않은 어느 주말 아침, 찌뿌둥한 하늘, 빛바랜 시장건물 외벽, 회색톤의 초상화 인물얼굴, 그리고 낡은 녹색천막과 작가의 그림 속의 녹색, 주황, 빨강, 노랑의 흔적이 소리없이 어울리며 생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을 가슴 짠한 감성적 사건으로 만든다. |  충정각 전시장면충정각에 갈 때마다 두 가지에 놀란다. 하나는 개발위주의 시대를 거치면서도 이 금싸라기 같은 서울 도심 한복판에 이런 건물이 지금도 살아남았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국적인 건물이 오랜 풍파에 시달리면서도 여전히 쓸만한 건물로 유지되어 그 안에서 맛있는 요리와 멋있는 예술이 놀라운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와인잔과 식기류가 잘 세팅된 테이블 옆으로 최제헌 작가의 설치작업이 보인다. 독일에서 공부한 최작가는 정원, 야외, 길 등 기존의 공간을 재해석한 설치로 유명한데 이곳에서는 이미 공장에서 가공된 산업자재의 형태, 질감, 색채를 자유자재로 활용하여 추상적인 설치를 선보이고 있다. 100여년전 과거 일제 강점기의 유산에다 예술을 입혀 살아있는 현대인의 감수성을 자극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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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귀포 조형물거리에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조형물이 들어서고 있다. ‘조형물’은 건물의 장식물, 거리의 장식물로 돈을 받아 만든 예술적인 작업을 일컫는데 1988년 건축법에 따라 대형건물에 미술장식품을 설치하도록 의무규정이 나온 후 유통되기 시작한 단어이다. 이는 옥외에 건물을 장식할 목적으로 세우는 작품을 일컫는데 기존의 ‘공공조각’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고 ‘조형물’이라는 단어가 새로이 만들어진 것이다. 전자는 공공장소에 위치하기는 하지만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보다 예술성을 띈 작품을 일컬으며, 후자는 ‘00축제 상징조형물’처럼 주문을 의뢰한 주체기관의 목적에 부합하는 기능을 가진 작품이라고 볼 수 있지만 사실 이 두 단어는 어느 정도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서귀포 앞바다에 자연이 만든 예술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주상절리가 있는데, 그 인근에 사진속의 고동 조형물이 놓여있다. 조형물의 장점은 종종 사람들이 만지고 놀더라도 크게 제어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바닷가라는 |  제주시민회관 담벼락 전시거리는 사람, 차, 동물 등 거의 모든 것이 다닐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열린 공간은 말 그대로 모든 것에 열려있기 때문에 강아지의 소변부터 장난스러운 낙서까지 다 허용된다. 그러나 도시의 행정을 담당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열린 공간은 골칫거리이다. 소변냄새, 낙서는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해악이며, 가로수를 심고, 화단을 만들어 보기 좋고, 냄새 좋은 길로 만들어야 좋은 도시가 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벽화를 통해 아름다운 도시, 아름다운 마을 만들기를 시도하는 곳이 늘고 있다.
사진은 제주시 구도심에 위치한 제주시민회관의 담벼락이다. 행정구역으로 제주시 이도1동에 속하는 이 동네에 2007년 기존의 울타리를 걷어내고, 서예와 그림을 담은 벽화거리가 들어섰다. 원래 화랑과 표구점이 많았던 동네였는데 그러한 특성을 살려서 주민자치위원회와 주민센터가 손잡고 지역작가, 주민의 작품으로 구성된 ‘병풍거리’와 ‘벽화거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1964년 건립된 시민회관의 순박한 건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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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송도원래 백사장, 개펄로 이루어진 이 동네는 능허대라고 불리었으나 일제 강점기 풍광이 빼어난 곳을 송도(松島)로 부르기 좋아하는 일본인의 취향을 따라 명칭이 변모했다고 한다. 해방이후에는 바닷가 유원지로 명성을 날리면서 인천인근의 사람들이 놀러가던 휴양지 중의 하나가 되었다.
1980년대 송도신도시계획이 수립된 이후 큰 진척이 없다가 1999년 송도정보화신도시계획이 수립되고, 미국의 게일사가 2001년 송도국제업무지구조성에 참여하면서 인천시는 송도,청라, 영종도를 묶어서 ‘경제자유구역’이라는 광범위한 미래형 도시개발에 착수한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송도의 개발 속도는 늦어지고 있지만 다행히도 이전에 시도한 프로젝트들이 하나씩 완성되고 있다. 2009년 이후 송도에는 영종도에 위치한 인천국제공항과 연결된 인천대교가 준공되고, 인천국제디지털아트페스티벌이 열렸으며, 국제학교, 잭니클라우스골프장이 준공되어 그 사이에 하나 둘씩 입주한 아파트, 주상복합, 대학교 등과 함께 어느 정 |  부산 해운대최근 부산의 부동산 건립 붐은 과거 서울의 붐을 능가할 정도이다. 몇 개월마다 가보면 많은 건물이 쑥쑥 올라가고 있는데, 여의도, 마포, 강남보다 더 세련된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아마도 여기에 견줄만한 곳은 인천 송도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송도는 최근 분양, 입주가 늦어지면서 과거보다 속도감이 떨어졌고 부산은 나홀로 70층이 넘는 고층건물을 주거용으로 분양하는 메가도시가 되고 있다. 해안을 따라 ‘마린시티’, ‘센텀시티’ 등이 들어선 21세기 부산은 2012년 현재 한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해운대 두산위브더제니스, 80층)을 보유한 도시가 되었다. 주상복합건물이라고 하지만 최근 고층건물은 대부분 주거용 공간이며, 이를 반영하듯이 현재 전국의 주거용 건축물(총면적 기준) 중에서 아파트가 51.7%, 단독주택 16.4%, 다가구주택 6.7%, 다세대주택 5%, 연립주택 2%을 차지한다고 한다. 가히 고층 아파트 시대이다. 최근 단독주택이 인기가 있다고 하지만 국토면적이 적은 현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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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스부르그 환경공원20세기 독일의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는 데 기여했던 주요 철강공장지대였던 이곳은 탄광산업이 쇠퇴하면서 폐허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친환경개발을 중요시하는 일부 시민을 중심으로 공장을 철거하기보다는 공원으로 재개발하여 역사, 문화, 예술, 레저, 자연이 어우러진 곳으로 만들어 1997년 개장했다. 물의 공원, 용광로 공원, 부스러기 공원, 철길 공원, 벙커 갤러리 등이 있으며, 친환경 시대의 모범적 사례로 꼽힌다. |  뒤스부르그 환경공원20세기 독일의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는 데 기여했던 주요 철강공장지대였던 이곳은 탄광산업이 쇠퇴하면서 폐허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친환경개발을 중요시하는 일부 시민을 중심으로 공장을 철거하기보다는 공원으로 재개발하여 역사, 문화, 예술, 레저, 자연이 어우러진 곳으로 만들어 1997년 개장했다. 물의 공원, 용광로 공원, 부스러기 공원, 철길 공원, 벙커 갤러리 등이 있으며, 친환경 시대의 모범적 사례로 꼽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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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대 들어 미국 북동부의 대표적인 도시인 보스턴이 달라지고2000년대 들어 미국 북동부의 대표적인 도시인 보스턴이 달라지고 있다. 보스턴은 뉴잉글랜드의 문화, 교육, 금융, 의료 중심지로서 인근의 지역까지 아울러 ‘Greater Boston'을 형성하면서 하버드 대학교, MIT 등 주요한 대학뿐만 아니라 메사추세츠 종합병원 등 유수의 의료기관이 위치한 곳이다. 특히 다운타운은 역사유적이 많은 곳이자 주요 금융기관이 위치한 곳으로 최근 도심개발의 중심지이다.
로즈 케네디 그린웨이는 다운타운에 기존의 도로를 지하로 옮기고 지상에 새로이 만든 녹색공원으로 총길이가 1마일에 달한다. 그 결과 지하는 신호등이 없이 차가 달릴 수 있게 되었으며 지상에는 15에이커에 달하는 공원이 만들어졌으며 2008년 공시적으로 개장되었다. 친환경적인 도심개발의 사례로 꼽힌다. |  보스턴 다운타운-현대미술관 ICA2000년대 들어 미국 북동부의 대표적인 도시인 보스턴이 달라지고 있다. 보스턴은 뉴잉글랜드의 문화, 교육, 금융, 의료 중심지로서 인근의 지역까지 아울러 ‘Greater Boston'을 형성하면서 하버드 대학교, MIT 등 주요한 대학뿐만 아니라 메사추세츠 종합병원 등 유수의 의료기관이 위치한 곳이다. 특히 다운타운은 역사유적이 많은 곳이자 주요 금융기관이 위치한 곳으로 최근 도심개발의 중심지이다.
특히 대서양에 인접한 항구도시로서 보스턴은 워터프런트에 주목해왔다. 다운타운의 워터프런트는 고층건물과 호텔로 이미 채워져있으며, 최근 남쪽 워터프런트 개발이 한참 진행되고 있다. 호텔, 컨벤션센터, 극장, 미술관 등 새로운 시설이 속속 들어오면서 보스턴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현대미술관 ICA는 국제적인 수준의 현대미술을 선보이는 곳으로 건축가 Diller Scofidio &Renfro가 설계했으며 2006년 정식으로 이주한 후 개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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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대 들어 미국 북동부의 대표적인 도시인 보스턴이 달라지고2000년대 들어 미국 북동부의 대표적인 도시인 보스턴이 달라지고 있다. 보스턴은 뉴잉글랜드의 문화, 교육, 금융, 의료 중심지로서 인근의 지역까지 아울러 ‘Greater Boston'을 형성하면서 하버드 대학교, MIT 등 주요한 대학뿐만 아니라 메사추세츠 종합병원 등 유수의 의료기관이 위치한 곳이다. 특히 다운타운은 역사유적이 많은 곳이자 주요 금융기관이 위치한 곳으로 최근 도심개발의 중심지이다.
1820년대에 새워진 퀸시 마켓은 다운타운의 얼굴로서 오랫동안 보스턴의 농수산물을 거래하는 지역시장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1970년대 농수산물시장이 더 넓은 공간을 찾아 떠나면서 기능을 전환해야했으며 이때부터 이벤트, 축제를 열면서 동시에 인근 지역의 직장인, 관광객의 점심이나 저녁을 해결할 수 있는 식당, 바, 쇼핑시설이 군집한 곳으로 재탄생했다. |  2000년대 들어 미국 북동부의 대표적인 도시인 보스턴이 달라지고2000년대 들어 미국 북동부의 대표적인 도시인 보스턴이 달라지고 있다. 보스턴은 뉴잉글랜드의 문화, 교육, 금융, 의료 중심지로서 인근의 지역까지 아울러 ‘Greater Boston'을 형성하면서 하버드 대학교, MIT 등 주요한 대학뿐만 아니라 메사추세츠 종합병원 등 유수의 의료기관이 위치한 곳이다. 특히 다운타운은 역사유적이 많은 곳이자 주요 금융기관이 위치한 곳으로 최근 도심개발의 중심지이다.
1733년에 세워진 트리니티 교회는 화재로 소실된 후 1870년대 현재의 카플리 스퀘어에 새롭게 로마네스크풍으로 지워진 성공회 교회이다. 타종교의 행사를 수용할 정도로 개방적이며 매년 12월에 여는 크리스마스 캐럴 음악회는 보스턴의 주요한 연례행사이다. 수백 년에 걸친 도시발전에도 불구하고 다운타운 보스톤의 주요한 문화기관으로 꿋꿋이 자리잡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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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대 들어 미국 북동부의 대표적인 도시인 보스턴이 달라지고2000년대 들어 미국 북동부의 대표적인 도시인 보스턴이 달라지고 있다. 보스턴은 뉴잉글랜드의 문화, 교육, 금융, 의료 중심지로서 인근의 지역까지 아울러 ‘Greater Boston'을 형성하면서 하버드 대학교, MIT 등 주요한 대학뿐만 아니라 메사추세츠 종합병원 등 유수의 의료기관이 위치한 곳이다. 특히 다운타운은 역사유적이 많은 곳이자 주요 금융기관이 위치한 곳으로 최근 도심개발의 중심지이다.
현재 보스턴은 미국 북동부에서 뉴욕 다음으로 고층건물이 많은 도시이다. 바이오기술 등 첨단 산업이 성장하는 유망한 도시이자 삶의 만족도가 높은 도시이지만 물가가 비싼 것이 흠이다. |  보스턴 다운타운-워터프런트2000년대 들어 미국 북동부의 대표적인 도시인 보스턴이 달라지고 있다. 보스턴은 뉴잉글랜드의 문화, 교육, 금융, 의료 중심지로서 인근의 지역까지 아울러 ‘Greater Boston'을 형성하면서 하버드 대학교, MIT 등 주요한 대학뿐만 아니라 메사추세츠 종합병원 등 유수의 의료기관이 위치한 곳이다. 특히 다운타운은 역사유적이 많은 곳이자 주요 금융기관이 위치한 곳으로 최근 도심개발의 중심지이다.
특히 대서양에 인접한 항구도시로서 보스턴은 워터프런트에 주목해왔다. 다운타운의 워터프런트는 고층건물과 호텔로 이미 채워져 있으며, 최근 남쪽 워터프런트 개발이 한참 진행되고 있다. 호텔, 컨벤션센터, 극장, 미술관 등 새로운 시설이 속속 들어오면서 보스턴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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